러셀의 행복철학
팀 필립스 지음, 정미현 옮김 / 빅북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누구나 예외없이 행복해지고 싶어하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나름대로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버틀런드 러셀의 저서 <행복의 정복>을 현대적으로 해석, 정리한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말한다. 러셀이 '우리의 행복에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게되었다고, 그리고 러셀 본인이 대단히 행복했음도 감지할 수 있다고. 맞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가 행복한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자서전의 첫 장에서 읽었던 자작시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러셀의 나이 70이 넘어 마지막 연인으로 만났던 이디스에게 썼던 시는 진솔했고 마음껏 연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는 영국의 귀족 집안에서 자랐지만, 허위나 가식을 경계하고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었던 것이다. 
또한 저자는, 러셀이 말하는 행복은 '킬킬거리게 만들거나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9쪽)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행복은, 단순한 감정의 상태에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 나아가 존재 그 자체의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진정한 행복이란,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계에서 느끼는 즐거움,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역량껏 살아가는 것'(16쪽).

 

기억에 남는 러셀의 책 몇 권이 떠오르지만 나는 '행복의 정복'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가장 인기있는 러셀의 책이라는데, 흐흠(내 취향이 그리 대중적이진 않나...^^;). 이 책을 읽고보니 '행복의 정복'이 어떤 책일까 더욱 궁금해진다. 지금으로부터 80년도 더 전에 '행복의 정복'에서 불행을 극복 대상이자 도전 과제로 여겼던 러셀, 저자의 표현대로 '당시 우울증 치료제라는 건 달 표면을 걸어 다니는 사람만큼이나 낯선이야기'(10쪽)였던 시대에 앞으로의 시대를 미리 내다본 사람. 시대가 흐르고 과학기술은 더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사람들은 더욱 공허해지고 더욱 행복에 목말라할 거라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 같다.

 

사족이지만, 나는 러셀의 책 제목인 '행복의 정복'에서 '정복'이라는 단어가 사실 맘에 들지 않았다. 단어 그 자체가 주는, 제국주의의 오만 같은 것을 연상케 하는 면도 있고, 또 어쩐지 고군분투해서 뭔가를 힘겹게 얻어내는 대상이 된 듯한 '행복'에 거부감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러셀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니 그가 왜 '정복'이란 말을 썼는지 이해가 되었다.

러셀은 부유하고 지체 높은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릴 때부터 비상한 영민함을 보였지만, 겨우 다섯 살 때부터 이미 침울하고 기운없는 아이였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행복하지 않았다고, 사는 것이 싫었다고 고백하는 10대 소년 러셀은 시도 때도 없이 자살을 꿈꾸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수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열망 때문에 그 어두운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고. 그렇게 수학에 대한 열망으로 연구에 몰두한 덕에 그는 20세기 최고의 석학 중 한 명이 되었고, 우울증도 차츰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이기에 행복을 '정복'하는 방법들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된 것이리라.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러셀의 삶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자기몰두', 즉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주는 도전과 분투에 몰두한다면 더 행복해진다'(31쪽)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고개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내가 사랑하는 일, 뭔가 나를 가슴뛰게 하는 일에 몰두하면 우리는 시간이 가는 것도 잊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삶의 고단함에 대해서도 잊지 않는가.  

 

수학자, 철학자로서, 교육자로서, 문학가로서, 반전평화운동가로서의 삶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던 버틀런드 러셀. 그런 그이기에 우리가 일상을 향유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성찰하지 않았을까 싶다. 덕분에 한 해의 마지막 달력을 바라보며, 내가 지금 내 삶을 채워가고 있는 방식에 대하여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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