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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아이들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6
브록 콜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소설의 도입부부터 충격적이었다. 숲 속의 캠프, 한 무리의 소년들은 한 소년의 바지와 셔츠, 신발과 양말까지 모두 벗긴다. 발가벗겨진 채로 손과 무릎으로 기어 허둥지둥 갈대숲으로 가 쓰러지는 소년에게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
"하위, 넌 고트야. 알겠냐?"(8쪽)
캠프의 오랜 전통쯤으로 알게모르게 묵인되다시피 해 온 '고트'. 이름부터가 너무 잔인하다. 염소를 제물로 바치듯이 누군가를 집단 괴롭힘의 희생자로 삼다니. 어두운 밤, 고트가 되어 섬에 홀로 남겨진 소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홀로 섬을 헤매던 소년은 낡은 텐트 플랫폼에서 꺽꺽거리고 우는 소리를 듣게 된다. 또 다른 고트, 로라라는 이름의 소녀가 하위처럼 옷을 빼앗기고 낡고 더러운 담요로 몸을 싸맨 채 웅크리고 있었던 것.
두 아이는 카누가 섬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곳을 빠져나가기로 결심한다. 자기들을 고트로 만든 아이들에게 순순히 갇혀 있는 모습을 보이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러웠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카누를 몰래 빼앗아 타고 달아나려던 처음의 계획은 실패하고, 소년은 수영을 못하는 소녀를 격려해 통나무를 붙들게 하고 겨우 통나무를 밀며 헤엄쳐 섬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카누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하위와 로라를 확인하러 온 아이들이 아니라, 캠프의 상담사와 관리자같은 사람이었다. 만약 하위와 로라가 그대로 섬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하위와 로라에게 옷을 주고, 다시 캠프로 안전하게 데려다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위가 로라가 고트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퍼졌을 것이고, 결국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캠프를 운영하는 어른들도 캠프의 전통과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이런 잔인함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했다. 왕따와 폭력으로 얼룩지고 미봉책들만 난무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만 같아서.
"마르고, 진정하세요.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에요. 저도 이게 바보 같은 짓이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아이들도 특별히 해를 끼칠 생각은 아니었을 거예요."(24쪽) 이런 말들.
그 후 하위와 로라는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며 길을 나아간다. 말그대로 실오라기 하나 없었기에, 누군가의 여름별장의 덧문을 부수고 들어가 누군가의 옷을 입고 통조림을 꺼내 먹었다. "그냥 우리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36쪽), 이런 대화를 나누는 소년과 소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세상에 대해 비뚤어진 복수를 한다거나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한다거나 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더이상 캠프의 아이들과 섞이고 싶지도 않다. 터키에서 유물 발굴을 하고 계시는 고고학자 부모님을 둔 소년에게, 소녀는 자기 엄마에게 전화해서 둘을 함께 데리러 오라고 부탁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동전까지 훔쳐내어 겨우 전화를 했는데, 소녀의 엄마는 소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네가 혼자서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이다는 걸 이번엔 좀 보여 줬으면 좋겠'다고 일방적으로 이야기한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발가벗겨진 채 섬에 고립되었다고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냥 울면서 '저 좀 데리러 와 주세요'하고 말한 로라도 로라지만, 울고있는 딸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설교만 하고 전화를 끊은 엄마도 안타까웠다.
그 후 또 둘의 모험은 계속된다. 해수욕장 탈의실에서 옷을 훔쳐내입고, 티완다라는 흑인소녀의 도움으로 다른 캠프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하고, 거짓말로 모텔에서 잠을 자다가 청소부에게 발각되어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여러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들이지만, 서로를 염려하고 돌봐주며 꿋꿋하게 버텨내는 모습이 대견했다. 자기들이 사람들의 동전이나 물건 등 여러가지를 빌려(?)쓴 것들을 꼼꼼하게 적어두며 꼭 갚자고 이야기나누는 장면은 귀엽기도 하고.
나중에 로라는 엄마에게 자동응답기로라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캠프 선생님을 통해 사건을 파악하게 된 엄마는 딸에 대한 걱정으로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로라와 엄마가 마음을 터놓게 되어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엄마와 통화하게 된 로라는, 이제 자신의 안위보다 하위가 자기와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을 걱정한다. 함께 고트가 되어 버려졌고, 함께 많은 일들을 겪으며 서로 위로하고 헤쳐나간 둘은, 이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리라.
소설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라고 부르고 싶다. 열린 결말로 끝난다. 다행스럽게도, 하위와 로라는 숲속으로 숨어들어갔다가 다시 엄마를 향해 손을 꼭 잡고 걸어나온다. 더이상 숨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잇었지만, 엄마가 언제나 먼 곳에 있다고 믿고있었던 소녀 로라는, 이제는 엄마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년 하위는 앞으로 자신이 맞닥뜨려야 할 여러 일들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모든 것을 잘 해나가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소년과 소녀는, 아픔을 딛고 성장하게 된 것이다.
"우린 방법을 생각해 낼 거야. 언제나 그랬으니까."(216쪽)
하위와 로라가 부디 앞으로도 씩씩하게 모든 것을 잘 이겨나가기를, 그리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로 계속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해가기를 비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