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와 거기 - GQ 에디터 장우철이 하필 그날 마주친 계절과 생각과 이름들
장우철 지음 / 난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필 그날 마주친 계절과 생각과 이름들', 공감이 가는 부제이다. 이 세상에 와서 만난 수많은 계절과 시간 중에, 수많은 장소와 사람들 중에 ‘하필’ 그날 가슴을 두드린 것들, 그 만남들을 저자는 자유로이 거리낌 없이 펼쳐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그만큼 다양한 색깔을 품고 있다. 에세이면서도 사진집 같기도 하고, 돌연 인터뷰집이 되었다가 감각적인 잡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누군가가 자기 마음을 휘갈겨 쓴 일기를 몰래 읽고 있는 느낌도 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마지막 봄. 이 다섯 계절을 지나며 일상의 틈에서 건져 올린 생각들, 사람들, 장소와 기억들은 무척 두서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또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엮이며 펼쳐진다. ‘사랑을 잃고 나는 찌네’, ‘서울에서의 마지막 탱자’처럼 꼭지 제목에서부터 톡톡 느껴지는 잡지 에디터 특유의 감각이 살아있기도 하고, ‘아, 맞아, 나도 이런 적 있었지’하고 끄덕끄덕 공감이 되는 단상들이 이어지고. 특히 어머니와 함께 금강산을 찾았던 짧은 여행기와 계절마다 들어있는 인터뷰가 좋았다. 가수 이소라와 이상은, 그리고 사진작가 권부문과 농부 홍순영... 특히 하늘, 바다, 산 등 자연을 주된 소재로 작업해 온 권부문 작가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구례에 사는 농부 홍순영과의 담담한 인터뷰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언제라도 구례 지나는 길이면 들러서 감 달린 것도 보고 벼 자라는 것도 보고 들판에 부는 바람도 쏘이고 그라믄 좋지요. 참말로 좋지요’(205쪽)하는 농부의 웃음은 넉넉한 자연의 품을 닮아 있었다.


다정다감하게 일상을 어루만지다가도 언뜻언뜻 날선 기운이 비치기도 한다. ‘패션은 아름답다.(중략) 그런데 요즘 그것을 다루는 말은 심히 부끄럽다. 실은 추하다’(225쪽)으로 시작되는 ‘패션과 입술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글에 진하게 공감하며 읽었다. 패션을 다룬다는 방송의 언어들은 외계어의 향연이 된지 오래된 것 같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기에. 또 그렇게 모두들 눈먼 채 좇아가는 유행이란, 스타일이란 또 얼마나 얄팍하고 허무한 것이 되기 쉬울까. '충고는 개선을 향하지 않고 비판은 쇄신을 전제로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가 남는다. 그건 부끄러움이다‘(228쪽). 맞다.

또한 오랫동안 잡지 에디터를 해 온 사람이라 그 속사정을 알고 있었을, 인터뷰의 실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부분도 읽으며 속이 시원했다. 솔직히 나는 인터뷰하는 잡지사와 일부 연예인들 간의 거래 관행이 그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기에 좀 놀랐다. 그래서 ‘문제는 인터뷰과 수단과 조건이 되면서 생겨나는 왜곡된 풍토, 별의별 꼴사나움이다’(235쪽)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또한 인터뷰가 인터뷰로 확고하지 못한 이유는, 스타가 자신을 온전히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환경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매체마다의 고유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그의 생각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터뷰 읽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슬픈 일이다.


‘마지막 봄’에 이르기 전에, 글 없이 사진들만 연이어 들어있는 장이 있다. 독특하고 느낌이 좋은 사진들이 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순간 셔터를 눌렀을까, ‘하필’ 그 때 마주친 생각과 느낌들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상상해보았다. 그래, 어떤 순간도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있을까. 그런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보석 같은 삶을 만들어내는 것일 테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