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놓치지 않는 50가지 습관 - 운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센다 타쿠야 지음, 서지혜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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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행운이 미리 정해진 것쯤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운은 그 사람의 성격, 사고방식이나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이며 운이란 과실처럼 키워가는 것이란다. 운이 좋은 사람은 '행운을 내 편으로 만드는 습관'을 즐겁게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평범한 듯한 말이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습관들을 작심삼일에 그치게 하지 않고 꾸준히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에 달려 있겠지만...

 

인생과 일, 사랑, 우정, 돈. 이 다섯 가지 키워드에 각각 10개씩의 '행운을 내 편으로 만드는 습관'들을 깔끔하게 잘 정리해 놓은 책이다. 특히 '인생'과 '우정'쪽에 진한 공감이 가는 글들이 많았다. '자신도 미숙한 주제에 운이 나쁜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지 마라. 당신이 강해지면 상대가 저절로 도움을 받게 된다(142쪽)'같은 이야기는  처음에는 너무 삭막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할수록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렇다, 약간은 쓸데없이 오지랖 넓은 나에게는 꽤 찔리는 말인 것이다.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못 본 척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넓은 관점에서 내가 더 강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행운을 전염시켜주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야 '진정한 우정에는 존경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존경이란 서로 실력을 계속 연마하도록 돕는 것(174쪽)'의 말이 맞아 떨어지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일 테니.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과는 다른,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라는 충고들도 기억에 남는다. 이를테면 '어떤 일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쪽이라면 지금 이득을 못 보는 쪽을 선택하라. 나중에 더 큰 이득이 돌아올 것이다(40쪽)', '인생의 고비에서는 항상 자신의 욕심을 조금만 양보하자. 나이가 들면서 강한 운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48쪽)'와 같은.

 

각종 정보와 읽을거리들이 넘쳐나는 시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운을 내 편으로 만들어내는 원칙들은 단순한 것들이다. 주위에서 강한 운을 가진, 자신이 닮고 싶은 사람을 찾고 철저히 그들을 모방하는 일, 일을 미루는 짓을 절대로 하지 않고 시간 약속에 철저하고 업무량을 나누어 하는 습관을 키워 나와 상대방의 시간을 벌어주는 일, 벌어들인 돈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투자하는 습관을 갖는 일...

사실 어찌보면 '다 아는 이야기들인데'하고 가볍게 흘려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분명히 별개의 문제이고, 이렇게 책에서 정리해주는 내용을 통해 다시 나 자신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의지를 다지는 것이 이런 책의 가치가 아닐까. 그리고 이렇게 다잡은 마음을, 타성과 게으름과 타협하지 않고 꾸준히 지켜서 자신의 삶의 원칙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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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날은 없다 단비청소년 문학 1
조에 벡 지음, 정성원 옮김 / 단비청소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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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날은 없다, 제목이 어쩐지 맘에 드는 이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운이 좋다면 개학하기 전에 죽고 싶다.'

 

열 여섯, 하지만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에드바르트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괴롭히는 헹크는 얼마나 '살기 싫게' 만드는 존재였을까. 늘 자신을 본체만체하는 콘스탄체도. 그렇게 열 여섯다운 고민과 열 여섯다운 방황을 하는 에드바르트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일기를 쓴다. 귀엽기도 하고, 공감이 가기도 하고, 또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해 주기도 하는 솔직담백한 에드바르트의 내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즐거웠다.

 

현실의 콘스탄체와는 달리, 페이스북의 제이슨에게 콘스탄체는 뜨거운 관심과 반응을 보인다. 에드바르트가 그런 콘스탄체를 보며 느끼는 절망감과 배신감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원래 존재하지도 않았던 존재인 제이슨의 죽음에 대한 추모의 열기와 온갖 음모론들은 우리의 사이버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가끔 우리는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상인지에 대해, 무엇에 대해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쓸 것인가에 대해서 갈팡질팡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래도 에드바르트는 운이 좋은 소년이란 생각이 든다. 조금은 괴짜인 면도 있지만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무엇보다 '1등주의'가 아닌 에드바르트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살기를 바라는 진보적인 부모님, 그리고 처음의 만남은 비록 개똥으로 시작되었지만 에드바르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개인교습을 해주고 과학과 천문학에 대한 애정을 심어준 옆집 할아버지, 여자 같지는 않지만 에드바르트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공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멋진 소녀 칼리... 그들이 있기에 '죽고 싶은 날은 없다'는 것일 것이다.

 

특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별>이라는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한 옆집 할아버지가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에드바르트의 엄마와 친구들끼리 집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부분은 인상깊었다. 에드바르트가 존경하고 애정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 잘못된 사회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리라는 기분좋은 느낌도 들었다. 에드바르트의 엄마, 멋지다. 우리 현실에서는 만나기 힘든 캐릭터라는 사실이 안타깝지만...(십대 아들이 공부는 안하고 농성하는 것을 지지해 줄 엄마가 흔할까). 성장과 우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여러 면에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에드바르트와의 만남, 유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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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랄의 거짓말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2
이르판 마스터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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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오랜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분리된 인도-파키스탄. 교과서에서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서술되어 있던 사실을 읽었을 때에는 몰랐던 일이었다. 그런 역사적 사실 이면에는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이,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 중에 북인도의 작은 마을의 한 칸짜리 자그마한 진흙 오두막에서 병든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한 소년, 빌랄의 이야기가 있다.

 

열세 살, 아직 어린 나이지만 홀로 아버지를 돌보며 가난한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빌랄은 놀랍도록 의지가 굳고 심지가 단단한 소년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 형, 그리고 시시각각으로 밀어닥치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상황들... 하지만 빌랄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사랑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 인도를 사랑하고 분열 직전에 놓인 인도의 현실에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는 아버지를 위해 일생일대의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아버지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기를 바라며 자신은 기꺼이 거짓을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르기로 결심하는 열세 살 소년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이 순진하기까지 한 계획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하지만 빌랄에게는 언제나 믿고 의지하는 친구 셋, 초타와 쌀림, 만지트가 있다. 이 소설은 암담하고 마음아픈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지만, 읽으면서 빌랄과 세 친구들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라 그래도 웃을 수 있었다. 세 친구는 모두 마음과 힘을 합쳐, 빌랄의 하얀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고 안전하게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애를 쓴다. 빌랄은 날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마을의 상황과 인도의 현실을 아버지가 모르게 하도록 노심초사하지만 세 친구들은 정말 의리있게 빌랄을 돕고 항상 그를 격려하고 지지해준다. 늘 그렇다. 어른들이 만든 모순 투성이의 무거운 현실, 하지만 절망하고 현실을 탓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헤쳐가며 서로 힘이 되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 가슴 아팠다.

 

그러나 언제까지 아이들만의 힘으로 그 비밀이 지켜질 수 있을까. 제발 아군을 더 만들어, 빌랄!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빌랄은 아버지를 위한 가짜 신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케르 선생님과 인쇄소 씽 아저씨, 그리고 의사 선생님에게 자신의 거짓말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는다. 온갖 고생 끝에 만든, '인도는 하나'라는 제목의 빌랄이 만든 신문을 읽고 함박웃음을 짓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모두 다 좋아질 거예요"하는 빌랄.

그러나 현실은 더욱더 어둡게 흘러가고, 빌랄의 사랑하는 친구들도 마을을 떠나고 흩어지게 된다. 방화와 살인, 폐허가 된 마을에서 그래도 아버지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지켜드린 빌랄. "네가 나의 인도란다"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과 세월이 지나 아버지가 남긴 편지 속에 드러난 진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는 숨을 거두기 직전, 빌랄의 거짓말을 알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된 지 6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갈등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는 옮긴이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대규모 집단 폭력 사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가족과 헤어졌다는데... 그동안 마나 많은 빌랄들이 가슴앓이를 하고 눈물을 흘렸을까. 부디 그 눈물들이 마를 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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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삶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들
메리 캐서린 베이트슨 지음, 안진이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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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던 중에 부고를 들었다. 암으로 오랫동안 투병 중이셨던 엄마의 친한 친구 분이 세상을 뜨신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척 예뻐해 주셨고 우리 가족과는 친척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오던 분이라, 엄마는 물론이고 온 가족 모두 무거운 공기 속에 잠겨 있었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우리는 삶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것처럼 살고 있지만, 사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 참 당연한 것인데, 일상을 정신없이 일궈 가면서 잊고 있었던 진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이 평화롭게 잠드시기를 빌면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들여다본다. '죽을 때까지 삶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들'. 가슴에 무척 와 닿는 제목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일종의 대차대조표 같은 것을 마음 속에 그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즉, 정말로 내 삶에 꼭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 아닌데 집착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 발짝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마이너스 쪽에 놓아 보는 것. 그리고 이 책의 제목처럼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할', 꼭 품고 끝까지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진정어린 마음으로 플러스 쪽에 놓아보는 것.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어내려갔다. 문화인류학자인 작가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작가 본인의 이야기도 포함해서) 그들에게 전해들은 삶의 이야기를 촘촘히 전해주는 이 책은 따뜻했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금속 세공사, 사회운동가, 영화배우, 사제, 동성애자... 작가가 인터뷰한 인물들은 제각각 다채롭고 풍요롭게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이들이었다. 작가 베이트슨은 진심으로 인터뷰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 적극적으로 그 속에 개입하면서(문화인류학자라 그런가, 무척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지식이 많은 인터뷰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삶의 본질이 다채로운 것이니, 정해진 하나의 삶의 정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우리는 이렇게 아름답게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간접체험을 하고 다채로운 배움을 얻을 수 있다. 베이트슨이 인터뷰이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이끌어낸 여러 화두들은 다 진지하게 곱씹으며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 주었는데, 내게는 특히 '유산'이란 키워드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보통 '유산'하면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매력적이고 생각이 깊은 배우 제인 폰다가 베이트슨의 유산에 대한 질문에 "나의 인생 이야기"라고 대답했듯이,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물질적, 금전적 유산뿐만 아니라 내가 평생 동안 노력해서 만들어낸 나의 삶을 하나의 본보기로 물려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하루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많은 인생 선배들의 생생하고 진심어린 목소리가 내 안을 가득 채워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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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뉴요커의 중국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 - 순도 99% 공산주의 중국으로의 시간 여행
수잔 제인 길먼 지음, 신선해 옮김 / 시공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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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해지고 싶다면,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그 경험들의 '쩍 벌린 아가리' 속으로 뛰어들기를 갈망해야 한다.

물론 이 방법은 아주 위험하다. 수많은 현인이 그대로 삼켜지고 말았으니.   -프리드리히 니체

 

책의 첫 표지에 적혀있던 니체의 말이 인상적이다. 경험들의 '쩍 벌린 아가리'라, 무지막지하게 느껴지면서도 딱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아가리 속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은 두 친구, 갓 대학을 졸업한 수지와 클리어. 그들은 팬케이크 전문점에서, 메뉴가 인쇄된 종이매트 위에 적혀져 있던 '세계곳곳의 팬케이크를 즐기세요!'라고 라는 광고문구와 사진을 보는 순간 '갑자기 우리 앞에 펼쳐진 광활한 세상이 한없이 만만하게 다가왔다'(27쪽)고 느끼고 의기투합한다. 과감하고 야심찬 세계 일주 계획의 첫 출발지로 1980년대의 중화인민공화국을 겁없이 선택한 그들의 이야기.

 

꽤 묵직한 책의 두께가 어찌나 술술 줄던지. 이십 년 전의 여행을 다시 기억을 되감아 썼다는 이 책, 무지하게 독특하다. 책 제목과 달리, 이 이야기에는 중국을 여행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으로 실용적인 내용이 거의 없다(물론 1980년대의 중국 여행기에서 무슨 실용적인 정보를 캐겠느냐만은^^;). 기행문의 구성요소가 여정, 견문, 감상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선명한데 여정이나 견문은 띄엄띄엄이고 감상으로만 신나게 연이어 간다. 난생 처음 낯선 세상으로 던져진 설렘과 두려움과 불편함과 미숙함, 함께 여행하는 클레어에 대한 복잡다단한 심경, 여행지에서 부대끼고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들.

 

처음에는 둘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그랬다. 솔직히, 기동성이 생명인 배낭여행자가 니체 전집에 점성술 책까지 챙겼으면서 휴지도 챙기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고. '관광 가이드'나 '힐튼 호텔' 대신 '현지인 모드'로 여행하겠다고 큰소리친 주제에 간단한 중국어 회화조차 공부하지 않고 떠난 그들이 크고작은 사건들에 사사건건 부딪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공산주의 국가의 답답한 행정과 숨막히는 검열, 감시망에 대해서도 어떻게 아예 아무런 마음의 준비없이 백지상태로 갈 수 있었을까.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미국인들의 대책없는 낙천주의 혹은 미국중심주의 같으니라구.

 

하지만 갈수록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고생한만큼 철이 들고 성숙해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어 클레어 상태가 조금씩 불안해지더니 갑자기 이 여행담이 스릴러가 되어가고 있었다. 멋진 독일남자 에켄하르트와의 로맨스, 그리고 클레어의 실종, 온갖 고생 끝에 다시 만나게 된 클레어를 중국에서 무사히 빼 나가기 위한 연기와 협박.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고군분투 끝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두 친구. 그리고 소식이 끊긴 클레어.

뭐랄까. 너무나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로 전개되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당차던 클레어가 스스로 강으로 걸어들어갈 정도로 힘들었다니 안쓰럽기도 하고. 하지만 수지가 그렇게 자신을 무사히 중국에서 탈출시키려 애썼는데 그뒤로 연락하지 않았다니... 혹시 그녀는 회복되지 못한걸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한번의 여행은,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키기도 한다. 처음에는 낯선 곳에 도착하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울었던 수지는, 클레어를 데리고 왔던 뉴욕의 공항에서 다시 새 걸음을 내딛는다. 꿈꾸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곳을 여행하고, 저널리스트가 되고, 20년 전 팔찌를 주면서 리사를 다시 찾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다. 니체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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