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뉴요커의 중국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 - 순도 99% 공산주의 중국으로의 시간 여행
수잔 제인 길먼 지음, 신선해 옮김 / 시공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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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해지고 싶다면,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그 경험들의 '쩍 벌린 아가리' 속으로 뛰어들기를 갈망해야 한다.

물론 이 방법은 아주 위험하다. 수많은 현인이 그대로 삼켜지고 말았으니.   -프리드리히 니체

 

책의 첫 표지에 적혀있던 니체의 말이 인상적이다. 경험들의 '쩍 벌린 아가리'라, 무지막지하게 느껴지면서도 딱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아가리 속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은 두 친구, 갓 대학을 졸업한 수지와 클리어. 그들은 팬케이크 전문점에서, 메뉴가 인쇄된 종이매트 위에 적혀져 있던 '세계곳곳의 팬케이크를 즐기세요!'라고 라는 광고문구와 사진을 보는 순간 '갑자기 우리 앞에 펼쳐진 광활한 세상이 한없이 만만하게 다가왔다'(27쪽)고 느끼고 의기투합한다. 과감하고 야심찬 세계 일주 계획의 첫 출발지로 1980년대의 중화인민공화국을 겁없이 선택한 그들의 이야기.

 

꽤 묵직한 책의 두께가 어찌나 술술 줄던지. 이십 년 전의 여행을 다시 기억을 되감아 썼다는 이 책, 무지하게 독특하다. 책 제목과 달리, 이 이야기에는 중국을 여행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으로 실용적인 내용이 거의 없다(물론 1980년대의 중국 여행기에서 무슨 실용적인 정보를 캐겠느냐만은^^;). 기행문의 구성요소가 여정, 견문, 감상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선명한데 여정이나 견문은 띄엄띄엄이고 감상으로만 신나게 연이어 간다. 난생 처음 낯선 세상으로 던져진 설렘과 두려움과 불편함과 미숙함, 함께 여행하는 클레어에 대한 복잡다단한 심경, 여행지에서 부대끼고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들.

 

처음에는 둘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그랬다. 솔직히, 기동성이 생명인 배낭여행자가 니체 전집에 점성술 책까지 챙겼으면서 휴지도 챙기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고. '관광 가이드'나 '힐튼 호텔' 대신 '현지인 모드'로 여행하겠다고 큰소리친 주제에 간단한 중국어 회화조차 공부하지 않고 떠난 그들이 크고작은 사건들에 사사건건 부딪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공산주의 국가의 답답한 행정과 숨막히는 검열, 감시망에 대해서도 어떻게 아예 아무런 마음의 준비없이 백지상태로 갈 수 있었을까.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미국인들의 대책없는 낙천주의 혹은 미국중심주의 같으니라구.

 

하지만 갈수록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고생한만큼 철이 들고 성숙해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어 클레어 상태가 조금씩 불안해지더니 갑자기 이 여행담이 스릴러가 되어가고 있었다. 멋진 독일남자 에켄하르트와의 로맨스, 그리고 클레어의 실종, 온갖 고생 끝에 다시 만나게 된 클레어를 중국에서 무사히 빼 나가기 위한 연기와 협박.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고군분투 끝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두 친구. 그리고 소식이 끊긴 클레어.

뭐랄까. 너무나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로 전개되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당차던 클레어가 스스로 강으로 걸어들어갈 정도로 힘들었다니 안쓰럽기도 하고. 하지만 수지가 그렇게 자신을 무사히 중국에서 탈출시키려 애썼는데 그뒤로 연락하지 않았다니... 혹시 그녀는 회복되지 못한걸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한번의 여행은,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키기도 한다. 처음에는 낯선 곳에 도착하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울었던 수지는, 클레어를 데리고 왔던 뉴욕의 공항에서 다시 새 걸음을 내딛는다. 꿈꾸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곳을 여행하고, 저널리스트가 되고, 20년 전 팔찌를 주면서 리사를 다시 찾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다. 니체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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