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랄의 거짓말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2
이르판 마스터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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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오랜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분리된 인도-파키스탄. 교과서에서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서술되어 있던 사실을 읽었을 때에는 몰랐던 일이었다. 그런 역사적 사실 이면에는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이,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 중에 북인도의 작은 마을의 한 칸짜리 자그마한 진흙 오두막에서 병든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한 소년, 빌랄의 이야기가 있다.

 

열세 살, 아직 어린 나이지만 홀로 아버지를 돌보며 가난한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빌랄은 놀랍도록 의지가 굳고 심지가 단단한 소년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 형, 그리고 시시각각으로 밀어닥치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상황들... 하지만 빌랄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사랑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 인도를 사랑하고 분열 직전에 놓인 인도의 현실에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는 아버지를 위해 일생일대의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아버지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기를 바라며 자신은 기꺼이 거짓을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르기로 결심하는 열세 살 소년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이 순진하기까지 한 계획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하지만 빌랄에게는 언제나 믿고 의지하는 친구 셋, 초타와 쌀림, 만지트가 있다. 이 소설은 암담하고 마음아픈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지만, 읽으면서 빌랄과 세 친구들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라 그래도 웃을 수 있었다. 세 친구는 모두 마음과 힘을 합쳐, 빌랄의 하얀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고 안전하게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애를 쓴다. 빌랄은 날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마을의 상황과 인도의 현실을 아버지가 모르게 하도록 노심초사하지만 세 친구들은 정말 의리있게 빌랄을 돕고 항상 그를 격려하고 지지해준다. 늘 그렇다. 어른들이 만든 모순 투성이의 무거운 현실, 하지만 절망하고 현실을 탓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헤쳐가며 서로 힘이 되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 가슴 아팠다.

 

그러나 언제까지 아이들만의 힘으로 그 비밀이 지켜질 수 있을까. 제발 아군을 더 만들어, 빌랄!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빌랄은 아버지를 위한 가짜 신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케르 선생님과 인쇄소 씽 아저씨, 그리고 의사 선생님에게 자신의 거짓말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는다. 온갖 고생 끝에 만든, '인도는 하나'라는 제목의 빌랄이 만든 신문을 읽고 함박웃음을 짓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모두 다 좋아질 거예요"하는 빌랄.

그러나 현실은 더욱더 어둡게 흘러가고, 빌랄의 사랑하는 친구들도 마을을 떠나고 흩어지게 된다. 방화와 살인, 폐허가 된 마을에서 그래도 아버지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지켜드린 빌랄. "네가 나의 인도란다"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과 세월이 지나 아버지가 남긴 편지 속에 드러난 진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는 숨을 거두기 직전, 빌랄의 거짓말을 알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된 지 6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갈등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는 옮긴이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대규모 집단 폭력 사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가족과 헤어졌다는데... 그동안 마나 많은 빌랄들이 가슴앓이를 하고 눈물을 흘렸을까. 부디 그 눈물들이 마를 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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