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 정호승의 새벽편지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해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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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고 있으니 마음이 참 맑고 개운해지는 것 같다. 따뜻하다. 어렵고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자연스럽고 정겹게 풀어놓는 듯한 이야기들. 우리가 정말 살아가면서 느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챙겨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인지, 가만히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거기에 페이지를 넘기며 간간이 만나는 그림들이 어찌나 글과 잘 어울리는지. 캔버스 위에 시를 그린다는 말이 실감난다.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순간을 너무나 평온하게, 고요하게 표현한 순간들이 펼쳐진다. 그림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어느새 잔잔해진다. 글을 읽다가 그림을 보다가 잠시 눈을 감고 음미하다가... 그렇게 나즈막히 오후를 보내고 있다. 이런게 행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싶다.

 

'항상 문제는 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느냐 그렇지 않는냐 하는 데 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 차 있으면 세상의 모든 삶이 다 눈부시게 아름다우며, 내 마음속에 사랑이 없으면 그 누구의 인생보다도 나의 인생이 가장 고통스럽다.'(374쪽)

 

어느새 7월, 올해도 반 이상이 지났다. 책장을 넘기면서 그동안 얼마나 사랑을 많이 채우고 나누었는지를 돌이켜본다. 부끄럽기만 하다. 돌아보니 별것도 아닌 일에 옹졸하게 굴었던 시간이 적지 않았다. 가슴 속에 받은 상처를 놓아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번뇌했던 시간들도 많았다. 나무들은 용서의 자세로 겨울을 보내기 때문에 이듬해 봄이 오면 새움을 틔운다고 했는데, 그런 나무의 자세를 닮아야만 인생에 새해가 오고 봄이 올 수 있다고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책을 덮으며 정호승 시인이 이야기했던 당신의 버킷리스트를 생각해본다. 놀랄만큼 욕심없고 소박한 버킷리스트였다. 가벼운 가방 하나만 들고 어떤 목적지 없이 그냥 서울을 떠나는 여정. 버스나 기차가 닿는 곳에 내려 혼자 이리저리 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밥을 사 먹고, 밤이 깊어가면 적당한 곳에서 자고... 그렇게 마음 내키는대로 가다가, '세상은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지구가 돌듯이 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것이다.'(336쪽)는 이야기가 무척 와 닿았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없어도 모든 일이 다 잘 된다는 사실을 깊게 깨닫게 되어도 조금도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렇다. 이것은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가 이 삶을 얼마나 더 소중하게, 가치있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우리의 삶은 유한한 것이고 세상의 그렇게나 작은 조각에 불과하므로, 그렇기에 더더욱 보석같은 순간들로 채워야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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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티미 2 - 위대한 탐정 뽑기 대회 456 Book 클럽
스테판 파스티스 글.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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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명탐정 티미! 머릿속에 도대체 뭐가 들었을까 궁금할 정도로 늘 예측불허의 사고뭉치지만, 자신의 꿈을 믿고 그 꿈을 세계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 자신만만함이라니! 결코 평범하지 않은 매력으로 똘똘 뭉친 티미 덕분에 신나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티미 곁에서 언제나 티미의 힘이 되어주고, 때로는 티미의 말도 안되는 주장과 추리에도 귀를 기울여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 친절한 분이지만, 티미가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우기는 단점(!)이 있는 엄마(장애물 1호). 몸무게가 1500파운드 나가는, 몽땅 실패 주식회사의 동업자인 북극곰 몽땅이(장애물 2호). 성적에만 관심이 있고 따분하기 짝이 없지만, 속깊은 친구 롤로 투커스(장애물 3호). 그리고 신발에 바퀴를 달고 툭하면 새장을 들이받아 기절하기 일쑤인 이모할머니.

이들은 티미의 예측불허의 엉뚱함을, 유별나다고 취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티미의 꿈을 응원해준다. 영 불안 불안하지만 또 한편 믿음직스럽고 따스한 사람들(과 곰).^^;

 

위대한 탐정 뽑기 대회에서 우승하여 상금 500달러를 거머쥐고, 그 돈으로 몽땅 실패 주식회사를 세계로 진출시키고 페루에 지점을 내겠다는 야망에 불타는 티미. 마감 전날 밤, 아마추어들은 응모 서류를 준비하느라 바쁘지만 우리의 티미는 침대에 누워 '게으른 곰 2000'을 설계하느라 열심이다(동업자 몽땅이가 열심히 일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만든 최첨단 장치, 너무 웃겼다!)

그리고 다음날, 티미의 하루는 꼬이기 시작한다. 늦게 일어나 버스를 놓치고 이모할머니의 자동차는 고장나고 친구 롤로의 시계는 멈추고... 탐정 대회 마감을 놓친 티미. 그리고 티미의 계획은...

 

내가 이제껏 알았던 명탐정들과는 180도 다른 모습의 이 엉뚱한 탐정이 왜 많은 세계의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알 것 같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조용히 해라, 뛰지 말라는 말을 1000번쯤 들으면서도 입과 온몸이 근질거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티미가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자기라는 이유로 박물관의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 그 동상에 기어올라 표지판을 떼어내려다가 박물관 바닥으로 장렬하게 추락하는 이 친구가. 온갖 기상천외한 발명품들을 만들어내고,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규칙 따위는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리고 자신의 우주에서 신나게 유영하는 티미가 부럽기도 할 것이고, 티미의 거침없는 행동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티미의 자율성이 참 보기 좋았고, 또 부럽기도 했다(어렸을 때의 내 모습을 티미가 보았더라면, 무지하게 따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부모가 치밀하게 만든 시간표대로 사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을 생각했다. 아이들의 삶에서도 '시간관리'라는 말이 당연하게 붙는 세상이다.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생산성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짜여진 빡빡한 시간표대로 사는 아이들이, 티미처럼 구김살없이 쓸데없는(?) 일들을 많이 저지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티미의 이모할머니처럼 아이들과 대화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아이들이 어리다고 무조건 뭔가 가르치려 들고 내 이야기만 늘어놓는 그런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마음을 다해 귀를 열 줄 아는, 티미의 이모할머니 같은 어른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좀 더 다른 곳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만으로도 한없이 따스해진다.

 

"티미, 아주 탐정답지 못한 행동으로 보일 위험이 있지만, 혹시 네가 의논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나에게 말해도 돼. 나는 정말 남의 얘기를 잘 들어 주거든."

"의논할 게 뭐가 있어요?"

"모르겠구나...... 인생에 대해?"

"인생이라고요?"

나는 이모할머니를 쳐다보면서 피식 웃는다.

"내가 말했잖아. 탐정답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야."

"예, 흠, 그런데 지금 저는 글로범나 사립 학교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있는 모든 시간을 제 인생 최대의 사건을 해결하거나, 제 주제곡을 작곡하는 데 쓰고 있어요. 그러니 달리 의논할 '인생'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맞아, 맞아. 할머니는 그저 요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네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란다."

"전 괜찮아요."

"당연히 그렇겠지. 내가 생각이 모자랐구나. 탐정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삶을 잘 꾸려 나가는 능력이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일반인들이라고 부르죠."

"맞아, 일반인들. 나 같은. 우리 일반인들은 가끔 참 힘들거든."(155쪽~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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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얌전히 있을 리 없다 단비청소년 문학 7
하나가타 미쓰루 지음, 고향옥 옮김 / 단비청소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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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유쾌하고 통쾌하다. 나도 10대 때 이랬다면, 이런 '얌전히 있을 리 없는' 에너지로 넘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현실의 크고 작은 부당함에 맞닥뜨릴 때마다 '어차피 바뀔 수 없다'고 무력하게 한숨쉬는 대신, 이렇게 씩씩하고 생기발랄하게 길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면!

 

'아니, 동아리에까지 '선별'이며 '평가' 같은 잣대를 들이댈 꿍꿍이? 동아리란, 스포츠든 음악이든 과학이든, 뭐든 그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모여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곳이잖아.'(67쪽)

 

어른들의 그럴싸한 말로 과대 포장한 대의명분보다 아이들의 꾸밈없고 건강한 논리가 훨씬 피부에 와 닿는다. 그래, 맞아. 동아리란 그런 것인데, 단지 학교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동아리가 존재한다고 믿고 수상실적에만 연연하는 그런 이들이 너희들의 뜨거운 열정을 어떻게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동아리 방이 없는 '떠돌이 미술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들로 화려한 수상 실적을 자랑했던 3학년 선배들이 졸업하고 난 후, 미술부의 수난은 시작되었다. 부장과 부부장을 제외한 2학년 부원 전원이 탈퇴하고, 신입 부원은 고작 두 명 뿐이다. 게다가 지도교사 모딜리아니(기다란 목에 길쭉한 얼굴, 눈동자의 초점이 맞지 않는 점에서 붙은 별명이다^^;)는 이런 위기를 나 몰라라 하고, 새로 부임한 교장은 미술부의 '천적'이 되었다. 행사를 줄여 수업 시간을 늘리고, 성적에 따라 수학과 영어 반을 나누고, 매일 방과 후 보충수업 계획을 세운 교장은, 그 보충수업 전용 교실 중 하나로 미술부 동아리 방에 눈독을 들이고 동아리 방을 비우라고 통보해 왔다.

 

책장을 넘기면서, 소설 속 상황은 현실의 모습과 자주 겹쳐 보인다. 사실 '공립 중학교의 학력 저하에 불안을 품고 잇던 학부모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교장'의 눈에 미술부 활동은 아무 쓸모없는 일쯤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지역에서 주관하는 학력고사 평균을 올려놓겠다는 그의 야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간 낭비하는 애들 놀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공모전에서 수상을 해서 학교 이름을 빛내지도 못하고 있으니, 일방적으로 동아리 방을 몰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 말에 고분고분 따라야하는 법, 교장의 지시에 학생들이 복종해야 하는 것이 순리다. 지금은 이렇게 반발심이 든다해도, 결과적으로 그들의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선택을 한 것이다 등등.  

안타깝게도 이런 모든 상황이 그냥 소설 속 이야기라고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의 그다지 밝지 않았던 10대 시절의 경험과 지금도 별반 나아지지 않은(어떤 의미에선 더 심해진) 억압적인 학교 풍경이 떠올라서일 것이다.

 

그렇게 교장의 퇴거 명령에 항의해 동아리 방을 점거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펑펑 폭죽을 쏘며 농성을 벌였던 미술부. 그러나 격렬한 저항도 소용없이 동아리 방은 몰수당하고, 그림 그릴 곳을 찾아 학교 안뜰과 운동장, 비 오는 날은 교사 한쪽 구석... 온 학교를 떠돌아다니는 처지에 몰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농성 때 파손된 학교 기물의 손해 배상으로 활동비도 탈탈 털리게 된 처지다. 그러나 미술부의 독종(!) 부장 네기시 세쓰코와 부원들은 부당한 학교의 처사에 낙담하고 좌절하는 대신, 새로운 길을 개척해간다. 꺽이지 않고 씩씩하게.

우여곡절 끝에, 데생 모델이 되어준 야구부 전 주장 구로다 선배의 초상화를 팔아 축제 때 출품할 작품비를 벌었나 했더니, 교장에게 들켜 초상화도 회수당하고 대금도 몽땅 뺏기는 판결(?)을 받게 된다. 학생 예술전의 대상을 타면 퇴출을 재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작품을 할 돈이 없다. '마치 아무런 장비도 없이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향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힘이 빠졌지만, 그래도 그들은 다시 힘차게 일어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는 것보다, 할 만큼 하고 무너지는 쪽이 훨씬 낫잖아.'(120쪽)

 

아, 이런 멋진 친구들이라니! 마구마구 박수를 치면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대형 슈퍼와 대형 쇼핑몰이 생긴 후 손님이 줄어 활기를 잃은 싱글벌글상가의 셔터 그림을 그리느라 온 힘을 쏟아붓는 미술부원들. 모두가 힘을 모아 녹슨 셔터를 청소하고, 저녁 늦게까지 바탕칠을 하고, 밑그림을 그리고 붓칠을 하고... 보충수업을 땡땡이치고 잠을 설쳐가면서, 그들은 즐겁게 마음껏 그림을 그린다. 참 좋았다. 그들의 열정에 나도 감염될 것 같았다.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번 작품비 10만엔으로, 빈 상가 점포를 아틀리에로 삼아 만들어가는 그들의 학생 예술전 출품작. 인간도, 천사도, 사이보그도 아닌 정체불명의 괴상한 것이 중력을 거스르듯 팔 여섯 개를 힘차게 치켜들고 있는, 그 오브제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았다. 등에는 깃털이 아닌, 아주 가느다란 철사로 엮어 이슬에 젖은 거미줄처럼 빛나는 거대한 날개를 달고 있는.

그렇게 만든 오브제는 미완성인 상태라는 이유로 학생 예술전에서 심사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그들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은 세상을, 굳어버린 어른들을 변화시켰다. 을씨년스럽던 상가에 사람들의 발길이 찾아오게 했고, 학교의 명성과 실적만을 외치던 교장의 생각을(이 사람은 완전히 변하지는 못할 것 같긴 하지만), 교사 생활을 평온하게 마치고 싶었을 뿐이었던 교사의 방관자적인 삶의 태도를 변하게 만들었다.

 

음, 다시 태어난다면 10대를 이런 미술부원이 되어 살아보고 싶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틀이 아무리 견고해 보인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어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뭔가를 좇아 마음껏 에너지를 불태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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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 혁명 30일 - 미국 최고의 웰빙 리조트 "캐년 랜치"의 30일 뇌 개선 프로젝트
리차드 카모나 지음, 이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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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꼭 필요한 변화를 만들고 건강을 유지할 힘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있다.'(22쪽)

 

'두뇌 건강을 지키는 것이 잘 나이듦에 첫 번째 조건'이라는 책 표지의 추천사가 눈에 콕 박힌다. 그렇다. 고령화사회에 빠르게 접어들면서, 우리는 너나없이 '건강하게 나이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며 살고 있다(물론 생각처럼 안 될 때도 적지 않다^^;). 그러나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더라도 갑작스럽게 뇌에 이상이 생기거나 인지능력이 저하되어, 평범했던 일상이 한순간 무너지고 가족들까지 고통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건강한 뇌가 없이는 건강해질 수 없다'는 저자의 명쾌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1부를 가장 흥미진진했다.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 뇌 신경 화학의 내용까지 등장한다. 와, 뉴런, 시냅스, 미엘린초... 이 얼마만에 만나보는 이름들인지.^^; 그래도 이해하기 쉽게 차근차근 잘 설명해준다. 또한 노화되는 뇌가 어떻게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지, 치매와 알츠하이머의 차이는 무엇인지, 뇌의 노화를 부르는 위험요소들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읽었다. 또한 현대인의 고질병인 스트레스가 우리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2부 '두뇌혁명 30일'에서는 본격적으로 30일 뇌 건강 프로그램이 나온다. 뇌 건강을 위한 음식, 뇌 건강을 개선시키는 운동법, 그리고 명상을 통한 '영적인 뇌 만들기'가 소개된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2부가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뭐랄까 1부에 비해 다소 시들하게 느껴졌다. 약간 배가 덜 찰 때까지 먹기, 천천히 먹고 꼭꼭 씹으며 먹기, 규칙적으로 먹는 습관 들이기, 정제된 곡물을 피하고 통곡물 위주의 식단 선택하기(근데 섬유질 많은 쿠스쿠스가 왜 '정제된 곡물'로 분류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전반적으로 익숙해져 있는, 특별히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내용이라서 그런가.

 

3부에서는 뇌 기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대체요법들, 학습을 통한 뇌의 개선 등에 대한 이야기다. 31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학습이 뇌의 개선에 필수적이긴 하지만 '모든 학습이 인지적 저장소를 늘려주는 것은 아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만을 학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신경가소성의 새로운 뉴런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데 적합한 학습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 즉 무언가를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예전엔 몰랐던 컴퓨터 프로그램, 춤 스텝, 새로운 운동, 공예 활동 등등.

'뇌 건강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수준의 학습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중략)... 가장 쓸모 없는 활동이 기계적 암기나 어렵기만 한 기억력 운동이다. 정보의 일부분만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은 친구 사이에서 지식을 뽐내거나 시사 상식 퀴즈에나 유용하지, 실질적인 행동기능 개선과는 연관관계가 없다.'(295쪽)

 

지금의 건강이 뇌를 좌우한다는 것, 뇌는 잠을 통해 힘을 얻으니 충분한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뇌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것... 사실 미국 최고의 건강 전문 리조트 캐년 랜치에서 제공하는 뇌 건강 프로그램의 내용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이라기 보다는 '알면서도 등한시해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것을 꾸준히 매일매일 실천에 옮기는가 아닌가가 차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디지털 치매'라는 말을 주변에서도 자주 듣게 되는 요즘이다. 생활의 편리를 위하여, 더 많은 것을 저장하고 활용하기 위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그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우리의 뇌 기능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건강한 뇌를 위한 올바른 습관을 갖는 것이 '인생 전반에 걸쳐 계속 지속되어야 할 건강한 삶의 표본'(328쪽)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뇌가 행복해하는 좋은 습관을 내가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그 습관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인지, 버리거나 바꾸어야 할 습관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점검해볼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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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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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삶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9쪽)

 

너무나 오랜만에 다시 만난 <데미안>을 새벽녘까지 읽었다. 책을 덮고 눈을 감는데, <데미안>의 마지막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전쟁이 발발하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전체 세계의 운명과 자신들의 운명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느낀다. 그들은 세계 전체와 하나가 되는 길을 택한다. 전쟁에 자진해서 참전한 것이다.

싱클레어는 부상을 당해 야전병원에 누워 있다. 문득 눈을 떠 보니 바로 옆에 누군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연민에 찬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바로 데미안이었다.

 

'꼬마 싱클레어, 내 말 잘 들어. 나는 떠나야 할 거야. 언젠가 너는 프란츠나 그 밖의 다른 일로 다시금 내가 필요할지도 몰라. 그때 나를 부르면 말이나 기차를 타고서 단번에 달려오진 못할 거야. 그러면 너는 네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거야."(264쪽)

 

그리고 데미안은 에바부인의 입맞춤을 싱클레어에게 전해준다. 싱클레어는 피가 흐르는 입술 위로 누군가 입맞춤하는 것을 느끼며 잠이 든다. 

마음이 벅찼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자신의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하나가 될 것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찾게 된 것이다.

'...그 후로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열쇠를 발견하고 천천히 내 속으로 들어가면,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자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여 나를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내 모습은 이제 완전히 그와, 내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똑같았다.'(265쪽)

 

<데미안>을 내가 처음 읽었던 때는 열 다섯 살이 되던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사실 그때는 그냥 닥치는대로 읽었다. 무슨 의미인지 곱씹지도 못한 채로.-_-).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수수께끼(?) 문구를, 수학시간에 친구에게 몰래 편지로 써서 보내기도 했다(수학시간을 가장 알차게 보내는 방법이었다). 친구가 "아프락사스가 무슨 뜻이야?"하고 묻자 횡설수설 이야기했던 기억도 난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어, 새 옷을 입은 <데미안>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기쁘다. '책을 열고 번역을 비교하라"는 자신만만한 문구에 걸맞게 번역도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잘 읽힌다(음,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아프락사스'라고 입력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아브락사스'가 되니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다. 원어를 찾아보니 abraxas니까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한 거겠지만, 역시 고유명사는 관성의 법칙을 따르게 된다),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일러스트도 소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데미안>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데미안을 찾아가는 싱클레어의 여정'이라고 이름 붙여진 상세한 해제가 수록되어 있는 점이다. 헤세의 생애, 헤세가 살아온 시대, 헤세에게 영향을 미쳤던 융 심리학, 그리고 에밀 싱클레어가 어떤 길을 거쳐 자신의 참모습에 이르게되는지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꼼꼼히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헤세에게 영향을 미친 융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던 헤세는 1차 세계대전 중 삶의 위기를 맞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아내의 정신분열증, 아들의 병으로 고통을 겪은 데다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독일인들에게 '매국노'라는 비방까지 들어야 했던 헤세는 거의 정신적으로 붕괴 직전에 있었다. 그때 헤세는 융의 제자 요제프 베른파르트 랑 박사와의 상담 치료로 정신적 위기를 극복해냈고, 정신분석학 치료에 매료된 헤세는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을 깊이 연구하게 된다. 이런 체험과 개인적 연구를 바탕으로 <데미안>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내면에의 길'로 요약될 수 있는 헤세의 작가적 전환에 지대한 영향을 준 랑 박사의 치료, 헤세가 '재탄생'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그의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던 정신분석학과의 만남을 생각해본다. 만일 헤세가 정신적으로 위기 상황을 맞지 않아서 정신분석학 치료를 통해 융 심리학을 만나지 않았다면 <데미안>도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처한 시련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어떤 것도 함부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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