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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 정호승의 새벽편지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해냄 / 2014년 6월
평점 :
책장을 넘기고 있으니 마음이 참 맑고 개운해지는 것 같다. 따뜻하다. 어렵고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자연스럽고 정겹게 풀어놓는 듯한 이야기들. 우리가 정말 살아가면서 느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챙겨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인지, 가만히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거기에 페이지를 넘기며 간간이 만나는 그림들이 어찌나 글과 잘 어울리는지. 캔버스 위에 시를 그린다는 말이 실감난다.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순간을 너무나 평온하게, 고요하게 표현한 순간들이 펼쳐진다. 그림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어느새 잔잔해진다. 글을 읽다가 그림을 보다가 잠시 눈을 감고 음미하다가... 그렇게 나즈막히 오후를 보내고 있다. 이런게 행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싶다.
'항상 문제는 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느냐 그렇지 않는냐 하는 데 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 차 있으면 세상의 모든 삶이 다 눈부시게 아름다우며, 내 마음속에 사랑이 없으면 그 누구의 인생보다도 나의 인생이 가장 고통스럽다.'(374쪽)
어느새 7월, 올해도 반 이상이 지났다. 책장을 넘기면서 그동안 얼마나 사랑을 많이 채우고 나누었는지를 돌이켜본다. 부끄럽기만 하다. 돌아보니 별것도 아닌 일에 옹졸하게 굴었던 시간이 적지 않았다. 가슴 속에 받은 상처를 놓아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번뇌했던 시간들도 많았다. 나무들은 용서의 자세로 겨울을 보내기 때문에 이듬해 봄이 오면 새움을 틔운다고 했는데, 그런 나무의 자세를 닮아야만 인생에 새해가 오고 봄이 올 수 있다고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책을 덮으며 정호승 시인이 이야기했던 당신의 버킷리스트를 생각해본다. 놀랄만큼 욕심없고 소박한 버킷리스트였다. 가벼운 가방 하나만 들고 어떤 목적지 없이 그냥 서울을 떠나는 여정. 버스나 기차가 닿는 곳에 내려 혼자 이리저리 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밥을 사 먹고, 밤이 깊어가면 적당한 곳에서 자고... 그렇게 마음 내키는대로 가다가, '세상은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지구가 돌듯이 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것이다.'(336쪽)는 이야기가 무척 와 닿았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없어도 모든 일이 다 잘 된다는 사실을 깊게 깨닫게 되어도 조금도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렇다. 이것은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가 이 삶을 얼마나 더 소중하게, 가치있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우리의 삶은 유한한 것이고 세상의 그렇게나 작은 조각에 불과하므로, 그렇기에 더더욱 보석같은 순간들로 채워야 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