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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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삶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9쪽)

 

너무나 오랜만에 다시 만난 <데미안>을 새벽녘까지 읽었다. 책을 덮고 눈을 감는데, <데미안>의 마지막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전쟁이 발발하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전체 세계의 운명과 자신들의 운명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느낀다. 그들은 세계 전체와 하나가 되는 길을 택한다. 전쟁에 자진해서 참전한 것이다.

싱클레어는 부상을 당해 야전병원에 누워 있다. 문득 눈을 떠 보니 바로 옆에 누군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연민에 찬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바로 데미안이었다.

 

'꼬마 싱클레어, 내 말 잘 들어. 나는 떠나야 할 거야. 언젠가 너는 프란츠나 그 밖의 다른 일로 다시금 내가 필요할지도 몰라. 그때 나를 부르면 말이나 기차를 타고서 단번에 달려오진 못할 거야. 그러면 너는 네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거야."(264쪽)

 

그리고 데미안은 에바부인의 입맞춤을 싱클레어에게 전해준다. 싱클레어는 피가 흐르는 입술 위로 누군가 입맞춤하는 것을 느끼며 잠이 든다. 

마음이 벅찼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자신의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하나가 될 것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찾게 된 것이다.

'...그 후로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열쇠를 발견하고 천천히 내 속으로 들어가면,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자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여 나를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내 모습은 이제 완전히 그와, 내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똑같았다.'(265쪽)

 

<데미안>을 내가 처음 읽었던 때는 열 다섯 살이 되던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사실 그때는 그냥 닥치는대로 읽었다. 무슨 의미인지 곱씹지도 못한 채로.-_-).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수수께끼(?) 문구를, 수학시간에 친구에게 몰래 편지로 써서 보내기도 했다(수학시간을 가장 알차게 보내는 방법이었다). 친구가 "아프락사스가 무슨 뜻이야?"하고 묻자 횡설수설 이야기했던 기억도 난다.^^;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어, 새 옷을 입은 <데미안>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기쁘다. '책을 열고 번역을 비교하라"는 자신만만한 문구에 걸맞게 번역도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잘 읽힌다(음,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아프락사스'라고 입력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아브락사스'가 되니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다. 원어를 찾아보니 abraxas니까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한 거겠지만, 역시 고유명사는 관성의 법칙을 따르게 된다),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일러스트도 소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데미안>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데미안을 찾아가는 싱클레어의 여정'이라고 이름 붙여진 상세한 해제가 수록되어 있는 점이다. 헤세의 생애, 헤세가 살아온 시대, 헤세에게 영향을 미쳤던 융 심리학, 그리고 에밀 싱클레어가 어떤 길을 거쳐 자신의 참모습에 이르게되는지 작품에 대한 해설까지 꼼꼼히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헤세에게 영향을 미친 융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던 헤세는 1차 세계대전 중 삶의 위기를 맞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아내의 정신분열증, 아들의 병으로 고통을 겪은 데다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독일인들에게 '매국노'라는 비방까지 들어야 했던 헤세는 거의 정신적으로 붕괴 직전에 있었다. 그때 헤세는 융의 제자 요제프 베른파르트 랑 박사와의 상담 치료로 정신적 위기를 극복해냈고, 정신분석학 치료에 매료된 헤세는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을 깊이 연구하게 된다. 이런 체험과 개인적 연구를 바탕으로 <데미안>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내면에의 길'로 요약될 수 있는 헤세의 작가적 전환에 지대한 영향을 준 랑 박사의 치료, 헤세가 '재탄생'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그의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던 정신분석학과의 만남을 생각해본다. 만일 헤세가 정신적으로 위기 상황을 맞지 않아서 정신분석학 치료를 통해 융 심리학을 만나지 않았다면 <데미안>도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처한 시련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어떤 것도 함부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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