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얌전히 있을 리 없다 단비청소년 문학 7
하나가타 미쓰루 지음, 고향옥 옮김 / 단비청소년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아! 유쾌하고 통쾌하다. 나도 10대 때 이랬다면, 이런 '얌전히 있을 리 없는' 에너지로 넘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현실의 크고 작은 부당함에 맞닥뜨릴 때마다 '어차피 바뀔 수 없다'고 무력하게 한숨쉬는 대신, 이렇게 씩씩하고 생기발랄하게 길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면!

 

'아니, 동아리에까지 '선별'이며 '평가' 같은 잣대를 들이댈 꿍꿍이? 동아리란, 스포츠든 음악이든 과학이든, 뭐든 그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모여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곳이잖아.'(67쪽)

 

어른들의 그럴싸한 말로 과대 포장한 대의명분보다 아이들의 꾸밈없고 건강한 논리가 훨씬 피부에 와 닿는다. 그래, 맞아. 동아리란 그런 것인데, 단지 학교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동아리가 존재한다고 믿고 수상실적에만 연연하는 그런 이들이 너희들의 뜨거운 열정을 어떻게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동아리 방이 없는 '떠돌이 미술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들로 화려한 수상 실적을 자랑했던 3학년 선배들이 졸업하고 난 후, 미술부의 수난은 시작되었다. 부장과 부부장을 제외한 2학년 부원 전원이 탈퇴하고, 신입 부원은 고작 두 명 뿐이다. 게다가 지도교사 모딜리아니(기다란 목에 길쭉한 얼굴, 눈동자의 초점이 맞지 않는 점에서 붙은 별명이다^^;)는 이런 위기를 나 몰라라 하고, 새로 부임한 교장은 미술부의 '천적'이 되었다. 행사를 줄여 수업 시간을 늘리고, 성적에 따라 수학과 영어 반을 나누고, 매일 방과 후 보충수업 계획을 세운 교장은, 그 보충수업 전용 교실 중 하나로 미술부 동아리 방에 눈독을 들이고 동아리 방을 비우라고 통보해 왔다.

 

책장을 넘기면서, 소설 속 상황은 현실의 모습과 자주 겹쳐 보인다. 사실 '공립 중학교의 학력 저하에 불안을 품고 잇던 학부모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교장'의 눈에 미술부 활동은 아무 쓸모없는 일쯤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지역에서 주관하는 학력고사 평균을 올려놓겠다는 그의 야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간 낭비하는 애들 놀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공모전에서 수상을 해서 학교 이름을 빛내지도 못하고 있으니, 일방적으로 동아리 방을 몰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 말에 고분고분 따라야하는 법, 교장의 지시에 학생들이 복종해야 하는 것이 순리다. 지금은 이렇게 반발심이 든다해도, 결과적으로 그들의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선택을 한 것이다 등등.  

안타깝게도 이런 모든 상황이 그냥 소설 속 이야기라고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의 그다지 밝지 않았던 10대 시절의 경험과 지금도 별반 나아지지 않은(어떤 의미에선 더 심해진) 억압적인 학교 풍경이 떠올라서일 것이다.

 

그렇게 교장의 퇴거 명령에 항의해 동아리 방을 점거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펑펑 폭죽을 쏘며 농성을 벌였던 미술부. 그러나 격렬한 저항도 소용없이 동아리 방은 몰수당하고, 그림 그릴 곳을 찾아 학교 안뜰과 운동장, 비 오는 날은 교사 한쪽 구석... 온 학교를 떠돌아다니는 처지에 몰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농성 때 파손된 학교 기물의 손해 배상으로 활동비도 탈탈 털리게 된 처지다. 그러나 미술부의 독종(!) 부장 네기시 세쓰코와 부원들은 부당한 학교의 처사에 낙담하고 좌절하는 대신, 새로운 길을 개척해간다. 꺽이지 않고 씩씩하게.

우여곡절 끝에, 데생 모델이 되어준 야구부 전 주장 구로다 선배의 초상화를 팔아 축제 때 출품할 작품비를 벌었나 했더니, 교장에게 들켜 초상화도 회수당하고 대금도 몽땅 뺏기는 판결(?)을 받게 된다. 학생 예술전의 대상을 타면 퇴출을 재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작품을 할 돈이 없다. '마치 아무런 장비도 없이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향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힘이 빠졌지만, 그래도 그들은 다시 힘차게 일어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는 것보다, 할 만큼 하고 무너지는 쪽이 훨씬 낫잖아.'(120쪽)

 

아, 이런 멋진 친구들이라니! 마구마구 박수를 치면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대형 슈퍼와 대형 쇼핑몰이 생긴 후 손님이 줄어 활기를 잃은 싱글벌글상가의 셔터 그림을 그리느라 온 힘을 쏟아붓는 미술부원들. 모두가 힘을 모아 녹슨 셔터를 청소하고, 저녁 늦게까지 바탕칠을 하고, 밑그림을 그리고 붓칠을 하고... 보충수업을 땡땡이치고 잠을 설쳐가면서, 그들은 즐겁게 마음껏 그림을 그린다. 참 좋았다. 그들의 열정에 나도 감염될 것 같았다.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번 작품비 10만엔으로, 빈 상가 점포를 아틀리에로 삼아 만들어가는 그들의 학생 예술전 출품작. 인간도, 천사도, 사이보그도 아닌 정체불명의 괴상한 것이 중력을 거스르듯 팔 여섯 개를 힘차게 치켜들고 있는, 그 오브제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았다. 등에는 깃털이 아닌, 아주 가느다란 철사로 엮어 이슬에 젖은 거미줄처럼 빛나는 거대한 날개를 달고 있는.

그렇게 만든 오브제는 미완성인 상태라는 이유로 학생 예술전에서 심사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그들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은 세상을, 굳어버린 어른들을 변화시켰다. 을씨년스럽던 상가에 사람들의 발길이 찾아오게 했고, 학교의 명성과 실적만을 외치던 교장의 생각을(이 사람은 완전히 변하지는 못할 것 같긴 하지만), 교사 생활을 평온하게 마치고 싶었을 뿐이었던 교사의 방관자적인 삶의 태도를 변하게 만들었다.

 

음, 다시 태어난다면 10대를 이런 미술부원이 되어 살아보고 싶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틀이 아무리 견고해 보인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어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뭔가를 좇아 마음껏 에너지를 불태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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