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우울증 - 나는 이런 결혼을 꿈꾸지 않았다
김병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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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사모님들의 마음을 명화에 빗대어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는 따뜻한 책. 읽는 내내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녀의 깊은 속내를 그림을 빌려 헤아려보고 싶었'(11쪽)다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수많은 임상경험을 거친 정신과 의사, 우울증 분야의 전문가지만 결코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저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여러번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생각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과연 쉽게 성립될 수 있을까? 이것도 쉽게 이루기 힘들다. 어떤 사람의 인생 역사와 그 사람을 둘러싼 현실은 마치 우주와 같기 때문에 모두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타인이 바라보는 방식은 태어나면서 경험하고 학습된 결과물이다...(중략)...우리는 결코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동일한 방식으로 세상ㅇ르 이해할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238쪽)

정말 끄덕여지는, 또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아끼고 생각해준다는 이유를 들어 너무 쉽게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마음에 비추어 다른 이의 이상과 욕구를 꿰뚫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았는지(부끄럽게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의 표현대로, 세상에는 너무 많은 말이 흘러넘치고 있다. 억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려 하고, 다른 사람의 진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부로 말하다가 오히려 그 마음을 왜곡하고, 그래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좀 더 겸손한 눈을 가질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속단하지 않는지 잘 살필 것,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말고 침묵할 것...

 

어렸을 때 듣고 (그때는) 놀랐던 얘기가 문득 생각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는 직업 중에 정신과 의사가 늘 손에 꼽힌다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시간당 몇백 달러씩을 지불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정신과 클리닉에서 털어놓는다는 사실 말이다. 과학기술은 나날이 더 발달하고, 세상은 갈수록 더 편리하고 화려해져가는데, 사람들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누군가가 더욱더 간절해지는 것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자 하는 절실한 욕구가 있고, 이것은 인간의 다른 어떤 본능적인 욕구보다 강한 힘을 지니니까 말이다.

아무리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여유로운 삶이라도, '우울하고 삶에 의미가 없다'는 '사모님'들의 이야기를 그저 '배가 불러서 그런 것'으로 취급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런 말이 사람을 진짜 아프게 만든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무척 공감한다. 그래서 더욱 저자가 내미는 속깊은 '그림 처방'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왜 그녀들의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운지 그 아픔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그림들, 마음 한 구석으로 밀려나 있던 삶의 용기를 되찾을 수 있게 손을 잡아주는 그림들... 그 그림들의 위로를 오롯이 품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고맙다.

 

'삶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경험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향해 행동하는 것. 윈슬로 호머의 <여름밤>(1890)만큼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가짐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 있을까? (중략) 삶 또한 이런 것 아닐까? 누구에게나 밝음과 어둠이 함께 찾아온다. 어느 것 하나도 거부하지 않고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세상 속에서 춤추며 살 수 있다.'(303~304쪽)

앗, 좋아해서 책상 앞에 붙여놓고 자주 들여다보는 그림, 윈슬로 호머의 <여름밤>을 여기서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수가. 게다가 이 그림처방전(?)의 설명도 무척 와 닿는다. 무엇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지, 어떤 활동이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지 고민하고 바로 무조건 행동에 옮기라는 조언에 밑줄을 그어본다. '파도가 아무리 거칠어도, 바람이 불고 덮칠 듯해도 삶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을 가슴에 품을 때 비로소 우리 인생도 춤이 된다(304쪽)'는 것, 그렇게 순간순간을 소중히 품고 춤추며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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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심리학 - 18가지 위험한 심리 법칙이 당신의 뒤통수를 노린다
스티븐 브라이어스 지음, 구계원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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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24)

프롤로그에서, 저자 스티븐 브라이어스는 아인슈타인의 이 말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리고 덧붙인다. 자신이 너무나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상황에서는 질문을 던지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심리학의 음험한 미신들을 솎아내보자는 초대장’(9)인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뭐랄까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물론 질문 던지기가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들을 접할 때마다 그 지나친 단순한 논리에 대해 의문과 반발심을 항상 품어왔던 터라, 이런 혼란스러움(?)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진다.

‘... 지나치게 단순한 해결책은 실제 세계에서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안정감을 줄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는 별다른 내실이 없는 경우가 많다.’(17)

 

이 책이 해부하는 18개의 심리학 법칙들. 자존감을 높이면 성적이 올라간다, 속마음을 표현해야 건강하다, 긍정 마인드가 성공을 부른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별에 살고 있다, 정리 정돈을 잘해야 능률이 오른다... 너무나 유명한 이 명제들을 저자는 촘촘하게 파헤쳐간다. 무엇보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잘못되었다는 유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법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는 점이 좋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여러 관점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꼭 그렇게 삐딱하게 바라봐야 해?’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에 대한 관점을 이 책이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들으며 손쉽게 누군가의 탓으로 문제의 원인을 돌리지는 않았는지’(24)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었다.

 

일상생활에 널리 퍼져 있는 심리학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겨난 자기 계발 이론들이 넘쳐흐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자는 엉터리 심리학이 우리의 삶에 대해 손쉬운 만병통치약을 앞다투어 처방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만병통치약이라, 아주 적합한 비유다. 마치 자주 감기에 걸릴 때, 근본적으로 내 몸을 보살피기보다는 쉽게 약을 삼치고 내 몸이 다시 건강해졌다고 기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삶에 대해 냉철하게 통찰하고 내 문제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자연에서 얻은 음식과 운동 등 좋은 습관을 차곡차곡 쌓아 내 건강을 다져 나가는 것과 닮았다. 둘 다 하루아침에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심리학은 특정한 경우 일부 사람들을 치료해줄 수도 있지만,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의 전문가는 당신 한 사람뿐이다.’(272) , 달콤하지는 않지만 한편 얼마나 든든한 말인지. 그러니 쉽게 만병통치약의 유혹에 손을 뻗는 대신, 불완전하고 결점이 있는 나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루만져 주는 것. 눈부신 백조로 탈바꿈되지 않더라도, 백조가 아닌 어른 오리로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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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자 홍사중의 고전 다시 읽기
홍사중 지음 / 이다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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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얽매이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성향 때문일 거다, 아마. 중학교 사회시간에 제자 백가에 대해서 배우던 때부터, 그 제자백가의 양대 산맥이던 유가와 도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부터 유독 도가를 편애했던 것은. 커가며 노자와 장자에 대해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의 사랑(!)이 변함없음을 확인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도 그 연장선으로 장자가 남긴 우화들을 만나며 행복한 시간이었다.

 

제목이 '나의 장자'여서 장자에 대한 지은이의 애정어린 해설이 잔뜩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지/도/마음/공자/처세/운명의 길'이라는 6개의 흐름으로 나눈 주제에 맞춰 <장자>에 나오는 적절한 대목을 소개하고 간략하게 해설을 덧붙이는 형식이다. '나의' 장자라기에는 쬐끔 아쉬울 정도로 담담한 해설이지만, 뭐 읽다보니 이것도 괜찮은 느낌이다. 여백이 있는 느낌이랄까(장자가 봤으면 깨알같은 해설보다 '무위자연'에 가깝다고 더 좋아하실지도^^;).

 

고전이라는 것은 뭔가 딱딱하고 지루한 것일 거라는 편견을 깨는, 부담없고 재미있는 우화 형식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장자의 빛나는 기지와 해학 속에 담긴 생각들을 깨달을 수 있다. 왜 우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사상을 이야기하는가에 대한 장자의 말도 인상적이다.

"내 얘기 중의 10분의 9는 우언이다.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중매인이 되지 않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칭찬해도 별로 신용받지 못하고, 아버지 이외의 다른 사람이 아들을 칭찬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언을 말한다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고 우언을 말하도록 한 세상 사람들의 책임이다. 세상 사람들은 상대방의 의견이 자기 의견과 같은 경우에는 순응하고, 자기 의견과 다른 경우에는 반대를 하고, 상대방의 의견과 자기 의견이 같은 경우에는 옳다고 하고, 자기 의견과 다른 경우에는 틀렸다고 하는 법이다. 그래서 내 의견이 아니라 우화처럼 상대방에게 얘기하는 것이다."(6쪽)

 

자기 의견과 다르면 틀렸다고 반대부터 하는 사람들... 기원전 369년에 태어난 장자가 살았던 세상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나보다. 아니 천하통일을 위한 열망으로 온갖 전쟁과 책략이 난무하던 춘추전국시대였으니 드센 정도는 훨씬 더했을 거다. 장자가 경이롭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에 있다. 그런 난세에,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기를 쓰는 시대에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라며,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성질을 따르게 마련이다. 자연의 성질은 세월이 흘러도 늘 같으며 잃어버리게 되는 것도 아니다'(131쪽)고 이야기하는, 초연함과 대담함이라니.

 

어김없이 또 새해가 밝았다. 올 한해는 또 어떻게 일구어갈 것인가. 책장을 넘기다가 장주가 그려낸 유토피아, 그가 무위자연의 이상을 실현시켜 그려낸 마을의 이야기에 눈이 멎는다.

"남월에 건덕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우직스럽고 순박하다. 이기심이나 욕망은 거의 없으며, 농사를 지어도 저장하지를 않고, 남에게 무엇을 주어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의 정의니 예의니 하는 도덕도 모른다. 제 마음대로 행동을 해도 빗나가지 않는다. 살아 있을 때에는 즐겁게 살고 죽으면 정중하게 매장된다."(281쪽)

'남에게 무엇을 주어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에 밑줄을 그어본다(다른 건 좀 무리...^^; 아, '살아있을 때에는 즐겁게'는 좋고!). 올 한해는 마음의 그릇을 좀 더 키울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좀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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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기적 - 죽음과 삶의 최전선, 그 뜨거운 감동스토리
캐릴 스턴 지음, 정윤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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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특권을 안고 태어났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특정한 환경을 선택해서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 지독한 가난, 허름한 수용소촌, 더욱이 잔혹한 행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에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자체가 특권을 타고났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토록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한 채 자기 삶을 사는 데만 급급한 걸까?'(72쪽)

 

책 날개 안쪽의 저자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이들과 함께 손을 번쩍 들고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 유니세프 미국기금 회장이자 CEO로서, 지난 7년간 굶주림, 가난,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과 함께 재난현장을 누빈 인물이라고 해서 뭔가 굉장한 열혈여성(?) 같은 이미지가 아닐까 했는데, 웬걸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이 여성은 뭔가 평범하고(물론 절대 평범하진 않다!) 푸근하고 넉넉해보이는, 그런 느낌이어서 친근감이 들었다.

 

60년대 뉴욕 북부의 전형적인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벌레를 유독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구호 현장에 투입된 후에도 처음에는 작은 벌레 한 마리만 나타나도 울상이 되어 덜덜 떨었다고...(벌레를 무서워해도 현장에 나갈 수 있다는 위안을 얻었다^^;) 낙타를 말뚝에 묶어놓는 곳을 보고 주차비 같은 것을 내야 하냐고 뜬금없이 물어 초조한 상황에 처해있던 일행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고, 유니세프의 홍보대사인 유명인들과 만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아이처럼 방방 뛰며 "내가 이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다니!"라고 외치고 싶어 참기 힘들었다고 털어놓는 발랄한 캐릴 아줌마.

 

수단의 다르푸르 수용소에서 끔찍한 상황을 접하고 넋을 놓고 있다가, 아들이 수학 숙제를 도와달라고 건 전화를 받았을 때의 비현실적인 느낌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학살과 강간으로 얼룩진 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힘겹게 삶을 일구고 있는 곳에서, 지독한 몸냄새와 임시 변소의 지린내를 맡으면서, 저자는 휴대폰을 들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들의 숙제를 도와준다. 그때 수용소 바닥에 앉아있는 저자의 무릎 위로 작은 소년 하나가 폴짝 올라왔고, 아들과 통화하면서 꼬마를 다정하게 껴안아 준다. 자신이 지금 있는 곳과 지구 반대편의 풍족한 자신의 집. 똑같이 귀한 생명으로 태어났으나 너무나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아이들의 모습...

 

이런 인간적인 면 외에도, 책장을 넘기면서 저자의 겸손함과 사람됨을 느낄 수가 있던 점도 좋았다. 그녀는 말한다. 유니세프의 CEO로서의 자신의 역할은 자기희생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안락함을 포기하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곳에 가라고 강요받지도 않는다고. 그리고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 노력하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온갖 질병과 폭력적인 사태를 감수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매일같이 고생하는 것은 우리 직원들이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이 대부분이며, 매번 그들의 노고에 경외심을 느낀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가 할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73쪽)

 

각오는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먹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사 한 대면 쉽게 낫는 파상풍 같은 병으로 매일매일 수많은 아이들이 허망하게 죽어간다는 것,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1만 9,000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것... 우리들 중 누구도 몰랐던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도꼭지를 틀면 언제든지 물이 콸콸 나오는 것이 당연하고, 못 먹어서가 아니라 너무 먹어서 문제가 되는 질병들을 걱정하는 것이 일상이 된 채 살고있는 우리들. 하지만 이 지구의 다른 한쪽에서는 가슴아픈 진실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알면서도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느낀 내 마음을 저자가 정확하게 드러내준 글귀가 있어 옮겨본다. 부디 이 마음이 내 생활을 핑계로 바래지 않기를, 한 웅큼씩이라도 실천에 옮기며 살 수 있기를.

 

'지금까지 나는 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몸에 밴 생활 습관가 내게 주어진 삶의 여건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한 적이 없다.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중락)...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과분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 덜 가져도 충분할텐데, 이것을 많이 부족한 누군가와 나눠 가져도 좋을 텐데...'(8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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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넘치는 사랑 - 가난을 고발하려 인도로 떠난 사진가, 마더의 사랑에 물들다
오키 모리히로 지음, 정호승 엮음, 정창현 옮김 / 해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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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언제나 하나님이 쓰시는 몽당연필이라고 말했던 마더 테레사. 한 사진작가가 만났던 마더 테레사와 그 자매들의 삶, 그 20여 년의 시간들이 오롯이 담긴 보석같은 책을 만났다. 책을 덮고 나서도 마더 테레사와 수녀님들의 환한 미소가 마음속에 잔잔히 퍼지고 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나오기까지의 이야기도 아름답다. 한 낭독연구회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한 정호승 시인은 우연히 마더 테레사의 삶을 20여 년 동안 찍은 사진작가 오키 모리히로의 책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정 시인의 부탁으로 책은 한국으로 배달되게 된다. 하지만 일본어를 몰라 그 책의 사진만 들여다보던 시인은 일제 강점기를 젊은 날로 살아오신 여든일곱 아버지께 번역을 부탁드린다. 돋보기를 쓰고 볼펜에 꼿꼿이 힘을 주고 꼬박 7개월을 몰두하신 아버지는 번역을 마치고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시인인 아들은 아버지가 번역하신 문장을 정성스럽게 다듬어서 책을 만들어 아버지의 영전에 드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가슴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내심 놀랐던 것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테레사 수녀처럼 평생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택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녀들의 모습이었다.

부호의 집에서 태어나 무엇 하나 모자람 없이 자랐다가 소아마비에 걸려 절망했던 삶을 자신보다 훨씬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바치기로 한 폴 수녀, 인도에서 손꼽히는 실업가의 딸로 태어나 풍족한 생활을 마다하고 수녀의 길을 택한 도리스 수녀처럼 마더 테레사의 수녀회에 부유한 환경의 특권을 버리고 온 여성들이 특히 많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녀들의 티없이 환한 웃음에도 그랬다. 수녀들에게 개인 소유물이라고는 벌갈아 입는 두 벌의 사리와 세탁을 위한 개인용 양동이 하나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세상 어떤 풍족한 이들보다 더욱 넉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임종자의 집'이라면 뭔가 심각하고 비장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닐까 했었는데,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밝고 맑은 분위기가, 풍요롭고 따뜻한 웃음들이 가득했다.

"여기는 샹들리에도 없고 맛있는 케이크도 없어요. 하지만 나는 옛날 부잣집 아가씨로 살던 때보다 ㅅ십 배나 즐거워요...(중략)... 나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으나 내 가슴에는 이토록 사랑이 넘쳐흐르니까 어찌 즐겁지 않겠어요?"(155쪽)

 

또 하나는 마더 테레사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대담한 면을 만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었다. 책 표지에서부터 아기를 들여다보며 재미있는 표정을 짓는 사진을 보고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책장을 넘기며 마더 테레사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들도, 의외의 엉뚱한 면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재기 넘치는 '테레사 할머니'가 낸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만나는 즐거움이란! 인도의 길거리에 온통 나뒹구는 코코넛 껍질을 물에 담갔다가 막대기로 두들겨서 섬유를 생산하게 해, '임종자의 집'에서 쓸 깔개와 배갯속 등을 만들게 한 아이디어는 특히 놀라웠다. 일거리 없이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슬럼가 사람들에게 일을 제공하는 실업 대책과 현금 수입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 것이다.

또, 서벵골주에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이 스스로 일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평화의 마을'을 만든 일화도 감탄을 자아냈다. 90만 평의 드넓은 땅을 서벵골의 주지사로부터 제공받기는 했으나 덤불밖에 없는 사막같은 황무지에 마을을 건설한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마더 테레사는, 마침 그 무렵 교황이 하사한 의전용 자동차인 링컨 콘티넨털을 경품으로 내걸고 복권을 판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복권은 날개 돋친 듯 팔려 평화의 마을을 설립하게에 충분한 자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 밖에 남는 비행기 기내식을 '고아의 집'으로 보내달라고 공항 당국과 교섭을 벌였던 일(항공사들은 기꺼이 동참했다고 한다), 노벨평화상 수상 후 인도 상류계급이 초대한 호화로운 만찬에서 '미안하지만 오늘 단식일'이라고 말하며 참석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그 음식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어떠냐고 말하고 돌아가버린 일 등... "멋지게 해치웠지?" 장난기 가득한 마더 테레사의 웃음이 떠올랐다.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한 덩어리가 된 삶을 택한 마더 테레사와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녀들을 만났던 가슴 벅찼던 시간. '그분과 같은 분이 존재해 계시기에 그나마 우리 인간들이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264쪽)는 정호승 시인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이 책에서 만난 마더 테레사의 말씀을, 그 귀한 삶의 방식을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닮아보고 싶다.

 

'친절하고 깊은 자애로움을 가지세요.

당신을 만나게 된 사람은 누구라도

이전보다 더욱 기분 좋게

밝은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세요.

친절이 당신의 표정과 눈동자와 미소에

따뜻한 한마디 말에 나타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고통 받는 고독한 사람 모두에게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웃음 띤 얼굴을 보이세요.

보살피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당신의 마음을 드리세요.'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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