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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넘치는 사랑 - 가난을 고발하려 인도로 떠난 사진가, 마더의 사랑에 물들다
오키 모리히로 지음, 정호승 엮음, 정창현 옮김 / 해냄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자신을 언제나 하나님이 쓰시는 몽당연필이라고 말했던 마더 테레사. 한 사진작가가 만났던 마더 테레사와 그 자매들의 삶, 그 20여 년의 시간들이 오롯이 담긴 보석같은 책을 만났다. 책을 덮고 나서도 마더 테레사와 수녀님들의 환한 미소가 마음속에 잔잔히 퍼지고 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나오기까지의 이야기도 아름답다. 한 낭독연구회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한 정호승 시인은 우연히 마더 테레사의 삶을 20여 년 동안 찍은 사진작가 오키 모리히로의 책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정 시인의 부탁으로 책은 한국으로 배달되게 된다. 하지만 일본어를 몰라 그 책의 사진만 들여다보던 시인은 일제 강점기를 젊은 날로 살아오신 여든일곱 아버지께 번역을 부탁드린다. 돋보기를 쓰고 볼펜에 꼿꼿이 힘을 주고 꼬박 7개월을 몰두하신 아버지는 번역을 마치고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시인인 아들은 아버지가 번역하신 문장을 정성스럽게 다듬어서 책을 만들어 아버지의 영전에 드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가슴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내심 놀랐던 것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테레사 수녀처럼 평생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택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녀들의 모습이었다.
부호의 집에서 태어나 무엇 하나 모자람 없이 자랐다가 소아마비에 걸려 절망했던 삶을 자신보다 훨씬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바치기로 한 폴 수녀, 인도에서 손꼽히는 실업가의 딸로 태어나 풍족한 생활을 마다하고 수녀의 길을 택한 도리스 수녀처럼 마더 테레사의 수녀회에 부유한 환경의 특권을 버리고 온 여성들이 특히 많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녀들의 티없이 환한 웃음에도 그랬다. 수녀들에게 개인 소유물이라고는 벌갈아 입는 두 벌의 사리와 세탁을 위한 개인용 양동이 하나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세상 어떤 풍족한 이들보다 더욱 넉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임종자의 집'이라면 뭔가 심각하고 비장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닐까 했었는데,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밝고 맑은 분위기가, 풍요롭고 따뜻한 웃음들이 가득했다.
"여기는 샹들리에도 없고 맛있는 케이크도 없어요. 하지만 나는 옛날 부잣집 아가씨로 살던 때보다 ㅅ십 배나 즐거워요...(중략)... 나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으나 내 가슴에는 이토록 사랑이 넘쳐흐르니까 어찌 즐겁지 않겠어요?"(155쪽)
또 하나는 마더 테레사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대담한 면을 만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었다. 책 표지에서부터 아기를 들여다보며 재미있는 표정을 짓는 사진을 보고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책장을 넘기며 마더 테레사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들도, 의외의 엉뚱한 면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재기 넘치는 '테레사 할머니'가 낸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만나는 즐거움이란! 인도의 길거리에 온통 나뒹구는 코코넛 껍질을 물에 담갔다가 막대기로 두들겨서 섬유를 생산하게 해, '임종자의 집'에서 쓸 깔개와 배갯속 등을 만들게 한 아이디어는 특히 놀라웠다. 일거리 없이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슬럼가 사람들에게 일을 제공하는 실업 대책과 현금 수입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 것이다.
또, 서벵골주에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이 스스로 일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평화의 마을'을 만든 일화도 감탄을 자아냈다. 90만 평의 드넓은 땅을 서벵골의 주지사로부터 제공받기는 했으나 덤불밖에 없는 사막같은 황무지에 마을을 건설한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마더 테레사는, 마침 그 무렵 교황이 하사한 의전용 자동차인 링컨 콘티넨털을 경품으로 내걸고 복권을 판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복권은 날개 돋친 듯 팔려 평화의 마을을 설립하게에 충분한 자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 밖에 남는 비행기 기내식을 '고아의 집'으로 보내달라고 공항 당국과 교섭을 벌였던 일(항공사들은 기꺼이 동참했다고 한다), 노벨평화상 수상 후 인도 상류계급이 초대한 호화로운 만찬에서 '미안하지만 오늘 단식일'이라고 말하며 참석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그 음식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어떠냐고 말하고 돌아가버린 일 등... "멋지게 해치웠지?" 장난기 가득한 마더 테레사의 웃음이 떠올랐다.
가난한 이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한 덩어리가 된 삶을 택한 마더 테레사와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녀들을 만났던 가슴 벅찼던 시간. '그분과 같은 분이 존재해 계시기에 그나마 우리 인간들이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264쪽)는 정호승 시인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이 책에서 만난 마더 테레사의 말씀을, 그 귀한 삶의 방식을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닮아보고 싶다.
'친절하고 깊은 자애로움을 가지세요.
당신을 만나게 된 사람은 누구라도
이전보다 더욱 기분 좋게
밝은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세요.
친절이 당신의 표정과 눈동자와 미소에
따뜻한 한마디 말에 나타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고통 받는 고독한 사람 모두에게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웃음 띤 얼굴을 보이세요.
보살피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당신의 마음을 드리세요.' (1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