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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자 ㅣ 홍사중의 고전 다시 읽기
홍사중 지음 / 이다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뭔가 얽매이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성향 때문일 거다, 아마. 중학교 사회시간에 제자 백가에 대해서 배우던 때부터, 그 제자백가의 양대 산맥이던 유가와 도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부터 유독 도가를 편애했던 것은. 커가며 노자와 장자에 대해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의 사랑(!)이 변함없음을 확인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도 그 연장선으로 장자가 남긴 우화들을 만나며 행복한 시간이었다.
제목이 '나의 장자'여서 장자에 대한 지은이의 애정어린 해설이 잔뜩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지/도/마음/공자/처세/운명의 길'이라는 6개의 흐름으로 나눈 주제에 맞춰 <장자>에 나오는 적절한 대목을 소개하고 간략하게 해설을 덧붙이는 형식이다. '나의' 장자라기에는 쬐끔 아쉬울 정도로 담담한 해설이지만, 뭐 읽다보니 이것도 괜찮은 느낌이다. 여백이 있는 느낌이랄까(장자가 봤으면 깨알같은 해설보다 '무위자연'에 가깝다고 더 좋아하실지도^^;).
고전이라는 것은 뭔가 딱딱하고 지루한 것일 거라는 편견을 깨는, 부담없고 재미있는 우화 형식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장자의 빛나는 기지와 해학 속에 담긴 생각들을 깨달을 수 있다. 왜 우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사상을 이야기하는가에 대한 장자의 말도 인상적이다.
"내 얘기 중의 10분의 9는 우언이다.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중매인이 되지 않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칭찬해도 별로 신용받지 못하고, 아버지 이외의 다른 사람이 아들을 칭찬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언을 말한다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고 우언을 말하도록 한 세상 사람들의 책임이다. 세상 사람들은 상대방의 의견이 자기 의견과 같은 경우에는 순응하고, 자기 의견과 다른 경우에는 반대를 하고, 상대방의 의견과 자기 의견이 같은 경우에는 옳다고 하고, 자기 의견과 다른 경우에는 틀렸다고 하는 법이다. 그래서 내 의견이 아니라 우화처럼 상대방에게 얘기하는 것이다."(6쪽)
자기 의견과 다르면 틀렸다고 반대부터 하는 사람들... 기원전 369년에 태어난 장자가 살았던 세상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나보다. 아니 천하통일을 위한 열망으로 온갖 전쟁과 책략이 난무하던 춘추전국시대였으니 드센 정도는 훨씬 더했을 거다. 장자가 경이롭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에 있다. 그런 난세에,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기를 쓰는 시대에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라며,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성질을 따르게 마련이다. 자연의 성질은 세월이 흘러도 늘 같으며 잃어버리게 되는 것도 아니다'(131쪽)고 이야기하는, 초연함과 대담함이라니.
어김없이 또 새해가 밝았다. 올 한해는 또 어떻게 일구어갈 것인가. 책장을 넘기다가 장주가 그려낸 유토피아, 그가 무위자연의 이상을 실현시켜 그려낸 마을의 이야기에 눈이 멎는다.
"남월에 건덕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우직스럽고 순박하다. 이기심이나 욕망은 거의 없으며, 농사를 지어도 저장하지를 않고, 남에게 무엇을 주어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의 정의니 예의니 하는 도덕도 모른다. 제 마음대로 행동을 해도 빗나가지 않는다. 살아 있을 때에는 즐겁게 살고 죽으면 정중하게 매장된다."(281쪽)
'남에게 무엇을 주어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에 밑줄을 그어본다(다른 건 좀 무리...^^; 아, '살아있을 때에는 즐겁게'는 좋고!). 올 한해는 마음의 그릇을 좀 더 키울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좀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