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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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많은 경우 가족, 그러니까 생애 초기 혹은 혼인 이후 삶의 대부분을 한 집에서 공유하며 살아가는 원가족의 문제는 자신의 것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자식 간의 관계는 유난히 그러하다.

상대의 고통이, 생활 전부에 결부되는 그것은 오롯이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기에 공명하듯 고통스럽다. 그러나 동시에 서로가 별개의 사람이기에 각자의 고통이 맞물려 증폭되듯 고통의 범위와 종류가 공유되지 못해 각자의 자리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유명인의 사례와 각종 미디어, 통계로 양극성장애는 대중에게 제법 잘 알려진 정신질환에 속한다. 그러나 실상이 어떠한지, 당사자와 그 가족의 삶은 얼마나 위태롭고 고통스러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제각기 살아가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낯설지 않은 이름, 그러나 너무도 낯선 환자 당사자와 그 가족의 삶. 이런 경우에 일반 대중으로서의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의대 교수 부모, 아마도 화목한 가정, 나름의 고민은 있겠으나 비교적 무탈하게 잘 자란 줄만 알았던 딸이 수능을 고작 며칠 앞두고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만하면 다행이려니, 싶었으나 그 날이 곧 첫 번째 자살시도를 한 날이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별 일 아니겠지. 많은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저자 또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마주한 실상이 그렇지 못했다. 또다시 자살을 시도했고, 처방약은 부작용이 심했고, 파괴적인 행동을 반복하다가도 무기력에 겨우 살아만 있기를 반복했다.

p.127 어떤 난치 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면 사회의 큰 관심사로 떠오른다. 그런데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기 전에 그 효능이 과장되게 알려지면서 많은 문제가 빚어지는 것은 (…) 누구보다 잘 아는 부모이더라도 자식이 이런 상황에 몰리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삶은 현실이다. 이 책의 이름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동화가 아니다. 누군가의 인생은 그린 듯이 감동적인 역경 극복 수기가 아니다.

그렇기에 의학적 지식이 탄탄하고 재정적, 정서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 제공이 가능한, 효과적인 치료를 탐색할 자원이 풍부한 가족-보호자가 있음에도 수차례 넘어지고 좌절하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정신질환은 죄가 아니고 마찬가지로 벌도 아니기에. 굳이 따지자면 던진 줄도 몰랐던 돌로 죽이고, 스치는 바람에도 죽어버리는 게 사람이라서. 그뿐이다.

p.222 그러나 원래 인생은 잔혹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기는 패보다는 지는 패를 잡을 일이 훨씬 더 많다. 누군가가 항상 이기는 패만 잡는 것처럼 자랑을 일삼는 것을 보면 인생을 반도 모르는 덜 떨어진 사람이라고 속으로 비웃어도 된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다만 정신질환은 유전이나 외상, 생물학적 기전으로 발병하기도 하지만 다른 질병이 그러하듯 환경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개인의 통제•관리를 넘어서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직업을 갖는 것은 단순한 생계 유지 외의 의미가 있다. 정해진 시간에 규칙에 따른 활동을 반복 수행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음으로서 자기효능감을 고취시키고 개인을 사회로부터 유리되지 않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적당함’이 없다. 누구도 버티기 힘든 조건이 기본값이다. 사람을 갈아넣어야 유지되는 곳에서는 어떤 건강한 사람도 버터낼 수 없다.

p.266 정신질환 환자에게도 일은 매우 중요하다. 비록 장시간은 어렵더라도 생활의 흐름을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을 하는 것은 정신질환자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동 시장은 환자가 아닌 사람들도 버텨내기 힘든 '갈아 부수는' 형태의 작업장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사회가 개인의 안녕에 적대적이고 자아의 주체성과 양립 불가능한 조건을 강요할 때,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할 때, 어떤 제도와 시스템도 나를 부당한 위험에서 보호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때 결국 개인에게 남는 것은 절망밖에 없다.

상처에서, 물러섬에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지 않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저항에 의미가 있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저버리는 사회는 결코 안전하지도, 소속감을 주지도 못한다.

결국 사회는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개인과 유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더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효용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사회에서 개인이 ‘제정신’으로 살아남기를 요구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지 않은가.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아니, 살아남는 일부터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조건이 가혹하기 때문에,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안의 괴로움이 스스로를 집어삼키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 그 어떤 고통도 무시해도 좋을 만큼 가볍지 않다는 것만은 같다.

오늘도, 아마도 너무도 많은 곳에 힘들고 버거운 세상에 다치고 아파하는 사람이 있고, 그 곁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멋지게 날아오르지 못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를, 살아만 주기를. 언젠가 꼭 한 번만이라도 살아있기를 잘 했다고 생각해주기를. 그렇게 바라면서.

수차례 거꾸러지고 부서지더라도, 이 또한 삶임을 잊지 않기를, 살아주기를. 그저 그런 마음으로 읽기를. 이렇게도, 살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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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 테일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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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속았다. 또 속았습니다. “스티븐 킹”과 “동화”가 나란히 붙어있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동화는 동화인데, 동화가 맞긴 한데... 아름답고 신비로운 세계로의 신나는 모험이 아니라 잔혹동화, 전설의 원형에 가까운 공포체험이다.

그럼 그렇지, 분명 시작부터 누차 힌트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제목에 혹해 홀랑 넘어간 내 잘못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실수는 다음 내용이 궁금해 밤을 지새울 줄 알면서도 마지막 권까지 쌓아놓지 않고 냅다 시작해버린 것이다. 찰리는? 레이더는? 친절한, 그러나 저주받아 죽어가는 크리쳐들은? 이 세계는? 대체 어떻게 되는거지?


물음표만 가득 띄우다 결국 또 밤을 샜다. 읽고 새나 못 읽고 새나 밤을 새는 건 마찬가지인데, 결국 궁금해하다 날 밝았다. 억울하다.

이세계로 이어지는 우물, 그곳에는 동화 속 세계가 있고, 어딘가에는 황금과 보물이 넘쳐난다, 고 한다. 분명 그랬는데, 어딘가 좀 이상하다. 변형된 생물들, 불길한 그림자, 절망과 비탄에 빠져 어딘가로 쫓기는 듯한 이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조심해”. 이쯤 되면 이게 어딜 봐서 동화냐. 동화의 ‘ㄷ’에도 못 미치지 않느냐 따져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전설, 민담, 금기가 당의정처럼 달콤한 변형을 껴입은 것이 동화 아닌가.


동화세계에 떨어진 이들에게 가장 우선되는 규칙이 있다. 현실을 아님을 기억하는 것. 언제나 친절하고 용감해야 해, 그리고 잊지 마. 환상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단다. 닫히기 전에, 시간이 다하기 전에 돌아서야 해.

반드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단다. 영영 먼 곳으로 사라지고 싶지 않다면, 아가리를 쩍 벌린 맹수의 뱃속에 영원히 갇혀 환상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면. 모든 이야기의 독자를 위한 첫번째 규칙이다. 기억해, 네가 엿보는 그곳이 현실이 아님을.

p.392 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쓰는 언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들은 것이 일상적인 미국식 영어는 아니었디만 고어도 아니었다. (...) 살짝 현대화된 동화에서 접할 수 있음 직한 영어였다. 그런가 하면 나도 이상했다. (...) 내가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스티븐 킹에게는 그간 수많은 크리쳐와 그보다 섬뜩한 이야기로 독자를 몰아세운 전적이 무수하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It』 이나 『샤이닝』, 『미저리』 처럼 뼛속 깊이 얼어붙게 만드는 공포가 아니라 『나중에』 처럼 상실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하지 않는가. 누구에게도 잘못을 물을 수 없어 각자 자기를 탓하기에 바쁜, 먼저 떠나간 사랑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이들.

결국 이 작품의 주제도 크게는 위로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살아아야 하고, 회복될 수 있으며,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삶이더라도 또다시 누군가를 돕기 위해 손을 내밀 수 있다고 말하는 다정한 위로.

다정하고 정의로운 주인공의 이야기는 늘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사랑이 있고 돌아설 수 있어 언제든 용기를 낼 수 있다고.


p.188 내 해묵은 분노가 많이 옅어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공포와 상실은 잔재를 남긴다.

p.197 “그렇다면 넌는 지금 성인으로 추대되려고 기를 쓰고 있는 거냐 아니먄 뭔가에 대해 속죄를 하고 있는 거냐? (...) 시간이 강물이지. 인생은 흐르는 강물 위에 서 있는 다리고.”

p.303 그리고는 잠시 후에 끙끙대며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괜찮아.” 나도 그녀를 마주 끌어안았다. 그녀에게서 희미하지만 좋은 냄새가 났다. 생각해보니 양귀비 냄새였다. 내가 꺼이꺼이 흐느끼는 동안 그녀는 나를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나 재차 말했듯 문제는 작가다. 위로를 하기는 하는데 자꾸 겁을 줘요, 이 사람이... 환상의 나라로 보내주기는 하는데 여행이나 탐험이 아니라 ‘스스로 불러온 재앙’,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어쩐지 사기에 가까운’ 따위의 수식어가 붙어야 할 것만 같다고요.

앞서 모든 이야기의 첫 번째 규칙을 말했다. 그렇다면 두번째는, 네가 누구인지를 기억할 것. 1권 말미에 와서는 결국 그 자신의 현실을 잊어버린 듯한 주인공 찰리 리드가 이 규칙들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 기억할 수 있을까?

이 동화가 잔혹 동화, 괴담이 될지 정석 루트를 따라 도로시처럼 랄랄라 노래를 부르게 될지는 다음 권의 본격적인 모험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겁좀 그만 주면 좋겠다... 잠은 재워줘요 제발...

p. 454 나비 뗴가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우리 위를 날아갔고, 나는 그들의 날개가 일으킨 바람을 느끼며 마침내 이 다른 세상의 현실을, 엠피스의 현실을 완전하게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있었던 곳이 가상의 세계였다. 여기가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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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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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빨간머리 앤의 빨갛고 달콤한 산딸기주의 맛을, 유난히도 운수 좋던 날 김첨지와 인력거꾼들이 주워삼키던 노포의 안주 맛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는 부류. 대개 먹보, 정도로 일축되는 그들의 상상은 미시사, 문화사라는 이름의 창이 되기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어느 시대건 문학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세부적인 묘사가 가능한 소설의 경우에는 의도와 관계없이 독자를 현장으로 끌어들이고 만다.


이 책은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었으되 다시금 제국의 식민지 조선반도가 되어 이름조차 뺴앗겼던 때, 바로 그 때를 주목한다. 특히나 그 시대에 창작된 소설과 각종 광고 기사들을 통해 현재의 지명과 대조함으로서 서구화된 일본과 유럽식 소비 문화가 조선 민중에게 미친 영향, 조선이 확장된 일본 영토로 여겨지던 때의 부유층의 생활, 선망되던 문화를 살펴본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소울 푸드‘로 일컬어지는 설렁탕, 피지배계층의 외식 문화, 냉면과 국밥, 백화점과 조선호텔, 마지막으로 청요리와 일본식 서민 음식인 우동 그리고 덴푸라까지. 가히 번쩍이는 시가지부터 뒷골목 시장통까지 아우른다고 할 수 있겠다.

p.304 순호는 냉면 먹을 생각에 전차에서 서둘러 내리려다 ‘패스’를 ‘냉면’이라고 잘못 말한다. (...) 원래 말하려 했던 ‘패스’는 기자증 정도 되는 것인데, 전차는 무임승차가 가능했고 열차를 탈 때는 상등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순호는 요금을 패스로 대신한다고 말하려다가 그만 ‘냉면’을 외쳐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미식 명소를 찾아다니는 내용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무거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새하얀 식탁보, 이름도 낯선 음식들, 정원이 딸린 일본식 가옥과 커피향이 짙게 깔린 다방, 호화로운 가격표...

그와 대조되는 식민지 조선 민중의 일상은 한 달 벌이를 몽땅 털어넣어도 식사 한 번 엄두낼 수 없고, 조선 땅에 지었으되 조선 음식은 없는 고급 식당이 늘어선 시가지 뒷골목의 파리 날리고 기름 쩐내가 나는 허름한 전포와 인력거꾼,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나이어린 여공의 빈곤에 가깝다.

p.189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단장한 가네보 서비스스테이션은 (...) 모던보이, 모던걸들을 유혹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옷과 소품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전시된 상품들은 열악한 근무 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식민지 조선의 여직공들이 힘겹게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상품이었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루에 30~35전을 받으면서 12시간을 일해야만 했던 직공들의 땀과 눈물이 어려 있었다.


낯선 것의 설레임과 환상 뒤에는 당장 살아내야 할 현실과 식민지배의 설움이 있었다.

인용된 소설 속 인물이 고급 요정에서 밀담을 나눌 때, 말쑥하게 빼입은 남녀가 레스토랑에 마주앉아 볼을 붉힐 때, 능숙한 솜씨로 점원에게 코스메뉴를 주문할 때, 식비를 털어 찻값만 겨우 내고 떠날 때, 독자는 소설 속 세계 한켠에서 조용히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시작해 당시의 첨단 유행과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표에서 빈부격차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p.70 미쓰코시백화점 식당에서는 각종 요리를 비롯해 과일, 음료도 판매했다. 서양요리나 일본요리뿐만 아니라 커피 맛으로도 경성에서 1, 2위를 다투었다고 한다. (...) 이곳에서 파는 음식 가운데는 서양음식, 일본음식, 심지어 중국음식까지 있었지만 조선음식은 없었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백화점에 자리 잡은 식당이었지만, 이곳에서도 식민지라는 멍에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p.367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이 받았던 평균적인 급여를 살펴보면 그 가격을 더 잘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급여가 얼마나 되면 조선호텔 식당의 정식을 사 먹는 데 부담이 없었을까? 조선호텔 식당의 저녁을 기준으로 하면 (...)화장품 외판원이나 가게 점원이 한 달 내내 번 급여는 정식 3~4번을 먹을 수 있는 돈에 불과했다. 급여가 아니라 식비로 한정하면 그 가격을 더욱 분명히 실감할 수 있다. (…) 그렇다면 조선호텔 식당의 정식 가격은 서민들의 한 달 식비보다 더 큰 금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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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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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오래된 말이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독히도 잔인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잔인하지만, 필요한 말이라고. 처음에는 그저 애도는 그쯤 해두고 기억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는 뜻으로, 지금에 와서는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그러니 슬픔에만 빠져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이따금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을 소리내어 말해본다. 모두가 죽은 세상에 남겨진 사람은, 설령 그 모두가 전부가 아닐지라도, 수치심을 느낀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부끄러움. 나의 삶이 아닌 ‘살아남은’ 나의 삶을 살아 버티기.

사는 일은 본질적으로 외롭다. 그러나, 차마 그만두지도 못하게 남겨진, 살아남은 자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외롭다.

p.167 계획을 세우고, 계획한 대로 실행하고, 계획을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계획에 가깝게 계획을 마무리하면서, 그날 이후로 수영은 수영의 삶이 아니라 ‘혼자‘ 살아남은 수영의 삶을 살았다.


다른 작품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책에서 드러나는 작가 김현의 세계는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이야기의 안팎이, 배경이, 시점이, 경계가 확실하지 않다. 발 아래 딛고 선 자리마저 물러지고 부서지고 흔들리는데...

오로지 딱 하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살아있는 사람이, 여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p.67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 왜 하필 그런 문장이었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어째서 무너지고 무너졌다는 말을 우리는 붙들고 있었을까. 주미는 왜 그렇게 일찍 인생은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것이라고 깨쳤을까.

p.84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존재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해도, 당신 역시 쉬이 눈 감지 말기를.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니까. 상민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앞서 말했듯 이야기의 안팎이 불분명한 탓에 연작인지 아닌지, 에세이인지 아닌지 자꾸만 헷갈려 연신 목차를 넘겨다보며 읽었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넘길 떄쯤 불현듯 깨달았다. 그것에 의미가 있는가?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살아가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일지라도 한 데 엉겨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결국 그들의 삶이, 나아가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사실, “요즘 사람”들의 구질구질한, 땀내 나고 쪼들리는 이야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나의 현실, 내 또래와 주변인들이 당면한 가난과 차별, 지긋지긋하게 마주하는 어려움을 마주하는 일이 기꺼울 리가 없지 않은가.

p.103 말이 말이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도 모르게 그냥 하는 말이란 없다. 그냥 하는 말이 자신의 말일 뿐.

p.114 형석은 사과할 자격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을 만만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승우는 사과하지 못했음을 평생 기억하는 사람이야말로 누군가를 만만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티끌 모아 티끌 인생이 이야기를 자꾸만 찾게 되는 것은 아 그래, 알지 이거, 하며 덜컥 비틀대는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작은 이야기에도 더 작은 사람이 여전히 살아 발버둥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내모는 세상에 여전히 사람은 사람을 살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작은 믿음을 남겨둔다. 사는 일은 본질적으로 외롭다. 그러나 그 외로움의 존재와 그것이 모두의 삶에 내재해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이 연약한 인간종을 살아남게 한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외로우나, 모든 순간에 죽을 만큼 외롭지는 않다, 고.

p.252 -보고 싶어. 무서워, 미안해, 라는 말보다 한 글자가 더 많은 말. 그러니까 뭐가 더 있어도 있겠지 싶은 말. 철희는 한 글자가 더 많은 말의 힘을 믿었다. 믿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러면 정말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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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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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인플루엔셜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숨쉬는 것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쉴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은 어느 곳을 떠돌다 마침내 흘러가는가.

세상에 정의가 존재하는가? 어느 밤 갑작스러운 총소리, 비명과 흐느낌만을 남기고 영영 자취를 감춰버린 이들은 이름과 몸을 박탈당하고 어디에 버려졌을까? 만일 생전의 삶 이후에 아주 조금의 기회를 얻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해원(解冤)은 무엇으로 성취될 수 있는가.

p.35 너는 보통 사람보다 시체를 많이 보았고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도 늘 알고 있었다. 촛불을 눌러 끌 때 불꽃이 가는 곳,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 말이 가는 곳이다. (…) 그들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있었다가, 그저 없어졌을 뿐이다. 각자의 초에 심지가 다할 때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졌던, 청산되지 않은 역사를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그 또한 한국의 존재를, 기적으로 불린 변화를 알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빈국으로 조롱당하는 그 나라에서 얼마 전까지 한국은 가난의 상징과도 같았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안타까워한다. 내전과 부패, 독재로 파괴된 사회에 혀를 찬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체 그들과 우리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우리에겐 작가가 그려보이는 참상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있었다 한들 지나간 이야기라고 털어버릴 수 있는가.

작중 사건들이 오롯이 허구가 아님에 기가 막혀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읽는 내내 사람이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쉽게 죽고 사라져도 되는 존재가 있다고 믿어지는 참상에 화가 나서 이를 악물지 않을 수 없었다.

p.279 "우리는 저 사람들보다 정부군이 더 무서워요. 정부군이 우리 마을을 불태웠어요."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한 것 같지만 소년병으로 분류되기에는 커버린 소년이 말했다. (…)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거다. 너는 마을 사람들이 총 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문득 정신이 들었는데, 내가 죽었단다. 그건 알겠는데 당신은 누구...인지도 알겠는데, 그래서 여긴 어디인가요. 나는 어떻게 되나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밑도끝도 없이, 당황스럽게, 내던져진 것처럼 무력하고 혼란스럽게.

분노와 절망 앞에 (살아있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유령이 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체념하고 등을 돌리기도, 원한에 잡아먹히기도, 정의와 복수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학살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 앞에서 주인공은 이야기의 시작처럼 혼란스럽고 무력할 따름이다.

점점 드러나는 죽음의 진상, 주인공 말리 알메이다의 삶, 그의 깊숙하고 진실된 면모를 따라가는 여정에서 독자는 기쁨보다 막막함을,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악은 건재하다. 권력을 등에 업어 힘이 세다. 살아있는 이들은, 나처럼 죽어 잊혀지게 될 이들은, 미처 끝맺지 못한 일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p.331 한때 가슴이 있던 자리에서 찌르는 듯한 아픔이 밀려오고, 눈에 보이지 않는 팔이 쑤신다. '10점 만점'이라는 제목의 봉투 안에 든 모든 사진이 떠오른다. 남이 훔칠 가치는 가장 적으나 그 어떤 사진보다 더 보호해야 할 사진, 네게 그 사진들은 그런 것이다.


이따금 말한다. 난세의 영웅이 기껍지 않다고. 모든 것을 짊어진 한 인간과 무너져내리는 세계에 가득한 고통은 아름답지도, 행복하게 끝나지도 않는다고.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저버리지 못하는 마음, 울며불며 돌아서는 나약함, 오직 그 가능성만을 믿을 수 있을 뿐이라고.

수많은 영화나 활극에서와는 다르게 그는 무결하지도, 상냥하고 건실하지도 않다. 오히려 어디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구질구질하고 조금은 치사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정의로웠다. 자신이 목도한 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쉬이 사라질 목소리를 결코 잊지 않았다.

골치아프고 제멋대로에 가볍기 짝이 없었던 난봉꾼, 타고난 승부사, 뻔한 패배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마저 판돈으로 내거는 이,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은 사람. 끔찍하고 서러운, 진창 한가운데 더렵혀지고 찌들어있는, 누구보다도 인간이었던 말리. 그가 존재했음을 이다지도 찬란하게 보여줄 일인지.

p.366 게다가 퓰리처 상은 미국인에게만 수여한다.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후원한 CIA의 모국, 몰디브 남쪽에 해군기지를 가지고 있는 국가, 이 낙원이라는 땅의 소위 궁전이라는 곳에 심문관 훈련 조교를 보내 주는 국가의 국민에게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처럼 묻혀 잊혀지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더는 숨길 수 없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독자는 다시금 주인공을 마주하게 된다.

어깨를 으쓱이며 천연덕스럽게 웃는 그, 익명의 원혼들에게 비로소 약속할 수 있게 된다. 산 사람이 살아서 해야할 일을 하겠다고. 잊지 않겠다고.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그리하여 이 조각난 기억과 간접진술로 가득한 이야기의 의미를 마주한다. 무명의, 사라진, 알지 못하는, 불완전한 이들을 향한 애도, 살아 남겨진 이들이 감당해야 할 상실의 고통에 대한 위로이다. 그들이 이곳에 존재했으며 우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최후이자 최초의 선언.

p.507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바칠 쓸데없는 명분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조차 없다면 왜 굳이 숨을 쉬는가? 돌아보면, 일단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보고 눈의 색깔을 알아보고 공기를 맛보고 (…) 우리가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말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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