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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사윌 때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죽은 이를 살려내거나 무너지는 집을 떠받치는 것과 같은 것들. 내 나라, 기껏해야 이웃 나라 내지는 높으신 분들이나 오간다는 저 먼 나라가 세상의 전부이던 시대가 있었다. 나라가 없어진다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아 상상도 할 수 없는 재앙과도 같던 시대가 있었다. 나라 없는 설움, 그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고 보호받을 길 없는, 이름을 잃은 사람들. 그 막막함의 한복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가 제목으로 말하고자 했던, 별빛이 사위는 때는 언제일까. 사지임을 뻔히 알면서도 부러진 다리를 동여매고 바라보는 하늘이 아닐까. 오래된 밤하늘이 신새벽에 밀려 바래지는 때가 바로 별빛이 사위는 때이다. 오래된 나라가 새로운 이름과 힘에 밀려 사그라지고 보이지 않는 이름과 터와 사람을 남기듯이. 또한 작가의 말처럼 어둠이 머물고 먼동이 트이는 때가 별빛이 사위는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금 살아남아 이어질 수 있을까. 그것을 고민하는 것은 아마도 독자의 몫이리라.
읽는 내내 몇번이고 등장하는 망국의 옛땅을 그리워했더랜다. 기억 속에 교과서며 시험에나 나오던 먼 옛날 지도로만 남아 희미해진 그 땅과 지워진 물길을 손끝으로 더듬어보고 싶었다. "애달파서 더 망설이지 못"한다는 마음이 대체 무엇일까, 헤아려보며(p.250). 아마도 누군가에겐 존재했을 그 이름과 사연이 쓰리고 서러워 알지도 못하는 이의 절망에 덩달아 주저앉고 싶어졌다.
망국이란 단어는 참으로 묘하다. 사람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그것에 실체없는 이름을 붙여 살을 붙이고 테를 쌓는데, 기이하게도 그 이름에서 힘이 나온다. 여러사람이 같은 이름으로 뭉치고 공유하는 믿음이 있을 뿐인데, 그 허상이 사라지고 먹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때로는 아주 많은 사람이 살고 죽어나가며 때로는 죽느니만 못하다고 외치는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이 망국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망한 나라의 이름을 떠안아야 했던 백성들이었을 것이다.
누구 하나 편치 못한 이 이야기는 외로워졌다 끝내 혼자가 되고 다시금 전장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덧붙여진 후기에서 말하는 평화는 과연 누구의 평화인가. 명분이 무엇이고 세상이 어떻든 전쟁은 사람의 일이기에 사람이 죽어야, 부딪는 힘이 사그러들어야 끝을 본다. 평화를 얻은 땅은 그곳이 어디든간에 기실 온 땅이 무덤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전쟁은 영웅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전쟁은 웅장하고 화려한 수사로 치장된 장관이 될 수 있을까. 남의 전쟁은 그렇다. 한치도 나의 일이라 여기지 않는 남의 전쟁이 그러하고 상처 없이 살아남은 자에게 그러하다. 남의 전쟁이 나의 것이 될 때, 전쟁에 휩쓸린 자의 심정을 이해할 때 그것은 더이상 장관도 무훈도 아닌 그저 상처요 참극이 되고 만다. 그 안에서 없는 자는, 약한 자는, 아래에 있는 자는 더더욱 무덤 가까이, 어쩌면 무덤이 될 진창에서 허부적대는 삶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살아남기 위해 강도질을 하는 무리가 내일이면 살려달라고 목숨을 애걸하는 쪽이 된다. 이것이 참극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모두가 불행해진다. 전쟁을 무용담으로 말할 수 없는 이 모두가.
”아암, 우리가 가엾고 불쌍허다마다...... 다들 지발, 싸움질 좀 그만해야 쓰는디...“ (p.226)
“(…) 오랫동안 전쟁과 굶주림에 시달려온 백제 사람은 당의 황제와 신라의 왕 중에서 누가 나은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걸 모르시진 않겠지요?" (p.278)
작중 예스럽고 드문 말 뿐만 아니라 구어체가 문어체가 섞여 다양한 어투가 자주 등장한다. 시대를 구현해내기 위한 작가의 의도일까? 말맛이 사는 것도 있지만 도리어 약간 낯설게 느껴져 이것이 과연 누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도 승리와 혈기의 기록이 아닌 위와 아래를 가리지 않는 설움과 처참함이었을 것이다. 찰나와도 같았던 일부의, 겉으로나마 평화로운 시대가 가고 다시 전세계가 전쟁과 대립으로 휘말려들어가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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