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궁궐 기담
현찬양 지음 / 엘릭시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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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금기는 여러 종류의 진실-때로는 고발에 가까운 내용-을 함축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나는 이것을 불가해한 것 혹은 차마 입밖으로 내기도 두려운 것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전하려는 인간의 노력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창귀에 얽힌 금기 같은 것들. 국토의 많은 부분이 산지인 한반도는 오래도록 호랑이의 영역권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호랑이가 수영까지 잘 하는 짐승인 탓에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조차도 안전지대가 될 수 없었다. 오죽하면 호랑이표 단골 밥집 쯤 되는 진도의 전통 가옥에는 개구멍이 따로 있겠는가. 이런 땅에서 호환은 한 집 건너 한 집, 해마다 일어나는 일이었고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었다. 그 덩치며 힘이 인간이 대항하기에는 터무니없이 강대한 탓에 일행 내지는 일가의 몰살을 피하기 위해서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가족, 친척, 이웃의 처절한 비명을 무시하고라도 도망치거나 숨어야했고, 그렇게 살아남은 자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창귀가 사람을 홀린다는, 절대로 돌아보지도 가까이 가지도 말라는 금기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혹은 잊힐만하면 등장하는 어린아이, 여인, 한을 품고 죽은 짐승의 이야기는 금기가 지닌 죄책감과 그것을 면피해보려는 발버둥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한다. 박해가 없었다는 강력한 부정은 도리어 그 박해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밤 늦게 나다니지 마라, 특정한 어느 날에는 어디에 가지 말라, 누군가가 흔적없이 사라지더라도 그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존재의 소행이니 이유를 묻지 말며 그 부재는 존재를 지워버림으로써 기억조차 하지 않는 것이 되게 하라. 그런 말들이 금기를 품은 괴담, 기담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궁궐에는 왜 이리 금기가 많습니까?"
그야, 궁궐만큼 억눌리고 숨죽인 사람이 모인 곳이 없기 때문이다. 구중심처 권력을 틀어쥐고 군림하는 이만큼 죄가 많은 이가 없기 때문이다. 신분과 성별, 계급으로 짜여진 철저한 수직사회 속에 자유로운 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정보를 나른다. 설령 그것이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지어낸 것일지라도. 입에서 입으로, 귓속말과 그믐달 아래 은밀한 속삭임으로 전해지는 밤의 이야기에는 양기, 남성, 양반, 떳떳한, 높으신 분들, 그런 단어로 묶인 낮의 말로는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세계를 전한다. 군자불어 괴력난신이라. 두려워하되 인정하지 않으니 말할 길이 없다. 누구보다 죄, 보복, 분노로 웅크린 존재를 확신하되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꺼리니 피하고 도망칠 길이 없다. 실로, 군자불어 괴력난신이라.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도 직접 읽는 경험에 미치지 못하리라. 엎드린 자의, 공동체의 밑바닥 그 어디에 눈을 빛내며 웅크린 '것'에, 속삭이고 인내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알게 될 것이다.
쉿, 우리 중에 우리가 아닌 것이 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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