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패로
메리 도리아 러셀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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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쳐버린 명작은 기다림을 늘릴 뿐이란 것을 좀 더 빨리 깨달았다면 좋았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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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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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 난감하다... 너무... 너무 난감하다. 살다살다 이렇게까지 난감한 추천은 처음 해본다. 좋았냐고 묻는다면, 좋았죠. 좋았으니까 베개인지 책인지 헷갈리는 두께를 이마 팍팍 두드려가며 읽었지, 좋기는 좋았어요. 그래도 명색이 후기고 추천인데 작가님 이리와보세요. 따라하십쇼. 하나에 정신을, 둘에 차리자.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아니 그치만?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가 독자 내지는 캐릭터한테 무슨 원수라도 져서 너 죽고 나 죽자며 작정한 게 아닌 이상 이렇게까지 너무한 이야기가 나올 줄은... 누가 알았겠냐구요. 아마 편집자도 받기 전까진 몰랐을거라고... 나만 당한 게 아닐거라고 믿어보겠습니다.

시작부터 상당히 모호하다. 전작들을 통해 이 작가의 스타일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순서가 이게 맞긴 한건지 물음표만 한가득 끌어안고 읽게 될 만큼. 작가의 기량 내지는 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는 단 한 문장도 허튼 것이 없어 스쳐지나간 장면도 되돌아와 보게 하는 치밀함이 아닐까.

본격적인 시작부터 역겹다. 아니, 첫 장면부터 힌트를 주기는 했지만, 인간은 동물인가? 그렇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른 도덕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인간은 야생동물이 아니고, 인간은 법과 질서가 있는 사회를 이루고 산다, 혹은 살고자 한다.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안전을 담보한다. 인간은 동물이다. 인간사회는 곧 동물로 이루어진 사회이기도 하다. 인간세계는 생태계의 일부이다. 단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 뿐. 만일 "초식동물"의 사회에 길들여지지 않은 "육식동물"이 있다면? 게다가 그것이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특정 대상을 공격하고 자기 지배 하에 두어 이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뭐라도 해봐야한다고 발버둥치지 않겠는가. 각자가 각자의 생명 앞에서.

주인공 해리 홀레가 분명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결단코 선인은 아니다. 물론 물렁해지는 때도, 다정하고 사랑스러울 때가 있긴 하다만 기본적으로 진창에 발을 담그고 사는, 삶의 모든 순간이 위태한 평화와 아슬아슬한 광기로 이루어진 사람. 그래서 더욱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사람. 절로 눈이 가고 마음이 아파 나라면 이 자를 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모든 이들을 고통으로 밀어넣게 되는, 종내에는 자기 자신까지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에 홀로 서있게 되는 사람, 부러 미친척 큰소리를 치고 너라도 가서 살라고 등떠밀어놓고 정작 자기는 외롭고 서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부서지고 상처입어 더는 회복될 길 없이 엉망이 된 채로 살아가는 사람. 해리 홀레.

순전히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더 굴려라 더 더!!!를 외칠 수도 있겠고, 요즘 말로 "맛있다!"고 외칠 "피폐물"일 수도 있겠다. 그치만, 그렇지만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나 싶은 그의 인생. 방황의 끝, 삶의 유일한 안식처, 진짜 가족이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감히 안주와 평화를 꿈꾼 죄의 대가는 지독한 고독, 거의 모든 것의 상실이었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을 정도만 남겨놓고 모든 것을 빼앗는 세상.
라켈, 사랑하는 아내. 이번 책만 해도 600쪽이 넘는 장대한 분량 내내 라켈은 그의 구원이 아닌 적이 없었다. 너무 절절해서 눈물이 절로 날 만큼 해리의 시간에서 라켈은 늘 눈부시고, 따스하고, 편안했다. 마치 탐내서는 안 될 것을 간신히 맛만 보여주는 것처럼, 감히 네가 평안을 꿈꾸었으니 실컷 취해있다 현실로 돌아가라는 조롱처럼. 그래서 그 상실이 더욱 잔인한 게 아닐까.
라켈이 죽었다. 라켈이, 내 아내가 죽었단다. 그것도 누군가의 습격으로. 아니, 쫓겨났으니 이젠 아내도 아닌가. 잊은 적도 떠나보낸 적도 없건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제일 먼저 잡아다 없애버리고 싶은데 나는 안된단다. 왜? "전"남편이니까, 가족"이었"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내가 제일 수상하니까. 툭툭 끊겨버린 기억 속에서 혼란스러운 직감과 실낱같은 단서만 가지고 찾아내야 한다. 깨어나지 않기 위해, 상실이 진실이 되지 않기 위해. 저 밑바닥에서 일렁이는 불안과 두려움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로, 어쩌면 알지 않으려 애쓰며.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책임과 상실일까. 어떤 기분일까. 과거의 내가 시간을 넘어 내 목을 조르는 건, 과거의 나와 그 행동과 시간들이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것은. 삶은 축복이다. 동시에 살아있다는 것은 지독한 형벌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가장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심장에 새겨넣는 것이 상실인 것처럼.

읽는 내내 이거 보통 준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굴리려고 작정을 했어 작정을... 국제문제부터 작중 등장하는 기관과 직위, 여러 후유증들까지 안팎으로 고루 공들인 흔적이 잘 드러난다. 그 결과, 작품 전체가 치밀한 복선과 은유로 가득차있다. 해서 나는 이 글을 읽는 누군가, 혹은 훗날의 내가 아무 단서도 없는 채로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숨 한 번 크게 쉴 수 없는 압박과 절망과 공포와 고독 속에 빠져들어 이를 악물고 비틀거리길 바란다. 모든 것을 잃고 또다시 남겨진 남자, 해리 홀레처럼.

어디까지 알려도 좋을까. 과연 소개라고 할 만큼 충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 두꺼운 책에서 충격이 아닌 부분이 없는데. 딱 한 마디, 이것만을 말할 수 있겠다. 아무도 믿지 마라. 그 누구도, 자기 자신조차도.


덧붙이는 팁.
1. 해리 홀레 시리즈를 전부 읽은 후에 이 책을 펼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적어도 『팬텀』, 『박쥐』, 『목마름』 이 세 권은 꼭 먼저 읽으시길 권합니다.
2.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급적 한 번에 읽으시길 권합니다. 그게 어렵다면 한 챕터는 끊기지 않게 읽으시길.
3. 추천 BGM은 Raphael Lake의 "Vertigo"입니다. 어두운 방에서 스탠드 하나 켜놓고 들으면서 읽으세요. 분위기 짱.
4. 읽는 동안 제일 많이 한 말은 "오 젠장" 이었습니다. 나만 당할 수 없지. 꼭 읽으세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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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 본격 식재료 에세이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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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푸른숲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쓰는, 주관적 후기임을 밝힙니다.

#푸른숲북클럽 #오늘브로콜리싱싱한가요 #이용재 #푸른숲 #식재료에세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요리가 남 일이던 때가 있었다. 차려주는 대로 먹고, 있는 반찬으로 먹고, 급식 먹고 오다가다 대강 입에 맞는 데서 사먹고... 제철 식재료니 색다른 맛이니 해도 그때그때 입에 맞으면 그 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이왕지사 먹는 거 맛있으면 좋지만 특출난 미식가도 아니니 괜찮네~싶으면 된 게 아닐까. 하던 때가 있었다.
이름 내지는 얼굴을 걸고 내세운 여러 요리사며 가게에, 세상은 넓고 천지에 널리고 널린 게 먹을거리 아닌가. 하루가 멀다하고 앞다투어 신메뉴!를 외치는 외식브랜드가 수없이 많고 밀키트도 여간 잘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 세상에서 먹는 즐거움, 그것도 재료의 맛과 쓰임에 집중해 골라내 공을 들이는 즐거움은 어쩐지 요원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 책의 저자는 식재료에 진심인 자, 먹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다. 장르를 오가며 예찬에 가까운 온갖 지식을 풀어놓는 입담을 따라가다보면 절로 침이 고이고 괜히 냉장고 안 식재료를 흘끔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구나. 이래서 맛이 없었구나. 중얼거리면서. 진열대 앞을 무심히 지나치며 있는지 없는지 몰랐던 재료들 또한 다이닝이 아니어도 충분히 맛있는 것이 될 수 있다. 내게는 아스파라거스(p.121)가 그랬던 것처럼.
"평범한 식재료를 더 맛있고, 향긋하게 즐기는 법!"이라는 자신만만한 문구의 의미를 몇 장 넘기지 않고도 깨달을 수 있다. 이 사람, 먹는 데 상당히 진심이구나. 직접 사온 토마토 껍질이 질기기가 너무해 그 이유가 궁금한 나머지 생산자에게 전화를 거는가 하면(p.82) 대강 색 내고 식감 더하는 재료로 취급되는 브로콜리마저 빛깔과 모양새를 따져 최고의 맛을 골라내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p.133).
그러나 미식을 주장하는 많은 요리서가 으레 그러하듯 듣도보도 못한 저 먼 나라의 희귀한 재료를 필수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이 저자는 먹는 데 상당히 진심이다. 끼니마다 혀가 절로 꼬이는 이국의 뭐시기만을 고집하다가는 시장이며 백화점까지 발품팔아 얻는 싱싱한 재료와는 영 연을 맺지 못하게 된다. 현란한 기술이며 엄격한 등급을 잠시 내려놓는 마음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어쨌든 도구와 관용에 맡길 것은 맡겨보자.
p.42 "따라서 나의 맛에 자리가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은 반면 가격대는 확실한 여섯 자리인 경우가 많으니 굳이 집착할 필요는 없다."
p.219 " 버릴 게 없는 가운데 여러 켜가 있으니 조금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의 몫도 조금은 있지만 대부분의 섬세함은 강판이 짊어질 것이다."

에세이인듯 레시피북인듯, 가벼운 디저트부터 마지막 재료인 귀리를 응용한 식사까지 아마추어 셰프를 자청하는 현대인에게 다정하고 유쾌한 식재료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겠다. 이건 뭐고 저건 뭔지, 왜 이건 요리조리 굴려봐도 맛이 없는지 알 턱이 없는 생초보에서 벗어나 재료의 힘을 최대한 이끌어내 맛의 표정을 느껴본다면, 당신의 식세계는 이전의 삶보다 즐거움이 1.5배쯤(그 이상은 개인차가 있을테니) 상승한 곳이 될 것이다. 약속한다. 가는 손이 고와야 오는 맛이 곱다.
p.138 "에라 모르겠다고 푹 삶아버렸다가는 사달이 나지만, 약간의 섬세함을 발휘하면 방울양배추도 아름답게 익어 우리에게 화답해준다."

저자가 소개하는 요리법에 살짝 변형을 주는 것도 좋으리라. 가령, (아마도) 우리들의 귀염둥이, 뽀얀 구름같은 자태를 자랑하는 콜리플라워를 툭툭 잘라 드레싱과 함께 샐러드에 올려도 좋지만, 데쳐서 으깨면 삶아 으깬 감자와 식감이 매우 유사한데다 희미한 단맛까지 돈다. 매쉬드 포테이토처럼 간만 해도 좋지만, 빵가루를 입혀 살짝 튀겨보자.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고 했다. 훌륭한 저칼로리 크로켓이 된다. 고로케 말고 크로켓. 고로케는 감자고로케나 사먹도록 하자. 마지막 장의 밀가루 편을 응용해도 좋겠다. 세상 간편한 98%무반죽 레시피가 있으니(p.287).
아쉬운 점이 없지만은 않다. 저자가 여타 생활 양식에서까지 비거니즘을 지향하는지는 알 방도가 없으나, 적어도 채식을 주로 하는 사람은 아닌 듯 싶다. 다만 본문의 과반이 채소와 과일 등 비건식이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며, 동물성 재료를 따로 다루는 챕터가 있으니 식생활에서 비거니즘을 고민하는 독자는 해당 부분을 건너뛰거나 응용해 채식 레시피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이 아스파라거스며 가지, 호박, 토마토, 천도복숭아(중요!) 등등에 진심인 이 저자가 채식 식재료 레시피북 내지는 안내서를 하나쯤 내주지 않을까. 작은 바람을 남겨본다.

만일 당신에게도 손가락 한 번 까딱 하면 문 앞까지 오는 배달음식으로 대강 때운 끼니에 물려 꼴도 보기 싫었던 적이 있다면, 장보기라고는 편의점에서 집어온 삼각김밥에 컵라면이 전부여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다면, 미디어 유행을 타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음식점에 입맛이 뚝 떨어져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간신히 눈뜨면 출근 퇴근하면 탈진인 현대인이 재료부터 요리까지 책임질 체력과 여유가 모두 갖춰지는 경우는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허나, 누가 말했던가. 아주 작은 기적, 밍기적이라고. 뭐라도 해본다면, 하다못해 단내에 홀려 사온 딸기에 소금후추 톡톡 뿌려 색다른 맛이라도 본다면 세상은 딸기 꼭다리만큼이라도 넓어지는 게 아닐까. 오늘날 먹고살기도 바쁜 사람들에게 특히나 그런 성취가 필요한 게 아닐까. 흙으로 돌아가자는 급진적인 외침이 아니더라도, 만져보고 고르고 때로는 이고지고메며 돌아와 땀범벅 흙범벅이 되도록 손질해 지지고볶은 재료가 음식이 되기까지 애쓴다면, 그 맛과 즐거움을 어느 진미에 비할까! (물론 사먹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자신 없으면 일단 사먹고 생각하자. 현대 식품 공학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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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삶 - 사유와 의지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 푸른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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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삶
한나 아렌트, 푸른숲
출판사 푸른숲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임을 밝힙니다.
#푸른숲북클럽 #푸른숲 #정신의삶

🤯생각 정리
한동안 온 서가며 인터넷서점을 휩쓰는 붐이 불기에 철학은 정말 삶의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과연 여기저기서 떼내고 꿰맞춘 경구 모음집이나 앞뒤없는 자기긍정이 아니더라도 그럴 수 있을까? 보에티우스의 책이, 제목뿐일지라도, 그러하듯 『철학의 위안』은 존재할 수 있는가? 철학은, 사고의 극한까지 밀어붙여진 사유의 기록은 살과 피부에 와닿는 것을 넘어 이성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사고의 심부에서 삶을 성찰할 수 있게 할까? 전쟁도, 고립도 이득과 권력의 정점이 누구냐에 따라 매끈하게 감춰버리는 매스미디어의 시대에 고전은 여전히 의미를 갖는가? 기원과 흐름을 따라 사유의 길을 직조해내는 것은 여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탐구 방법일까?

한나 아렌트를 뉘른베르크 재판에 관련해서만 알고 있던 독자라면 적잖이 당황할 것이나, 그의 본업이(그 자신은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지만) 철학자임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낯선 작업물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 책이 되었지만, 이전 저작을 이해하기 위해 제일 먼저 읽어야 할 것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본 도서는 아렌트 사후 그의 벗 메리 매카시기 “현상”과 “의지”, 두 권의 강의록을 엮어 펴낸 것으로, 이전의 저작들이 외부세계, 즉 사회와 정치이론, 현상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앞서 말한 인간 사고의 심부와 현상과 의지라는 두 개념을 직조해낸 것에 가깝다. 앞서 질문한 “철학의 위안”은 우리가 사고하고 의지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아렌트의 삶을 돌아보라, 천만다행으로 망명에 성공한 유대인 중 한 명이었다. 스스로는 독일인이라고 생각치 않았다고 하니 그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인간의 조건』,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를 집필하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는지 영영 알 길은 없지만,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의 위안은 어디에 있었을까.

완독 후에 후련함보다는 마음 한켠에 감동이 차오르는 뻐근함이 느껴졌다. 내용만 놓고 보면 『정신의 삶』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순수한 사유의 탐구라 생각할 수 있으나 고대부터 근대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다신교→일신교(그리스도교)로 이어지는 영성, 신성에 대한 무의식적 신뢰감이 느껴졌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일까?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나역시 자그마한 위안을 얻었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겠다. 아렌트가 이 방대한 작업에 마침표를 찍었을까? 이 책은 이것으로 덮을 수 있는 내용인가? 그의 평생에 걸친 지적 사유의 종장은 시원으로 돌아가 다시금 현대로 흘러내리는 물길과도 같았다. 마침표가, 마지막 장을 넘기는 때가 아쉽고 또 감사한 마음이었음을 적는다.


🫠문장 모음
p.90 모든 현상이 한낱 가상이라고 추론할 수는 없다. 사상은 현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오류가 진리를 전제하듯이, 가상은 현상을 전제한다. 오류는 우리가 진리를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이며, 가상은 현상의 경이를 위해 지불하는 다가다. 오류와 가상은 밀접하게 연계된 현상이다. 이들은 서로 조응한다.

p.136 홀로 있으면서 나 자신과 접촉한다는 것은 정신의 삶이 보여주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 내가 나 자신과 교제하는 이 실존적 상태는 고독(solitude)이다. 고독은 고립(lonliness)과 구분된다.

p.168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비가시적인 것에 열중하는 정신활동은 말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 현상 자체는 자신을 주시하는 구경꾼들의 현존을 요구하고 전제하지만, 말을 필요로 하는 사유는 청취자들을 요구하거나 필히 전제하지는 않는다.

p.277 공통감의 관점에서 볼 때, 사유의 가장 위험한 측면은, 사유하는 동안 의미있었던 것을 일상의 삶에 적용하려고 할 때 그것이 해체된다는 것이다. (…) 실천적 관점에서 볼 때, 사유는 여러분이 삶 속에서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하는 매 순간 마음을 새롭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463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은 “무게”를 통해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랑은 영혼에 무게를 첨가하여 그의 동요를 중단시킨다. (…) 사랑은 영혼의 중력이다. (…) 어떤 것 또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그에 대한 더 중대한 주장은 없다. 즉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p.513 인간의 의지가 불확정적이고 반대 상황에 개방되어 있으므로, 그의 유일한 활동은 의지 작용을 구성하는 한에서만 단절된다. 의지가 의지하기를 중단하고 의지의 명제들 가운데 하나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하는 순간, 의지는 자유를 상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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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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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조건 #오사빅포르스 #푸른숲 #철학 #포스트투르스 #리터러시 #언론

*출판사 푸른숲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탈진실, 대안진실, 대안언론, 가짜뉴스, 미디어 리터러시... 신조어인 양 하며 언제 어디서 속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기레기", "입만 열면 구라"를 외치는 분노를 부추기는 단어들이다. 마치 평화로운 예전에는 없던 문제가 꼭 누구 때문에, 꼭 어느 당, 어느 언론사 때문에 생겨난 것처럼 너도나도 문해력과 진짜 진실, 가짜 진실을 외쳐대는 시대. 남의 일이 아니라 눈물이 난다는 말로 요약하고 싶다. 남의 일이길 바라는 마음 또한 문제라는 것도 함께.
과연, 넘쳐나는 시사교양서와 인터넷 뉴스, 개인과 정당을 가리지 않고 얼굴을 붉히고 주먹을 움켜쥐며 악을 쓰는 시대, 우리 누구누구 하고싶은 것 다 해! 개같이 멸망해라!와 공정과 역차별을 외치는 커뮤니티와 온라인 유명인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무엇을 사실과 진실로 착각하고 또 주장하며 끝내 도래할 영광의 망국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인가.
여러모로 시의적절하고 반가운 책이다. 기실 인간 사회가 생겨나고 개인의 정치적 역할이 중요해짐에 따라 필요하지 않은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프고 시원하게 핵심을 찌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남의 일이 아니라 눈물이 난다. 현대의 아수라장 또한 역사에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부끄럽다가 그조차도 없던 일처럼 매끄럽게 지워지고 당연한 것이 되는 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저자는 1장부터 반복적으로 "대안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객관적 정보에 의해 결정되는 사실과 사실이라고 주장되는 의견을 구분하며 강조하는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확신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던진다.
p.72 "이는 객관성 논의가 절대적 확실성과 권력 과시와 관련되어 있다는 포스트모던적 비판을 뒷받침하는 사고방식과 비슷하다. 즉, 확실한 지식은 없으며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단지 권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객관적 진실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은 그 반대다. 진실이 객관적이기 때문에, 즉 우리와 우리 자신의 입장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확신해서는 안 된다."

쇼펜하우어의 명저 아닌 명저,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은 더이상 황당무계한 내용이 아니다. 정치인이 출연하는 어느 방송, 토론이든 유세든 하다못해 SNS든 각 지침(?)에 해당하는 예시를 찾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백과 한 질은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숱하게 봐온 역사 뿐만 아니다. 세계의 수많은 지식인과 학자, 평범한 시민들까지도 경악과 한탄으로 몰아넣은 불세출의 천재, 무치의 아이콘 트럼프를 보라.
저자는 트럼프와 그 주변인 및 극우언론으로 대표되는 가짜뉴스, 거짓말, "대안적 진실"의 범람이 미치는 영향을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예시들로 보여준다. 남 이야기라 와닿지 않는다 싶으면 일주일쯤 뉴스 프로그램만 줄창 돌려보아도 좋다. 어디 그것뿐인가. 서점만 가도 아비투스도 모자라 이것까지 자기계발서로 비벼먹고(...)있는 참혹한 광경을 볼 수 있다.
3장에서는 왜 우리는 주장을 사실이라고 착각할 뿐만 아니라 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외면하는지, 그것이 이른바 "배운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인지를 여러 심리학 실험들을 통해 그 이유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몰라서 그래" 가 아닌, 적극적이고 자기암시적인 사고 왜곡은 어째서 발생하며 또 심화되는가? 나는 바야흐로 커뮤니티 정치의 시대가 도래한 작금의 정치판을, 우려를 담은 이 문장으로 요약하고 싶다.
p.149 "상반된 입장에 선 사람들이 서로를 멀리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수록, 우리가 진실에 도달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우리는 가짜뉴스와 언론, 정치인과 추종자를 포함한 집단들의 거짓말에 희망을 품는 경우가 많다. 그들도 잘못을 알고 있을 거라고, 조롱하고 계도(!)하면 죄 씻은 어린양처럼 "정의로운 우리 편"에 달라붙을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깨어있는 시민"은 모든 거짓을 간파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이윤 추구를 통해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평생을 물 속에 사는 물살이가 바다를 알아차리지 못하듯 거짓 정보와 술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개인은 "올바른 진실"을 간파하고 추구할 수 있는가?
p.197 "가짜 뉴스의 콘텐츠가 완전히 거짓은 아닌 경우도 종종 보인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뒤섞는 시도가 자주 보인다. 가장 효과적인 선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기만적으로 진실과 거짓을 뒤섞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저자는 4장의 말미에서 아렌트를 인용해 이 순진한 기대를 한순간에 두드려 부순다. 단지 이득이 얽히기 때문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상명하복 체계에서 거짓말의 공유와 전파가 권력위계와 행사의 반영일 수 있다고.
p.219 "전체주의 국가에서 거짓말의 또 다른 핵심 기능은 진실과 이성에 대한 시민들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지속적인 거짓말의 효과는 거짓을 진실처럼 받아들이게 하고 진실을 거짓이라고 선고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대한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5장에서는 떠먹여주는 진실, 입맛에 맞는 주장을 사실로 여기는 것이 아닌 스스로 판단하고 또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 취합하는 능력을 기르는 방식에 현재 교육시스템이 어떻게 저항하는지, 어떤 취약점이 있으며 학생주도학습이라는 모토에 가려진 개인 간 격차의 심화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여러 논문과 전문가들의 우려, 저자 자신과 자녀 세대가 보이는 차이점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p.263 "하지만 지식에 관한 민주주의쟁점의 핵심은 모든 유형의 지식을 동등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이론적 지식에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모든 문장과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지만. 가령 지식과 비판적 사고를 위한 교육현장의 과제와 현재 교육계의 문제점을 짚어내는 5장의 내용에는 개인의 각성이나 노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배경처럼 깔려있다. 또한 저자의 교육관이나 여러 학파에 대한 의견,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집단에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즉, 저자가 써내려간 문장에는 객관적 사실과 그것들을 취사선택해 종합한 정보에 따른 저자의 견해가 혼재되고 교차되어있다. 그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하게 읽은 독자라면, 저자가 강조하는 바를 잊지 않고, 고개를 주억이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더욱이 이 책이 사회진출을 앞둔 청소년에게 권장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 문제를 당장 해결하자는 것이 아닌 지적하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둔 책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청소년, 대학 또는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거나 사회로 진출하는 초년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계몽이 아닌 비판을 위해, 옳은 나와 틀린 남을 주장하며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 아닌 진실을 선명하게 바라보고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민사회를 위해 여기에 "포스트 트루스"시대를 바라보는 저자의 희망을 담은 문장을 남긴다.
p. 289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가 이들 요소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을 바꿀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변화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과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복지 시스템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지식의 적들에 대해 철저한 방어 태세를 마련해야 한다."

더해서 감상하기를 권하는 자료들.
1. 다큐멘터리 영화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2. 닐 포스트먼 저, 『죽도록 즐기기』
3. 해리 G.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4.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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