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신의 삶 - 사유와 의지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 푸른숲 / 2019년 6월
평점 :
정신의 삶
한나 아렌트, 푸른숲
출판사 푸른숲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임을 밝힙니다.
#푸른숲북클럽 #푸른숲 #정신의삶
🤯생각 정리
한동안 온 서가며 인터넷서점을 휩쓰는 붐이 불기에 철학은 정말 삶의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과연 여기저기서 떼내고 꿰맞춘 경구 모음집이나 앞뒤없는 자기긍정이 아니더라도 그럴 수 있을까? 보에티우스의 책이, 제목뿐일지라도, 그러하듯 『철학의 위안』은 존재할 수 있는가? 철학은, 사고의 극한까지 밀어붙여진 사유의 기록은 살과 피부에 와닿는 것을 넘어 이성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사고의 심부에서 삶을 성찰할 수 있게 할까? 전쟁도, 고립도 이득과 권력의 정점이 누구냐에 따라 매끈하게 감춰버리는 매스미디어의 시대에 고전은 여전히 의미를 갖는가? 기원과 흐름을 따라 사유의 길을 직조해내는 것은 여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탐구 방법일까?
한나 아렌트를 뉘른베르크 재판에 관련해서만 알고 있던 독자라면 적잖이 당황할 것이나, 그의 본업이(그 자신은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지만) 철학자임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낯선 작업물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 책이 되었지만, 이전 저작을 이해하기 위해 제일 먼저 읽어야 할 것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본 도서는 아렌트 사후 그의 벗 메리 매카시기 “현상”과 “의지”, 두 권의 강의록을 엮어 펴낸 것으로, 이전의 저작들이 외부세계, 즉 사회와 정치이론, 현상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앞서 말한 인간 사고의 심부와 현상과 의지라는 두 개념을 직조해낸 것에 가깝다. 앞서 질문한 “철학의 위안”은 우리가 사고하고 의지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아렌트의 삶을 돌아보라, 천만다행으로 망명에 성공한 유대인 중 한 명이었다. 스스로는 독일인이라고 생각치 않았다고 하니 그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인간의 조건』,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를 집필하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는지 영영 알 길은 없지만,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의 위안은 어디에 있었을까.
완독 후에 후련함보다는 마음 한켠에 감동이 차오르는 뻐근함이 느껴졌다. 내용만 놓고 보면 『정신의 삶』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순수한 사유의 탐구라 생각할 수 있으나 고대부터 근대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다신교→일신교(그리스도교)로 이어지는 영성, 신성에 대한 무의식적 신뢰감이 느껴졌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일까?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나역시 자그마한 위안을 얻었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겠다. 아렌트가 이 방대한 작업에 마침표를 찍었을까? 이 책은 이것으로 덮을 수 있는 내용인가? 그의 평생에 걸친 지적 사유의 종장은 시원으로 돌아가 다시금 현대로 흘러내리는 물길과도 같았다. 마침표가, 마지막 장을 넘기는 때가 아쉽고 또 감사한 마음이었음을 적는다.
🫠문장 모음
p.90 모든 현상이 한낱 가상이라고 추론할 수는 없다. 사상은 현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오류가 진리를 전제하듯이, 가상은 현상을 전제한다. 오류는 우리가 진리를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이며, 가상은 현상의 경이를 위해 지불하는 다가다. 오류와 가상은 밀접하게 연계된 현상이다. 이들은 서로 조응한다.
p.136 홀로 있으면서 나 자신과 접촉한다는 것은 정신의 삶이 보여주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 내가 나 자신과 교제하는 이 실존적 상태는 고독(solitude)이다. 고독은 고립(lonliness)과 구분된다.
p.168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비가시적인 것에 열중하는 정신활동은 말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 현상 자체는 자신을 주시하는 구경꾼들의 현존을 요구하고 전제하지만, 말을 필요로 하는 사유는 청취자들을 요구하거나 필히 전제하지는 않는다.
p.277 공통감의 관점에서 볼 때, 사유의 가장 위험한 측면은, 사유하는 동안 의미있었던 것을 일상의 삶에 적용하려고 할 때 그것이 해체된다는 것이다. (…) 실천적 관점에서 볼 때, 사유는 여러분이 삶 속에서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하는 매 순간 마음을 새롭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463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은 “무게”를 통해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랑은 영혼에 무게를 첨가하여 그의 동요를 중단시킨다. (…) 사랑은 영혼의 중력이다. (…) 어떤 것 또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그에 대한 더 중대한 주장은 없다. 즉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p.513 인간의 의지가 불확정적이고 반대 상황에 개방되어 있으므로, 그의 유일한 활동은 의지 작용을 구성하는 한에서만 단절된다. 의지가 의지하기를 중단하고 의지의 명제들 가운데 하나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하는 순간, 의지는 자유를 상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