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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별의 유령들
리버스 솔로몬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떠도는 것에게는 떠나온 곳과 그리워하는 곳이 있다. 전자가 과거의 장소라면 후자는 미래의 장소이다. 여정이 세대를 이어 계속되는 경우에는 가본 적 없는 곳을 떠나 알지 못하는 곳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부유하는, 혹은 떠도는 존재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유령에게 도착해야 할 곳은 안식처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는 곳인가? 떠도는 별의 유령들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제목의 '유령'은 무엇을 의마하는가?
봉건적 전제군주제와 견고한 계급, 성별. 빈부 차별의 요새, 여정의 끝을 바라기엔 모든 것이 알 수도 알아서도 안되는 규율과 폭력으로 가득한 우주선, 마틸다. 주인공 애스터는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머니는 죽은 지 오래, 아버지는 등장조차 않고, 무리의 여인들에게서 자랐다. 다른 아이들 또한 그러했듯이. 의료인 비슷한 지식으로 의무관 비슷한 노릇을 한다.
그나저나 세계관을 이해하기도 전에 냅다 발부터 자른다는 이 불친절한 전개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름다운 표지에 품은 작은 기대를 처음부터 말려, 아니 얼려 죽이려는 듯 작중 묘사되는 데크와 선내 생활, '경비원'들의 태도는 암울하고 또 절망적이기 짝이 없다. 그들의 폭력은 공기처럼 약자를 향한다. 그들의 권위는 단지 단발적인 시비에 그치지 않고 하층 데크 거주민의, 여성의, 어린아이, 노인, 어쩌면 '불순분자'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시작부터 이게 무슨 희망이란 말인가. 자고로 어딘가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갈 때, 이유가 무엇이든 새로운 세계를 이룩할 때는 이전보다 하나라도 나은 구석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포기하시라. 피부색도, 지식도, 인간의 존엄함을 말하는 신의 말씀까지 그 무엇도 하층민의 생존을 지켜주지 못한다. 출신, 계급, 힘과 연줄이 그 모든 자리를 채운다. 나은 것은 없다. 유토피아 내지는 협동? 질서? 꿈 깨라. 여기는 지구 ver.2다. 그것도 절망 버전이다.
이런 세계에서도 생명은 태어나고 사람은 살아간다. 멀리서 봐야 곱든지 말든지. 애스터도 그렇다. 사사건건 열받게 하는데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자매, 친구, 가족 이상의 어떤 존재, 지젤과 친구가 아닐까? 시오, 멜루신 아주머니와 비비안, 피비, '위대하신' 누구로부터 누구를 지키는 건지 너무 뻔해 신물이 다 나는 경비병들. 애스터에게 남겨진 것은, 죽은지 오래인 어머니 룬이 남겨준 일지. 수수께끼인지 신변잡기인지 종잡을 수 없는 메모들 뿐. 엄마는 왜 죽었을까. 일지를 해독해나갈 수록 하루가 멀다하고 불안해지는 선내 상황, 시시각각 달려드는 위협과 폭력, 간절한 만큼 위험천만한 희망. 애스터에게, 일지의 끝엔, 죽어가는 군주와 더욱 잔인하고 추악한 새 군주의 통치가 도래하는 날엔 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걸까. 삶인가, 죽음인가.
혼란의 1, 2, 3부를 지나 종장에 다다르면 그간의 불만이 일시에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분노하고, 비명을 지르는 이들. 저 깊은 물 아래에서 일렁이는 애스터의 분노, 웅크리고 터져나와 모든 것을 재로 돌려버리는, 그 자신은 여신의 창조라고 말하는 지젤의 분노, 신과 같은 군주와 그 권력이 흔들리는 순간 전복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하층 데크 거주민들의 분노. 작중 지배계급이 아닌 자들은 모두 분노해있다. 비명을 지른다. 비명은, 고함의 씨앗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절망의 기록으로 바스라지기 직전에 발굴된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는 독자를 달랠 생각도 없이 이야기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같은 상황을 비껴나가고 때론 휩쓸리며 종장을 향해 달려나간다. 열역학, 금속공학, 계통발생론, 우주항공학이라는 애스터의 생각을 빼다박은 소제목들과 함께. 독자는 아래 문장에서 터져나올 분노의 선언을 엿볼 수 있다.
"애스터가 소중히 여긴 것은 전부 식물관 안에 있었다 .이번에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파멸시키는 것도 그렇지만, 사람이 해낸 일을 파괴하는 것은 애스터가 쉽게 잊을 수 없는 모독이었다. 한 사람의 삶에서 남은 것은 전부 종이에, 일지로, 연감으로, 만든 물건으로 기록됐다. 그걸 없애는 건 사람의 역사를, 현재와 미래를 없애는 짓이었다."(p.467)
너무나도 선명한 은유로 가득한 작품이다. 불러오고자 하는 대상이 우리 사회여서 그렇지 . 유색인종이어서, 가난한 자라서, 저소득 노동자라서, 여성이어서, 성소수자여서, 힘이 세고 덩치가 크고 우수한 학력을 갖추지 못해 그것이 곧 부도덕함의 반증으로 불리는 이들이어서 그렇지. 괴롭다. 너무 잘 아는 고통, 너무 익숙한 멸시와 차별의 시선과 적대감이 선명하게 찌르고 누르고 조여온다. 괴롭다. 그 와중에 당연하지 않은 모성애와, 생명의 가치와 권력구조가 도덕적 정당성으로 위장될 때의 추악함까지 꼭꼭 씹어 삼키라며 들여다보는 작가의 집요함이 아주 잘 느껴진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으레 유능하고 아름다운 주인공 클리셰들과는 딴판으로 애스터는 그다지 아름답게 묘사되지도 않을 뿐더러 언어 발달이 늦었고 사회적 상호작용에 서툴거나 무심하며 특정 주제에 깊게 몰두하는 것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애스터는 자폐인인가? 아쉽게도 끝까지 답을 주지 않는다. 정확히는 반복적으로 불편을 겪는 장면이나 이질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신경다양성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는다.
저자의 의도가 뭘까. 싶다가도 굳이 이유가 있어야 하냐는 물음이 고개를 든다. 불편을 겪을 수는 있는데, 뮤지컬 넘버처럼 대놓고 나의 삶을 사랑해! 내 이름은 애스터! 나는 자폐인! 이라고 콕 짚어 말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기실 부조리한 세계가 당연히 장애를 비난의 용어로 삼아야 할 이유도 없기는 하다. 받아들이세요.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울창한 나무를 보며 생명으로 가득한 땅에서, 바로 그 지구에서, 약속의 별에서 애스터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죽은 자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죽은 자와 함께 몸을 감싸는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야, 드디어, 독자는 이 작품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서사시다. 혹은 생명 기원의 신화이다. 약하고 무시당하는 것이 판도를 뒤집고 혼돈을 지나 생명의 땅에 뿌리내리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사랑이 있어야만, 보살핌과 죽은 자를 쉬게 하는 연민이 있어야만, 또한 역설적으로 피와 혼돈과 분노가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느 한 쪽의 힘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약하고 어린 것은 영원하지 않다. 그들은 당신의 세계를 부수러 온다. 기억하라. 이것이 떠도는 별의 마침표이자 유령들의 이야기라고, 최초는 끝과 함께 시작된다고.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