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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사람 - 내 삶을 바꾸는 소소한 물음들에 관하여 ㅣ 이매진의 시선 15
김영서 지음 / 이매진 / 2022년 7월
평점 :
*이매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어디서부터 얘기할 수 있을까. 요사이 읽는 책은 주로 윤리학, 그것도 타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목놓아 부르짖다시피 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윤리학이라는 어떤 거대한 짐승에 올라탄 것처럼 순조롭게 세상을 훑고 다니던 와중에 그것이 대뜸 나를 향해 뒤돌아서서는, '그러는 너는'이라며 질문...이라기 보단 들이받는 형국에 당황스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아마도, 아니, 확실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숨길 수도 없이, 저자의 전작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아주 남 이야기로 읽었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고작 '만약'으로 시작하는 상상적 공감에만 그쳤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접하고 생각하는 세계가 다를 수 밖에 없으니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삶에는 그 정도가 한계 아니겠나,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에, 저자의 순간들과 생각을 따라가는 시간들에,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에도 마음이 복잡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대체 이 사람은 왜 쉽게 살지를 못하는가, 하는 원망이 조금 섞여 유난히 심란했던 마음도, 어쩌면.
흔히 말하는 '화려하고 잘 나가는 삶'과도, '소박하고 안온한 삶'과도 영 거리가 있는데다 대체 뭘 어떻게 하고 다니기에 하루가 멀다하고 소란이 끊이질 않는 그런 삶, 초라하다면 초라하고 누군가는 '저렇게는 안 살겠다'며 악을 써도 그렇구나. 말고는 할 말이 없는 그런 삶의 순간을 짚어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평화롭고 행복해서 모든 문장이 웃는 얼굴 이모티콘으로 끝나는 인생이 있을까? 동화에도 없을텐데. 그러니 구르고 깨지고 한푼이 아쉬워 아등바등 아끼다가 샛길로도 빠졌다가 누군가를 흘겨보고 불의에 슬쩍 눈감기도 하는 그런 삶을 감히 비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나도 진창 너도 진창, 너도 나도 조금쯤 더럽고 비굴하게 사는데 대체 무슨 질문이며 쓸 데도 없는 반성이냐, 고 묻는다면 그래서 묻는다고 답하겠다. 그래서 멈춰서고 돌아보며 질문하기를 그만둘 수가 없다고, 그래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고.
종교 에세이인가? 싶을 정도로 짤막한 글 곳곳에 신을 찾고 신의 의미를 새기는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이해할 수 없는서문에서 일러주듯 저자의 삶과 생각에 종교가 큰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한데, 과연 초월적 절대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믿음이 개인에게 위안 또는 용기로 작용하는 것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딱히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싸움을 걸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양가가 독실한 신앙인들로 가득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여전히 무신론을 말하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환대하고 그의 고통을 외면해서도, 할 수도 없는 윤리철학을 공부했다 말하는 내가 과연 뭘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는지, 누군가의 고통과 삶을 이해한다고 뻐기던 것은 아니었는지 부끄러운 마음일 뿐이다.
책을 덮으며 새로이 자라난 물음들이 마음을 소란하게 한다. 공감과 동정은 얼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을까. 에서 자랐지만 여전히 무신론적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제목의 "질문하는 사람"은 무슨 의미일까. 질문한다는 것은 의문을 갖는다는 것, 의문은 곧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 당연하지 않다는 것은 외면하고 묵인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질문하는 행위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 답을 주지 않는 것을 넘어 질문하는 책이다. 나는 이랬다고, 나는 이런 사람과 세상을 이해할 수 없어 번민하고 흔들리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거기 멀거니 서서 바라보는 당신은, 아팠고 아프게했고 번민하며 흔들리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 있냐고. 어쩌면 사는 일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이 글을 읽는 이에게도, 언젠가 이 책의 내용을 되새겨볼 나에게도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로 기억될 시간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