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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할 여자들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과학기술사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2년 9월
평점 :
*출판사 부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인류 최초의 도구는 창과 칼이었을까? 뒤집개나 그릇이 아니라? 왜 온갖 것에 바퀴를 달면서 가방에는 그럴 생각을 못 했을까? 전쟁이 기술 발전의 동력이었을까? 만일 휘발유차가 아니라 전기차가 먼저 시장을 점유했다면 지금의 교통 환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해가는 세계에서 "단순하고 고급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저임금으로 유지되는 노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컴퓨터 공학은 남성에게 알맞은 분야이기 때문에 여학생과 여성 노동자가 드문 시장이 형성된걸까? 정말로 여자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치지 않거나 "여성의 기질이 과학적이거나 기술적인 직종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는 설 자리를 잃거나 저임금 노동으로 밀려나는 걸까? 이 모든 것에 정말 그럴까? 를 물은 적이 있다면, 최소한 이 세계 또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 구조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이다. 바로 당신을.
모 사업가가 최근 전기차를 혁명적이고 친환경적인 것으로 마케팅하기 이전에는 당연히 차는 휘발유나 가스로 움직이고, 자동차의 발명 이래로 쭉 그래왔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과연 그럴까? 최초의 장거리 운전자는 운송노동자나 고가의 연료비를 댈 수 있는, 모험심 넘치고 부유한 남성이라고 여겨지기 쉽다. 과연 그럴까? 최초의 전기차는 20세기 초에 등장해 판매까지 이루어졌고 최초의 장거리 운전자는 여성이었다. 그것도 자녀가 둘이나 있는.
시동을 걸기 위해 크랭크를 조작하고 기름이 튈 위험과 엔진의 소음을 감수해야하는 휘발유차 대신 소음이 적고 비교적 안전한, 심지어 조작 레버도 옷자락에 걸리적거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전기차가 주류로 자리잡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것은 "여성을 위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숙녀를 위한 물건"이기에 부드러운 디자인과 장거리 기동을 시도하지 않아도 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숙녀를 위한 크리스털 꽃병"까지 구비된 그것은 값비싼 유아차 내지는 이동형 티파티 장소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남성"에게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속도와 거친 운전을 즐길 수 있는 차가 알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억측이라고 생각하는가? 다른 예를 들어보자. 삽화나 영화에서 흔히 그려지는 구식 여행가방, 각지고 큼직한 상자에 손잡이가 달린 그것은 왜 진작 바퀴를 달지 못했을까? 수레며 대포에는 애진작에 바퀴를 달아 그 편리함을 알고 있었을텐데. 이유는 짜증날 정도로 단순하다. "남성이라면 그깟 가방쯤 힘으로 가뿐하게" 들어 옮길 수 있어야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숙녀"를 위해 얼굴이 벌개지도록 용을 쓰면서까지도. 바퀴달린 가방이라니! 그런 물건은 "연약한 여성들"이나 쓸 물건 아닌가! 게다가 "품위있는 숙녀"의 옷가지와 장신구로 가득할 가방은 대개 "신사"나 짐꾼이 들어주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 꼴사나운 물건 따위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얼굴이 벌개지고 손바닥에 통증을 남기면서까지도.
물론 누군가는 (온가족 내지는 생면부지의 타인의 짐가방을 이고지고나르면서) 진작에 그 필요성을 절감했고 상품화를 시도했으나 당시에는 실컷 비웃음만 당하고 잊혀져버렸다. 수차례나. 어느 버스운전사가 승객에게 요구했듯 "바퀴달린 물건은 유아차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렇게 "남성성을 훼손하는" 것은 차라리 수치에 가까운 물건이었기 때문에.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전문직 여성과 여성 개인의 이동이 대두되기 까지, 항공기 승무원들이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 매끄러운 공항 바닥을 가로지르기 전까지 말도 안 되는 모두의 사서고생이 이어졌다. 믿어지는가.
이처럼 허무하기까지한 남성 중심, 아니 여성배제적 발명사를 포함해 시대마다 변화를 거듭하면서도 이어져온 산업구조와 경제논리의 여성 차별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시금 불거진 여성, 유색인종의 저임금노동과 돌봄노동, 기계화시대의 일자리 대체와 환경오염에 이르기까지 성차별을 기반으로 이어져온 그 촘촘하고 집요한 "당연한 것"의 실상을 파헤친다.
솔직히 말해 모든 챕터와 문장에 플래그를 붙이고 밑줄을 긋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읽을수록 "기업과 산업은 합리적"이라는 말만 되뇌는 사람들을 쫓아가 그 입을 꼬집어주고 싶어졌다. 여전히 여성들이 "편하고 쉬운" 일만 찾기 때문에, 돌봄이나 공예는 경제 발전에 불필요하거나 비숙련 노동자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혹은 더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현실을 외면하고 아웅다웅 자기들만의 세계를 그리는 이들을 찾아가 대체 떼를 쓰고 있는 건 누구냐고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과 통렬한 비판에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퇴근하고 돌아온 따뜻한 집에서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놓고 웃는 얼굴로 맞이해줄 아내"가 필요하다 못해 맡겨놓기라도 했는지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일단의 무리들에게 차가운 경멸과 매서운 지적으로 일갈한다. 그렇게나 좋아라하는 "팩트"를 가지고 이야기해보라. 아 원래 그랬다고!를 제하고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세계는 지금까지 그래왔고 너의 세상도 그렇게 당연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아닐거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자아이들은 자라고 그 아이들이 자라 너의 한심하고 얄팍한 아집을 부술거라고, 그 때도 "합리와 이익"을 말할 수 있는지 보자고. 이 책은 밀려났고 밀려나고 있으며 시작조차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힌 여성들에게 전하는 진실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벽은 사실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고, 그러니 시작부터 주저앉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여성은 그래왔고, 그럴거라고.
언제나, 언제까지나,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