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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 더 나은 ‘함께’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 이주민 24명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순심(이나경) 그림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평점 :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부정하지 않겠다. 나는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교육받고 자란 세대이다. '우리 한민족은 외세의 숱한 침입에도 순수성과 단일성을 잃지 않은 우수한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교육받았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미술시간에 사람을 그리려면 살색(그 땐 살구색이 아니라 살색이었다) 크레파스 하나만 있으면 되었으니, 어떤 시대였는지 대강 감이 잡히지 않는지.
사는 동안 우수성이네 뭐네 그게 다 헛것이라는 생각은 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낯설다. 그런 이들이 섞여 사는 사회를 낯설게 느낀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닌 것만 같다. 지금의 아이들은 어떨까, 특히나 농어촌과 산업단지가 모여있는 동네의 아이들은 모르긴 해도 그맘때의 나보다는 훨씬 다문화가정에 익숙하겠지
주로 백인, 그것도 북미유럽계 비-한국국적자에 아주 익숙한 영상미디어와 별개로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이주노동자 혹은 비한국인을 대하는 태도는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 오늘날의 우리는 과연 그들을 '아프리카 사람', '미국 사람', '못사는 나라 사람'이 아니라 그저 사람, 일하고 먹고 생활하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을까? 그들이 '진짜 한국인'이 아니기에 차별과 배제가 당연한 것이라면 한국인과 한국계 이민자 2세대가 외국에서 겪는 차별과 배제 또한 당연한걸까?
최근, 중국어 사용자가 많은 지역에 설치된, 중국어로 된 방역수칙 안내 게시물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동남아', '짱깨', '조선족'은 욕설과 혐오의 대상이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튀어나오는 외국인 건강보험은 수차례의 '팩트체크'와 정정을 위한 노력에도 인식을 바꾸지 못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엉터리 외국어가 수행자만 바꿔가며 재등장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가건물도 아닌 비닐하우스에서 살며 착취당하며 기르고 수확한 농산물은 저렴한 가격으로 밥상에 오른다. 전세계의 맥도날드 지점보다 많다는 한국의 교회에는 당연하려니 하는 사람들이 모스크 건립에는 오열하며 드러누워 결사반대를 외친다. 이 모든 것은 숨쉬듯이 당연하고 '감히' 한국인이 겪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들이다.
표지의 문구처럼 이 책은 총 4개의 주제와 "더 나은 '함께'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 이주민 24명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주노동자, 이민 1.5세대, 한국인 자녀를 둔 귀화인 등. 그 수만큼 다양하고 급박한 고민과 고통을 안고 있으나 그 기저에는 같은 원인이 있다. 이 사회가 그들에게 끊임없이 하나의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는 것. '너희는 우리가 아니다' 라고.
누군가는 미동륵아동으로, 누군가는 이민 1.5세대로, 누군가는 이주노동자, 누군가는 귀화한국인으로서의 경험을 말한다.
각각의 경험담을 읽는 동안 이 문장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당신은 나의 존재를 알고도 잊으려 애쓰지만, 나는 지금, 여기, 당신과 같은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스물 네 명의 목소리가 풀어내는 경험담들은 정말이지, 기함을 할 만큼 잔인하고 모욕적이면서도 소중하고, 때로는 얼굴이 벌개질만큼 부끄럽고 미안한 일 투성이다. 두 가지를 적어둔다.
"E-9 노동자는 사장님이 허락해줘야만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는 거, 당신은 혹시 알고 있나요? (...) 해고했다고 고용센터에 신고해줘야, 비로소 나는 고용센터에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할 수 있고, '고용센터에서 알선해주는 회사'에 갈 수 있어요.(p.81)"
"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가 그만둘 때 사장님한테 100만원을 주고 허락 사인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때 (...) 사장님은 단번에 거절했어요. "너 데려오는 데 돈 많이 들었어. 너는 100만원 갖고 안 돼."(p.120)"
각각의 본문 뒤에 덧붙여진 저자의 글이 생각을 더할 수 있게 돕는다. 그러니 명쾌한 해답이 없는 생각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딱부러지는 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그럴 수 있다면 애시당초 진작에 해결되어 나오지도 못했을 책이다. 하면 되는데 왜 그러지 않겠는가? 미안한 얘기지만 사실 이 말에도 답은 없다. 하면 되고 해야하는데 하지 않는다. 혹자는 그런 구조를 공고하게 쌓아올려 안거하고 있기 때문에, 혹자는 그 과정에서 이문을 얻고 삶을 꾸리기 때문에, 혹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기에 이 글과 책을 읽을 이들이, 오늘과 내일들의 내가 이 한 마디를 마음에 새기기를 바란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고, 내가 그들이며 그들 또한 나라고, 서로가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고, 그걸 잊어서는 안된다고.
어쩌면 이 글과 책을 모두 읽었을 이들이 마지막 장을 덮으며 앞서 던진 질문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우리는 달라졌는가? 우리는 그들을 사람으로 대우하고 있는가? 우리가 당해서는 안될 일을 당연히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어쩌면 이주노동자의 사정에도 공감하나 '가난한 한국사람'이 더 마음에 걸릴 이들이 스스로에게 묻기를 바란다. 한국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한국인은 어떻게 한국인이 되는가? 타국의 '가난한' 현지 고용주에게 착취당하는 한국인에게도 '사정은 딱하지만...'을 말할 수 있겠는가? 뭉쳐야 할 우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서는 일은 무엇인가?
*함께 읽기를 권하는 책
1. 은유, 『크게 그린 사람』 (한겨레출판)
2. 은유, 『있지만 없는 아이들』 (창비)
3. 설동훈, 『외국인노동자와 한국사회』 (서울대학교출판부)
4. 김희교, 『짱깨주의의 탄생』 (보리)
5. 김무인, 『다문화 쇼크』 (스리체어스)
6.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7. 윌 킴리카, 『다문화주의 시민권』 (동명사)
8. 우춘희, 『깻잎 투쟁기』 (교양인)
9. 홍재희, 『그건 혐오예요』 (행성비)
10. 백승주, 『미끄러지는 말들』 (타인의사유)
11. 이란주, 『이주노동자를 묻는 십대에게』 (서해문집)
12. 뻐라짓 뽀무,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삶이보이는창)
13. 박경태, 『소수자와 한국사회』 (후마니타스)
14. 김달성, 『파랑 검정 빨강』 (밥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