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 99가지 강박으로 보는 인간 내면의 풍경
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 김민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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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인간은 동물이다.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것도 제법 많이,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는 동물이다. 인간 심리의 많은 문제는 그것에서 출발한다. 본질은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으나 고도로 발달한 사고능력은 진화적으로 내재된 생존시스템의 경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고장이라도 난 게 아니냐’며 수시로 두들기고 들여다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던가. 그런 말은 이미 안중에도 없다.

p.53 오늘날 우리는 위험을 감지하면 구체적이고 반사적인 행동 반응을 보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을 분석, 설명, 날조, 과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기억할 뿐만 아니라 공상도 하고, 인식할 뿐만 아니라 머리도 굴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온갖 공포증에 시달리는 이유다.


정확한 진단 기준을 말하자면 제법 거쳐야 할 관문이 많으나, 짧게 이야기하자면 공포증은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비합리적이고 지나친 두려움이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며, 이를 회피하느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상태일 때 진단된다.

공포증은 성인보다는 아동에게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유병률이 높다. 사회적 상황에 극도의 두려움을 보이는 사회적 공포증은 미국인의 7%, 영국인의 12%에게서 나타난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공포증을 경험하는 것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진단기준을 충족하지 않거나 내원을 꺼리는 이들을 합하면 더더욱.

특정 대상을 강박적으로 피하려는 것이 공포증이라면, 광기는 어떤 대상이나 행동에 대한 강박적 충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보자면, 공포와 광기는 인간 충동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불안과 집착 충동, 이 두 가지를 개인 내면의 황폐화, 붕괴, 일시적인 충동이나 성격 정도로 일축할 수 있을까. 공포와 광기는 쉽게 전염되는 감정이다. 개인은 각자가 속한 사회의 문화적, 정동적 압력에 쉽게 동조된다.

“너는 이것을 두려워 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또는 은밀하게 충동을 부채질하는 사회적 스트레스에 촉발된 사고와 행동이 비일상의 수준으로 발전하고 또 차별적인 시선이 특정 집단의 행동이나 사고를 비이성의 그것으로 낙인찍는 데에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치 않다.

혹은 특정 집단의 공포나 적극성에 공포와 광기의 이름을 붙여 대수롭지 않은,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것 또한 너무도 쉽게 반복되는 일이다. 이것은 적절한 사회적 지원을 저해하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거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데에 꾸준히 이용되어 왔다.

누군가를 ”미친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은, 어느 때고 혐오와 비난을 부채질하는 데 제법 효과적인 절차였으니,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효과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데는 가히 고금을 막론하는 특효약이라 할 수 있겠다.


p.127 로빈 리처드슨은 (…) 이 용어를 쓰지 말라고 경고했다. 2012년 그는 인종차별주의와 국수주의를 혐오증으로 묘사할 경우 사람들 간의 분열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역효과를 낳고 토론의 장을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누군가를 미쳤거나 비정상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들을 모욕하는 것이고, 모욕을 받은 쪽은 당연히 방어적이고 반항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그들과 성찰적 대화를 나누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p.248 여자색정증은 모호한 개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의 욕망을 정상이 아니거나 어리석은 것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됐다. 1970년대에 미국의 성관계 치료사 루스 웨스데이머는 이런 말을 했다. "자기보다 섹스를 훨씬 더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그녀를 색정증이라고 부르는 남자가 수두룩하다."


우리는 점점 다양하고 복잡한 사람와 물건과 상황으로 둘러싸여가는 세계에 살고 있다. 회피는 불안을 차단하는 편리하고 단기적인 방법인 만큼 확장되기 쉽다. 더불어 앞서 말했듯, 공포와 광기는 전염되기 쉬운 감정이다. 그렇다면 시시각각 자극적이고, 화려하고, 다채롭고, 공격적일 만큼 현란해져가는 세계의 개인이 어떤 형태로든 불안과 집착에 시달리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아도 좋지 않겠는가.

p.204 저장의 현장은 물건들과 우리 사이의 고장난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갈망하는 무의미한 모든 물건과 그 물건들이 채워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갈망, 이 둘의 관계는 말가졌다. 만약 강박적 쇼핑이 소비문화의 과도한 수용을 의미한다면, 강박적인 물건 저장은 소비문화의 오작동 혹은 풍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문화 안에서 소비자는 소비에 실패한다. 소유물이 전리품보다는 마치 포획자나 짐처럼 억압적인 존재로 보이기 시작한다.

p.215 습관적으로 반신반의하는 상태를 강박충동으로 분류하는 게 맞는 것일까?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망설임을 갈망해서라기보다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해먼드가 결정장애를 강박증으로 분류한 이유는 (…) 병적인 의심 상태 안에서는 몇 가지 미래가 서로 밀치면서 자리다툼을 벌이고, 그 어떤 것도 차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실제로 현재 진단되는 불안 및 강박장애 뿐만 아니라 조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신조어, 지금의 시선으로는 경악스럽기 짝이 없는 사례들과 유명인들의 비화까지 각 장의 주제에 따라 폭넓게 다루고 있다.

혹시 아는가. 호기심으로 첫 장을 시작해 마지막 장을 넘길 쯤에는 당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충동과 두려움에 온몸을 떨고 있을지. 하나쯤 어! 이거 내 얘기 아니야! 를 외치게 될지.

이쯤해서 미래의 독자에게 한 마디. 만일 그런 일이 당신에게 일어난다면, 음, 병원을 가세요. 꼭. 알겠지. 미룬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고 단단히 문제 있는 치료자가 아니고서야 치료를 핑계로 고문 감금에 가까운 짓을 하진 않을테니까요. 어린 알버트 같은 건 다 옛날 일입니다.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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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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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이따금 털어놓곤 한다. 사람이 제일 어려워요. 사람의 마음은 눈에 보이는 것도 확실한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도 얻을 수도 없어서, 너무 어려워요. 뚝뚝 흘러넘치는, 원망 반 서러움 반의 무언가를 주워담으려 애쓸 때도 있었으나...

그러니 이 글은 아마도, 말줄임표와 흐리는 말끝으로 가득할 것이다. 시작도 전부터 감이 온다. 어물거리다 슬며시 멋쩍은 웃음으로 뒷걸음질 칠 것이다. 신발코로 땅을 파헤치는 것처럼, 시큼하고 눅눅하고 바삭거리고 향긋한 냄새처럼. 수록작들의 줄거리를 한숟갈 맛보고자 하는 이에게는 영 뜻밖일테다. 읽어달라고 쓰는 글이니 읽어줄 이들에게 미리 사과를 전한다(그치만 사는 게 다 그렇잖아요?).

p.184 사람이 다 다르다는 것이 가끔은 무섭게, 그래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나요? 저 역시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했고 상대의 감정을 잘 모르겠다고 느껴질 땐 조심스레 질문을 더 해보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듣기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실패했습니다.


별 일은 없고요? 이 별 것 아닌 질문에 얼마나 많은 침묵과 마음이 담길 수 있을까. 이주란이 그려내는 세계는 소란하지 않다. 적어도 겉으로는. 느리고, 따분하고, 시시한데다 조금 꿉꿉한 느낌마저 든다. 쩍, 오래된 장판에 발바닥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이리저리 뒤섞인 반찬 냄새, 흙 묻은 옷자락, 낡아빠진 상다리나 조금 부서지고 헤진 살림살이들…

이런 것들은 쉽게 버려지고 잊혀진다. 왜, 좀 그렇잖아요. 변변찮고 초라해 뒤로 쓱 감추고는 사는 게 다 그렇죠, 멋쩍게 웃어버리는 그런 것들.

p.54 나는 평생 엄마에게 받기만 했기 때문에 그땐 내가 모든 것을 주고싶었으나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너는 이제 혼자가 될 거고 많이 울지도 모르니까. 엄마가 말했고 나는 옆집에서 종종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엄마의 그 말을 가만히 떠올려보곤 한다.


아마도 옥상일 곳이 그려진 표지를 보고 생각한다. 멀리, 높게 보는 일에 굳이 대단한 것이 필요하지는[[ 않겠구나… 그곳에 멋들어진 정원이 차려져있든 꽁초 조금에, 칠 벗겨진 방수 페인트, 시들거리는 쌈채가 널려있든 간에.

표제작 ”별일은 없고요?“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잔잔하고 느리고 조금 주눅들고 지쳐있고 후줄근하면서도 생활 냄새가 나는 이야기다. 좋은 아침이야, 로 시작해 잘자요, 로 끝나는 고요하고 잔잔한 영화같기도 하다. 별일은 없고요? 네. 조심히 가세요. 이렇게 이어지는 늦봄의 약간 눅눅하고 작은 이야기, 여기에 위안을 받으면 그런 삶을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기만일까.

p.68 나는 그 순간이 괴로웠다. 비가 좀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나왔고 우산도 크고,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한 것 같은데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 지겨웠다. 아니, 안 맞을 수도 있는데.....왜 나는 빗물을 맞았을까. 알 것 같았고 나는 내가 어느 날 태어난 이후로 줄곧 빗물을 맞으며 살아왔다는 것이 싫었고 앞으로도 계속 빗물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전반적으로 초라하고 변변찮고 시시하고 느리다. 사는 일이 대개 그렇다. 별 일은 없고요? 예, 일은 무슨… 흐리는 말꼬리 어딘가에 대충 욱여넣는 일상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안부를 묻는 말에, 대수롭잖게 밀어주는 반찬에, 별 거 아니라며 극구 얹어주는 김치 쪼가리에, 꼬깃해진 지폐나 오천원 이하 카드결제 사절. 에 지갑을 털어 모은 미지근한 동전 쇳내에 사람을 담을 수는 없다.

우리는 영영 타인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지나치게 가깝습니다. 바짝 들이대면 뭉그러지고 멀찍이 밀어낸 화면에서는 어디가 초록인지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삶이란 한 사람 몸에 담기기도 버거울만큼 거대하고 길고 뜨거운 것이 아니던가. 영웅은 현실 너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p.80 우리는 가졌던 것을 잃었다기보다는 원래 없는 사람들이었고 삶 속에서 어떤 이야깃거리를 발견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듯하다. 그래서 몇 마디 한다고 하는 게 늘 싱겁기만 한 그런 사람들이었고, 은영 씨의 그런 점이 나는 좋았다.


이따금 잘 알지 못하는 길, 많이는 아니고 조금 낯선 흙길을 걸을 때, 오가는 사람이 없으면 잠시간 뒤로 걸어보곤 한다. 온 길을 등지고 향한다. 가던 곳은 멀어지고 온 곳은 가까워지게 걷는다. 그렇게 시선을 멀리 두고 한 걸음씩 뒤로 끌다 보면 이따금 장하게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는데, 앉은 김에 쉬어가지 뭐… 는 축축한 느낌에 기겁하는 비명으로 끝나버리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어, 사는 일이 이런 건가, 내지는 그 때 그 시간은 이런 느낌이었던 걸까, 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이것을 의미를 발견해내는 때라고 부른다. 그리곤 답할 수 없는 이름을 떠올린다.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것을 입속말로 가만히 굴려보듯이.


볕 좋고 고요한 날에, 때로는 습하고 뜨듯한 공기에 숨이 갑갑한 날에, 또 언젠간 숨 한 번에 연기 한 번을 내뱉는 날에 가만히 눈을 감고 웅크려 앉아있던 시간들이 있다. 매번, 날이 어떻고 몸이 어떻고 간에… 아, 사는 일은 조금 슬프고 작고 허둥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아마, 아니 확실히, 정답은 내 몫이 아니다.

무자비한 다정함. 다정이 잔인할 수 있을까. 조건 없는 다정함, 신세-갚을-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는 다정함은 그럴 수도 있겠다. 포옹에 목이 졸려 죽듯이. 누군가의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다정이 나를」, 김경미).

p.114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조금 흘린 것은 호박죽이 너무 맛있어서도, 무언가가 슬퍼서도 아니었다.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어느 길가 돌 위에 앉아 눈을 감고 해가 비치는 곳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면, 감은 눈 뒤로 보이는 핏줄이나 불그스름한 그것을 바라보는 일과 같다면… 으레 하는 생각은 매번 끝을 맺지 못한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사람이 두 발로 서는 이유는 가슴을 맞대고 끌어안기 위함이라고. 꼭 맞지는 않겠지만. 포옹으로 말을 대신할 때 매번 그 말을 떠올린다. 심장이 뛰는 이를, 찌그러지고 닳아빠진 것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토닥이거나 바라보는 것은 사람이 두 발로 서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p.158 수현은 그것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경험해본 다음에야 할 수 있는 말. (…) 해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들. 그걸 하고 싶었다. 우월하려고 한 말이 아닌데 우월해 보인다면 그런 시선 따위 너그러이 이해해줄 여유도 있지.


어쩐지 흉터는 자꾸 만지작거리게 되지 않냐고 하던 이가 있었다. 다쳤다 아문 자리, 살이 패이고 찢기고 문드러졌다 붙은 자리… 그게 흉터 아니냐, 손상의 물리적 기록이 아니냐 묻는 내게 그러니까, 라고 하던 그 사람, 누구였더라…

아마도 읽은 기억마저도 희미해질 때 쯤 다시 찾게 될 책이다. 어디선가 본 것도 같은데... 또다시 말을 흐리면서 꺼내들테다. 그리곤 다시금 위로받겠지. 먼지 묻고 구겨진 모자를 탁탁 털어 쓰듯이. 아휴, 모래냄새, 하며.

별 일은 없고요? 예, 일은 무슨... 잘 지내시죠? 그럼요, 날씨가 좋네요. 그러게요...


p.194 그에게 짐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내가 괜찮은지 물었더니 사랑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너한테 집이 될 것 같아. 응. 우리 서로의 집이 되어주자. 짐이 될 것 같다고 말하려던 것이 ㅁ을 ㅂ으로 잘못 쳐 그에게 서로의 집이 되어주자는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타였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서로의 집이 되어주자는 말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기 때문입니다.

p.200 물론 어디선가 술에 취해 누군가를 패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왠지 제가 너무 힘든 순간에 어디선가 평범한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을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수없이 저를 죽고 싶게 만들고 수없이 저를 죽이겠다고 말하던 그 사람을 생각해야 죽지 않을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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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사랑에 대하여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울리히 베어 엮음, 최성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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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세창미디어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사랑, 고래로부터 그것의 가치를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랑, 그 흔하고도 무거운 이름이 사람을 만들고 살리는 감정의 정수와도 같다고 목놓아 부르짖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두 번째, 세 번째 설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처럼.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말년의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Lieben belebt. 사랑이 살린다.

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말했다. 문명의 첫 신호는 부러진 흔적이 있는 넓적다리뼈라고. 수렵과 채집이 생존조건의 거의 전부였던 시대에 운신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이를 회복할 때까지 돌본 이가 있었을 거라고, 상처를 치료하고 다시금 발을 디딜 때까지 곁을 지킨 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홀로 두지 않는 것, 보살피고 돌보고 아끼는 그 행위가 인간 문명의 시작이었을 것이라고.

61 친절과 사랑은 인간의 행위 중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이자 아주 귀하게 찾아낸 것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마 이 향기로운 치료제를 되도록 절제하여 사용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친절을 절제한다는 것은 가장 무모한 몽상가의 꿈이다.


이따금 말한다. 어리고 약하고 찰나에 존재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모른다고. 그것이 어리고 약하고 찰나에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순간에 마음을 주지 않는 법을 알지 못할 뿐더러 저항할 수조차 없다고. 그러니 사랑은 지독하게 어리석다. 사랑은 누군가를 살리는 동시에 죽이는 마음이다.

기꺼이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을 갖게 하는 것, 기꺼이 무지와 낯섦을 수용하면서도 앎을 자만하게 하는 것, 다름을 끌어안으면서도 부정하게 하는 것. 모욕과 굴종을 감내하는 동시에 수치심으로 물들이는 것. 알지 못하는 새 피어나 언젠가는 스스로를 집어삼키고 타오르는 불길처럼. 저항할 수 없는 무언가. 의지 밖의 것.

81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잔인하다. 그 밖의 모든 사람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사랑조차도 무시된다.

89 나는 이제 신을 사랑한다.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인간은 나에게 너무 불완전한 존재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나를 죽일 것이다.


동시에 사랑은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이다. 사랑의 명명에는 최소 둘 이상의 존재가 필요하나 행위자는 하나로도 충분하다. 그가 사람이라면 더더욱. 사랑은 이질성, 즉 나-행위자와 상대-대상이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되나 행위에는 나의 즐거움 이상이 필요하지 않다. 비단 사람-타인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15 사랑한다는 건, 상대방이 나와는 전혀 다르며, 정반대의 방식으로 생활하고 행동하며 느낀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 아닌가? 사랑이 이런 정반대의 방식을 기쁨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면, 그 정반대의 방식들을 극복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는 일조차도 한 사람 속에 있는, 융합될 수 없는 이중성(또는 다중성)을 전제 조건으로 하니까 말이다.

147 결국 인간이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욕망하는 대상은 아니다.

223 사랑할 때보다는 두려워할 때, 인간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를 두려워할 때 우리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파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 이에 반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에게서 아름다운 것을 가능한 한 많이 보고자 하거나, 혹은 상대방을 되도록 높이 평가하려는 은밀한 충동을 느낀다, 이 때 우리가 스스로 속는다면, 사랑은 즐겁고 좋은 것이다. 사랑은 오판이다.


모든 사랑은 아름다운가? 사랑의 이름으로, 혹은 사랑의 탈을 쓰거나 사랑으로 착각되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운가? 도무지 사랑같은 말랑말랑한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가 말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 생의 어느 언덕에서 붕괴된 영혼으로, 쓰러진 짐승을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던 이의 마음에는 어떤 형태의 사랑이 깃들어 있었을까.

앞서 말했듯 사랑이 익숙하고 어리석은 동시에 지독하고 사나우며 고귀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 사랑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또 휩싸이는가. 니체는 말한다. 사랑 역시 환대 혹은 증오와 마찬가지로 배워야 한다고. 사막에 내리는 비처럼 영혼을 적시는 그것은 드물게 일어나는 순간이라고.

177 삶이란, 최고의 의미가 있으나 드물게 일어나는 개별적인 순간들과 기껏해야 그러한 순간들의 그림자일 뿐이면서 우리 주변에 부유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공허한 틈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 봄날, 아름다운 선율, 산맥, 달, 바다 ― 이것들은 모두 우리 마음에 단 한 번만 온전히 말을 걸어온다.


우리는 사랑의 의미와 조건은 더할 나위 없이 편협해지는 동시에 증오와 고립은 너무나도 쉬운 것이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결국 우리가 함께 살아야만 한다면, 필연적으로 홀로 존재할 수 없다면, 전능한 절대자에 기대지 않기란 지극히 어렵고 드문 일일 수밖에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느 평론가와 시인의 말처럼 사랑을 발명해낼 책무가 있다.

인간에게는 신을 발명해냈듯 사랑을, 어렵고 모순적인 그 마음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의무가 있다. 연약하면서 나약하기까지한 이 생물이 세대를 넘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모든 모순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사랑이 살린다. 사랑은 편협하고 이기적이나 영혼을 적시는 단비, 우리는 이 찬란하고 잔인한 마음을 배워야만 한다고.


105 인간은 어릴 때부터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교육과 기회를 통해 이런 감각들을 훈련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메마르며, 다정한 사람들이 만든 이렇게 섬세한 장치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244 우리가 친숙하지 않은 것에 관해 호의와 인내심을 가지고 공평함, 관용, 그리고 온후함을 보이면 이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 그 친숙하지 않았던 것은 점차 베일을 벗고 새롭고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우리 앞에 드러낸다. 그것이 우리들의 환대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이러한 방식으로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도 역시, 배워야 한다.

213 내가 들어 본 가장 고상한 말, “진실한 사랑을 할 때는 영혼이 육체를 감싼다 Dans le véritable amour c'est lâme qui enveloppe le cor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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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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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인플루엔셜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사람은 연약하다. 아니, 나약하다는 쪽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짧게 살고, 쉽게 다치며, 대수롭지 않은 일로 죽어버린다. 고비는 지난할지언정 숨이 넘어가는 과정만큼은 순식간이다. 상실은 대개 거창하고 웅장하지도, 아름답고 비장하지도 않다.
그러나 모든 상실, 적어도 죽음으로 인한 것만큼은, 비극이다. 누구에게도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현상 너머의 의미를 부여하는 습성에 기인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사람을 잃는 것은 단순히 이름 하나를 지우는 일과 같지 않다. 한 명은 하나의 세계이고, 기억으로 이루어진 흔적은 다른 이의 일부가 된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세계의 일부를 무너뜨리는 것과도 같아 남은 이는 폐허를 응시할 의무에 맞닥뜨린다. 부재는 역설적으로 존재의 무게와 크기를 증명한다. 그것은 대체로 특별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와 썩 유쾌하다고 할 수 없는 경험으로 남는다.

그리하여 하나의 상실은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같은 이를 같은 일로 잃었다 하더라도 남겨진 이들 각자에게 다가오는 충격, 그것에서 회복하는 일은 각자의 삶과 기억만큼의 다양성을 갖는다.


사람은 동물이고, 겁먹고 상처입은 것은 도망쳐 숨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프고 서러운 이는 저마다의 세계로 파고들어 숨을 몰아쉴 수밖에.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야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여기, 남겨진 두 사람이 있다. 평생의 사랑 혹은 영혼의 안식처를 잃은 애너벨, 든든한 이해자이자 울타리를 잃은 벤자민. 배우자이자 아버지인 켄지를 잃은 두 사람. 엄마와 아들이기 이전에 그들 또한 연약하고 불안정한 인간에 불과하다. 켄지의 죽음은 정말이지 “재수가 없었던” 일이었으며, 전혀 영웅적이지 못했다.

그들은 나름의 일상을 지켜나가고자 하나, 대체로 세상은 비틀거리고 위태로운 이들에게 친절한 곳이 아니다. 스스로의 상처를 부정하는 이들, 그들의 발버둥은 도리어 서로를 상처입히고 관계를 어그러뜨린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서로가 자신을 탓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만이 확실한, 아래로 아래로 향하는 소용돌이.


직장 내 아날로그 업무를 담당하는 애너벨의 입지는 켄지의 죽음 이후 전자 뉴스 서비스의 확산과 함께 더욱 위태로워지고, 설상가상으로 사춘기 아들 벤자민(베니)은 온갖 사물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물건들은 요정 이야기처럼 상냥하고 환상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의 일상을 혼란에 빠트린다. 사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자연히 망상과 환청으로 치부되고, 자기 몫을 삶을 살아내기도 버거운 모자가 서로를 상처입히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외롭고 슬프고 두려운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사들이고 쌓는 것으로 채우는 애너벨, 도망쳐 숨 쉴 곳을 찾는 동안 점점 더 주류 사회와 집으로부터 멀어지는 베니.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미쳐’가고 소외되는 이들은 누구인가.대체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길 잃은 이들은 어디로 돌아가고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p.154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토록 많은 것을 원하게 하는 걸까? 무엇이 물건들에게 인간을 매혹시키는 힘을 주는 것이며,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에 한계라는 게 있을까?

p.525 일단 어떤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해본 적 없는 때로 돌아갈 수 없어. 한번 깨진 신뢰는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쉬운 답은 없어.


소외되고 밀려난 ‘규격 외’의 존재들이, 부적절한, ’도움이 필요한‘, 슬퍼하는, 매력적이지 않은 이들이, 심지어는 물건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줄 수 있을까? 무엇이 ’진짜‘일까?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발화자에 자격이 존재하는가? 나는, 너는, 우리는 무엇이며 사회에서 예술과 개념의 의의는 무엇인가?

그 자신도 가족을 잃은 후 환청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등장인물과 사물을 오가며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진짜라고, 그들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지금, 여기 존재하는 느낌을 잊지 말라고, 그러나 흘려보내라고.

p.280 그건 한 젊은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소리야. 그리고 책의 세계에서 이건 기적과 다름없지. 소년이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찾거나 소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 말하는 순간.


이 책은 기본적으로 상실과 회복에 관한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고민거리를 던져줄지언정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책 안의 책, 텍스트의 형태로 전해지는 텍스트는 결국 읽는 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힘도 갖지 못한다.

주변의 것,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은 비단 사물 뿐만이 아니다. 사람도, 사랑도, 자기 자신조차도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순식간에 놓쳐버리고 만다. 그러나 잃어버릴지언정, 잊힐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다. 존재는 힘이 세다. 이 세상에 머물렀던 이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p.578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 휩쓸려 가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된다. '진짜란 무엇인가?' 해일은 우리에게 무상함이 진짜임을 일깨워주었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게 하고 있다.


말과, 의의와, 사랑과, 기억과... 무형의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흩어질지언정, 없던 것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상실은 비극이나 영원하고 완전한 비극이 아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서로와 스스로에게 가시를 세우는 주인공들에게, 이 책을 읽을 독자 자신에게 같은 말을 전해주자.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고, 동시에 어떤 것은 의미를 가짐으로서 영원하다고. 지극한, 어떤, 마음을 담아. 너를, 나를 보라고.

p.582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특별한 망상의 풍선 속에 갇혀 있고, 거기서 탈출하는 게 모든 사람의 인생 과제야.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우린 과거를 현재로 만들 수 있고, 너를 과거로 돌아가게 하고, 네가 기억하도록 도울 수 있어. 그리고 우린 너에게 이것저것 보여주고 시간을 경험하는 순서를 바꾸고 너의 세계를 넓혀줄 수 있지. 하지만 깨어나는 건 오롯이 너에게 달려 있어. 준비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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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 아니다 - 동물과 사람이 다르다는 당신에게
박주연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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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글항아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짐승은 짐승이고 사람은 사람이지, 어떻게 둘이 같으냐”고 말하는 당신에게 말하노니, 다 알면서도 하는 짓이었군요. 그렇다. 짐승, 곧 동물(여기서는 인간을 제외한 동물을 말하기로 하자)은 동물이다. 물건이 아니다. 물건에는 생명이 없으며, 본질적으로 사용되고 소모되는 성질의 것이다. 살아있는 것, 혹은 태어나 살아갈 것들을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동물은 인간과 같지 않다. 인간의 권력과 편의는 철저하게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을 인간의 삶에 끌어들인 순간부터 마찰과 불화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이 모든 동물에게서 유리되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이상, 그들과 삶의 경계를 조율하고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p.144 실제 반려동물 관련 법을 제정할 때 아동 관련 법률이 참고되기도 하는데. 이는 두 존재 다 사회의 보호가 뒤따라야 하는 부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타인을 때리면(혹은 물면) 안 된다"는 규칙을 가르쳐야 하고, 이에 따라 교육받지 못한 아동(혹은 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보호자에게 귀속된다. 그럼에도 '개를 죽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에 힘이 실린다. 물림 사고의 궁극적인 예방책은 보호자의 책임 강화이지 '물면 죽인다'는 협박이 아니다.


최근 개정된 동물보호법을 포함해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누구도 고통받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고 거창한 말을 내세우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p.160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 적대를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미 고달픈 삶에 무게를 더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p.198 한 기자가 1미터 길이의 목줄에 묶인 채로 시골 개의 하루를 체험하고 쓴 기사를 읽었다. 기자는 시골 개와 함께 묶여 지낸 7시간 동안 겪은 추위, 외로움, 지루함을 생생히 묘사했다. (...) 너무 지루한 나머지 "풍경마저 외워"버렸다고도 썼다.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없듯이, 개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온다는 모 축제에는 살아있는 산천어가 트럭으로 실려 쏟아진다. 참여객의 재미를 위해 맨손이며 낚싯바늘에 찢기고 으스러지기 위해. 매일같이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동물이 버려지고 숨이 끊어진다.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잡혀 들어온 동물은 수조나 우리에 갇혀 전시되다 생을 마친다. 바깥이 어떤 곳인지, 왜 알 수 없는 이 곳에서 하루종일 맴돌며 소음과 쓰레기에 시달려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개장수며 건강원은 낯설지 않고, 서식지를 위협받는 동물을 보호하자는 외침에는 일시적인 호응에 그친다. “반려동물“은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으나, 예쁘고 어린 ”순종“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비싼 돈을 지불해도 여전히 밥값이며 병원비는 아까운 데가 있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끔찍한 고문이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심심찮게 벌어진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처벌은 가볍기 짝이 없다.

우리는 과연, 그들을 살아있는 무언가로 대하고 있기는 한 걸까.


p.122 이들 가해자는 공통적으로 피해 대상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을 발산하고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받음으로써 쾌락을 느낀다. 또 자신의 콘텐츠를 이용하는 이들의 반응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거나 학대 행위가 자신이 직접 행한 것임을 입증하고 싶어하는 행위는 그들의 과시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p.176 최소한 아이에게 '동물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히 가르치고 싶다. 내 아이가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권리를 갖고 태어나며, 동물에게도 자신에게 맞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자리주었으면 한다. 나는 올해도 동물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동물권 변호사‘로서 개정된 동물보호법과 국내외 동물권 현주소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동시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치열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내용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야만 한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고.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세상을 향한 호소이며, 이대로 둘 수는 없는 이유를 낱낱이 파고드는 매서운 비판이다.

물론 이미 오랜 시간 인간만을 중심으로 하는 문명을 구축하고 누려온 이상 하루아침에 엄청난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조금만 가기를, 어디일지 모를 끝이 초라하고 허망하기를 바라는 이는 없다. “우리”에 더 이상 인간만이 속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아도, 작거나 아름답거나 희귀하지 않아도 살 권리가 있다. 행복하게 살다 타살이 아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 누구도 길바닥에 내던져지고, 발에 채이고 손바닥만한 철창에서 평생을 보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누구에게도 사용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당장의 부득이한 경우에는 최선을 다해 고통을 줄이고, 희생을 요구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간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사용될 수 없는 존재이다.

동물과 사람이 다르다는 당신에게.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살아있고, 살아있었으며, 살아갈 존재는 그 누구도 물건이 아니다.


p.128 동물에 대한 학대를 막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생명을 가지고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에 대한 존중이라는 관점과 연결되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단순히 동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보호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에 대한 보호와 학대 방지는 단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에서 가지고 있는 도덕적 의식과 의무감에서 필요한 것을 넘어서서 전체 사회 구성원의 존중과 배려 및 보호라는 관점에서 인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다.

p.227 중요한 점은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든 행복을 원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내가 아프기 싫듯 동물도 아프기 싫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잊는다. 그들이 고통을 호소하거나 학대 사실을 폭로할 수 있는 인간사회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기에, 그래서 아픔을 "아프다"는 말로 전달할 수 없기에, 그들의 고통을 외면한다. 간단히 모른 체한다.

#물건이아니다 #동물은물건이아니다 #박주연변호사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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