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음악 - 날마다 춤추는 한반도 날씨 이야기
이우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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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이런 말이 있다. 기상청 체육대회 날에는 항상 비가 온다. 다 헛똑똑이라서 그런가? 생각해봐라. 그게 다 사내행사 불참을 위한 치밀한 계산의 결과다! 그런가하면 이런 말도 있다. 또 속았다. 이놈의 기상청, 이참에 구라청으로 이름 바꿔라. 내가 다시는 믿나봐라!

그러나 기상학의 세계는 자잘한 것들에 울고 웃기엔 너무도 거대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날씨는 대기와, 땅, 햇볕이 만들어내는 음악과도 같기 때문이리라.

지구촌, 연결된 세계... 이제는 다소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표현이 아니더라도, 오늘의 빗방울이 어디서 왔는지, 때맞춰 불어오는 달콤한 공기는, 거대한 눈구름과 살을 에는 바람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도달하는지... 나와 연결된 세계를 곱씹다보면 나비의 날갯짓 한 번이 태풍을 불러오는 것이 비단 비유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은 자연을, 날씨를 그들 세계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애써왔다. 해서 수많은 걸작이 계절과 날씨와 비와 바람 눈과 흙 따위를 움키듯 생생하게 묘사하려는 노력으로 남지 않았는가. 그 말은 곧 날씨를, 자연을 예술의 언어로 그려낸 감상은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비슷한 듯 다르게, 끊길 듯 이어지며 찾아오는 계절을 따라 순간의 압도, 휘몰아치고 스쳐지나가는 세계, 날씨를 악보로 옮길 수 있다면, 가늘게 들려오는 선율처럼 그 궤적을 따라갈 수 있다면, 사계는 그저 풍경의 변화가 아니라 거대한 협주곡의 한 장과도 같을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이에게 날씨는 더이상 존재-외-배경 무언가가 아닌, 춤추고 노래하고 손가락을 두드릴 것을 종용하는 음악과도 같을 것이다. 그런 이에게 세계는 그저 장소가 아니라 거대한 콘서트홀과도 같을 것이다. 경이롭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는 불규칙한 리듬으로 귀를 울리는 빗방울, 벗겨진 땅에서 불어오는 황량한 바람, 지축을 뒤흔드는 태풍과 눈송이의 춤을 섬세하게 덧그린다. 퍽 낭만적인 만남이나 그러면서도 고요한 서재에 앉아 나누는 담소처럼 느긋하고 낭만적인 문장으로 우리의 세계에 가득한 날씨, 그 원인과 성질을 풀어내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이렇게만 살 수 있을까요.


노래하는 세계, 세계의 음악, 그것이 날씨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선율 하나 울림 하나를 귀기울여 느끼고 들여다볼 수 있다면 한 해는 비발디의 그것 못지 않게 아름답고 낭만적인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보자.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독자는 이내 두려움에 휩싸일 것이다. 이게 정말 음악이 맞는가? 끔찍한 고요와 불협화음, 절멸의 전주곡이 아닌가? 잠깐 멈춰보라고, 저 끝에 있는 이를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날씨가 사람이라 이 못돼먹은 놈! 하고 탓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낯설고 인간의 생존을 어렵게 하는 날씨와 기대를 배반하는 글러먹은 일기예보는 있겠지만, 날씨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 날씨는 징벌이 아니고 어떤 은유적 표현도 아니다. 되려 그것은 소름끼치게 정확한 결과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과 자연의 배은망덕 과실비율은 100:0인 셈이다.

앞서 말했듯 세계의 음악이 날씨라면,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이 화답하는 움직임 또한 그의 일부일진대,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오페라의 이중창처럼 주고받아야 할 대화가 중간에 뜯겨나가 긴 침묵만이 흐르는 것이다. 응답받지 못한 선율은 어그러지기 시작하고, 점점 더 이질적이고 괴로운 소음을 낸다. 현재의 이상기후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언제까지고 바라보기만 할 수 있다면 허리까지 쌓인 설경과 얼음의 땅에서 살고 싶다고 말해왔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꿈이지만, 이제는 다음 세대에게 만년설과 빙하의 아름다움, 때맞춰 내리는 고마운 비와 기름진 흙내, 가을날 산천을 수놓는 단풍을 말할 수 있을까, 범람하는 강으로 비옥해진 땅, 맑게 갠 하늘의 무지개가 주는 벅찬 감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니 결국 저 앞에서 던져버린 고리타분한 수사를 다시금 내밀 수밖에 없다(먼지 후후 불었다. 괜찮다). 사랑하라고. 이 계절 이 날씨, 순식간에 밀려와 세상이라는 무대를 뒤덮는 배경을 사랑하라고, 작은 변화에 귀기울이고 손끝으로 따라가며 즐기라고.

그 끝에 찾아오는 깨달음, 이것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으며 동시에 잃지 않을 수 있으니 쉼표 하나, 미끄러지고 떨리는 음표 하나에 기뻐하고 놀라워하는 동시에 소중함을 잊지 말라. 이런 마음이라면 매일의 기상예보를 다르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렇게. 내일의 박자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소 빠르고 잦은 박자 변화가 예상되며, 쿵짝짝, 쿵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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