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이 돋는다 - 사랑스러운 겁쟁이들을 위한 호러 예찬
배예람 지음 / 참새책방 / 202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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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들녘(참새책방)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좋게 말해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높은 사람, 솔직하게 말해 겁이 많은 사람, 시체말로 쫄보인 사람을 하나만 대시오, 하면 모두가 손을 들고 정답! 하며 내 이름을 외칠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만 더 말하자면, 표지만 보고도 조금 오싹한 느낌에 기어이 엎어두고 며칠을 묵혔습니다. 책날개 그림에 간이 좁쌀만해졌습니다. 누군진 몰라도 책임지세요.

와중에 겁은 겁대로 많으면서 사서 고생을 하는 타입입니다. 네, 지난 주말에도 공포영화에 호러 소설로도 모자라 인터넷 괴담까지 줄줄 찾아보고 늦게까지 불을 끄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세간에서는 이런 걸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고 한다지요. 아니 뭐, 근데,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요? 만국의 겁쟁이여, 단결하라.

들어보세요. 이런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만국의 겁쟁이라고 했잖아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김씨 쫄보 다나카 쫄보 잭슨 쫄보 다 있을거란 말이죠. 공포영화에서 겁 없는 놈과 소리지르는 놈이 제일 먼저 봉변을 당한다 뭐 그런 클리셰가 있을텐데... 거기에 내가 다시는 이 짓을 하나 봐라! 악을 쓰면서도 기어이 실눈 뜨고 기웃거리는 바람에 시작도 전에 사라지는 인물 1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저 겁보들 꼬라지 좀 보라면서 낄낄대는 이들은 영영 이해하지 못하겠죠. 식은땀을 바가지로 흘리면서도, 졸아붙는 심장을 부여잡으면서도 그 짜릿한 즐거움을 잊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그치만 후자야말로 백점짜리 감상자가 아닌가요. 울어! 하면 네! 하고 펑펑 우는 관객이 좋은 관객이듯이.

원시시대에는 생존에 유리했을 (개중 반은 주체못한 호기심에 끝장났을) 것이고, 현재에는 알아서 숨넘어가는 긴장과 쾌감을 오가며 제 명을 재촉하고 있을 겁쟁이들, 호러마니아들.

p.22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설치한 함정에 충실히 빠지고, 숨통을 조여오는 긴장감에 실눈만 겨우 뜬 채로 비명을 지르는 겁쟁이들이야말로, 어쩌면 호러라는 장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게임, 책, 영화, 댓글 형식의 쪽글까지 다양한 분야와, 묘한 불길함부터 대놓고 비명을 쥐어짜내는 좀비나 반쯤 경탄을 자아내는 외계인, 환상의 크리쳐들까지 차원과 경계를 넘나드는 형태의 대상들로


공포 장르를 즐기는 마음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그것이 즐거움으로 남을 수 있는 근원적인 이유는 같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냉정히 말하면 ‘내 일이 아님’에서 오는 안도감이겠죠. 남이사 죽든지 말든지, 싶은 태평한 마음은 아닙니다. 쓰러지는 좀비나 크리쳐에, 원한을 품은 존재에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도 있는걸요(네, 접니다).

다만 전율과 긴장이 즐거운 시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화면을 끄고, 허리를 두드리며 의자에서 일어서거나 책장을 덮는 순간 안전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숨막히는 두려움과 경계심을 내려놓고 지루하기까지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지난 시간을 즐거움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스크린, 화면, 책장 밖의 현실이 그 안과 다를 것이 없다면 그것은 더이상 상상과 창작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때부터는 현실이 됩니다.

p.165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모든 흥미롭고 자극적이고 복잡환 사건 뒤에는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것, 우리가 어떤 포지션을 취하든 피해자의 존재만큼은 결코 잊어선 안 된다는 것.


제법 흥행했던 몇몇 영화들을 비롯해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호러, 개중에서도 범죄 스릴러 장르를 거북해하는 이유와도 같습니다. 무서운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왜 무서워하는지, 그것을 자의와 타의 중 어떤 이유로 무서워하는가, 입니다.

그저 무섭구나, 하고 넘기기 전에 그것이 왜 공포의 대상으로 남는지, 왜 그 대상과 힘과 상황을 두려워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동북아 3국으로 묶이는 한중일 문화권에는 왜 그렇게 한을 품은 여성 귀신의 일화가 많은가, 그들은 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나, 그들이 누구를 어떻게 해치는가, 그들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살아서는 그렇지 못했던 이들이 왜 죽어서는, 혹은 초인적 존재의 힘을 업고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는가, 그것을 물어야 합니다.


혹은 경계의 저편, 버려진 장소와 사람의 형태이나 사람이 아니게 된 존재, 이를테면 좀비와 같은 존재들이 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들의 기원을 묻고 공포가 재난의 형태를 띌 때는 이미 무수한 피해자가 존재했음을, 상상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이해할 때, 영화와 게임과 소설 속 이야기를 현실로 맞닥뜨리는 이들이 존재함을 잊지 않고 등 돌리지 않을 때, 비로소 즐거움으로 남을 수 있는 공포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기사로 따지자면 문화와 사건사고 면에 실릴 내용을 가려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p.165 괴담을 읽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두려워하고 겁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괴담 속 일들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채로 덜덜 떨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밤도 꺼림칙한 불길함과 환상적인 괴생물체, 숫제 뛰어다니기까지 하는 좀비를 상상하며 뒤척거릴 이들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겁을 주려는 (내 기준) 고맙고 악마같은 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존재하는 겁쟁이들에겐 비 내리고 푹푹 찌는 여름이 한 해의 절정이겠지요.

손끝을 저릿저릿하게 하는 긴장감을 잊지 못해 괜히 머리 한 번 들이밀었다가 비명을 꽥 지르고 아 다시는 안 본다, 이걸 다시 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하며 오늘 밤도 괜히 침대 밑을 살필 동지들에게, 우리는 영영 변하지 못할 팔자니 즐기기나 합시다. 슬그머니 이불 속으로 발을 밀어넣고 목덜미를 문지르며 괴담사이트를 찾아들어가는 사서고생의 달인들아.

근데, 뒤에 있는 사람 누구예요? 이상한 소리 안 들려요? 까드득... 하는...

p.202 겁쟁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겁쟁이인 우리가 좋다. 세상의 모든 겁쟁이 공포 애호가들이 오늘 밤도 덜떨 떨며 잠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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