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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8월
평점 :
각색된 동화로 알았을 때부터 오래도록 사랑해왔다.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모조리 구해 읽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번득이는 지성, 먼지와 살이 뒤엉켜 풍기는, 지워지지 않는 피로의 냄새를. 끔찍한 사회를 꿰뚫어 보는데서 오는 지독한 환멸에도 끝내 사유하는 지성이기를, 양심을 가진 존재이기를, 관찰자이기를, 고발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생생한 전장의 고백, 패배하고 방황하는 자의 영혼을 가감없이 기록하는 정직과 거침없는 풍자와 고발의 용기를 사랑해왔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이 그를 사랑해왔다. 그의 일생, 작품세계,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진 평가까지도. 위대한 문인이자 시대의 지성이었고, 그 자신이 어떤 시대의 증언과도 같은 존재였다. 조지 오웰은.
p.90 보이지 않고 급료도 없으나 당신의 시중을 드는 것이 생의 피할 수 없는 목적이기에 꼭 감사를 표할 필요도 없는 누군가로부터 이익을 얻는다는 것. 그런 당신이 해낸 일을 당신 혼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해냈다고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 나는 만들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이 문장 속에서 당신의 아내는 사라져버린다.
p.102 가부장제는 오웰이 자기 아내의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얻도록 허용해 주었다. 그런 다음 똑같은 방식으로, 전기 작가들이 그가 그 모든 일을 혼자 해냈다는 인상을 주도록 허용해 주었다. 전기 작가들은 오웰의 이야기에 들어갈 사실들을 세상에서 골라내는데, 그 사실들은 이미 오웰에게 유리하도록 세상이 선별해 놓은 것들이다. 가부장제와 전기의 서술 기법은 솔기 없이 매끈하게 결합한다.
그런데 만일 그 모든 게 그의 것이 아니었다면. 오롯히 홀로 이뤄낸 업적이 아닌 것을 넘어 숫제 훔치고, 갈취하고, 교묘하고도 뻔뻔스럽게 덧칠해버린 누군가의 이름이었다면. 그의 글,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 그의 사유는 과연 진실된 것이었을까. 조지 오웰이 아닌 진짜 '에릭 블레어'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세간의 찬사가 쏟아진 불후의 명작들, 내가 사랑해온 글들. 그건 대체 누구의 것이었을까. 검열의 흔적이, 강제된 부재가 존재의 반증이라면, 그 자리에는 무엇이, 누가, 어떻게 있었던 걸까. 나는 그것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 그의 글이, 경험이, 사유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익숙하고 점잖은 태도로 눈을 감는 일이 오래되고도 익숙한 이름, 여성혐오와 가부장제에의 동참이라면.
p.270 이제 아일린은 스페인에서 자신이 했던 경험들이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경험은 조지의 일반적인 지식, 아일린은 기여한 적도 관련된 바도 없는 지식이 되어 있다. (...) 모두 아일린이 조지에게 말해 준 것들이다. 아일린 자신도 '내 아내'로 일반화되어 있다. 아일린의 모든 정체성과 행동과 지식이 멋대로 조지의 것이 되어 있다.
p.419 어쩌면 아일린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오웰이 그토록 애써 은폐하려 한다는 점이야말로 그 사실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증거일지 모른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오웰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일린은 그 책의 기획까지 도와줬다'고 말이다. 이것은 도용과 삭제를 합친 수법이다. 누군가가 한 아주 작은 기여에는 감사를 표하면서 훨씬 더 큰 기여는 지워버리는 방식.
사랑했던 시간을 물어내라고 따지고 싶어지는 마음을 아는가. 읽다 말고 치미는 화에 뜨끈해지는 눈가를 짚는 기분을 아는가.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일은 나의 배신감도, 이 충격을 극적인 수사로 포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지워진 존재, 이름도 삶도 당연하게 소거된 이의 자리를 돌려주는 것이다.
어떤 부재, 집요하게 들어내진 흔적은 역설적으로 존재의 강한 반증이 된다. 저자가 기록의 '빈틈들'에서 찾아낸 한 여성의 생애가 그러하듯이. 조지, 아니, 에릭은 그와 추종자들이 그려온 것처럼 시대의 양심도, 용기있고 재치있는 작가도 아니었다. 그저 이기적이고 잔인한 철부지에 불과했다. 이것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여전히 현재가 아니던가.
p.432 오웰이 후에 그 여성에게 보냈다는 편지에 대해서는, 나는 할 말이 없다. 그저 오웰이 리디아에게 했던 비난의 말들만 떠오를 뿐이다. 상대가 원치 않는 섹스의 날짜를 지정해 놓고는 그 시간에 리디아가 집을 비우자 오웰이 퍼부었던 말들만.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걸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게 당신이라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p.455 한 여자가 자신의 필요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다 못해 자신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의학적 치료조차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말들. 그럼으로써 남편이 오든 안 오든 그의 마음이 편해지게 해주는 말들. (...) 자기말소는 가부장제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지만, 결국에는 스스로를 드러내게 되고 범죄처럼 보이게 된다.
누구도 자신을 모욕하는 이에게 감사하며 "진짜 가치"에 주목하도록 요구받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여전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저자는 '아내'라는 이름으로 끔찍하리만치 말끔하게 소거되어온 이의 생애와 그를 둘러싼 치밀하고 집요한 폭력을 고발함으로써 의아하고도 고통스러웠던 '명작'의 여성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에게 주어의 자리를 돌려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읽히기를 바란다. 그 자신 외에 다른 누구의 이름의 뒤로 밀려나지 않기를 바란다. 오웰의 아내, 오웰에게 빼앗긴, 오웰에 의해 무엇이 된... 이 아닌, 아일린, 아일린 오쇼네시. 번득이는 지성, 눈부신 용기와 별과 같은 성품을 가진, 욕망하고 후회하고 사랑하고 슬퍼했던 사람, 아일린 오쇼네시로.
p.79 아일린은 오웰이 소중히 여기던, 인간이라는 존재가 "꼭 갖추어야 하는 고상함"을 체현해 놓은 존재였다. 오웰은 작가로 살아가는 동안 이 고상함이야말로 우리가 잘못된 권력에 —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떠들어대면서 실은 억압하는 구조에— 생각 없이 굴복하지 않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자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건 오웰이 지니고 싶어 했을 만한 자질이었다.
p.570 노라는 생각한다. 편지를 든 손이 무릎으로 떨어진다. 아니야. 아일린이 그 대신 이뤄낸 건 삶 그 자체였어. 이제 뭘 해야 할까?
*도서제공: 생각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