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심장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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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흄세 시리즈와 역자를 믿고 펀딩했습니다. 역시 틀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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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뉴어리의 푸른 문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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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포기했는가? 언제부터 꿈을 누르고, 목소리를 낮추고, 당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려는 세계에 편입하려 애쓰던 시간을 잊었는가?

어린 여자, 이방인이 이른바 "주류"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죽을만큼 외롭고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어떤 사람은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짐승이, 표본이 된다. 숨을 죽이고 눈을 내리깔고, 순종하여 이름마저 지워질 것을 요구받는다. 그래야만 그들의 "우리"를 뒤따를 것을, 주변을 맴돌 것을 허락받을 수 있다.

세상에 내놓기에는 너무 위험해 많이 배우고 문명화된 소수가 "보호"해야만 할 존재, 영원히 닫혀야할 문, 권력과 지식처럼 독점되어야만 하는, 상상조차 해서는 안될 자유.

견뎌야 해, 재뉴어리.

p.41 런던에서 아프리카인은 유색인으로 취급되는지, 그렇다면 나도 거기에 포함되는지 궁금했다. 나는 몸이 살짝 오싹해질 만큼 갈망을 느꼈다. 큰 무리의 일원이 되어 타인의 시선을 끌지 않고, 내 분수를 정확히 알고 싶은 갈망이었다. 알고 보니 '유일무이한 표본'으로 사는 건 외로웠다.


꽉 막힌 규범과 오래된 권력은 교묘하고 촘촘해 마치 상식처럼 세계를 옭아매고 있어 이방인, 어긋나는 것, 이레귤러, 우리-아닌 자, "인간 짐승"의 숨통을 죄인다. 그것들은 이름을 바꿔가며 나타난다. 문명, 지식, 정상... 때로는 사랑까지도 참칭하며.

그러나, 당연하게도, 날개를 꺾고 팔다리를 잘라 영구히 썩지 않는 표본으로 만들어 자격있는 신사와 귀부인만이 초대받아 관람하는 전시실, 다락방, 오래된 성채와 거대한 저택의 어딘가에 처박아두는, 이름과 얼굴과 시간을 빼앗아 숨겨두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벽도, 밀실도 아니야, 재뉴어리.

p.32 나를 살피는 로크 씨의 표정을 보니 옛날 화가들이 그린 하느님이 떠올랐다. 이리저리 저울질하고 평가하여 당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결과가 나온 후에야 사랑을 주는, 가혹하리만치 가부장적인 하느님. 그의 눈빛은 바위처럼 날 내리눌렀다. "이제부터 넌 분수를 파악하고 착한 아이가 돼야 해." 나는 간절히 로크 씨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p.259 진정한 사랑은 결코 침체되지 않는다. 사실 사랑은 문이나 다름없어서 기적적이고 위험한 가지각색의 일들이 들어올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은 위험을 동반한다. 자유는 다름의 가능성이다. 불확실성과 위험을 끌어안는 모험이다. 그러므로 희망은 자유를 품는다. 희망한다는 것은, 지금-여기가 아닌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곳으로 손을 뻗어 문을 그리고 길을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저앉고 부서지기를 요구받는 자, 소리없이 존재해야만 자리를 적선받는 자- 는 곧 경계를 넘는 자, 멈추지 않는 배, 하늘과 바다를 뒤집어 가장 높게, 멀리 나는 새다. 시작의 이름으로 불리는, 최초를 열어젖히는 자다. 살아남아, 재뉴어리.

p.342 네 엄마는 네가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다. 위험할 정도로 자유롭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모든 문이 네 앞에 열려 있는 삶.

p.354 어쩌면 더 절망적이면서도 순진한 희망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 나보다 더 용감하고, 더 훌륭한 누군가가 내 죄를 대신 속죄하고, 내가 실패한 일을 해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이 세상을 그 형제들과 단절시켜 척박하고 오로지 이성만 지배하며 지독히 외로운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어둠의 조직과 누군가가 싸워줄지 모른다는 희망. 누군가가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 있는 열쇠가 되어 문들을 열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작가는 현실도피라는 간단하고 기만적인 해법 대신 그를 희망없는 세계로 돌아오게 한다. 도망치는 대신 자유로이 항해하는 자로, 바람처럼 불어와 경계를 넘는 자로. 그 덕에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자아찾기, "문명 유럽"에서의 유색인종, 상상과 희망의 힘...

그러나 어떻게 읽더라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현실 너머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재뉴어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닫힌 벽이 아니니까, 유순한 애완-인간의 세계는 기어코 산산이 깨지고야 말 테니까, 아무도 듣지 않는대도, 포기할 수 없는 자유가 있으니까. 문을 열어, 재뉴어리. 살아가, 너로 살아, 재뉴어리.

p.505 세상은 결코 감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닫히고 숨 막히고 안전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둔 저택과 같아야 한다.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오고, 여름비가 들이치고, 옷장은 마법의 통로가 되어야 하고, 다락에는 비밀 보물 상자가 있어야 한다.

p.533 "쉿,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제가 가끔 겁에 질렸고, 상처 받았고, 혼자였지만 결국 이겨냈다는 거죠. 전 이제 자유예요. 그리고 이게 자유를 얻은 대가라면 전 기꺼이 치를 거고요. (...)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


*도서제공: 밝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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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철 - 독일 제국의 흥망성쇠 1871-1918
카차 호이어 지음, 이현정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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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 기대를 걸고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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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번치현 - 일본 근대국가 탄생의 무대 뒤
가쓰타 마사하루 지음, 김용범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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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메이지(1867~1912)4년, 7월 14일. 재경 지번사 56인이 황거 회합장으로 호출되었다. 그곳에서 우대신(산조 시네토미)가 천황의 칙서를 낭독하였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아니, 극소수의 최측근을 제외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폐번 합의는 폐번치현 선언 닷새 전. 이 갑작스러운 단행의 이유는 무엇인가?

변화의 규모에 비해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했듯 대부분의 관료들이 언질조차 받지 못하였으며, 그간 2년간의 가히 쿠데타라 부를만한 전쟁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살펴보자.
1. 부번현 삼치제: 이전의 영주, 즉 다이묘는 지번사로 지방행정관의 역할을 수행하나, 일부 번에 대해서는 정부 직할지인 부와 현을 설치, 중앙정부에서 지사를 파견함
2. 1868~1869, 2년간의 보신전쟁(무신전쟁)에서 신정부(메이지정부) 승리
3. 1869.07.25 판적봉환 실시: 토지와 인민(영지민)을 정부 관할에 두고 지방 행정 관할 토지와 녹봉, 조세 시행을 개정토록 함
4. 1871.07.12 폐번치현. 이후 각 번내 번사들의 대량 해고, 번-정부와의 대립으로 인한 징벌적 재정 악화 등으로 자발적 폐번 요청.
5. 기존의 봉건적 토지 지배 방식의 전면 개정으로 세금확보 및 군사력 통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도모하였으며 근대형 중앙집권 국가로 이행하는 초석이 됨


조세와 군사력을 통제하에 두려는 중앙정부와, 기존 봉건체제 하의 생활양식이 뿌리채 흔들리며 졸지에 신분이 이동되는 번사들과 가신들을 포함한 번 간의 갈등으로 인해 어수선한 시대였다.

지방 통치 기관의 힘이 강했던 기존의 막부/번 체제를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부/현제로 변경한다. 이에 단순한 칙령과 명칭 변경 이상의 의미가 있는 만큼 다각적인 이해가 필요한 만큼, 위의 단순한 설명에 의문이 남는다.

이는 일본을 지방무사와 토호의 영향력이 건재하던 기존 영지제도와 봉건국가에서 근대형 정부국가로 이행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으니, 행정체계를 말 그대로 뒤집어 엎는 과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결과로부터의 해석이 아닌 발단부터 충돌 과정과 영향까지, 당시의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상황으로 직접 들어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정해진 답에서 출발해 일방향적인 설명을 도출해내는 것이 아닌,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시행착오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개인적으로 쉽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와 학교에서 배워온 당시 조선의 역사와는 방향성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리라. 지금까지 메이지 유신의 유익성이나 제국 일본의 부정적 여파가 아닌, 폐번치현만을 단독으로 들여다보는 책이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점 또한.

이 책이 독자에게 번의 해체 과정과 현 제도 탄생 이후, 이전의 다이묘-천황 이중 체제에서 강력한 천황중심국가, 즉, 천황이 권력의 핵심이 되는 중앙집권적체제로 확립되도록 한 쿠데타의 실태 뿐만 아니라 이후 2차대전 참전 및 태평양 전쟁을 발발케 한 제국 일본의 역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도서제공: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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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 그리고 퀘스트 - 하드SF 단편선
위래 외 지음 / 구픽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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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상은 한 끗 차이다. 아니다. 그 둘은 한 몸이다. 아니다. 그 둘은 뒤섞여 있다. 아니다. 평행선이다. 아니다. 감히 말해질 수 없는 것과 결코 드러나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니다. 전부 아니다. 세계를 부수고 뒤집어 엎어야만 간신히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아니다. 아니라고 말해진다.

알지 못하는 것은 말해질 수 없는가? 모른다는 사실마저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는 것인가 모르는 것인가?

이른바 "하드 SF"와 "소프트 SF"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숱하게 이어져왔다. "SF 장르의 팬"을 자처하는 이로서 감히 확신하건대, 그것은 모조리 실패, 또다시 실패, 어김없는 실패였다. 그 누구도 차지한 적 없는 왕좌, 자리하기 무섭게 냅다 밀쳐지고 밀려나는, 영겁의 난장판이라고 봐도 좋을만큼.

p.66 "감각수용체가 남아 있는 이상, 류진의 몸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따라서 키메라 당신도 나를 사랑하게 되는 거야. 류진의 기억과 의식이 사라져도 혹여나 류진이 다른 무엇이라 하더라도 류진의 몸이 사랑하는 것이 나라는 건 바뀌지 않는 거야."


이 끝 모를 논쟁은 필연히 다음과 같은 의문에 뿌리내리고 있다. "도대체 SF는 무엇이란 말이냐". 이 또한 말 꺼내기 무섭게 전자 못지않은 설전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답하기를 포기한다. 그러므로 단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틀을 만들어내려는 우리의 시도는 모조리 실패했다고, 적어도 이 문제에서는,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따라가면 반드시 끝을 알 수 있다는 미로의 해법은 먹히지 않는다고. 이유는 단순하다. 세계는 출구와 입구가 정해진 미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p.243 그렇다면 이번은 과연 몇 번째일까. 역사는 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까지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될까. 과연 더 나은 선택지가 존재할까.

p.306 네 말대로 시설에 들어갔다 치자. 그래서 시스템에 등록되면 이 아이도 너처럼 살 수 있나? (...) 하고 싶은 일하면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냐고. (...) 하지만 이 애는 시스템 바닥에서 겨우 목숨만 연명하며 살 거야. (...) 당장 죽지 않게 해 주는 거, 물론 고마운 일이지. 근데 그거면 되나? 사람이라는 게 정말 그거면 되는 거냐고. 먹고 싸고 자고…


작가가 그려내는, 그들과 독자가 살아가는 세계는 입구로 밀어넣어져 출구를 향하도록 생겨먹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밑도 끝도 모르는 채 덜렁 던져져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넓은 우주에, 초라한 행성에. 인간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죽기 때문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한계에 직면한다. 절멸에, 인간성에, 굴종에, 우연한 호기심에, 밀려나고 좁아지는 세계에. 그것은 각기의 이유로 현재와 다르지 않다. 줄곧 말해왔듯, 상상은 현실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상상만큼 현실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p.154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신앙은 영혼 없는 인형에 불과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신성을 모독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p.206 아니다. 과학은 신학이 결코 아니었고 그리 될 수도 없었으며 하물며 신이 되고자 하는 학문도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인류는 이제 과학을 이용해 신이 되고자 하고 있었다. 악을 규정하고, 처단하는 심판자가.


그들은 좌절한다. 고민하고 부서지고 파괴된다. 수없이, 몇번이고, 난관에 빠지며. 이것은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필연히 실패한다. 깨진 것은 부서질 수 있는 것. 울부짖는 인간은 일어서는 인간이다. 의심하는 인간, 유한한 존재. 그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사랑은 혁명이 되고, 넘을 수 없는 벽에는 부서질 곳이 생긴다.

풀 수 없는 미로에도 필승의 해법이 있으니. 단 하나, 벽을 뚫고 나가는 것뿐이다. 탈출은 가둬진 자의 숙명이요, 길이니, 절망은 필연적으로 희망의 가능성을 담지한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가? 독자는 거대한 절망에 눈을 감는가? 주저하는 인간, 벽 너머를 가리키는 손. 이 책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폐허에서 도망치지 않는.

p.254 인간에게 역사는 바꿀 수 없이 반복된다고 체감되어 왔지만 그렇게 시나브로 변화해 왔던 것이었다. 매번 시간을 되돌리며 반복을 의심하고, 그에 쌓인 죄책감을 가늠하고, 가능성을 의심하면서, 결국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지라도 그 미세한 흐름이 모여 충분한 가치를 지닌 파랑이 되도록. 그날을 고대하며.

p.333 "자아, 얘기도 좋지만 우선 배부터 채울까요? 생물학적 원리든 뭐든, 밥을 안 먹으면 사람은 확실히 죽는다고요."


*도서 제공: 구픽(GU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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