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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회사는 어디일까? 기준이야 여럿이겠다만. 구글? 애플? 미쓰비시? 삼성? 다 틀렸다. 오래전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교과서나 사료 속 연도로 더 익숙할 17세기 초, 1602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다.
유럽의 각국들이 넓어진 세계와 팽창하는 제국주의 경제에 막 익숙해졌을 무렵, 지리보다는 신비의 영역이었을 이른바 "오지",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거점을 두고 지금으로서도 엄청난 수백명 규모의 직원을 고용한 방대한 조직 말이다. 그 전성기의 시가총액은 현재 화폐 가치로 8조억을 훌쩍 넘는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합산이 6조 4천 가량임을 보았을 때, 그때나 지금이나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엄청난 부와 패권을 휘두르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어째서 200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는가? 뻔하다면 뻔하고, 당연하다면 당연할 경위로, 영국 동인도회사와의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더니, 뛰는 날강도 위에 나는 도적패가 있는 셈이다.
p.61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이 가진 배의 숫자는 다른 모든 유럽 국가의 배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한다. (...) 선박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조선업이 발달했다는 의미이다. 당시 네덜란드 선박 건조비는 영국의 반에도 못 미쳤다. 대량 생산 체제의 기본인 표준화 작업이 앞서 있었기에 원가를 절감한데다 설계 능력도 뛰어났다.
17세기 이전 유럽의 식문화는, 적어도 위생과 향신료 부분에서는, 지금에 비해 가히 처참한 수준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강렬한 향미와 부패방지 효능을 가진 각종 향신료들이 그네들의 땅에 자라지 못하는 탓이다. 나름 먹을 것에 진심인 편에서 보건대, 심심하고 느끼하기만 해서 어찌 먹나, 싶었으리라 짐작한다.
앞서 말했듯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배 타고) 나가면 도달할 "미개척지"에 대한 환상과 팽창하는 제국주의의 야망이 콱, 들이박힌 사회에, 빈부격차가 극심한 사회에도, 아니, 그렇기에 부자가 있기 마련이니, 돈 많고 욕심은 더 많은 이들이 '새로운 것'에 눈독을 들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던 차에 산 넘고 물 건너, 말그대로 이국의 향취를 품고 실려온 낯선 향신료에 온 "문명 사회"가 들썩인 것도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용감하게 깃발을 펄럭이며 "야만인"과 "미개척지" 정복에 성공하면 돈이며 땅이 줄줄이 쏟아져나온다는 눈부신 "희망"을 본 이들이 어디 가만히 있을까.
p.192 15세기 말부터 시작된 이러한 도전은 '대항해'란 말로 표현 되는데 그로부터 수백 년에 걸쳐 이어졌다. 많은 사람이 폭풍우에 휩쓸려 수장되었고, 먹을 것이 떨어져 굶어 죽었고, 괴혈병과 이질 등에 걸려 죽었다. 풍토병, 말라리아와 같은 열병도 있었다. 마침내 미지의 육지에 닿았다가 그곳 원주민들에게 살해되기도 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 보니 소통이 안 되어 오해가 생기면 곧바로 위험에 빠졌다. 북방 항로를 개척하겠다고 북극으로 향한 사람들은 얼음에 갇혀 죽었다.
한 번 돈맛을 보니 두 번은 더 쉬웠다. 낯선 선박과 사람, 무기에 때로는 경계하고 때로는 환대했던 선주민들은 어차피 사람으로 치지도 않았으니, 무주공산에 말뚝 하나 콱 박고 깃발부터 찌르면 제 땅이 된다고 믿던 때였으니 "문명인"이라도 냅다 밀어내고 통나무집 하나 새로 지으면 그만이었다.
항로 개척, 새로운 향신료와 안정적인 공급처를 차지하기 위한 무력 충돌로 끝없이 심화되는 경쟁은 도적이 도적을, 강도가 강도를 털어가는 꼴이었다. 자기들끼리 털고 털리는 때가 아니면 "야만인"을 짐승몰이하듯 죽이거나 죽을 때까지 부렸다. 환상과 낭만으로 부풀려진 야망은 각국이 묵인하는 학살과 약탈로 꽃피우기 일쑤였다.
p.35 유럽의 패권국들이 패권을 유지하는 필요 충분 조건은 바로 '부'였다. 그리고 이는 찬탈로 시작됐다. 그들은 자원과 노동력을 찬탈하는 것으로 자기들의 부를 키워 나갔다. 믈라카도 그랬다. 정복자들이 들이닥치면서 평화롭던 경제 활동은 중단되었고 그로부터 440년을 식민지가 되어 살아야 했다.
p.159 1605년 어느 날, 암본에 네덜란드 선박이 나타났다. 갤리언선으로 보이는 배 한 척이 수평선에 나타나더니 점점 해안으로 다가왔다. 얼핏 보아도 위용이 대단했다. 돛을 달아맨 마스트가 몇 개인지 세어 보기도 전에 갑판 밑에 촘촘히 입을 벌리고 있는 대포들이 보였다. 갑판에는 머스킷 총을 둘러메고 서 있는 병사들이 사뭇 위협적이었다.
밝히듯, 저자는 학술적 연구 대상이 아닌 실제 생활의 경험을 엮어냄으로서 생생함을 더한다. 보다 흥미롭게, 현장의 눈으로. 그러면서도 부제에서 말하듯, 이 모든 과정이 수탈의 역사임을 잊지 않는다. 제목처럼 미지의 식재와 영토를 향한 탐욕은 익히 알려진 폭력의 역사를 여는 서막이었다.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도 쉽게 쓰였으나 내용만큼은 무겁다. 흥미로운 무역사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무거운 마음으로, 우리 일상에 스며든 맛이 어디서 어떻게 흘러왔는지 가늠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향긋하고 강렬한 순간에 언뜻, 연기와 신음이 들려올지 모르는 일이니.
p.227 1만 5000명으로 추정되는 반다제도 전체 인구에서1000여 명만 살아남고 일부는 바타비아에 노예로 보내졌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항해 도중 상당수가 사망했다. 반다에서 바타비아는 돛배로 달포를 넘겨야 갈 수 있는 거리다. 아이섬의 학살, 런섬의 학살, 이제는 론토르섬의 학살, 그리고 곧 이어질 암본 학살. 그럼에도 기록은 쿤이 반다 주민의 죽음에 대하여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p.279 향신료는 이미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었다. 가격도 많이 내려가고 새로운 향신료들이 발견되어 음식 조리법도 달라진 상황이었다. 영국은 향신료 말고도 돈벌이가 될 상품들을 개발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 지역을 떠날 것이니 영국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바로 그들의 식민지에 정향과 육두구를 옮겨 심는 것이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