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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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회사는 어디일까? 기준이야 여럿이겠다만. 구글? 애플? 미쓰비시? 삼성? 다 틀렸다. 오래전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교과서나 사료 속 연도로 더 익숙할 17세기 초, 1602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다.

유럽의 각국들이 넓어진 세계와 팽창하는 제국주의 경제에 막 익숙해졌을 무렵, 지리보다는 신비의 영역이었을 이른바 "오지",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거점을 두고 지금으로서도 엄청난 수백명 규모의 직원을 고용한 방대한 조직 말이다. 그 전성기의 시가총액은 현재 화폐 가치로 8조억을 훌쩍 넘는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합산이 6조 4천 가량임을 보았을 때, 그때나 지금이나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엄청난 부와 패권을 휘두르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어째서 200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는가? 뻔하다면 뻔하고, 당연하다면 당연할 경위로, 영국 동인도회사와의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더니, 뛰는 날강도 위에 나는 도적패가 있는 셈이다.

p.61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이 가진 배의 숫자는 다른 모든 유럽 국가의 배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한다. (...) 선박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조선업이 발달했다는 의미이다. 당시 네덜란드 선박 건조비는 영국의 반에도 못 미쳤다. 대량 생산 체제의 기본인 표준화 작업이 앞서 있었기에 원가를 절감한데다 설계 능력도 뛰어났다.


17세기 이전 유럽의 식문화는, 적어도 위생과 향신료 부분에서는, 지금에 비해 가히 처참한 수준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강렬한 향미와 부패방지 효능을 가진 각종 향신료들이 그네들의 땅에 자라지 못하는 탓이다. 나름 먹을 것에 진심인 편에서 보건대, 심심하고 느끼하기만 해서 어찌 먹나, 싶었으리라 짐작한다.

앞서 말했듯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배 타고) 나가면 도달할 "미개척지"에 대한 환상과 팽창하는 제국주의의 야망이 콱, 들이박힌 사회에, 빈부격차가 극심한 사회에도, 아니, 그렇기에 부자가 있기 마련이니, 돈 많고 욕심은 더 많은 이들이 '새로운 것'에 눈독을 들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던 차에 산 넘고 물 건너, 말그대로 이국의 향취를 품고 실려온 낯선 향신료에 온 "문명 사회"가 들썩인 것도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용감하게 깃발을 펄럭이며 "야만인"과 "미개척지" 정복에 성공하면 돈이며 땅이 줄줄이 쏟아져나온다는 눈부신 "희망"을 본 이들이 어디 가만히 있을까.

p.192 15세기 말부터 시작된 이러한 도전은 '대항해'란 말로 표현 되는데 그로부터 수백 년에 걸쳐 이어졌다. 많은 사람이 폭풍우에 휩쓸려 수장되었고, 먹을 것이 떨어져 굶어 죽었고, 괴혈병과 이질 등에 걸려 죽었다. 풍토병, 말라리아와 같은 열병도 있었다. 마침내 미지의 육지에 닿았다가 그곳 원주민들에게 살해되기도 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 보니 소통이 안 되어 오해가 생기면 곧바로 위험에 빠졌다. 북방 항로를 개척하겠다고 북극으로 향한 사람들은 얼음에 갇혀 죽었다.


한 번 돈맛을 보니 두 번은 더 쉬웠다. 낯선 선박과 사람, 무기에 때로는 경계하고 때로는 환대했던 선주민들은 어차피 사람으로 치지도 않았으니, 무주공산에 말뚝 하나 콱 박고 깃발부터 찌르면 제 땅이 된다고 믿던 때였으니 "문명인"이라도 냅다 밀어내고 통나무집 하나 새로 지으면 그만이었다.

항로 개척, 새로운 향신료와 안정적인 공급처를 차지하기 위한 무력 충돌로 끝없이 심화되는 경쟁은 도적이 도적을, 강도가 강도를 털어가는 꼴이었다. 자기들끼리 털고 털리는 때가 아니면 "야만인"을 짐승몰이하듯 죽이거나 죽을 때까지 부렸다. 환상과 낭만으로 부풀려진 야망은 각국이 묵인하는 학살과 약탈로 꽃피우기 일쑤였다.

p.35 유럽의 패권국들이 패권을 유지하는 필요 충분 조건은 바로 '부'였다. 그리고 이는 찬탈로 시작됐다. 그들은 자원과 노동력을 찬탈하는 것으로 자기들의 부를 키워 나갔다. 믈라카도 그랬다. 정복자들이 들이닥치면서 평화롭던 경제 활동은 중단되었고 그로부터 440년을 식민지가 되어 살아야 했다.

p.159 1605년 어느 날, 암본에 네덜란드 선박이 나타났다. 갤리언선으로 보이는 배 한 척이 수평선에 나타나더니 점점 해안으로 다가왔다. 얼핏 보아도 위용이 대단했다. 돛을 달아맨 마스트가 몇 개인지 세어 보기도 전에 갑판 밑에 촘촘히 입을 벌리고 있는 대포들이 보였다. 갑판에는 머스킷 총을 둘러메고 서 있는 병사들이 사뭇 위협적이었다.


밝히듯, 저자는 학술적 연구 대상이 아닌 실제 생활의 경험을 엮어냄으로서 생생함을 더한다. 보다 흥미롭게, 현장의 눈으로. 그러면서도 부제에서 말하듯, 이 모든 과정이 수탈의 역사임을 잊지 않는다. 제목처럼 미지의 식재와 영토를 향한 탐욕은 익히 알려진 폭력의 역사를 여는 서막이었다.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도 쉽게 쓰였으나 내용만큼은 무겁다. 흥미로운 무역사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무거운 마음으로, 우리 일상에 스며든 맛이 어디서 어떻게 흘러왔는지 가늠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향긋하고 강렬한 순간에 언뜻, 연기와 신음이 들려올지 모르는 일이니.

p.227 1만 5000명으로 추정되는 반다제도 전체 인구에서1000여 명만 살아남고 일부는 바타비아에 노예로 보내졌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항해 도중 상당수가 사망했다. 반다에서 바타비아는 돛배로 달포를 넘겨야 갈 수 있는 거리다. 아이섬의 학살, 런섬의 학살, 이제는 론토르섬의 학살, 그리고 곧 이어질 암본 학살. 그럼에도 기록은 쿤이 반다 주민의 죽음에 대하여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p.279 향신료는 이미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었다. 가격도 많이 내려가고 새로운 향신료들이 발견되어 음식 조리법도 달라진 상황이었다. 영국은 향신료 말고도 돈벌이가 될 상품들을 개발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 지역을 떠날 것이니 영국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바로 그들의 식민지에 정향과 육두구를 옮겨 심는 것이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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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열정의 시대 - 일제강점기 장르 단편선
곽재식 외 지음 / 구픽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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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 광복 80주년이란다. 벌써, 라고 하기엔 나와 그 이후 세대에는 일제강점기를 교과서 내지는 옛날 얘기로나 알고 자랐다. 그런 이유로 "나라 없는 슬픔"을 이해하기엔 너무 먼, 말 그대로 '언젠가'의 이야기로만 이해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반대는 어떠한가. 이제 겨우, 라고 할만한, 채 100여년도 되지 않은 이 떄에,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혹시나 해서 검색한 "광복 80주년"의 연관 기사로 내년 국제관함식에 "욱일기 형상" 깃발을 단 일본 함정이 참가한다는 내용이 뜨는 세상이다.

뭐가 그리 무서워서, 해방을 맞고도, 압제에서 벗어났다면서 뭐가 그렇게 눈치 보이는지, '전범기'도, 딱 잘라 "욱일기"라고 쓰지도 못하고 구차하게 말꼬리를 늘이는지. 누군가는 목숨을 버려가며, 또다른 누군가는 이를 악물고 숨죽여 전해온 말과 글과 이름이 다시금 홀랑 팔아넘겨질 세상이 아닌가.

나라를 빼앗긴, 주권 없는 나라의 사람 아닌 사람의, 망국의 시간이 꼭 35년이었다. 경술국치에 태어난 아이가 자라 머리가 굳은 어른으로 자라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동시에 기약 없는 희망을 갖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다. 더구나 이 날부터 이 때까지, 딱부러지게 정해둔 것도 아닌, 끊임없이 쇠락하는 땅에서 태어난 자라온 이가 '다른 내일'을 기대하기에는 너무도 막막한 시간이 아니었나.


수많은 사람이 조금도 가질 수 없는 존엄에, 보이지 않는 내일에, 나날이 더해가는 치욕과 굴욕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 절망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되찾은 이름이, 사람으로의 지위가 다른 무엇도 아닌 빛이었기에, 그것이 바로 이태껏 광복이라 부르는 이유다.

혹자는 당시 조선인의 무지와 태만을 탓한다. 약육강식, 팽창하던 제국주의의 시대에 힘의 논리에서 밀린 약소국의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숱하게 보았다. 당장 그 누구도 나라 잃은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매국노가 여전히 파렴치한의 대명사로 쓰이는 것은, 매국이 전쟁까지 겪은 나라에서 여전히 용서받지 못할 죄로 여겨지는 것은, 단순히 대의 앞에서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말 그대로 팔아넘겼기에, 저 혼자 살겠다고 다른 이들을 짐승처럼, 물건처럼 내버려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도 자기만은 편하게 살겠다고 탐욕을 부렸기 때문이다. 존경과 신뢰를 배신으로 갚았기 때문이다.


이에 거창히 민족주의자의 이름까지 필요하지도 않으나, 민족의 이름으로 말살이 자행된 만큼 민족 개념을 떼어놓고 말하기 어렵다. 동시에 비단 "민족"에 국한되지 않는 폭력이기도 했다. 악한 자가 약한 자를 수탈했다. 약한 자가 더 약한 자를 사지에 밀어넣었고, 알량한 권세를 틀어쥔 자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타인의 목숨을 갈아넣은 그것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나라를 잃었던 시간이라는 것은, 절망이 비단 추상에 그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일상의 형태를 띄고 삶의 모든 기반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가정맹어호, 가혹한 정치가, 나라와 권세의 이름으로 가해진 모든 폭력이 핍박과 폐허의 수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망을 절망으로 끝내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었다.

p.93 이제 영락없이 사내 잡아먹은 계집이 되었구나. 그래서 나는 괴물인가. 이선은 다시 생각했다. 그런데 일제는 (...). 온 세상을 가짜 신의 나라로 만들려고 넓디넓은 중국 땅에도 폭탄을 퍼붓는다. 젊은 처자들을 감언이설로 꾀어 군인들의 노리개로 던져 준다. 이런 일도 버젓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어쨌거나 사람인 자를 먹은 자신은 괴물인가.

p.215 "원장님.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취하는 자를 도라고 합디다. 남을 못살게 굴다가 목숨까지 빼앗는 자는 적이라고 하고요. 원장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음해하고 부당한 시국에 눈을 감는 것으로 남의 것을 취하셨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이 죽었으니 양자에 다 해당하십니다."


어쩌면, 부패와 혹정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더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 괴물이 판치는 세상에서 내가 왜 괴물이냐고 되묻는 이가 있었다. 절망을 열정으로 바꾸는 것은, 끝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내는 이는 언제나 있었다. 부끄러움을 잊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절망(絕望)은 끊어지지 않는 한 여전히 망, 바람이다. 끊어지지 않은 바람은 절망(切望), 간절히 바라는 것이 되어 뜨겁게 끓어오른다.

이 책은 그 기록인 동시에 잊혀진 시간을 파고드는 가능성이요, 상상이다. 수많은 '어쩌면'의 이름으로 닿기를 바란다. 어쩌면 이번에는, 어쩌면 이렇게는 아닌, 어쩌면 누군가는. 그렇게 무너지고 지워지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고, 지금의 우리는 그렇게 지켜낸 희망 위에 살고 있다고.

p.181 "어리석고 못난 것들이 권세를 잡았다고 어리석고 못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무식해지고 모자라지는 것입니다. 그런 놈들에게 무섭다. 무섭다해 주면 자기들이 진짜로 무섭고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콧대가 높아지다 더 큰 업보를 쌓는 노릇이니 (...) 더러운 놈에게는 더럽다고 해 줘야 옳은 말이지 않습니까."

p.225 "제가 저답지 못하고 제가 저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 동생들을 돌보지 아니하여 돌아가신 아버님 앞에 부끄럽고 낳아 주신 어머님 앞에 낯을 들 수 없다면 그것이 가장 무서운 노릇입니다."


*도서제공: 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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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없는 밤
위수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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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다, 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아주 잠깐 가졌다가, 영영 되찾을 수 없는 것, 혹은 가졌는지도 모르게 흘려보내고 부재를 통해서 지난 존재를 실감하게 되는 것, 어쩌면, 가진 적조차 없었던 것, 그래서 더 갈망하고 입귀를 비틀며 오래도록 바라보게 만드는 것. 가진다는 말의 대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혹은, 가졌다는 말에도.

익숙한 따뜻함, 노년과 주변인에게서 대가 없는 관용으로 주어지기를 바라는 온화한 시선과 의례적인 추앙을 그리지 않는다. 노력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희망찬 내일을 그리지도 않는다. 대신, 넘을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것. 욕망과 고독, 치미는 말을 꾹 삼키는 시간을 내민다. 이것을 고스란히 떠안는 것이 당신의 몫이라고.

p.76 원희에게서 조금 떨어진 벤치 주위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남녀 무리가 보였다. 짧은 스커트에 어깨가 드러난 셔츠. 누군가 농담을 던졌는지 무리는 동시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이 못 견디게 아름다웠다. (...) 원희는 한동안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이 무지하기를 바랐다. 실수를 반복하고 좌절하기를. 그리고 후회하기를, 내가 그랬던 것처럼.

p.239 최근 들어 나는 악몽을 많이 꾸었다. 그러나 남편은 불안한 잠재의식의 발현일 뿐이라고 했다. 나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악몽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특히 임부의 악몽에 대해서는 더더욱.


위수정의 세계에서 계급은 언제든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의 교감을 가능케하는 허상의 경계가 아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소재가 돈, 경제적 "지위", 가난이다. 그가 그려내는 가난은 소박한 따뜻함, 인간미가 가미된 "진정성"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 오히려 그것은 소리로, 냄새로, 모멸과 안도와... 일상에 스며드는 감각으로.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것들의 형태로 인간을 압도한다. 냄새가 나고 등을 결리게 하는가. 동정과 경멸은 무섭도록 닮아있다. 열등감이 치부의 탈을 쓰고 극복되기를 요구할 때처럼.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깊은 금이 패인다. 무엇으로도 메워질 수 없다. "태생"이 그런 것처럼, "감촉부터 다르다"는 명품처럼.

p.99 규희네 집은 조용했다. 규희네 집에서 처음 자기로 한 날 밤, 한나는 고요한 밤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다. 아니, 소음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해야 할까. 한나네 집에서는 밤중에도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이 있구나. 고요한 것은 이렇게 편안한 거구나. 어둠 속에서 한나는 잠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고요를 좀더 오래 느끼고 싶었다.

p.196 집에 들어설 때마다 재순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그것을 자신이 오래 참지 못하리라는 것을 민희는 알았다. 불쌍한 앤데. 민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불쾌함을 누를 수 없었다. 뻔뻔하잖아. 미어캣을 닮았다고 생각한 얼굴은 더러운 생쥐처럼 보였다.


누군가에게 집은 돌아갈 곳이다. 반드시 떳떳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여겨지는 곳이고, '언젠가는' 돌아갈 거라고 확신처럼 딛고 서게 하는 곳이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집이 없다. 비단 House와 Home의 차이가 아니다. 사방이 곰팡이 슨 벽지와 정 대신 땀에 찐득하게 들러붙는 바닥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위수정이 그려내는 세계는 노골적으로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누군가는 이 '불편'을 '불쾌'로 경험할 테다. 작가는 그가 불러낸 이름들, 제각기 안팎을 갖는 인물들의 세계와 내면으로 독자를 불러들인다. 그 초대는 일면 포획과 흡착의 형태를 띄고 있어 독자는 익숙한 불쾌감 내지는 표백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공포에 휩싸인다.

p.261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이대로는 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갈 수 있는 곳이 이제는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부분은 자신의 전 재산과 가까운 이들의 돈까지 이곳에 묻었기에 미련을 떨치지 못해서 머물렀다. 어떻게든 다시 되돌리고 싶어서.

p.326 한참 가만히 가라앉으면 거기에 비로소 나의 집이 있다. 물고기와 해초와 바위들 사이에 있는 나의 집. 거기에는 김치찌개도 상한 우유도 없다. 곰팡이도 부모도 없다. 냄새도 날씨도 없이 나는 집에서 조곤조곤 대화를 나눌 것이다. 나와 같은 말을 쓰는 당신과 함께. 집이란 그런 곳이니까.


이 모든 것이 그저 고통과 좌절, 현상 기술에 그쳤다면 열 편의 수록작을 애써 읽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고통이 무력에 그치도록 몰아가기만 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 외의 독자에 닿을 힘을 갖지 못하는 까닭이다. 글로 그려내는 세계에는 반드시 결론이 있는 까닭이다. 무력의 자리를 채우는 것은 욕망이다. 앞서 말했듯, 소리와 냄새와 형태를 갖고 덮쳐오는 고통의 감각이다.

본능과 그를 휘감는 격차의 인식. 독자가 발 디딜 곳에 '고여있는' 것. 담담하게 쓰여진 문장이 드러내는 핵심이 바로 이것이라 믿는다. 모든 독자에게, 부디 생생하게 고통스럽기를, 모르는 말처럼 먼 사랑을 속삭이기를, 살아있는 이의 눈을 오래도록 응시하기를. 그곳에 있음을 알기를,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감각하기를, 깨닫기를.

p.144 지수는 은선을 보았다.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와 까칠한 피부, 터진 입술. 그리고 항상 입고 있는 티셔츠. 그래도 은선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지수에게 말할 때 은선의 눈빛은 거의 언제나 확신에 차 있었다. 지수는 그런 눈빛을 보는 게 좋았다.

p.159 지수는 베스의 따뜻한 등에 얼굴을 대어보았다. 베스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느끼며 한참을 어둠 속에 있었다. 야옹, 야옹. 지수는 고양이 소리를 흉내 내었다. 그러나 베스는 잠깐 고개를 들었다가 곧 다시 눈을 감았다. 지수는 베스의 커에 대고 속삭였다. 사랑해. 사랑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모르는 단어 같았다.


*도서제공: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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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연대기
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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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연대기의 첫걸음이 될 책을 만날 수 있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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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0
모리스 로사비 지음, 권용철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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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원의 약탈자로서의 몽골, 그 환경적 배경
1) 몽골제국의 발원지인 대륙 한복판은 좋게 쳐도 비옥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낮은 온도, 강한 바람에 긴 겨울과 짧은 여름으로 농경이 여의치 않으며, 극히 제한된 강수량에 대체로 사막과 짧은 풀만이 자라는 초지는 탁 트인 정경만큼 황량하다. 잉여생산물 축적은 커녕 식료품 조달 자체도 녹록치 않은, 여러모로 삭막한 땅이 아닐 수 없다.

2)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주드(zud, 폭설과 혹한이 이어지는 자연재해)까지, 기상현상과 가축의 건강상태에 크게 좌우되는 유목민 집단의 경제상황은 언제나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생필품 거래 뿐만 아니라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약탈과 안정적인 보급지 확보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또한 정주민의 안정된 생활을 토대로 꽃피운 각종 사치품과 교역 중단에 대한 불안이 몽골족의 경계 확장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3) 몽골족의 중국 침입 시기의 중국 인구가 7천 500만 가량에 달했던 반면 동시기 몽골리아의 전체 인구는 채 100만에 이르지 못했으리라는 추측이 있다. 그들이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해온, 몽골리아의 현재 영토만 해도 프랑스 면적의 약 3배이니 대팽창시기에는 그들 집단이 얼마니 띄엄띄엄하게 떨어져 살았을지 짐작이 가는가.

2. 몽골족 세력의 확장
1) 제국으로서의 확장을 가능케 한 전투력 양성은 주로 유년기에 시작되었다. 정주민과 달리 기동력과 생활력을 강하게 요구하는 유목집단에서 여성과 아동 또한 승마와 신속한 이동 그리고 전투 훈련이 일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2) 그들에게 씌워진 "야만인"이라는 편견 탓인지, 무작정 들이닥쳐 약탈해가는 이미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몽골의 전략은 극도로 치밀하고 또 교활했는데, 헝겊으로 병력을 과장하거나 분견대를 이용해 거짓 후퇴로 유인하는 작전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함락된 도시를 황폐화하거나 전투 시에 포로를 선두에 세워 상대의 사기를 꺾어놓는 것 또한 다분히 의도적으로 설계된 전략이었다.

3) 또한 몽골족은 민간인 정보원을 투입한 첩보와 역참 체계로 효과적인 정보 전달 시스템을 구축해 침략 전 사전조사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 또한 그들의 세력확장이 즉흥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보여준다.

3. 몽골 제국의 확장과 쇠락
1) 앞선 내용돌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약탈과 교역, 생존을 위한 결속의 확장과 연속을 통해 몽골족은 몽골 제국으로, 산발적인 침략집단에서 체계적이고 현명한 지배자로 빠르게 거듭났다. 그들은 일회성 약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복지의 경제를 육성하고 다양한 종교 세력을 포섭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2) 현지인들, 특히 중국인과 무슬림에게 익숙한 정치, 경제 및 종교제의를 채택해 안정된 적응과 융화를 유도했고, 토착민을 관료로 등용함으로써 피정복민에게 설득력을 높이고자 했다.

3) 또한 각종 분야의 장인들에게 세금 부담을 낮춰주는 등 사회적으로 우대함으로서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면모를 보였다. 그런 환경에서 상인과 과학자, 예술가와 선교사들의 교류가 촉진된 것도 이상하지 않다.

4) 그렇게 전파된 문화와 지식, 전략과 제도는 각 분야의 민간인과 관료들, 사신과 밀정을 통해, 죽은 자와 산 자를 거쳐 동과 서, 남과 북, 땅과 바다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그야말로 저자의 말처럼 "제국 영역의 모든 곳에서 몽골족은 무기, 전략, 전술, 군사 조직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연속적이었던 몽골 제국, 그들은 숱한 역사서에서 그려져왔듯이, 정말 잔인한 약탈자, 무자비한 야만인에 불과했을까? 무엇이 그들의 전례없는 팽창과 문화 전파를 가능케 하였는가?

팍스 몽골리카, 세계의 번영은, 세계사는 몽골과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화와 폄하 모두를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보면, 찬란한 고대 문명, 모래바람과 야만의 이름으로 가려졌던 거대한 힘의 흐름이 보일 것이다.

저자는 대제국의 시조라 불리는 칭기즈 칸의 짧은 유년기부터 대륙의 패자로서의 제국의 번영과 저물어가는 풍경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결코 단일하지 않았던 사회상과 서방의 저항을 포함해서 말이다.

원서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장대하고 방대한 역사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거칠게 요약된 면이 없지 않으나 흐름에서 어긋나는 면이 없고 역사와 문화에 대해 큰 그림의 틀을 잡는 데 집중하는 데에 충실하니 초원의 제국과 사나운 유목 전사 민족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 혹은 환상만을 지니고 있던 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도서제공: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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