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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삭제 완역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ㅣ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현대지성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쓰는 개인적인 후기입니다.
#메리셸리 #프랑켄슈타인 #SF소설시초 #고전문학 #여성문학 #뮤지컬프랑켄슈타인
이제는 고전이 되었고, 혹자는 (도통 이해할 수는 없지만)명작동화로, 혹자는 영화 내지는 뮤지컬, 완역판으로 읽었을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번 글은 줄거리 소개보다는 개인적인 감상과 질문에 집중하기로 하자.
연금술 시대를 지나 측정과 실험, 객관적 진리를 향한 과학기술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오만의 도약이기도 했다. 이 작품을 선한 인간과 악한 괴물의 대립 내지는 단순한 개인의 실수 정도로 읽어내는 독자라면 초반의 발트만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 "오만이나 가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견해(p.55)"에 반면교사로서의 의미가 포함되었는지는 저자만이 정확히 알고 있을테지만. 책의 부제인 "현대판 프로메테우스"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명작동화나 공포영화에서 그린 슬픈 과학자와 끔찍한 괴물의 대립구도에 그다지 동의하기 어려울테다. 액자식 구성에서 바깥 서술자와 서사의 주인공인 빅토르 자신 모두 인간을 선하고 용기있는 존재로 그리고 있지 않나. 그러나 작중에서 무고한 이를 위협하여 범죄자로 모는 것도, 위대한 발명이라는 이름 아래 책임지지 못할 만용으로 재앙을 불러온 것도 인간이다. 창조주, 괴물의 신.
p.55 "천재들의 노고란 설사 그 방향이 잘못되었더라도 종국에 가서는 인류에 견고한 유익이 되지."
소설 전체의 묘사가 황홀하고 아름답다. 심지어 절망하는 주인공을 그릴 때 조차. 주인공의 절규와 괴물의 분노에서 과연 이 작품의 프로메테우스는, 창조주는, 괴물은 누구인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빅토르는 전능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혼란에 빠트릴 괴물을 인세에 불러낸 프로메테우스인가? 재앙을 만들어낸 창조주인가? 만들어졌을 뿐이지만 탄생의 순간부터 오점, 저주가 되어 스스로를 재앙으로 여겨야했던 괴물은 인간이 전능하지 않다는 깨달음과 좌절을 주는 프로메테우스인가? 혹은 차세대의 신이 될 것인가? (동종이 아니면 번식이 불가능하다는 암시가 있지만, 기실 시체를 모아 만들었으니 그다지 인간이 아닌 것만은 아니지 않나)
p.115 죽고싶은 순간이 닥칠 때마다 아프게 울었습니다. 평화가 내 마음에 다시 찾아들어 가족들에게 위로와 행복을 줄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책이 희망의 불을 모조리 꺼버렸으니까요.
p.123 인간의 충동애 배고픔과 목마름과 성적 욕망에만 있다면 다른 것에 의존할 필요가 거의 없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텐데요. 하지만 인간은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 우연한 말 한 마디나 그 말이 전하는 풍경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p.152 "부나 혈통 중 하나만 있어도 존경은 받지만, 둘 다 없다면 매우 드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선택된 소수의 이익을 위해 힘을 탕진할 운명에 처한 부랑자나 노예로 간주되더이다."
결국 빅토르가 두려워한 것은 괴물의 존재 그 자체보다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통제할 수 없는 여성체가 결합된 존재였을테다. 피창조물이자 부속물로 여겨지던 여성을 지배할 수 없다는 공포는 당대 사회에서 저자 메리 셸리가 부딪혀온 시대에서도 급속하게 퍼져나가는 중이었겠지. 허용되지 않은 존재의 침입,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은 역설적으로 대상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의 본문만을 옮기는 데에 그치지 않고, 풍부한 설명이 특기할만한 해제를 첨부한 출판사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본문의 외연을 넘어 페미니즘, 자연과 인간의 대립, 오만한 이성과 기술에 대한 경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는 말을 남기며, 이상으로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37번, 프랑켄슈타인(부제: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