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잊어야 하는 밤
진현석 지음 / 반석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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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반석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후기입니다.

머리말 이후 추천사도 해제도 없는 책은 참 오랜만이다. 더불어 전업 작가가 아닌 저자의 작품도 참 오랜만이다. 문외한의 고루한 편견일지는 몰라도, 날로 창작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음을 실감하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선 "추천사도 해제도 없다"도 없다는 평은 달리 말하면 "내용에 충실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약 350쪽에 가까운 분량을 오롯이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내용으로 채운 저자의 지구력과 서술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작품이었다. 스릴러, 추리 장르의 한계상 내용을 소개하기가 어렵다. 장르소설을 추천하는 일이 늘 그렇듯 이 책을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이번 서평은 작품에 대한 소감으로 갈음하기로 하자.

이 책의 주인공은 take로 나누어진 파트의 서술자인 김성균, 김성찬, 임강철로 나눌 수 있다. 특이하게도 서술자에 따른 시점을 장으로 나누지 않고 한 챕터 내에서 분할된 take로 구분해 마치 영화 시나리오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교묘하게 교차하는 시점과 사건 서술이 결말까지 숨가쁘게 따라가도록 만든다. 능숙한 서술트릭에 기시감이 들어 찾아봤더니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시공사, 2007)와 유사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밀리지 않는 기량을 이렇게 좋은 기회로 누리게 되어 감사하다.
작품은 맥락을 알 수 없는 대화로 시작해 뒤통수를 치는 충격을 남기며 끝난다. 읽는 내내 초현실적인 존재가 개입한걸까? 타임패러독스를 이용한 내용일까? 수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결국 사람의, 사람으로만 이루어진 이야기라는 점이 서술력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다소간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소설보다는 시나리오에 가까운 느낌이 들며, 인터넷 분할 연재였으면 딱 알맞을 정도인 글의 짜임새나 밀도가 아쉽다. 이 점은 저자의 장편 출판 경험이 쌓임에 따라 이런 시절이 있었다. 정도로 회자될 부분이니 벌써부터 가능성을 닫아두고 싶지 않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저자의 시선 또한 다소 아쉽다. 저자가 중년 남성이라는 한계를 부딪힌 탓이 아닐까 싶지만, 이 또한 앞으로의 숙고와 경험에 달려있으니 쉽사리 선을 긋고 싶지 않다.
전반적으로 차기작을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이디어이며 초반 서술은 작품 전체를 끌고 나가는 동력이 되고,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결말은 집을 다 지어놓고 문은 달지 않고 가버리는 것과 같다. 초반부의 흡입력을 덮는 그 순간까지 잃지 않고 질주해 마지막 문을 닫는 순간 뒤돌아보게 하는 작품, 여름의 무더운 시간까지 잊게 하는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출판사 바른북스에게 감사드린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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