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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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노년기를 '인생의 황혼기'라 부르곤 한다. 해가 뜨고 힘차게 활동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난 하루를 정리하고 가만히, 조용히, 부동과 무의식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처럼 인생을 정리하고 끝을 기다리는 시기라는 뜻일테다.

그렇다면, 나이는 들지만 영원히(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살 수 있게 된다면, 성장을 늦출 수는 없으니 나이듦의 시간을 영원히 영원히 늘여가며 '젊은 노인'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면, 우리의 시간은 영원한 저녁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기약없이 늘어난 삶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할까.

다분히 한국적인 상상을 해보자. 인공 장기 기술의 발달로 "장기 구독 서비스(이것도 지독한 블랙코미디가 아닌가?)"가 보편화된 사회에서, 그 돈은 다 누가 대나? 그 때도 건강보험 제도가 버티고 있다면, 어떤 형태로 가난과 부를 구분해낼까?

p.52 임플란트 장기를 제작하는 회사들은 제각각의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는데, 가장 성공적인 캐치프레이즈는 이거였다. "고장 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치료다." 거짓말은 아닌 것이 이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은 암이 아니라 심장 정지와 폐 정지다. 다른 말로 하면, 모자란 통장 잔고다.


비효율이 곧 사치인 세상, 삶을 즐기는 어리석음은 곧 돈인 세상, 치솟는 "생존 비용"과 정확하게 찾아올 죽음 사이에서 매 순간을 저울질해야 하는 세상, 푸르고 풍요롭고 어리고 넘치는 것을 기다리는 일은 상상조차 못할 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그런 세상.

그런 세계에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은, 가난이 생존을 앞지르는 삶을 어떻게 버티고, 남겨지고, 외로워하고, 숨을 쉬고, 울고, 사랑할까. 그때도 이마를 맞대고, 뺨을 어루만지고, 속삭이듯 이름을 부르고 아낌없이 눈을 감을까.

p.12 인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그 전까지의 인류가 만든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만들어냈다. 옛날 영화들이 몇몇 명작을 빼고는 대부분 잊혔듯, 우리의 기억 역시 선명히 빛나는 새로운 것들만 남고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다. 세계지도가 생겨난 이후로는 아무도 오아시스를 그리워하지 않듯이.

p.111 임플란트 장기가 세상에 등장하기 이전 시대의 노인들은 세월만큼 침식된 몸을 이끌고 몇 킬로미터를 무작정 산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몸 안에 새겨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시대의 노화란 세금과 기억만으로 존재하는 건지도 몰랐다.


"남의 돈"이 살아있을 권리보다 먼저가 된다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무엇을 미워하게 될까. 머릿속을 속속들이 알아낼 수 있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세계에서 어떤 마음을 가장 먼저 버리게 될까. 한없이 길어지고 "유능해진" 삶에서 여전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사랑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생의 마지막을 바칠 사랑을 찾는 사람. 왜 그렇게까지, 라고 묻는다면, 두려워서, 외로워서, 다른 방법이 없어서. 삶의 마지막에는, 하루의 끝처럼, 누구나 머리를 쓸어주고 눈을 감겨주는 다정한 손길이 필요한 법이니까.

p.43 지저분한 옷들에서 모래 냄새가 났다. 어쩌면 사막의 모래 하나하나는 죽은 이들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구가 점점 사막화되는 건 단지 이상기후 때문만은 아니리라.

p.123 성아는 아이들의 세계에 어느 날 갑자기 밤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아이들의 세계에 밝은 빛을 비추려고 노력했다. 광합성만 잘 시키면 나무가 빨리빨리 자라 존재통 없이 어린 시절을 졸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랑을 믿지 않는다 하겠지만, 누구보다도 사랑의 절실함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일테다. 깎여나갈 부분이 누구보다도 먼저 부서지고 닳아버린 사람일테다. 통각에 민감한 사람, 자기 안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살기 위해 돌변한 형태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 안에도 권력이 있다. 중간에서 이문을 떼먹는 이가 있고, 보다 나중에 죽을 사람이 먼저 죽을 사람을 등쳐먹고,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속인다. 이런 세계에서 발버둥치는 것은, 뜨겁게 쿵쿵 울리는 심장은 멍청한 짓이다. 아파하는 것은 사치이다.

로맨스라고 봐도 좋을까. 제목은 연인들이지만, 내용은 무겁고 흐릿하다. 꼭 저녁처럼, 손을 뻗어 더듬지 않으면 서로의 표정을 알 수 없는 시간처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살았고, 슬퍼하고, 무언가를 깨달았으며, 누군가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p.231 138억 년은 모든 과거를 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다. 고작 100년씩 살았던 기억을 모아 138억 년을 채우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기억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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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각본집
강승용.오선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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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어떻게 보존되는가. 기억은 누구에 의해 지켜질 수 있는가.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혹은 몸소 겪어낸 사람이 없는 기억의 존재 기반은 무엇으로 담보될 수 있는가? 한국사회는 "안전"하다고, 한국은 "비상식적인" 폭동의 가능성을 완전히 지워버린 정적이고 공고한 사회라고 말하는 자, 과연 누구인가.

겨우 40여년 지난 일이다. 그 때쯤 태어난 사람이 마흔이나 조금 넘겨 아직도 창창하게 사회생활을 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꼭 그만큼 지나간 일이 되었다. 그 때 그 곳의 참상을 목도한 이는 더 이상 말이 없다.

이 영화는 허구다. 그러나, 어쩌면 그 곳에 이런 사람 하나쯤 없었을까. 해서, 이 이야기는 완전한 허구가 아니다. 1980년, 가장 뜨거웠던 도시를 뒤로 하고 자리를 뜨는 관객들이 그 때 그 곳의 이름들을 잊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허구로 흩어지지 않는다.


생전 사람을 향할 일이 없으리라 여겼던 몽둥이에 맞아 죽었기 때문에, 시민 모두에게 두 발씩 박아넣을 만큼 넉넉히 지급된 총알에 뼈가 부서지고 살이 터져나갔기 때문에, 어느 기자들의 말처럼,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죽은 듯이 살라고 입을 틀어막혔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총으로 주먹으로 몽둥이와 권력의 이름으로, 저항하지 않는 나태함으로, 곧이곧대로 믿은 순진함으로, 살아남은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비겁함으로, 자기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는 비정함으로 해친 것에 사죄해야 한다.

침묵은 기억을 희미하게 한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말해지고 역사의 일편에 자리해야 할 기억의 지위를 불안하게 뒤흔드는 힘이 있다. 지우려 애쓰는 과거를 끊임없이 글로, 말로, 이야기로 불러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모든 비극은 한 번으로도 족하다. 기억에 올바른 자리를 주는 것이 그 시작이다. 끝에서 시작해 빈 자리를 채우는, 마땅히 찾아올 이를 기다리는 이야기는 이 영화를 보고 듣고 읽을 이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그저 읽고 듣고 볼 일이다. 잊지 말라, 외침에 잊지 않겠다 약속할 뿐이다. 있는 힘껏.


" 독재 권력이 거대한 국가권력을 앞세워 개인의 욕망을 채우려 할 때 우리의 형제, 가족, 이웃은 그 권력 앞에 무기력하게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은 무참히 짓밟혔지만, 폭력의 희생자는 여전히 질긴 삶을 영위하고 있다."

" 상처를 평생 가슴에만 묻고 살았을 힘없는 소시민 철수네 가족을 통해, 국가가 휘두른 폭력의 결과가 개인에게 한평생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담고 싶었다. 어떤한 경우든 공권력으로 국민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를 구하고자, 이 이야기를 여러분께 보낸다."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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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박내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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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0년 전 바로 그 일의 정확한 경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때의 충격을 기억하지 못 하는 이는 많지 않다. 적어도 "오보"로 순식간에 고꾸라진 희망과 지난한 투쟁을 지켜본 이라면.

특별하지 않은 날, 보통의 어느 날, 수십 수백명의 사람이 해상 재난으로 죽었다. 구조할 시간도 여력도 있었건만 미흡한 초기 대응과 완전히 엇나간 후속 대처로 살랄 수 있었던 목숨을 잃었고, 책임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으며, 슬픔은 왜곡과 모욕으로 얼룩졌다.

원인과 추이를 두고 수많은 말들이 오갔다. 생각이 있든 없든, 돌아가는 사정을 알든 모르든 모두가 말을 얹었다. 그렇게 오가는 말들에는 슬픔이, 분노가, 공포가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어떻게 책임을 지는 사람이, 국가가 무고한 사람을 버릴 수가 있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욕과 조롱 또한 적잖이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가는 "내란세력"의 조작을 의심했고, 누군가는 자기 이득을 위해 꾸며내기를 원했으며, 누군가는 "놀러가다 죽은 걸 왜 남을 탓을 하느냐" 소리를 질렀고, 또다른 누군가는 알지 못하는 죽음을 조롱하기 바빴다.

차마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없는 말이 시류와 집단과 권력 뒤에서 던져졌다. 죽은 사람과,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흐른 지금, 어쩌면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이제는 그만 하라"고 말한다. 잊을 떄도 되지 않았느냐고, 왜 지금까지 물고 늘어지느냐고, 이미 끝난 일이 아니냐고.

정말 그런가? "이제"와 "때"와 "끝난"은 언제, 누구에게 말해질 수 있는가? 슬픔에는 끝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애도에는 끝이 있어야 하는가?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을 넘어 끝나지 않은, 몇 번이고 반복되는 참사가 현재의 자리에서 쓸려나가지 않도록 있는 힘껏 붙잡는 사람들이 있다. 증거를 남기고, 책임자에게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잊혀질 수 없는 것을 사라지지 않게 보존하여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것이 정말 상식 밖의 일이라면, 단 한 번의 과오로도 충분하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마땅하다. 정말 그러한가. 그것들은 정말 지나간 일이 되었는가?

"지나간 일"은 책임자가 마땅한 책임을 졌을 때, 해결되어야 할 것이 모두 해결되었을 때, 한 점의 의문도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말해질 수 있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때, 그것은 비로소 과거에 안착할 수 있다.


이는 그렇게 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수많은 참사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말과도 같다. 그것들이 과거의 일이기를 원하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살아남아진 사람, 남겨진 사람일것이다.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이는 역설적으로, 그것이 기억 너머로 자연스레 사라지기를 바라는 이일 것이다. 그래도 되기를 가장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말만 들어도 아는 재난들이 있다. 너무도 끔찍해서 오히려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 죽음들이 있다.그것들은 제대로 기억되고 있는가? 우리와 그들에게는 충분히 슬퍼하고 분노하여 받아들일 시간이 주어졌는가? 우리 사회에서 '재난'의 지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디의 누구에게라도, 재난을 각오해야 하는 일상은 당연하지 않다. 죽음으로 내몰려도 되는 사람은 없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그 때 그 시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마음은 여전히 참담했다.

사람이 사람을 향하는 마음을 한 단어로 모으면, '차마'일 것이다. 차마 어떻게 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사람을 돕게 하고 불의에 나서게 하는, 함께하도록 하는 힘일 것이다. 차마 모른척하지 못하는, 차마 잊지 못하고 차마 등돌리지 못하는 이야기에서 나는 세상 무엇보다 깊은 슬픔과 사랑과 큰 힘을 보았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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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잠든 사이에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지음, 권도희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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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작부터 암시되는 죽음과 함께. 망상에 사로잡힌 남자는, 원래도 온화하고 유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썩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사사건건 불만에 의심을 달고 사는 데다 성미는 불같고 도무지 존중이라고는 모르는, 그의 정신은 무너져가고 있다.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고, 심장처럼 단단했던 기억은 나날이 흐려지고 있다.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달리하면 위기와 불안의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다.

문제는 그가 평생을 연방대법관으로 살아온, 사법체계의 정점에서 수많은 이들과 권력의 향방에 영향을 미쳐온 거물이라는 데에 있다. 신념과 열정만큼 적도 많아졌다. 심지어 그의 죽음과 파멸을 가장 강력하게 소망하는 이는 바로...

그의 몰락은 그 자신만의 불행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누구를 의지할 수 있는가, 누구를 믿어야 할 것인가. 그는 궁지에 몰려 있다. 거대하고 강력한 적의 위협을 피해 아주 중요한 것, 물러서서는 안 되는 것을 단단히 숨겨야 한다. 적으로부터, 그 자신으로부터.


주인공 에이버리의 삶은 순탄치 않다. 마약중독자인 어머니, 가난, 불안한 직장. 그는 뛰어난 지성과 끝없는 지적 호기심을 가졌으나, 현실은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여자라서, 유색인종이라서, 나이가 아주 어리지 않고 당당한 매력이 있지 않아서...

수없이 깔보고 가장 중요한 성과는 안중에도 없는 사회에서 몇 안 되게 그를 사람으로, 정확히는 "그나마 덜 한심한 부하"로 여겨준 이가 있다. 그 자신도 엄청난 노력과 철저한 자기관리, 정의를 위해서라면 물러서지 않는 심지로 살아온 사람.

청천벽력같은 소식, 그가 죽음에 임박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가슴 아픈 일이나 여전히 일상을 살아갈 수는 있다. 문제는 별다른 접점도, 친밀감도 없었던 사이에, 냅다 법적 후견인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이다. 멀쩡히 살아있는 배우자와 자녀를 두고, 대체 왜?

p.29 "그녀에게 전해... 해답을 구하려면, 동쪽(East)에서 찾아보라고. 강(river)을 봐야 해. 그 사이(in between)에 있는. 광장(the square)으로 가야 해. 라스커. 바우어. 날 용서해(forgive me)."


여기서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뭔진 몰라도 위기에 처한 남자, 하워드 윈은 에이버리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겼다. 졸지에 얼마 남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을 홀랑 빼앗기고 그의 수수께끼를 넘겨받은 에이버리에게 말 그대로 삶을 뒤흔드는 압력과 위험이 몰려드는데...!

뒤로 갈수록 상상도 못했던 치밀한 복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니, 여기까지 내다봤다고? 불세출의 천재란 대체 뭘까,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평범한 사람보다 한 수, 아니, 때때로 상상도 못 할 경우의 수까지 내다보는 이들이 간혹, 아주 드물게 있기는 하다. 비범하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사고력을 지닌 자들. 그들은 아주 쉽게 오만해진다.

물론 그 오만은 개인적인 냉소나 폭력성으로 향하지만은 않는다. 그보다는 오만의 심부가 타인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데에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와 타인의 생각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행동과 개별 사건들의 궤적과 접점을 극도로 치밀하게 추적하고 예측할 수 있기 떄문에.

p.206 하워드 윈은 무례하게도 아무 설명도 없이 에이버리를 함정에 빠뜨리고, 그녀의 인생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에이버리의 룸메이트가 집에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었고, 모르는 사람들이 에이버리를 마치 체스판 위의 말처럼 다루게 만들었다. 쓸모없는 힘을 가지고 있고,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불운한 비숍처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대의를 위해 장기말처럼 "배치하고 운용하는" 이들은 일종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비열하지 않은가. 이 오만의 핵심을 살짝 비껴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최고의 승부사가 되는 것, 자기 자신마저 하나의 말로, 희생패로 써먹는 것.

이쯤에서 묻게 된다. 제목의 "정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누가 악인가. 누가, 정의의 신의 눈을 가리고 그 칼날을 제 손으로 휘두르려 하는가. 이것은 신념의 이야기이다. 취약하고, 절박한 신념.

아무것도 예상하지 말고, 빈 손으로 따라가기를 권한다. 그렇게 우리 사회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정의의 신이 눈을 가린 사이 우리는, 어디를 헤매고 있는가. 연약한 선은 끝끝내 살아남을 수 있을까.

p.524 "그 사람은 애국자가 아니에요. (...) 당신도 마찬가지고. 당신들은 괴물이야." (...) "숭고한 합동작전이었어. 인간의 목숨은 전쟁에서 피해를 입는 법이야. 실수하지 마. 우리는 전쟁 중이니까. (...) 순진하게 굴지 마. 나라를 위한 일이야. 난 내 조국을 위해 봉사해. 필요에 따라 외국과 국내에 있는 모든 적들로부터 조국을 지켜왔어." (...) "당신이 죽인 사람들은 적이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출판사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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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정전
오가와 사토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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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해온 말이지만 사람의 바깥을 상상하는 글은 사람의 이야기다. 사실 사람이 쓴 글 중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는 게 얼마나 되겠냐만은. 사람-너머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이야기는 사람의 본질적인 속성들을 강하게 부각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픽션만큼 현실과 단단히 연결되는 장르는 없다.

세상에 좋은 작품은 수없이 많겠지만, 기분 좋은 허탈함과 함께 패배를 인정하거나, 정신없이 말려들어가 덮을 때쯤엔 훌쩍훌쩍 울게 하는 작품을 만나는 건, 일종의 행운 같은 것이다. 단순한 얄미움을 넘어 "마음을 탈탈 털어먹혔다"고 말해도 좋을만한 수작을 만난다는 것은.

거칠게 말해, 썩 옳다고 생각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이거 순 미친놈 아니야?"를 끌어내는 캐릭터, 전개, 설정, 작가를 만나는 경험은 뭐랄까, 독자의 세계 저 깊은 곳을 바꿔놓는 일이 아닐까.

p.33 "정확히 말해서 타임머신이 가짜라는 전제하에 생각했을 때 유일하게 합리적인 트릭이었다면... (...) 다케무라 리도는 천재야. 마술사상 최고의 천재. 이런 트릭을 고안해서 실행에 옮기는 건 천재 아니면 미친 사람밖에 없어. 만약 그 사람이 천재가 아니라면..." 누나가 그다음 한 말을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타임머신이 진짜였다는 거지."


사실 일본 작가의 추리소설, 적어도 아 이건 일본 소설이다, 하는 느낌이 강하게 묻어나는 작품을 그다지 기꺼워하지 않는다. 분명 '좋아하지 않는다' 와는 다르다. 오히려 촘촘한 묘사와 집착적으로 느껴질 만큼 밀착된 서술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추리력, 개중에서도 독자의 예상과 시야를 뛰어넘고 빈틈을 찌르는 내용이라면? 좋다. 아주 좋다. 그와 별개로 약은 오른다. 열받아...! 좀 더 솔직히는, 니가 언제 그랬어! 언제 어디서 몇 시 몇 분 몇 초!!! 하고 바득바득 우기고 싶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질문(보다는 억지겠지만)은 과연 성립될 수 있는 것인가? 언제 어디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어디가 앞이고 뒤인가? 언제를 시원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p.106 "세상의 시간으로 따지자면 대략 이십 몇 년 뒤, 당신이 첫 승리를 거둔 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지난번 뵈었던 것은 미래 같지요. (...) 그러나 ‘미래’란 없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지난번도, 이번도, 그 지하실에서 보낸 밤에서 보면 둘 다 과거입니다."


작가는 여섯 편의 단편을 통해 묻는다. 한 존재와 "역사"를 꿰뚫는 거대한 시간의 경계를 일순에 무너뜨린 텅 빈 곳으로 독자를 초대해, 아니, 끌어 앉혀 묻는다. 당신은 단 한 번의 기적같은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습니까? 남은 일생이 아닌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를 뒤틀어 바꿔버리는, 단 한 번, 순간의 도박을 위해.

죽은 자는 말이 없으나, 남겨진 것은 말을 하지요. 존재가 맞닿아 연결됨으로서 전해지는 것은 무엇을 말할 수 있습니까? 목적이 앎에 선행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의 단서를 따라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똑같은 개성을 추구하는 세계에서 낭만을 지켜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찰나의, 아주 작은, 단 한 번의 신호가 바꿔버리는 거대한 역사를, 배아의 잠재태로 파고 내려가는 상상조차 못 할 이 기획을, 존재의 가능성을 걸고 맞부딪히는 싸움에서 당신의 당연함은 어느 희미한 가능성과 우연의 조합임을 알고 있습니까?

"제 이야기를 들은 당신은 시간의 개념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 픽션은 사람의 이야기, 현실의 틈새를 벌리고 비트는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에게 아주 반가울 책이다. 그러나 말랑말랑하다거나 설레는 내용은 절대 아니라, 뭐랄까…

충격을 넘어서는 경악과 감동을 야 빨리 집어넣어!!! 눈치채기 전에 비벼!!! 흔들어섞어!!! 짠!!! 해서 저쪽 작가분께서 보내시는 겁니다, 하고 쓱 밀어주는 느낌이랄까. 분명 신기하고 즐겁고 맛도 있는데 어째 한구석이 찜찜한... 거 가진 것 좀 다 보여봐요. 수상한 놈일세, 싶은 동시에 우리 이제 친하죠? 또 볼거죠?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랄까.

전체적인 흐름이나 메인 테마가 추리소설이냐, 하면 꼭 그것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회 소설이냐, 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하겠다. 혹 SF냐 묻는다면, 그렇기도 하다고 답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혹시나, 표지에 눈길을 붙잡혀 "대체 이게 뭐냐?"고 묻는 이에게는... 뭐긴 뭐예요 심연이지... 와 함께 눈을 피할 수밖에.

여러모로 참 수상쩍고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단언컨대, 즐겁다. 이 작가가 열어젖힐 시공간으로 언제든 주저없이 뛰어들고 싶을 만큼. 여름이 오기 전에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이 모든 말은, 당신의 과거에서, 혹은 미래에서,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던 현재에서 기록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출판사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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