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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각본집
강승용.오선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24년 3월
평점 :
기억은 어떻게 보존되는가. 기억은 누구에 의해 지켜질 수 있는가.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혹은 몸소 겪어낸 사람이 없는 기억의 존재 기반은 무엇으로 담보될 수 있는가? 한국사회는 "안전"하다고, 한국은 "비상식적인" 폭동의 가능성을 완전히 지워버린 정적이고 공고한 사회라고 말하는 자, 과연 누구인가.
겨우 40여년 지난 일이다. 그 때쯤 태어난 사람이 마흔이나 조금 넘겨 아직도 창창하게 사회생활을 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꼭 그만큼 지나간 일이 되었다. 그 때 그 곳의 참상을 목도한 이는 더 이상 말이 없다.
이 영화는 허구다. 그러나, 어쩌면 그 곳에 이런 사람 하나쯤 없었을까. 해서, 이 이야기는 완전한 허구가 아니다. 1980년, 가장 뜨거웠던 도시를 뒤로 하고 자리를 뜨는 관객들이 그 때 그 곳의 이름들을 잊지 않는 한 이 이야기는 허구로 흩어지지 않는다.
생전 사람을 향할 일이 없으리라 여겼던 몽둥이에 맞아 죽었기 때문에, 시민 모두에게 두 발씩 박아넣을 만큼 넉넉히 지급된 총알에 뼈가 부서지고 살이 터져나갔기 때문에, 어느 기자들의 말처럼,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죽은 듯이 살라고 입을 틀어막혔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총으로 주먹으로 몽둥이와 권력의 이름으로, 저항하지 않는 나태함으로, 곧이곧대로 믿은 순진함으로, 살아남은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비겁함으로, 자기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는 비정함으로 해친 것에 사죄해야 한다.
침묵은 기억을 희미하게 한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말해지고 역사의 일편에 자리해야 할 기억의 지위를 불안하게 뒤흔드는 힘이 있다. 지우려 애쓰는 과거를 끊임없이 글로, 말로, 이야기로 불러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모든 비극은 한 번으로도 족하다. 기억에 올바른 자리를 주는 것이 그 시작이다. 끝에서 시작해 빈 자리를 채우는, 마땅히 찾아올 이를 기다리는 이야기는 이 영화를 보고 듣고 읽을 이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그저 읽고 듣고 볼 일이다. 잊지 말라, 외침에 잊지 않겠다 약속할 뿐이다. 있는 힘껏.
" 독재 권력이 거대한 국가권력을 앞세워 개인의 욕망을 채우려 할 때 우리의 형제, 가족, 이웃은 그 권력 앞에 무기력하게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은 무참히 짓밟혔지만, 폭력의 희생자는 여전히 질긴 삶을 영위하고 있다."
" 상처를 평생 가슴에만 묻고 살았을 힘없는 소시민 철수네 가족을 통해, 국가가 휘두른 폭력의 결과가 개인에게 한평생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담고 싶었다. 어떤한 경우든 공권력으로 국민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를 구하고자, 이 이야기를 여러분께 보낸다."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