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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세계
톰 스웨터리치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오늘은 오랜만의 SF! 것도 잘 읽지 않는 외국 SF소설을 가져왔습니다. 허블에서 출간된 톰 스웨터리치의 『사라진 세계』 입니다.
출판사의 간략한 소개에서, "'시간 여행 허가'를 받은 최고의 여성 수사관"이라는 문구에 꽂혀서 서평단 신청을 해보았습니다. 작가를 착각했는데도 뽑아주셨더라고요,,ㅎ
"시간 여행"이라는 주제는 항상 기대감을 불러 일으켜요. 하지만 그에 반해서 실망했던 경우도 정말 많고, 차라리 정말 마음에 들었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이 소설은 그 기대감을 절반 이상 부합했던, 소설이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어려워서 이해 안가는 SF 소설을 좋아하는 제게는, 어쩌면 거의 완벽했던! 클리셰의 클리셰를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으신 분들은 저처럼 아마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항상 모든 책을 읽을 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의 흐름으로 서사는 이해하는 데 너무 익숙한 인간이라 이런 식의 시간여행을 이해하는 걸 영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제가 생각해내지 못하는 서사가 만들어지는데 쾌감을 느끼는 인간이라, 이번 소설을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집어 들었는데요.
이 소설이 다른 소설과 다른 두 가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사라진 세계』가 택한 새로운 시간관념과, 작가가 정한 주인공 '섀넌 모스'입니다.
보통 제 기준에서 상상 가능한 시간여행이란, (1)현재와 (2)현재에서 주인공이 향하게 된 과거, 그리고 그 (3)과거의 영향을 받은 현재
. 이렇게 세 가지 시간대에서 벌어지는 일인데요. 『사라진 세계』에서 취하고 있는 세계는 '양자역학의 다중우주 해석론' 토대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초반에 세계관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겠죠.
주인공인 섀넌이 향하게 되는 미래는 (소설에서 '굳건한 대지'라 불리는) 현재에서 실재가능한 무수한 우주입니다. 시간여행을 한 존재가 도달한 미래는 존재가 사라지면 세계도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그것을 가능성의 차이, 라고 읽던 저는 해석했습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미래 시간대의 우주가 무한히 존재하며, 그 우주들은 시간 여행자의 관측이 이뤄질 때만 존재하는, 즉, 관측이 끝나면 다시 ‘존재하지 않던’ 상태로 돌아가는 세계로 전제한다."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소개하는 책 소개에는 위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미묘한 이 차이로 소설은 세계관안에서 다른 시간여행물들과 다른 독특한 설정들을 사용합니다. 시간여행자들을 돌아가지 못하게 잡아놓는 세력이 존재하는가 하면, 섀넌이 도달한 미래에서 그가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을 살인죄로 처벌해야 하는지, 도달한 미래에서 데려온 사람을 굳건한 대지, 그러니 현재에서 죽인다면 그것이 살인죄가 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안에서는 큰 부분을 할애하지는 않는 부분이지만, 새로운 세계관을 만난 독자들은 그 부분을 계속 곱씹게 됩니다. 이런 구체적인 세계관이 SF 처돌이들이 이 소설에 열광하게 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을 이런 식으로 풀어가는 소설은 처음이라 정말 새로웠습니다. 목차 자체도 년도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가장 미래의 이야기가 프롤로그로 들어가 있고,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지막에 다시 프롤로그를 읽어야 무언가 소설을 완독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구성 자체도 잘 짜여진 시간여행물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두 번째로는 작가가 설정한 주인공 '섀넌 모스'입니다. 보통 이러한 수사물, 세계를 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띄는 인물을 남성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흐름에 맞게 여성인 수사관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 뿐 아니라, 책의 초반부에서 섀넌은 한 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착용하게 됩니다. 그러니 저는 최초로 장애인 여성이 세계를 구하는 소설을 접하게 된 겁니다.
작가가 설정한 이런 특성들은 당위성을 가지고 약 600쪽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섀넌의 특성이 눈에 띄거나, 차별을 받는 대신 일상 속에 당연히 존재하는 인물로 그려진 다는 것이 대단했습니다.
섀넌의 실재적인 어려움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 동정심도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섀넌의 삶은 아주 배제하지도 않은 중심을 잡은 서술이 무척 좋았습니다.
섀넌 모스를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낸 서술. 제가 이런 책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 지 모르겠습니다.
『사라진 세계』는 장엄한 소개글과는 다르게 초반, 섀넌이 일가족 살인 사건의 범인을 쫒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러한 수사의 일상이 어떻게 그를 마지막까지 데려가게 하는지 아마 중반까지도 전혀 상상하지 못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확실한 결말을 떠올리기보다, 작가가 써나가는 새로운 세계를, 그리고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재미로 『사라진 세계』를 펼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