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라칼리스 가족에게는 '찌꺼기 유전자'가 흐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폴의 아버지는 스카치테이프로 제 얼굴과 안경을 동여매고 옥상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 마이애미에서 펠로타 선수로 지내던 폴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고향으로, 그러니 찌꺼기 유전자가 시작된 곳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폴은 살면서 가족, 그러니 자신의 유전자에게서 벗어나려 떠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운명에 대한 개인의 숭고한, 혹은 격정적인 투쟁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가 폴에게 선사한 특징은 그 무엇보다 비현실적이지만, 폴이 살고 있는 세상은 그 어느 곳보다 현실적입니다.
펠로타 경기를 본 스카우터, 선수들의 파업, 돈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여러 사건은 충분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폴은 항상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그러니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기 위해서 도망칩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상속》은 자살유전자가 대물림된다는 상상을 토대로 전개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이자 한 남자의 드물고 기이한 가족사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인물이 상속받은 유산이란 사실 인간이면 누구나 떠안게 되는 삶이다."(p.371)라는 문장을 읽고 나서 어렴풋이 작가가 이 소설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유추해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상속』 책 소개에서도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장폴 뒤부아의 소설이 언제나 주목하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기이한 주제로 시작된 이야기가 어떻게 보편적 인간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느냐 묻는다면, 그것이 답이라 생각합니다.
폴이 그 유전자를 피해 도망가는 그 일대기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생이란 불행하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보통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행복은 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어디선가 받아온 '찌꺼기 유전자'를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없어지지 않고, 털어내지지도 않으며 하룻 밤 자고 일어난대도 사라지지 않는 문제들.
그것이 나의 가족일 수도, 환경일 수도, 주변의 인간관계, 취업, 경제적 사정일 수도 있겠죠. 단지 '잘 될 거야.' 나 '힘내.'라는 말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안고 사는 우리 모두 폴과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운명을 거부하던 폴, 그가 택한 마지막을 운명에 대한 좌절, 혹은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자유를 위해 치르기로 선택한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소설에서 폴이 마지막 선택을 하기까지의 머릿속의 여정을 자세히 그려주는데, 그 길을 통해 확인한 폴의 선택은 좌절이라기에도 자유라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떠밀리지도, 쟁취하지도 않은 그저 세상에서 '밀고 밀림'의 중간엔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요.
이러한 폴의 일상이 불행한 우리의 삶의 동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설 후반부에서 결말로 이끌어 나가는 힘이 좋았어요.
저는 처음 접하는 작가이기도 하는데 읽는 내내 프랑스 느낌이 나는 신기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주제조차도 뭔가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생소한 지명과 이름을 극복하기만 하면 읽는 데 어려움은 없고, 유쾌하진 않지만 우울감이 책장을 잡아채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독한 현실에서 있을법하지 않은 소재를 유용하게 섞어내는 방식이 정말 좋았어요. 아마 한 번 잡은 이상은 결말이 궁금해서라도 끝까지 놓지 못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