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안다. 여성혐오가 존재한다는 것. 그러므로 여성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 자신의 어머니부터, 여동생, 아내까지 모두 가부장의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여성을 차별하는가?
책에서는 '사회', '기득권', '가부정적인 사회'와 같은 말로 애써 대답을 회피하지만 답은 명료하다.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남성이다. 가부장적 사회로 가장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남성이고 남성중심사회가 여성에 대한 몰이해와 몰상식으로 그들을 배척한다.
이 책은 왜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너무 상냥하게 이해해준다. 알파남성들이 차지해 얼마 남지 않은 쌀알같은 자리를 여성들이 가져가는 것 같아 보여서.
이 이유에 가해자는 갑자기 사라진다. 남성은 어느 새 또 이 사회에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젊은 남성들의 좌절이 있다. 극심해진 양극화는 '금수저'나 전문직과 대기업, 공직 등 일부 상류 계층의 남성을 제외한 나머지 남성의 미래를 박탈하고 있다."(p.182)
여성의 미러링도 정당하지는 않다. "사태의 본질은 양극화로 인한 절망과 더불어 여전히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남성에게 요구하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p.237)
가부장제의 기득권이 어떻게 자신을 기득권의 몸에서 빼어내고 피해자성을 취하는지, 한국의 남성들은 여성의 피해자성마저 앗아가는 지 그의 논리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남성에게 요구하는 사회. 이 사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누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남성에게 요구시키는가? 가부장제의 사회이다. 가부장제의 사회는 누가 이끌어가는가? 남성이다. 알파남성들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보다 하위계층인 여성에게 분풀이를 하는데, 이게 너무 자연스럽다. 그런데 왜 여성을 혐오하는가? 한국남성들의 굴절혐오는 너무 지극해서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로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남성에게 요구하는 사회였는가?
정말 남성이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세상이었나? 시골집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노름, 도박, 술에 찌들어 살았고 할머니가 가계를 꾸려나갔다. 이런 이야기가 정말 새로운가? 오히려 집안을 이끈 할아버지라는 존재를, 아버지 라는 존재를 신처럼 떠받들지 않았나? 돈벌어오는 ATM기계라며 스스로를 연민하는 밈이 퍼졌으나 실제로 그런 집안이 많은가? 정말 그들은 가족들에게 아끼지 않고 제정적인 지원을 해주었나?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탱하지 않으면 남성사회에서 질타를 받던 사회가 있었나? 그 반대 아닌가?
내 주변만 봐도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거나, 자신이 번 돈을 가족들에게 쓰지 않으며,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계가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도대체 가장으로써 남성이 책임을 다한 사회는 언제였는가?
남성의 측면에서 왜 여성을 혐오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주는 대목이 우스운 이유다. 능력있는 남성을 원한다? 독립한 성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능력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 연봉. 이것이 남성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인가? 그건 사회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압박감이다. 너무 엄살이 심하다.
가족은 위해 일하는 남편? 우습지도 않다. 가족이 없다면 일하지 않을 것인가? 게다가 스스로 가족을 꾸리기로, 결혼을 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닌가?
독립한 성인은 스스로를 먹여살리기 위해서라도 능력있어야 한다. 승진하고 싶어도 한다. 이걸 무슨 남성의 힘듦으로 토로하는 것이 황당스럽기 그지 없다. 오히려 회사에서는 '가장'이라는 이유로 기혼여성과 비혼여성을 밀어내고 남자를 승진시킨다.
가부장제 사회가 젊은 남성과 여성을 힘들게 한다 말하기 전에, 스스로 정말 그 제도로 자신이 얻은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자신의 가해자성을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기술이라는 것이 정말 황당했다. 난 항상 이런 기울어진 사회에 남성들이 약자성을 뺏어가는 것이 의문스러웠는데 알고 싶지도 않았으나 이런 논리흐름이라는 걸 처음 깨닫게 되었다.
여성의 아픔을 인지하지만, 작가 스스로도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전담하도록 하며(상호 의견 합의했다고 하는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 여자가 있던가)어머니는 불쌍하지만 그런 어머니를 가부장제의, 그러니 남성의 권력유지를 위해 착취한 아버지에 대한 책망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논리라면 도대체 작가는 누가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걸까. 여성을 혐오한다는 그 사회는 도대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해결책 없는, 그러니 우리 모두가 힘들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양비론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뻔하다.
당사자성 없는 남성이 젠더를 이러한 시각으로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이 책은 도대체 남성이 무슨 논리로 약자성을 취하는 지 궁금한 여성들에게만 권한다. 질낮은 여성혐오와는 다른 방식의 여성혐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지은 제목처럼, 여성에 관하여 덜 말해질 때란 결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여.
버지니아 울프가
"…내가 우선 여성에 관해 남성이 쓴 책을 모두 읽고 그다음에는 남성에 관해 여성이 쓴 책을 읽어야 한다면, 내가 그것을 모두 읽고 글을 쓰는 동안 백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 알로에 꽃을 두 번은 보아야 할 테니까요. "
이렇게 말했듯이
남자여, 이미 예전부터 남자는 여성에 대해 그리도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니 남자여,
이제 그만 입을 닫을 때가 왔다.
정말 여성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스스로가 가진 가해자성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메가폰을, 스포트라이트를 넘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