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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목 빠져라 기다려온, 바로 제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소설 《단명소녀 투쟁기》를 가져왔습니다!!!
출간 전 서평단 신청해서, 먼저 전자책으로 받아서 읽었고 오늘에서야 드디어 종이책을 받았습니다!!!
진짜, '박지리문학상' 개최한다고 했을 때부터 기다려왔던 수상작을! 출간 전에 먼저 읽을 수 있어서 정말 너무 행복했고요. 아직도 딱! 첫 문장 읽고 느꼈던 감정이 생각나요. 이거다, 이거 된다.
심사평 중에 "첫 장을 읽기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소설"이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첫 문장 읽자마자 무슨 말인지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일단, 여러 문학상 중에 굳이 '박지리문학상'을 기대하고 기다렸던 이유가, 개인적으로 박지리 작가의 작품들을 너무너무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지리 작가가 가진 독특함을 가진 소설을 너무나도 읽고 싶어서도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언가 박지리문학상 수상작이라면 저의 그러한 니즈를 완벽히 충족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1회, 2회를 지나면 이제 박지리 작가의 신작을 보고 싶어서 이따금 돌아버릴 때가 있는 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경장편 분량이라 미리 받은 전자책으로 금방 읽었는데, 종이책으로 먼저 읽었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할 만큼 종이책을 정말 잘 만들었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저 얼굴 일러스트와 낯가렸는데, 계속 보다 보니 익숙해졌어요.
이게 150쪽 정도 되는 짧은 편인 분량에, 가로를 줄이고 세로를 늘린 사륙변형판에, 커버 없는 반양장이더라고요! 경장편 분량이라 사실 무선제본인 줄 알았습니다. 커버 없는 반양장은 요즘 많이들 나와서 익숙한데도 이 책이 너무너무 특이한 제본 형식이라고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싸바리 한 표지가 완전 반짝번쩍유광이어서 그런 거 같더라고요!!!
유광이 유행인 거는 확실,, 게다가 표지 한가운데 아주 크게 놓인 일러스트도 한몫한 거 같구요. 이게 책등은 글씨를 그냥 인쇄해서 유광코팅 입힌 거 같던데, 이게 앞표지에 있는 글자는 또!!!!! 뭘 한 건가요!!!!!!
이게 같이 인쇄를 하고 그 부분만 빼고 유광을 입히면 이렇게 나오는 건지, 아니면 따로 표지에서 뭘 파낸(?)건지! 어떤 후가공인가, 너무 예쁘다진짜,,이게 위에 뭘 입힌 거 같진 않고 음각으로 패어 있는데 이 후가공처리 때문에 일러스트가 엄청 강렬한데도 제목이 안 밀리더라고요.
게다가 띠지! 이렇게 디자인된 띠지는 저는 처음 봐요. 잘라서 책갈피로 사용하라고 쓰여있는데 아까워서 이걸 어떻게 자르나요.
'연명담'을 주제로 하는 책이니 만큼 책 안에 디자인적으로 물결선, 직선 같은 선이 많이 사용되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띠지에 넣을 생각을 했을까,,정말 너무 예쁘다. 그리고 띠지 왼편에 있는 저 일러스트가 너무 너무너무 예뻐요, 사실 띠지부터 너무 예뻐서 놀랐어요. 개인적으로 선 많이 쓰는 디자인을 좋아해서 표지, 내지 디자인 정말 마음에 들어요. 서평단 안 됐어도 소장용으로 샀을 것 같아요. 사실 글씨도 작은 글씨 좋아하는데 여기는 원고 본문 빼고 다 작은 글씨라 진심으로 (일러스트에 낯가렸을 때부터) 책에 모든 부분이 너무 취향이었어요.
그리고 희한하게 볼륨이 크지 않은 책인데 가름끈이 두 개 더라고요. 것도 흰색이랑 검은색 가름끈을 넣어 주셔서 뭔가 괜히 수정이랑 이안이 생각나고, 그들의 수명이 생각나고, 연명설화를 모티브로 한다니까 온갖 선에게 괜히 감정이입중
책 만듦새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워낙 한국 설화나 신화에 무지해서 몰랐는데, 소설《단명소녀 투쟁기》는 흔히 전해지는 수명 연명설화 중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설화를 모티브로 하는 소설이라고 해요. 보통 이러한 설화들은 주인공이 '미성년 남성'이며 신을 찾아가 수명을 늘려달라고 부탁하는 반면, 《단명소녀 투쟁기》는 설화가 지니는 가부장적인 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신화를 구성했다고 출판사 서평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도 최근에 신화 모티브로 단편을 썼었는데, 그러면서 제일 고민이 되는 게 수백 년 전의 이야기에서 현재의 시공간에 유의미한 요소들이 뭐가 있을까 하는 점들이더라고요. 신화는 이데올로기의 언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신화로 나는 현재에서 어떤 이데올로기를 긍정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제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어느 부분을 고치고 어느 부분을 차용할지 고르는 것부터 일이어서 《단명소녀 투쟁기》가 더 궁금했고, 그만큼 더 좋았어요.
처음에 열아홉 구수정은 입시 상담을 하려고 북두라는 무당을 찾아가는데, 뜬금없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남동쪽으로 가면 "지평선에서부터 먹구름과 비가 솨아아 달려오는 모양으로" (단명소녀 투쟁기, 12쪽) 다가오는 죽음을 늦출 수 있다는 답변을 듣고 수정은 일단 남동쪽으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 디딘 현실과 그려지지 않는 환상의 공간으로 움직이는데 이 공간의 변화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 부분만 돌려서 두 번은 더 읽었어요.
환상의 공간으로 옮겨진 수정의 투쟁기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의 연속인데도, 오히려 이 모든 인물들과 사건들을 담담하게 설명하듯 풀어내고 있어서 읽는 독자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들의 상상할 수 없는 서사를 따라가도록 해요. 갑자기 설명되지 않은 시공간으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독자를 너무 자연스럽게, 이상해서 뒤돌아볼 틈도 주지 않은 채 끌고 갑니다.
설화의 공간은 죽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안을 만나며 시작됩니다. 일곱 명의 아이, 일곱 명의 노인으로 시작해서 허리에 가마를 얹은 '저승 신'을 협박하여 수정은 살기 위해, 이안은 죽기 위해 그들이 죽여야 하는 자들이 적힌 명부를 받아들고 여정을 계속합니다.
그들은 악사와, 마을의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두어야 하는 청소부, 눈-인간, 모기-인간, 허수아비-인간과 같은 존재들을 죽입니다. 서사에 인물들이 등장하는 방식이나 특성이 정말 옛날 설화같이 개성을 지닌 고유한 인간으로 그려지지 않고 하나의 역할 그 자체로 읽히더라고요. 이게 유난히도 이 글이 판타지적으로 느껴진 요소 중 하나였던 거 같아요. 게다가 각각의 특성이 너무 독창적이고 글의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우러져서, 전혀 당위성이 없음에도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워 보이더라고요. 제가 처음으로 신화를 읽었을 때 느꼈던 '냉택없음'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ㅋㅋㅋㅋ 이 부분을 작품해설 파트에서는 서사의 특성을 "장소마다 인물이 특정 과제를 수행하고,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료할 때마다 생명-시간이 연장되고, 다음 장소로 이행하여 다른 임무의 수행을 반복하는 단선적 구조"(144쪽)라고 설명하면서 이게 "스테이지 공략형 게임의 스토리텔링 기법"(144쪽)이라고 설명합니다. 제일 간단한 스토리텔링 구조라서 글의 특성이랑 잘 어우러지는 거 같아요.
결국 이안은 이곳을 꿈이라 규정하고 꿈에서 깨기 위해 수정에게 칼을 휘두르지고 수정을 계속해서 피하기만 하지만.
살고자 하는 수정이 죽고자 하는 이안의 가슴을 베었고, 저승의 감옥을 풀어 저승을 "깨끗이 쓸어버"(108쪽)립니다. 저승 신은 '깨끗이'라는 말은 없고 그곳에는 잔해만이, 폐허와 몰락만이 남는다고 말하지만,
수정은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영원히…."(109쪽)라고 답하며 평생 이어진 착각은 더 이상 착각이 아니게 된다고 답합니다.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125쪽)라는 문구만큼이나 책을 읽으면서 와닿았던 문구였는데 이게 결국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소설을 관통하는 시각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미 살아낸 시간은 깨끗이 쓸어낼 수 없으며 그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잔해"를 남기며 삶에 상흔을 내는데, 우리가 그 잔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폐허가 될 수도 있고, 쉼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오늘은 아니다."(21쪽)라는 수정의 다짐은 '내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에 의해서 환상의 공간으로 옮겨져 죽음을 피하고 수명을 늘리기 위한 투쟁기를 이어가다 현실로 돌아와 할머니에게서 받은 "오늘 낳았어. 그래서 이름이 오늘이."(120쪽)라는 개를 만나고 오늘의 일기를 쓰며 끝납니다.
작가의 말에서 "우리는 다 단명을 타고난 것"(127쪽)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구름의 이동속도로 우리 뒤를 쫓는 죽음을 내일로 피하고, 결국은 꿈에서 깨 오늘을 살기로 한, 그러니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125쪽)는 현실에서의 수정의 다짐이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다짐이자 격려로 느껴졌어요.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이 소설은 수많은 죽음을 보여주면서, 죽음으로써 삶을 영위하는 위로를 건네고 있더라고요.
이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과 서술이! 바로! 제가 원하던!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죽음이라는 단어를 2번이나 쓴 6어절 문장이, 오히려 인물의 삶의 의지를 보여줄 수가 있나? 정말 최고다,,, 개인적으로는 '투쟁'이라는 이야기를 끌어와서 주체성을 부여한 것도 정말 좋았어요. 이미 새로움을 잃은 설화가 지금 다시 내보여질 수 있게 만드는 최고의 포장지 같은 느낌?
이 소설을 끝까지 읽다 보면, 소설 구성이랑 내용이 너무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ㅠㅠㅠㅠ
이러니까 이제 제2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을 기대할 수밖에 없잖아요. 게다가 현호정 작가님의 다음 신간을,,벌써,,기대를 해봅니다!!!!!!!!!!!!!!
"모든 게 거짓으로 이루어진 곳에서는 무너지는 것들만이 진실"(97쪽)이라는 세상에서, 우리는 단명을 피해서 어디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요.
《단명소녀 투쟁기》진짜 오래 기다렸는데, 정말 그 이상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소설이었어요.
꼭 한 권씩 사서 빨리 2쇄 찍었으면 좋겠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