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 클락워크 도깨비 - 전3권 고블 씬 북 시리즈
정지윤.남유하.황모과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단 세권 다 판형이 115*185mm 이고 다들 100쪽 내외의 분량이라, 한 손에 집고 보기도 편리하고 누워서 읽는 것도 정말 편했어요. 기본 사륙변형판보다도 특히 가로가 짧아서, 손 작은 편이데도 한 손에 들기가 편하더라고요.

작은 판형 안에서 여백도 여유있고 글씨 크기도 큰 편이에요, 가독성 높히려고 엄청 신경 쓰신 거 같더라고요.

표지는 절반 이상이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는데, 3권이 통일성 있어서 되게 예쁘네요. 그 중에 개인적으로는 《클락워크 도깨비》표지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스팀펑크 시대물이라는 컨셉과 일러스트레이터의 장점이 극대화된 표지이지 않나 싶어요. (표지 볼 때 사실 제일 눈에 띄었던 건, 그 무엇보다 'Goble ThinBook Series'라는 출판사이름ㅋㅋㅋ 거의 작가이름만큼 커서 놀랐어요. 보통 출판사 로고나 이름은 되게 작게 들어가던데, 여기는 브랜드 로고가 제일 먼저 눈에 띄더라고요)

제가 《클락워크 도깨비》,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순으로 읽었는데, 첫 번째 책, 두 번째 책 면지는 책 표지나, 표지색과 조화로운 색을 넣었구나 했거든요. 그런데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는 면지가 선명한 파란색으로 들어가 있어서 혼자서 되게 신기해하다가, 아 눈이나 얼음 세계 떄문인가? 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신기했어요.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으로 황모과 작가님의 <모멘트 아카이브>를 읽었었고, 이어서 단편집 《밤의 얼굴들》까지 다 봤는데! 되게 오랜마네 황모과 작가님의 책을 읽은 것 같아요.

그럼 《클락워크의 도깨비 -경성, 무한 역동 도깨비불》먼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불을 꺼트리지 않겠다 다짐하며 한성 폭마처럼 내달리던, 연화에 대하여

클락워크의 도깨비

사실 역사물이고 연화의 일대기를 관망하면서 서술하는 작품이라, 읽으면서도 한정연 작가님의 《소녀 연예인 이보나》 생각이 났는데 마지막에 작가님이 딱 언급하셔서 뭔가 되게 반가웠어요. 저 소설집도 진짜 너무 재밌었거든요.

《클락워크 도깨비》는 구한말 여느 여자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로 한 연화가 등장합니다. 대장장이 아버지처럼 불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 연화는, 일본 순경이 아버지를 죽이자 가슴에 무한동력 불을 품고 사는 갑이와 함께 한성으로 갑니다.

한일합병이 되어 일본인들이 점차 조선으로 들어오며 조선인인 연화를 압박하는 한변, 여성이라는 성별도 연화에게는 하나의 굴레로 작용하게 됩니다. 남장을 하며 인력거를 끌고 살아가던 연화.

연화가 뜨거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었다.

자기 안의 불을 함부로 식히지 않을 작정이었다. 진짜로 온 세상이 흉흉해지도록 마음속 불을 지피고 싶었다

p.60

이 소설에서 연화는 '불'과 '달리는 행위'로 표현됩니다. 자신의 불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불을 꺼트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경사가 만들어내는 속도 속에 서 있으면 속이 뻥 뚫"(p.22)리는 자신을 긍정하며 계속 달립니다.

그리고 갑이의 꺼지지 않는 동력원을 이용한 기계들도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조선인과 여성이라는 특징으로 언제나 수동적이고 고통 '받기'만 하던 인물을 불과 달리기라는 속성을 부여하여 새롭게 그려냅니다.

언제나 여성의 해방은, 달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걸음을 박차고 나가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게 되는 거 같아요. 제국주의 시대를 선택하고 스팀펑크라는 장르를 끌고 오면서 장르적 특성을 잘 활용하셨다고 느꼈어요. 보통 스팀펑크 장르들이 전쟁과 엮어서 사용되더라고요.

스팀펑크 자체가 당시의 과학기술의 발전을 긍정하면서도 부정하는 느낌으로 이용된다면, 일제강점기 때 연화를 불타오르게 할 전차를 마냥 긍정할 수 없는 상황을 잘 그리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마지막 갑이의 심장을 꺼내어 철마에 넣으면서 "영원히 타오르자"며 돌아올 이들을 위해 철마를 하늘로 날리는 연화의 말은 연화의 개인의 서사를, 일제강점기에 살아남은 민족에게 전해지는 광의의 메시지로 느껴집니다.



현실에 허구가 덧씌워진 AR세상, 허구로 진실을 가린 보호구역 중 진짜 세계는 어디인가?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두 번째 소개할 책은, 정지윤 작가님의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입니다.

이 소설이 제 취향에 가장 많이 들어맞는 책이어서, 진짜 빠르게 읽었어요.

확장현실을 보여주는 생체칩이 상용화된 근미래 시기를 배경으로, 생체 칩을 거부하는 보호구역 '베니스 힐'에 사는 요한의 친구 J가 죽었습니다. 요한은 쌤과 쌤의 친구 재즈와 J를 죽인 범인을 찾기로 합니다.

이 소설은 머리말로 사실적임을 강조하나, 소설의 형식이기에 허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또 소설 속의 실제 지명을 사용하며, 이 소설은 스스로 허구와 진실의 경계선으로 향하려 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추락하면 반대의 가치를 잃는 이 이야기는,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니고 허구이지만 허구가 아닙니다.

실제 있을법한 사건을 꾸며 낸 작가가 이 폭력적 허구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라는 고민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잔인한 어른의 본 모습? 이익을 두고 다투는 추악한 관계? 진실을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요한?

우리는 이 소설 속에서 누굴 닮고 누굴 닮지 않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며 이 소설은 그 고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소설이 그리는 세 개의 세상을 비교하며 읽는 게 재밌었어요.

가상현실로 뒤덮인 생체칩이 활용된 바깥의 세상.

가상현실을 거부하고 현재를 살기를 원했으나,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숨기려 했던 보호구역의 세상.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세상.

세 개의 세상은 모순이라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서,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긴장감과 속도감 있는 스릴러 장르의 SF를 좋아하는데, 제 취향에 제일 부합했던 소설!!





겨울이 가고 겨울이 오는, 삶이 가고 죽음이 오는 잔혹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호러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세 번째로 읽은 책은 남유하 작가님의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입니다. 소설의 장르를 '판타지 고딕 호러'라고 지칭하는데요, 이 모든 장르의 특성을 모두 잘 살린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표지가 소설의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렸더라고요.

겨울만 존재하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은 죽은 사람을 투명한 얼음 관에 묻어 일정 기간동안 집에 두는 관습이 있는데요, 이 죽은 사람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동굴로 보내져 그곳에서 살아있는 이들을 지키는 영혼 '에니아르'가 된다고 믿습니다.

작가님이 구현하고자 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마을'이라는 설정이 크게 와닿았어요.

얼음관 속 엄마를 사겠다는 스미스씨의 등장으로 본격적으로 소설이 시작됩니다. 스미스씨는 척박한 환경인 마을의 발전을 이륙한 인물이지만, 그것이 선한의도로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팔려간 엄마의 관, 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아름답게 풀어내는 작가님의 스토리텔링이 제일 놀랐고요. 그리고 그 스미스씨가 가지고 있는 반전이 고딕 호러의 특성을 아주 잘 살려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사를 따라가며 읽으면 작가가 소개해주는 새로운 세상을 함께 거닐 수 있는 느낌을 느낄 수 있고요, 저는 판타지 장르의 이런 스토리텔링이 좋더라고요.

이 마을이 죽음을 대하는 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땅에 묻는 일은, 산 사람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를 단적으로 완벽히 분리하는 장례풍습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화장도 마찬가지이고. 그런게 공존이라는 단어를 강렬한 시각적 표현으로 연출할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 못 해봤어요. 우리는 그 곳을 방문하며 조상들과 이어짐을 느끼는데, 집 안에 관을 안치하면서 그들을 떠나보낼 시간을 줄 수 있겠다, 정말 따뜻한 장례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어느 민족을 더불어, 신성시되고 금기시되는 죽은 이가 안치되어있는 관을 화폐를 지불하고 구매하겠다는 스미스에게 강렬한 반감과 역겨움을 동시에 느꼈던 거 같아요.

석탄공장, 가공육 공장 등을 지으며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지만, 결국 그들의 믿음과 신화를 무시하는 그의 행보가 《클락워크 도깨비》의 일본인들로 읽히기도 하고요.

결국 카야가 그 말을 떠나는 결말이, 그 시작이 엄마를 두 눈에 가득 담는다는 장면이 이 소설을 긍정하게 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