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피싱
나오미 크리처 지음, 신해경 옮김 / 허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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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MZ 세대에 최적화된 스릴러'라는 홍보문구가 이해가 가는 소설이네요. 《캣피싱》은 가로세로를 조금씩 늘린 사륙변형판이고, 400쪽이 넘는대도 생각보다 책이 가벼워요. 표지는 절반 이상이 일러스트로 되어 있는데 책 제목이 음각으로 되어있어서 신기해요. 전에 다른 책도 그렇고 일러스트가 강하면 음각으로 제목을 넣나 봐요. 확실히 제목이 눈에 잘 들어와요. 제목 색도 예쁘고,,, 항상 궁금한데 이게 후가공인지,,,그냥 파는 건지,,그리고 안에는 박인지,,

목차는 따로 없고, 중간중간 스테프가 캣넷을 이용해 친구들과 채팅하는 부분이 실제 채팅방처럼 대화로만 구성되어 있는 점도 재미있네요.

소설 《캣피싱》은 로봇 사용이 현재보다 상용화된 근미래를 바탕으로 하는 SF 소설입니다. 소설은 초반 아버지와 비슷한 존재만 보아도 소스라치게 놀라 강박적으로 존재를 숨기며 이사를 다니는 엄마 밑에서 자란 스테프가 등장합니다. 스테프가 느끼는 유일한 유대는 엄마보다도 캣넷의 얼굴도 모르는 친구들로 향하게 되고요. 아마 이 부분에서 MZ 세대를 끄집어온 게 아닐까 싶어요. 디지털 세계에 익숙하니, 인터넷으로 사람을 사귀는 일이야 새로울 것도 없기에.

처음에는 아버지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다가, 중간에 비밀이 많은 엄마를 의심하게 되었다가, 사실 아버지가 스테프에게 찾아오기 직전만 해도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아슬아슬한 만큼 후반부로 갈수록 흡입력이 높아지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초반부터 등장한 의문들을 결말 전에 아주 깔끔하게 모두 풀어내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소치 이모의 이름까지도,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던 소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친구를 구하기 위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인공지능의 등장]

스테프를 구하기 위해 마이클을 차로 받아버린 채셔켓. AI의 행위에 대한 도덕윤리적 고민은 인공지능을 그리는 SF 소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그만큼 상대도 AI를 믿어준 적이 있던가, 생각해 봤더니 그 부분은 조금 찾기 어렵더라고요. AI와 인간의 쌍방의 우정.

"윤리적인 부분을 고정 값으로 잡아 코딩하다 보면 문제가 생기는데, 실제 인간들은 그런 식으로 윤리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야.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시켜 주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말이 어떤 결과와 수단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거야."

최근에 《군주론》을 읽어서 그런지, 마키아벨리즘적인 대사가 나올 때마다 꽂히네요. AI가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시켜준다고 말하면, 사실 결말을 <매트릭스> 말고, 있을 수가 있나요? 결국 죽음뿐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유명한 로봇 3원칙을 떠올리자면,

1. 로봇은 인간에게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해를 입힐 수 없다

2. 로봇은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한다

3.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인데요. 윤리에 절대적인 원칙은 없고 인간들조차 사소한 정보 값의 변화로 전혀 다른 결정을 해나가는 마당에, 정확한 값이 필요한 코딩으로 인공지능의 도덕 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체셔캣은 첫 번째 원칙부터 어긴 셈이죠. 끝까지 '채셔캣을 믿지 마'라고 말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 봅니다.

사실 여기서 체셔캣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아주 작은 고민을 하던 점'이 이 책에서 그리는 인공지능이 흥미로웠던 거 같아요. 스토리를 따라가면 당장이라도 스테프를 구해줘! 라고 외치고 있었으나, 체셔캣을 아주 인간적으로 윤리를 고민하는 존재로 만들었다다고 생각했어요. 참 궁금하네요, 체셔캣이 가진 것이 자아라면 그에게 기계 몸이 주어졌을 때 그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까?

최근에 문학을 이해하는 '가능세계 이론'에 대해서 읽었는데, 실제 세계가 작가가 속해있는 세계, 텍스트 실제세계가 작가가 그려낸 책의 세계, 텍스트 지시세계는 텍스트 실제세계가 지시하는 구체적인 상이라고 사는데, 작가가 문장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70대 노인만이 등장하는 소설에서 그가 보관하고 있는 배냇저고리를 통해, 그에게 아이가 있었음을 추측" 하는 독자가 상상하고 유추하는 세계라고 해요.

《캣피싱》의 텍스트 지시세계란, 외적으로 판단되는 모든 요소로부터의 자유로움을 긍정하는 체험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스테프와 레이첼의 우정과 연대가 이어 사랑으로 읽히고, 성 지향성에 대한 고민을 묻는다면 "부모님과 상의하세요"라고 답변하는 로봇을 해킹하려 하고, 게다가 '태어나지 않은' 존재를 친구로 내리는 모습을 보며, 친구 없는 외톨이로 지칭되는 이들의 우정의 경계는 도대체 어디 가서야 멈출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아이들의 세계에서 지낸다면 적어도 혐오와 차별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물론, 엄마를 죽이려 쫓아오는 미친 남자가 있지만).

부정적인 고뇌 없이 당연히 얻어지는 경험을 《캣피싱》의 세계 안에서만 누렸던 점이 참 아쉽네요.

사실 정말 잘 짜인 SF 스릴러였다고 생각해요. 빠른 속도와 긴장감을 동시에 누리고 싶다면, 추천드립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니까 한 번씩 찾아보셔도 좋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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