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내려온다
오정연 지음 / 허블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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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허블에서 나온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분 가작을 수상하신 오정연 작가님의 7개의 단편이 묶인 단편집 《단어가 내려온다》를 가져왔습니다.

허블에서 신작 서평단 신청해서! 책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읽는 소설이자 SF여서 엄청 기대했습니다..!

일단 표지에서 제목에 찍힌 박이,,은박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책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예뻐요. 요즘 양장도 양장인데 뭔가 유광코팅하는 유행이 돌아온거 같아요. 최근에 황금가지에서 올해 나온 책들도 무선제본에 맨들반짝 유광이더라고요. 어쨌든, 박이 너무 예쁘다,,,그리고 표지랑 맨들번쩍 유광이랑 되게 잘어울리는 거 같아요,, 게다가 책등까지 박 찍어서 대박ㅋㅋㅋ박성애자라 너무 예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책 제목 빼고 표지의 모든 글씨체가 고딕인데, 누군가 고딕을 좋아하시는지ㅋㅋㅋ궁금하네요.

그리고 책 자체도 꽤 가벼워요 내지를 중량 가벼운 걸로 한 건가 싶네요. 본문 종이가 좀 다른 거 같은데, 어떤 거 쓰셨는지 궁금궁금 가벼워서 오며 가며 출퇴근길에 읽기 좋더라고요.

그럼 《단어가 내려온다》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총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 《단어가 내려온다》는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2편 밖에 없어요. 처음에는 우주를 주제로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다 읽고 나니 이 단편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 낯섬과 낯익음', 그것의 경계를 계속해서 그려내고 있어요. 그러면서 스스로의 기반, 시작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 느껴져요.

특히, 〈분향〉이나 〈미지의 우주〉같은 단편의 경우에 화성이라는 낯선 삶의 배경으로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한국 여성'이라면 느끼거나 겪을 법한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SF 장르의 엄청난 새로움! 독창성!이라는 특성을 보여준다기 보다 일상을 툭툭 던져내는 글들이 많이 실려 있어요.

〈분향〉같은 경우는 화성에서 지구와 원격으로 마련한 분향소에서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지구-화성 간 원격 차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다른 행성에 이주해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어떤 정신'이 지구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들과 한국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유교의 정신이 이어지는 그 아득함이,,

낯익은, 익숙한 지구와 그 가족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들을 이어주는 매개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제게는 엄청난 무게의 압박으로 읽히더라고요. 이 단편은 그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건네줄 뿐이라, 과연 작가는 어떤 방향을 제시해 주고자 했을까 궁금하기는 해요. 저는 '뿌리'로 해석되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나 끊을 수 없는 정체성에 옥죄어 들어가더라고요.

저는 그러한 방향성에서 '한국' 특유의 삶의 방향을 그리는 것이 〈미지의 우주〉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남편을 따라온ㅠ 기혼여성들의 커뮤니티 안의 미지와 우주. 화성 이주 2세대인 미지가 딸 우주와 함께 한국으로 가게 되는데, 아이의 유치원 등록을 통해 본인들이 한국에서 '특별한 가정'에 속하며, 계속해서 기존의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튕겨져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되죠.

배경을 우주로 확장시키면서도, 우리 사회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부각시킴으로써 그 허구성이 여실히 드러나게 돼요. 이러한 기준은 이제 '가족'이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에서부터 시작되어 사회 속의 '개인'이 어떻게 '정상성'의 범주에 갇히게 되는지, 애초에 그 범주의 기준은 무엇인지까지 뻗쳐가더라고요.

제가 이 단편집에서 제일 좋았던 단편은 표제작인 〈단어가 내려온다〉, 와 〈행성 사파리〉였는데요.

〈단어가 내려온다〉는 지학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벌어지는 세계를 배경으로 해요. 인간에게 단어가 내린다,라는 간단한 세계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 '단어'라는 것은 무엇이고, 사어가 되어버린 단어가 내릴 수 있는가, 사용자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내리게 되는가, 2개국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언어가 내릴 것인가 등등 언어의 의의를 꿰뚫어가는 주제 확장이 너무 재밌었어요. 이걸 국어학 SF라고 하더라고요ㅋㅋㅋ

바꿔 말하면 지학에 참여한 말만이 단어로 인정된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명사와 동사, 형용사와 부사, 감탄사와 심지어 조사까지 모든 품사가 내리지만, 어미만 내리지 않는다.

〈단어가 내려온다〉, 60쪽

지학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은 인간 공동체가 공유하는 언어체계가 확립한 이후여야 하는데, 이런 지적인 공동체를 구성한 것은 인간밖에 없으니 지구에서 지학은 인간에게서밖에 관찰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얘기하는데, 이 개념에서 '지학'을 연결해 읽어낼 수도 있더라고요. 이 연결도 되게 신기했고요.

받은 단어로 인생이 결정된다고 믿기도 하고, 그러므로 좋은 단어를 받게 해주는 코디네이터까지 등장하는 시대의 '나'는 화성으로 향하는 이주 우주선에 탑승해있습니다.

열다섯이 되면 내려오는 단어는 '나'에게는 아직 내려오지 않고, 언어학자가 되고 싶었던 '나'는 화성으로 향하는 우주 한가운데에서 최초로 관측된 산개성단을 마주하면서 주격조사 '-이'를 받습니다.

언어라는 것이 결국 상징이 부여된 체계인데, 이건 상호 공유되는 약속이기도 하죠. 언어의 큰 특징은 각 부여된 언어들에는 당위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인 것 같아요. 사과의 이름이 사과일 필요가 없다.

지학의 개념으로 내가 관찰하는 아직 인간이 이해하지 못한 우주의 커다란 존재가 있고, 내가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 '주격조사'를 받는다면,

어쩌면 언어는 인간들만이 공유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상징성은 온 우주에 퍼져 '나'만이 아니라 '나'가 실존해있는 세계까지 이어져 그들이 주체성을 띨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해요. 시각으로 인지된 존재와 세상에 실존하는 신체가 일치되는 순간, 어쩌면 '정상'이라는 이데올로기는 해체할 수 있는 방식도 되지 않을까..?

화성의 언어는 지구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내용을 중심으로, 아주 간단한 조사나 어미 없는 명사, 동사, 형용사들의 나열이게 되는데.

그곳으로 향하는 '나'는 내 앞에 주체를 빈칸으로 두면서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설집에서 나오는 화성 언어의 특성들도 되게 새로워요. 그래서 국어학 SF 인가,, 그렇다면 저는 국어학 SF를 좋아하나 봐요..!

저는 언어체계를 사용할 수 없는 지적 수준을 지닌 장애 아동들에게는 어떤 단어가 내릴 수 있는가, 이게 궁금해지더라고요.

언어를 학문적인 영역을 넘겨, 실용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언어는 결국 사용해야 하는 도구이자 사용되어야지만 생명력을 얻는 의사소통의 수단인데. 낮은 지적 능력을 지닌 장애 아동들에게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언어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보완대체의사소통 수단을 제공하면서, 그들이 최대한 사회 속에서 실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기구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그렇다면 이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상징'이란 무엇일까? 만일 이들이 자신의 의사소통을 그림이 그려진 카드로 한다고 하면, 이들에게 내리는 지학은 '그림'이 되는 것일까?

궁금하네요..

〈행성 사파리〉는 다른 방식으로 너무 좋았는데요. 일단 쌍둥이 지구라는 개념 자체가 재밌었어요. 이걸 쌍둥이(복제인간?)로 치환시킨 관점도 그렇고.

지구의 시간을 그대로 걷는 쌍둥이 지구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을 배치시키면서, SF 장르 특유의 새로움까지 모두 잡은 소설이다! 〈러브, 데스, 로봇〉 에피소드가 생각나기도 하더라고요. 이 단편의 주제는 쉽게 꺼내지는데, 그럼에도 주제가 좋아서 끝까지 인상 깊은 단편이었어요.

오정연 작가님이 그려내는 세상은, 꽤나 담담한 것 같아요. 출판사의 서평처럼 '다정함'을 느끼기보다는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방향성,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끝을 읽어낸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와요.

현실에서 끄집어 낸 일상을 우주에 풀어내는 구성을 띈 이야기들이 제일 재밌었고, 이제 이후에 작가님이 어떤 일상을 끄집어 낼지는 좀 더 기대해 봐야 할 것 같네요.

한국에서만 살아온 저는 한국이라는 뿌리를 저를 얽매이는 하나의 억압으로 이해하는 반면, 여러 국가와 여러 도시를 지나쳐 살아온 오정연 작가는 비슷하면서도 저와 정반대의 느낌의 '뿌리'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전 제가 새로 내릴 뿌리를 찾아서, 뿌리를 내릴 땅을 밖으로 눈을 돌려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단편집의 마지막 장을 넘겼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이 다루는 언어의 개념이 너무너무너무 재밌어요.. 다음에 국어학 SF 단편집을 내주신다면!!! 바로 살 것 같네요ㅋㅋㅋ

그럼 오랜만에 읽은 SF 소설집인 《단어가 내려온다》의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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