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연대기 - 시간 여행자를 위한 SF 랜드마크
셰릴 빈트.마크 볼드 지음, 송경아 옮김 / 허블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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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허블 매대 앞에서 들었다 놨다 몇 번을 고심하다 결국 내려놓고 나왔던 바로 그 책, 《SF 연대기》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그때 구매했으면 인포그래픽 포스터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왜 안 샀는지 스스로도 의문입니다. 다시 포스터를 보니까 미친 듯이 가지고 싶어졌습니다. 제 방 벽에 붙여 놓으면 아주 완벽할 거 같아요.



책 표지에 대표적 일만 한 소설을 '랜드마크'로 만들어서 바둑판으로 진열을 해놨어요. 2015년도에 제미신 <부서진 대지> 3부작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각 장 도비라도 일러스트로 표현된, 출판사 소개에서 '랜드마크'라고 부르는 그림들이 실려 있어요. 보고 소설 찾는 재미도 있고요.

책이 거의 500쪽이고 양장본임에도 불구하고 내지 중량이 가벼워서 (제본 방식과 쪽수에 비해) 크게 무겁지 않았어요. 사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들어보고 무거우면 E-book으로 구매하거나 빌리는 편인데, 이 정도는 가방에 넣어서 다닐만하다. 그리고 책의 컨셉이, '시간 여행자를 위한 SF 랜드마크'인데 표지도 보드게임 판처럼 되어 있고, 굿즈인 포스터도 놀이공원 일러스트같이 되어 있는데, 컨셉이랑 정말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컨셉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SF 장르를 통틀어 역사와 정의를 설명하는 종류의 책을 몇 권 찾아봤었어요. 그런데 보통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체적으로 정리된 책은 없더라고요. SF라는 장르의 정의가 아주 독특하다 보니 시간의 순서에 구애받기보다는 장르적 특성에 대해 구조화해서 설명하는 책이나, 혹은 전체적인 장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SF소설, SF영화와 같이 매체에 국한시킨 책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은 목차 자체도 연도별로 구분되어 있고 소설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나 장르 자체의 시대별 특징에 대해 서술하는 책이어서, 아마도 SF에 조금 관심이 있고 조금 찾아봤다. 그런데 옛날 SF소설들은 어땠는지 궁금하네? 하시는 분들이 입문서로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형식적인 측면으로도 정말 친절한 책인데, 장이 끝날 때마다 한 꼭지로 '결론'을 넣어서 다시 그 장의 내용을 정리해 줍니다. 장 시작할 때에도 제목 하단에 장에 대한 짧은 설명이 들어가 있고요. 이렇게 개론적으로 흐름을 훑거나 예시를 많이 드는 책들의 경우 읽다 보면 앞의 내용이 휘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이 두 장치로 지식을 최대한 머릿속에 오래 보존할 수 있게 해준답니다! 그래서 시대의 흐름을 한눈에 훑고 싶다 하시는 분들께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2019년도에 아르테에서 나온 《에스에프 에스프리》가 'SF 입문서'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왔는데, 저는 아무래도 입문서라면 《SF 연대기》 쪽이 더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제 조금 더 SF가 가진, 소설 속에서 특징적으로 사용되는 기법들을 알고 싶다 하시는 분들이 두 번째로 《에스에프 에스프리》를 읽으면 완벽하지 않을까!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문

1장. SF의 정의

2장. 건스백 이전의 과학소설

3장. 확산: 1930년대

4장. 캠벨의 문맥 ‘혁명’: 1940년대

5장. 냉전, 소비지상주의, 사이버네틱스: 1950년대

6장. 새로운 현실, 새로운 소설: 1960년대와 1970년대

7장.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관심: 1960년대와 1970년대

8장. 새로운 정치, 새로운 기술: 1980년대와 1990년대

9장. 제국과 확장: 1980년대와 1990년대

10장. 여러 가지 미래가 가능하다

SF의 정의에서 제가 제일 애용하는 문장은. "SF는 SF라고 불리는 것들의 총칭이다."인데, 이 말은 즉 장르의 정의가 생겨나는 것보다 장르로 명명되는 것이 먼저이며 이후에 장르로 명명되는 작품들을 갈무리하였을 때 정의가 만들어진다는, 방향성을 강조합니다. 또 장르 자체를 기본 SF장르 팬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적인 측면으로 접근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왜인지 SF라는 장르의 정의 기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미꾸라지처럼 장르의 틈을 빠져나가는 작품들이 꼭 존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은 SF는 느슨한 그물망 같은 범주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SF의 정통성을 찾는다면 미국 잡지와 페이퍼백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SF의 기원을 고딕소설 속에서"찾기도 합니다. SF이냐 아니냐의 투쟁은 사실 과학소설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나서 지금까지, 학자들이 얼마나 SF의 학문적이고 고정된 정의를 가지고 싶어하였는지의 열망의 크기에 관계없이, 여전히! 여전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원래 다른 장르소설도 이런지, 이제는 궁금해집니다. 고딕소설은 무언가 추리소설의 원형에 더 가깝거나, 오히려 호러와 비슷할 것 같기도 하고요.

유난히도 정의에 관해 논쟁이 많으니만큼 그 이유가 현재 시공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과학소설. 사이언스 픽션은 다른 장르들보다 더욱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장르이잖아요. 주제가 과학이니만큼, 기술의 발전이라는 측면만으로도 소설의 흐름이나 경향성이 변하는 것은 물론, '사변 소설'또한 SF 장르 중 하나로 포함되니만큼 과학기술보다 기술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장르가 속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에 《멋진 신세계》가 SF이다 아니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사변소설도 SF니까 멋진 신세계도 SF에 포함된다고 주장한 반면, 상대방은 그건 SF가 아니라 문학이라고 이야기를 해서 상당히 황당했었어요. 그러나 이 책에서는 《멋진 신세계》를 '"1930년대 가장 유명한 비非펄프픽션"(p.145)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어서 속이 뻥 뚫렸습니다.

사실 SF소설이냐 아니냐,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 유형이 3장 '확산:1930년대'의 '과학과 사회 비판'이 아닐까 싶었어요, "펄프픽션 바깥에서도 작가들은 인종주의, 우생학과 파시즘의 발흥과 함께 기술적 변화가 일으킬 사회적·문화적 결과에 관심을 가졌"(p,144)으며 아마도 이 부분에서 고전적인 하드 SF만을 인정하느냐 아니느냐의 길이 갈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저는 이 책에서 연도의 흐름에 따른 장르를 설명하는 것도 좋았는데, 이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소설의 경향성을 짚어주는 부분들이 가장 재밌었어요. 그리고 그 파트가 이 책만의 차별점이라고도 생각했고요.

'5장 냉전, 소비지상주의, 사이버네틱스 : 1950년대'와 ''8장 새로운 정치, 새로운 기술 :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비교하자면,

5장에서는 냉전, 핵, 공산주의, 대기업과 같은 주제에 대한 불안감이 사회를 강타했으며 새로운 로봇공학 기술이 인간 사회 조직에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사회를 통제하는 사이버네틱스 시스템에 대한 불안"(p.244)과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소설들이 등장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8장에서는 소련이 붕괴하며 냉전이 종식되고 신자유주의의 대두로 우익 세력 중심에서 보수주의적 하드 SF가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당시 사회의 변화에 맞춰 소설의 특성을 설명합니다. 또한 이 시기에 유전공학 관련 기술들이 연구되고 발표되었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급속화되며 SF가 일부 마니아층이 향유하는 문화에서 대중적으로 유행하였으며, 광범위한 소비자층이 유입됨에 따라 상업적 추동력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상업적 추동력은 사실 현재까지 쭉 이어지고 있는 것 같죠.

이러한 사회 변화에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SF는 시대의 부름을 받고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이 흐르던 1960년대부터 SF소설이라는 매체로 페미니즘적 유토피아 통찰을 이루기도 합니다. 이 파트에서 조애나 러스, 마거릿 애트우드 등의 여러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소개합니다.

작년에 조에나 러스가 1970~80년대에 쓴 비평문을 엮은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를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이 파트 재밌게 읽은 분들, 유토피아/디스토피아 파트 재밌게 읽으신 분들은 저 책도 꼭꼭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조애나 러스의 소설을 읽고 싶은데, 한국에서 번역된 책이 없더라고요? 제가 못 찾는 건지, 정말 한 권도 없는 건지. 그래서 가장 유명하고 인용이 많이 된 조애나 러스의 《여성 인간》의 줄거리를 거의 논문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원문으로라도 나중에 꼭 읽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마거릿 애트우드는 본인 에세이에서 자신은 SF를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변소설은 아직도 SF장르에 속하는가 아닌가에 대해서 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애트우드는 사변소설을 SF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구요

그 외로도 환경, 인종, 다문화 공동체, 젠더 등과 같은 당시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당시 소설들을 보여줍니다. 특히 건스백, 켐밸 시절 SF들은 백인남성우월주의와 제국주의의 사상을 정당화하는 소설들이 주류라는 비판도 받아왔잖아요. 그러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 장르는 시대가 원하는 소수자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어 10장에서 시대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다양한 주제의 SF를 소개합니다.

"SF가 동시대 문화에 녹아들고, SF를 순수하고 독립된 것으로 지키던 경계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비평가들의 의견이 있으나, 역시 현재의 SF를 정의 내리거나 분류하는 것 또한 불완전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동시대 SF에서 관할할 수 있는 경향의 윤곽"을 그리는 작품들을 소개하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여기에는 과학적 특이점을 지난 소설, 양자물리학을 반영한 소설, 대체 역사물, 더 이상 백인 중심적이지 않은 '지구화된 SF'소설들이 포함됩니다.

이렇게 현재까지 이어지는 경향성을 주욱 읽으니, 꼭 한국 SF의 흐름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에 <창작과 비평>에서 배명훈 작가님이 인터뷰 한 글을 봤는데, "SF는 나와 세계가 관계 맺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들은 정의 중에 사실 이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판타지와 구분할 때 SF는 돌이킬 수 없는 이야기이고, 판타지는 일상에서 비일상의 스토리가 생겨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이야기라고요.

제가 여러 책들을 읽고 항상 하는 생각은,

SF라는 것은 사실 '앞으로 향하고자 하는 움직임' 그 자체에 큰 무게를 두고 있지 않나? 그 작품이 나아가는 방향성도, 그리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 또한 작품마다 각기 다르지만, '앞으로 가고 있다'라는 모양새 자체를 공유하는 장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동작성을 절대 돌이킬 수 없다는 명제를 포함해서요.

움직임의 속도, 움직이는 정도, 움직여온 기간, 결국 향하는 방향성이 제멋대로인 장르라서 언제나 새롭고 다른 것이 매력이고, 현재 한국 SF들은 저 여러 가지 변수들 중 몇몇의 변수를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역행할 수 없는 움직임이기에 항상 새로움을 좇고, 그렇기에 현실을 사는 나의 피부에 맞닿아 변화하는 이 장르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현재 한국 SF, 혹은 한국 장르소설은 일차적으로 IP 활용도가 높은 소설들이 잘 팔리고 유행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날이 선 혐오의 시대이니 만큼 따뜻한 연대와 아가페적 사랑을 가진 이야기들이 사랑받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의 저자들이 한국 SF의 경향성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합니다.

언급한 다른 책들도 꼭! 한 번씩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SF를 좋아하신다면 후회하지 않을 《SF연대기 : 시간 여행자를 위한 SF 랜드마크》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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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개정증보판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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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소년 심판〉을 재밌게 보고 있는데, 전반적인 이야기가 같지는 않지만 겹치는 주제들이 있어서 흥미를 이어가면서 읽었습니다.

판형은 사륙변형판에 양장본이고, 가름끈이 분홍색인데 색이 되게 예뻐요. 저자 소개가 남색 면지에 명조 계열 글씨체에 은색 별색으로 들어가 있어서 살짝 읽기 힘들어서 아쉬웠는데 그외에 내지 사용된 글씨체가 예쁘더라고요. 내지 디자인도 깔끔하고, 각주도 저는 개인적으로 저렇게 장마다 새로 번호 매기는 게 더 찾기 편해서 좋더라고요.

사회학 도서는 작년에 몇 권 못 읽고 오랜만에 보아서 어려울까 싶었지만, 어려운 책은 아니었고 그 대신에 초반부에 사회에서뿐 아닌 가족 안의 최약체 아동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심장을 부여잡고 읽었습니다.

《이상한 정상가족》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전반적인 사회현상을 가족,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완강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빗대어 서술하는 책입니다. 특히 가족주의를 회사, 사회로 끌어오는 시각이 새로웠습니다.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가족 내부의 문제에서부터, 부부-자녀의 정상가족의 모양에서 벗어난 정상 '외'의 가족들이 받는 차별, 사회로 확대된 강요된 가족주의의 문제점에 이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까지를 막힘없이 죽 이어 나가는 책입니다.

2장의 첫 꼭지 '왜 미혼모만 있고 미혼부를 없을까'에서 미혼모의 권리 신장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미혼모들을 지원하면 다들 결혼하지 않고 애를 낳으면 어떡하냐며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미 허상이 되어 버린 '정상가족'의 망령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참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최근에 한 여자 연예인도 남편 없이 미혼모로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는데 육아 예능에 나오면 되느니, 안 되느니로 논란이 생겼던 일이, 읽으면서 다시금 생각났습니다.

출산율이 떨어졌다고 곧 인구 절벽이 온다느니, 큰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은 떨면서 결국 인정해 주는 건 남녀 부모 밑에서 나온 아이들뿐이라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특히 미혼모, 아이 엄마의 의사와 상관없이 보기에 정상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상 가족으로 입양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물론 입양기관이 민간 기관이라고 할지언정)

여자의 주체적인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고, 낙태 버스를 운영하던 70년대는 마치 없었던 시절인 듯 낙태를 한 부녀와 의사만을 처벌한다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과를 내린 낙태죄에 관해, 현행 낙태죄를 유지하며 14주까지만 면해주는 개정안을 들이미는 정부랑 비슷해 보여요.

사실은 모두 여성의 결정권, 선택권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 아닌가요. 미혼모니까, 남편이 없으니까 당연히. 산아를 제한해야 하니까 당연히 낙태 버스를 운영하고, 그리고 2009년 저출산 문제가 불거지니까 갑자기 낙태 가능 기간을 줄이고. 낙태죄 처벌은 여자와 의사만 받는데, 입양은 남자 혼자만 동의해도 보낼 수 있다는 점도. 참. 그렇죠.

3장에서는 이 '이상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만나게 됩니다. 근대화로 '발전'이 최우선인 대한민국에 복지가 웬 말이었겠습니까. 보편 복지 제도가 없던 시절, 그 부담은 또 모두 가족에게 향하게 됩니다. 저는 이 지점이 신자유주의가 개개인에게 사회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노동자로서 인적자원이 되어 스스로를 자본으로 변화시키고, 자기계발을 통해 스스로 자본에 투자하게끔 하며 인간의 가치를 뒤엎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며 인간의 실패는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가 되어 사회가 그 책임에서 사라져 버리는 현상처럼요.

이 책에서 저자도 "스웨덴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삶은 개인적으로 살고 해법은 집단적으로 찾을 때 저출산을 비롯하여 우리가 겪는 위기를 해소할 길이 보일 수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삶은 집단적이고 해법은 개인적이다. 개인의 개별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온갖 배타적 관계에 둘러싸여 집단적으로 살아가면서 육아, 교육, 주거 등은 다 각자 알아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스웨덴에서는 아동이 최대의 이익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는데, 이 책의 서문의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약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바라보았을 때, 우리 젊은 세대들이 '마을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말을 들으면 몸서리를 치며 싫어하는 것도.

사실 그 공동체가 상대적 약자들을 어떻게 대해왔느냐, 생각해 보면 저는 오히려 그 반응이 당연해 보이거든요.

범죄 예방의 목적으로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자? 오히려 범죄 속으로 들어가는, 숨 막히는 기분에 더 가깝지 않나요?

회복할 공동체를 찾는 것보다, 바뀐 시대에서 공존 가능한 방식을 찾아야 하는 때이니까요. 회복 가능한 공동체는, 사실 제게도 '폭력'적으로밖에 느껴지지 않거든요.

한 번도 존중을 느껴본 적 없고 내내 억압받아 온 공동체로의 회복이라니,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할 리가 없죠.

약자를 위하는 일이 문명의 시작이라면, 가족 내의 아동인권 향상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아동 인권을 향상된 사회에서 여성인권은 당연히 향상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가 가족에 대해 험담을 한 크리스 록의 뺨을 때려서 논란이 불거졌고, 그에 대한 사과를 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한국에서는 '가족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윌 스미스는 잘못 없다'라는 반응이 주가 되더라고요. 그에 대해 무어라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반응을 보고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가족에 한해서는, 가족 문제에 한해서는 폭력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기저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폭력'을 터부시하지 않는, 폭력이 더 이상 터부시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절대 때려서 안 돼'는 고사하고 '사람을 절대 때려서는 안 돼'라는 명제도 통용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항상 그 앞에 조건이 붙는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은 그 조건을 어떻게든 샅샅이 파내려고 하고 그 사건에 재판관이 되고 싶어 하잖아요. 그리고 자신의 판결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불같이 달려들어서 욕을 퍼붓기도 하고. 그게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자율적 개인이 열린 공동체 안에서 너무 몸을 조이지 않는 느슨한 연대를 맺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족주의 내 가장 존중받지 못하는 '아동'의 돌봄, 보호를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가는 것.

저자는 스웨덴의 예시를 들어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하는데요. 저도 공공의 영역의 확장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한국 사회는 가정에 너무 많은 복지를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정상. 이상. 아직까지고 전통적인 가족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임기 지도를 만들고,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고학력 여성들이 저임금 남성과 결혼하도록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휴학, 연수, 자격증을 가진 여성을 취업에서 불이익을 주자고 하는 이 사회에서 과연, 여성이 거의 무급으로 전담하는 영역을 임금을 제공해야 하는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갈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회사원 남녀가 결혼해서 여자가 전업주부가 되면 GDP가 줄어든다고 하잖아요. 전업주부의 노동력의 가치는 연구된 적도 없다고.

게다가 무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 채 독박 육아를 하는 당사자들 스스로 독박 육아가 아니라 '독점 육아'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 이 지점이 정말 사회의 문제를 개개인의 문제, 것도 한 인간의 도덕성과 양심으로 치환시키는 문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대선 결과도 그렇고, 돌봄과 보호가 공공의 영역으로 갈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워요. 대선 이후에 더 의문스러워졌고요. 이 책 읽으면서 진짜 많은 생각이 들었고, 화도 많이 났고,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와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단어의 간극에 소름도 돋았는데요.

제게는 여러모로 착잡하고, 머리 아프고 힘들기도 했던 책이었습니다.

사실 책 내용은 무겁지도 않고 통계나 사례 위주로 사실 중심으로 서술을 합니다. 거기에 덧붙여지는 제 생각이 줄줄줄 딸려 나왔네요. 어쩌면 정말 저랑 전혀 상관없는 내용인데도, 가장 상관있는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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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사피엔스 - 또 하나의 현실, 두 개의 삶, 디지털 대항해시대의 인류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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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김대식 작가님의 교양인문서 《메타버스 사피엔스》를 가져왔습니다. 이 책은 김대식 작가님의 강연을 토대로 쓰인 책입니다. 그래서 읽기에 전혀 어렵지 않아요.


양장본이고 2도 인쇄에 군데군데 풀 컬러 사진이 들어가 있네요. '메타버스'를 주제로 하는 책은 항상 이런 묘한 보라색을 애용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반짝거리는 은색 별색도요. 완전 미래적인 느낌.

최근에, '트윈코리아'라는 가상 부동산 메타버스 플랫폼을 알게 되었는데요. 이건 실제 물리 공간과 융합된 메타버스 플랫폼이고요, 맛집 사이트에서 만든 건데, 임의의 '셀'이라는 단위로 가상의 공간을 쪼개어 실제 서울 및 수도권 지역과 연결시키고, 이 가상의 공간을 구매할 수 있는 청약권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있게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이제 애초에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에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면서 투자금을 얻는 방식인데, 이러한 가치 전환이 현재 사회에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실제 셀의 구매자는 사실 실제로 얻은 재화가 없거든요? 그런데 가상 화폐를 이용해서 가상 부동산을 구매한 거고, 판매한 플랫폼은 무형의 재화를 판매해서 이익을 내게 된 거고요.


이제 진정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이 플랫폼의 최종 목표는 아예 3D 가상세계가 구현된 메타버스 플랫폼 오픈이라고 하더라고요. 조금 딴소리긴 했지만, 메타버스라는 플랫폼이 우리의 실생활과 엄청 밀접한 정도까지 다가왔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책은 '메타버스'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팬데믹 이후 현실의 전반적인 변화를 기술하고 있는 책입니다. 결국 메타버스로 이주한다고 하던데, 정말 그 미래는 언제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 상황에서 우리는 메타버스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메타버스가 가진 근본적 특성에 대한 질문을 뇌과학과 엮어서 해주는 책입니다. 메타버스라는 주제에서 가져온 철학적인 질문을 소개하는데, 그중 제가 궁금했던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우리는 그 메타버스 세상 안을 현실이라고 인지할 수 있을까?



김대식 작가님은 그 지점에서 뇌과학을 엮어 설명해 줍니다. 이 책의 장점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질문들을 과학적으로 답할 수 있는 점.



현실은 뇌에서 만들어진다

메타버스 사피엔스, 68쪽



팬데믹으로 인한 현재의 트렌드를 '탈현실, 신냉전 디지털 대항해시대'로 정의하면서, 인간의 뇌가 어떻게 탈현실을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설명이 곁들여진 책입니다.


이 책에 담긴 뇌과학의 이야기들은 사실 엄청 쉬워서 아마 이 분야의 첫 번째 책으로 추천하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쇄술의 발명과 인터넷의 보급이 같은 길을 걸어갔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이 두 가지 주제를 비교하는 글은 처음이어서, 인터넷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모두 정보가 공정하게 공개되고 지적 격차라 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사실은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이 왔다. 그러나 인쇄술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도 같은 기대를 했고 같은 반동이 왔다.


인간의 편향성은, 본능인가 봐요.


그리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중립적인 의무교육을 하는데, 스마트폰, SNS 때문에 편향성이,, 전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는 중이고.

누구보다 의견 교류가 활발한 시대에 살고 있는 줄 알았더니, 그 어느 때보다 고립된 시대였다는 게 충격이기도 하고요. 트위터에서 극단적으로 느껴지기는 하고요. 또 SNS 플랫폼마다 특성이 크게 다른데, 이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이 없는 듯해요.


'필터 버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인터넷 서비스 생산자가 이용자의 선호도에 맞추어 이용자에게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함에 따라 이용자가 스스로 선호하는 정보에 갇히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게 저는 '구독 경제'라는 말로 요즘 널리 쓰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개개인의 선호가 더 중시되는 세상은, 어쩌면 밀의 자유론에서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하지 않는 극도의 자유주의적인 사회일지도 모르지만, 이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간다고 묻는다면 여전히 의문스럽거든요. 항상 상상한 것과 반대로 디스토피아를 이루는 인간들.


▶ 현실이 어떻게 현실임을 확신하는가?

▶ 메타버스 안의 아바타를 어떻게 '나'라고 인식하는가?


이 현실이,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 현실일 확률은 시뮬레이션이다/아니다의 50% 가 아니라 몇십억 분의 일이라고 말하죠. 2019년에 이중 슬릿 실험으로 생체분자를 관찰했을 때, 생체분자가 파동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봤었거든요?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32280)


그럼,

이 세계를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나?

관측하기 전의 내 몸이 '실존'한다고 볼 수 있나?


이러한 질문들에서 SF가 탄생하는 거겠죠? 이것저것 상상해 보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부분을 설명하는 파트에서도, 눈의 혈관을 말끔히 지운 채 환경을 인식하는 뇌의 편집기술을 생각하면 현재 뭐 포토샵, 프리미어의 마스크 기능은 뇌의 기능의 단 1%도 따라오고 있지 못하는 게 분명하죠.


그리고 이제 딥러닝으로 학습한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학자들이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뭔가 현재 인간이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완벽하게 밝혀내지 못한 점과 비슷하다고도 느껴지지 않나요?


항상 이런 책을 읽으면 이미 이 현실을 상상해 그려 놓은 10~20년은 더 된 SF 소설을 인용하는데,

현실의 SF 소설이,

이후의 과학도서에 인용되는 날이 올까?

온다면 어떤 소설일까, 고민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또, 뇌가 현실을 재구성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저는 최근에 제가 재밌게 봤던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한 스토리 콘텐츠가 생각나더라고요. 캐릭터의 표정은 움직이지 않고(버츄얼 아바타처럼) 실제 사람이 음성으로만 연기를 하면서 진행하는데, 항상 그 반응을 보면 대사나 상황에 따라 '표정이 변화했다. 내가 표정을 봤다!'라는 감상이 나와요. 그 캐릭터 스킨은 움직이지 않는데요.


여기서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후군에 대한 설명을 읽고, 저 감상평이 단지 너무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문구가 아니라 실제, 실제로 우리 뇌가 편집을 해서 보여주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겨버렸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현실에서 무서운 상황에서 사람의 표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고 있으니, 목소리와 상황적 맥락이 있으니 뇌가 임의적으로 그에 맞는 표정을 인식해 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


구어체로 서술되어 있어서, 저는 책잡고 한 번에 다 읽었거든요. 그만큼 어렵지 않은 책이니 꼭 여러분들도 한 번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기반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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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픽션
조예은 외 지음 / 고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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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블에서 나온 앤솔로지 《펄프픽션》을 가져왔습니다. 총 5명의 작가님이 '마이너'라는 주제로 쓰인 단편을 모은 엔솔로지입니다.

한 분 빼고는 모두 본 적 있는 이름이라 반가웠네요. 특히 조예은 작가님, 민음사 젊은 작가 시리즈로 《스노볼 드라이브》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안전가옥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도 그렇고, 그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대상 받은 《시프트》도, 뭔가 장르별로 휙휙 바뀌는 느낌이라 항상, 책 펼치기 전까지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다른 작가님들도 황금가지나 안전가옥에서 본 작가님들이라, 일단은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원래 SF도 처음에 펄프픽션이라는, 그러니 싸구려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잖아요. 그 시절이 한참 마초적인 SF가 나오던 시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일부로 '펄프픽션'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걸 보니, 그 의미의 반전을 노릴만한 작품들이 실려 있는 걸까?

사실 이제 OTT 시대가 오고 '구독경제'라는 말이 시작되면서 '마이너'라는 주제가 예전 매스 미디어 시대의 마이너와는 전혀 달라졌잖아요. 예전에는 마이너 장르의 경우 돈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고 무언가 주류에서 외면받는다지만 최근에는 그런 마이너하지만 아주 탄탄한 팬덤층을 가진 장르 콘텐츠의 경우에는 오히려 새로운 소비자층을 끌어올 수 있는 회심의 콘텐츠가 되고 있고요.

넷플릭스에서 계속해서 K-좀비물을 끌어온다던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로 나오는 〈여고추리반2〉 같은 경우도, 사실 OTT 플랫폼이 아닌 일반 방송국에서 방영되었다면 수익이 날 수 있는 구조일까, 싶고요. 특히 드라마 〈구경이〉같은 경우 시청률은 낮았으나 넷플릭스에서 TOP 10안에 계속 들어 있었고, 제작사 측에서도 그 부분을 눈여겨 보고 드라마가 성공적이라고 판단하고요.

더 이상 마이너가 마이너가 아닌 시대에 펄프픽션이란 어떤 것일까, 싶은 마음으로 읽어나갔습니다.

첫 번째 단편은 조예은 작가님의 〈햄버거를 먹지 마세요〉입니다. 엄마의 압박으로 재수 기숙 학원에 들어간 루루와, 엄마의 남자친구의 사업이 망하는 까닭에 대학 등록금이 없어진 제이의 이야기입니다. 조예은 작가님 특유의 어느 곳으로 튈 줄 모르는 서사를 가진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조예은 작가님 《스노볼 드라이브》를 진짜 좋아하는데, 여기서 그려진 모루와 이월의 관계가 생각나기도 했고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미묘하게 틀어서 이야기를 구성하시는데, 기숙 학원-장학생-햄버거, 세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도시괴담과도 같은 'S대 합격시켜주는 햄버거' 예상된 반전은 기대한 만큼의 화력을 가진 채로 단편을 마무리 지어 줍니다. 아무래도, 엔딩이 가장 재미있죠.

두 번째 단편은 류연웅 작가님의 〈떡볶이 세계화 본부〉입니다.

안전가옥에서 류연웅 작가님, 연작소설집 《못 배운 세계》에서는 각각의 단편소설이라는 구성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한 덩이의 연작 소설집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좋았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작품을 하나의 단편으로만 마주하면 살짝이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매운 떡볶이를 먹고 죽은 서양인들과, 뱀fire가 된 Snake 씨의 이야기를 B급답다 웃으며 보기에는 이미 인터넷 밈으로 떠도는 뱀파이어와 vamfire가 너무 익숙한 바람에, 사실 계속 반전이 있겠지 있겠지 하고 봤는데.

상당히 아쉬웠어요. 짧은 단편에 등장하는 B급 다운 개그 요소가 사실 인터넷에서 많이들 향유되는 밈들인 바람에 B급 다운 새로움이 조금 떨어지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오히려 뱀fire라는 존재가 인간의 노동력이 아니라, 아예 기계의 노동력을 대신했다면? 그래서 오히려 자동화 시스템 대신 기계처럼 부려졌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고.

오히려 작가 후기를 읽고 나서야, 조금 고개를 끄덕이게 된 소설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정말 재밌게 읽고 싶었는데,,

세 번째는 홍지운 작가님의 〈정직한 살인자〉입니다. 이 소설이 정말 현재 한국에서 '마이너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짧은 분량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서사도 새로웠고, 작가님이 삽입해놓은 이야기를 듣는 존재의 유머러스함도 제게는 완전 제대로 먹혔거든요.

아주 흔한 금도끼 은도끼 동화를 차용한 구성임에도 마지막 반전을 보면 귀엽다는 말 밖에, 그러나 전체적인 단편을 보면 전혀 귀엽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한국에 빚에 팔려온 여자인 '나'를 주인공으로 하고 시작되는 이야기는 사실, 처음부터 강하게 독자를 몰입시킵니다. 왜냐면 한국인도 아닌 빚에 팔려온 '나'가 죽은 남편인 조직폭력배 김형관의 시체를 싣고 저수지로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난데없는 크루통의 등장으로 한 번 '나'의 입장에서 진행된 이야기는, 그 사이사이의 간극을 매우며 더 풍부하고 완벽한 이야기가 되고, 그 대학원생의 조사에 응해준 대가로 아주 소정의 상품을 받게 되죠.

짧은 단편에서 같은 이야기가 두 번 반복되는데, 그 빈틈과 이야기 구성이 좋아서 재밌게 반전을 느끼면서 읽었고요, 정말 마지막은 안 웃을 수가 없는 결말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이 소설의 따뜻하고 유쾌한 마무리가 너무 좋았어요.

네 번째 이경희 작가님의 〈서울 지하철도 수호자들〉입니다. 수도권 사는 사람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바로 그 소설.ㅋㅋㅋㅋ

전에 경의중앙선에 갇힌 사람들을 소재로 한 단편을 봤던 거 같은데, 제목도 작가도 기억이 안 나네요.. 그 소설이 눈앞에 아른아른했습니다. 주위에 전에 경의중앙선 타고 다니던 지인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그분 생각도 나더라고요.

하여튼, 진상 민원인 이명헌 씨의 전담이 되어버린 한나 씨는 그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서울 지하철도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데….

사실 이렇게 현실과 교묘히 덧씌워진 판타지 소설을 좋아해요. 진짜 완벽한 B급이자, 블랙코미디 소설이지 않았나 했습니다. 단편은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데 그 정말 이 이면에 이런 비밀이 숨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쾌하게 후루루 넘겨읽는 소설이고, 전에 브릿G에서 읽은 〈세계 맥주 4캔에 만원〉이라는 단편도 생각이 나는 글이었습니다.

현실과 초밀접한 판타지. 어반 판타지라고 하나요? 제가 잘 쓴 B급 어반 판타지를 좋아하나 봐요. 굳이 뽑자면 〈서울 지하철도 수호자들〉을 제일 재밌게 읽었습니다. 있을 법한 냉택없음.

마지막 최영희 작가님의 〈시민 R〉입니다.

대박! 제가 최근에 딱 한나 아렌트 책을 읽고 있었는데, 여기서 한나 아렌트 이야기가 나오다니! 일단 너무 반가웠고요.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다른 책에서 본 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천생연분인 것같이 반가워요. 아주.

청소로봇 알옛이 말하는 아렌트의 철학과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

알옛은 주인인 강희원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재판에 섭니다. 이 소재만 보면, 하오 징팡의 《인간의 피안》에 수록된 〈사랑의 문제〉나 김혜진 작가님의 단편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기 생각이 납니다. 아무래도 살인죄로 기소된 로봇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SF 시장에서 〈시민 R〉이 가지고 있는 특색이 뭘까 고민해 봤어요.

인문학 도서를 꿰뚫고 스스로를 시민이라 지칭하는 순간이 아닐까, 알옛이 법정에서 스스로를 시민이라 정의 내리는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을지 피부로 좀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머리 싸매고 읽고 있는 한나 아렌트를 턱턱 인용해 내는 것부터, 같은 일을 하는 한인숙 씨와의 만남.

특히 마지막에 유유히 사라지는 알옛, 아니 시민 R의 모습을 보니 정말 어디 가서도 나보다 더한 의무를 지키는 '시민'으로 잘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마이너라는, 그러니 묶인 주제라고는 인기 있는 것과 반대편인 주제로 엔솔로지를 기획했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공통점이라고는 흔하지 않은 소재에 흔하지 않은 서사.

이 다섯 편의 단편이 펄프픽션이라는 정의를 바꿀 수 있을만큼의 힘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약 250쪽의 엔솔로지를 다 읽고 나니까, 재밌었던 책임은 분명하네요.

장르소설의 새로움을 갈망해온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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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토스카 리 지음, 조영학 옮김 / 허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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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전염병이 사이비 종교를 만났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떨까? 코로나라는 팬데믹 상황이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미 다 알고 계시잖아요?

이 소설도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지내던 윈터 로스가 '조발성 치매 전염'이라는 이유 모를 전염병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한 바깥세상으로 추방당하며 벌어지는 일을 서술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이비 종교집단인 '신천국' 안에 남겨진 언니 재클린과 조카 트룰리를 걱정하던 윈터는, 몰래 찾아온 재클린에게 전염병의 비밀을 듣고 조카 트롤리를 구하기 위해 팬데믹 상황으로 거진 국가의 기능이 마비되고, 감염자들이 격리되지 않고 돌아다니는 밖을 지나 신천국으로 향합니다.

팬데믹과 종교집단, 이 두 가지 주제를 보면서 마가릿 애트우드의 《홍수의 해》 생각이 많이 났어요. 특히 기후 위기의 주제까지 함께 포괄하고 있다는 점까지. 컨셉이 유사한 이야기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홍수의 해》 가 커다란 상황을 여러 인물의 시각에서 보여주는 거시적인 이야기의 느낌이라면,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는 서술자를 윈터로 한정시키며 윈터의 과거(신천국 안에서 있었던 일)과 현재(신천국 바깥의 팬데믹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 외에 비슷한 점을 찾기가 더 어려운 소설들이긴 해요.

이 책에서 두 시점이 교차되는 부분은 장으로 나뉘어 있으니까, 구분이 어렵지도 않고요.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은 140*210mm 판형으로, 신국변형판이고요. 최근 소설들이 대부분 사륙변형판으로 나오는 걸 생각하면, 허블 소설책은 대부분 신국 변형인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판형이 커도 책이 무겁지 않아서 좋아요. 내지 여백도 한 쪽으로 치우져지지 않아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거 같아요.

표지는 전체가 일러스트로 덮여 있는데,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나서 표지를 보면 느낌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정말 소설 일부를 꺼내 보여주는 일러스트였어요. 특히, 핸들을 잡은 팔목에서 끊기는 절묘함이 독자를 집중시키는 힘이 대단한 소설과 잘 어우러져요. 서점 매대에서 봤으면 꼭 한번 집어 들 표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또 절묘하게 계기판 사이에 출판사 이름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마치 출판사 이름을 넣기 위해 일부로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절묘하네요. ㅋㅋㅋ

그리고 표지 제목 디자인이 신기해요. 항상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로써, 이렇게도 형압을 찍을 수 있나? 하면서 요리조리 살펴봤습니다. 항상 일러스트가 강할 때, 표지 제목을 어떻게 넣어야지 제목이 안 밀리는지 궁금했는데 요즘 들어 그 해답인 책들을 많이 보게 되네요. 전반적으로 표지가 정말 좋았어요.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 그 위를 걷다, 그런데 어느 쪽이 지옥이지?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는 신천국이라는 폐쇄된 종교집단에서 추방된 윈터가 전염병이 도는 세상에서 조카 트롤리를 구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빠의 폭력을 피해 도망간 엄마 실비아를 따라 어렸을 때 신천국에 들어온 윈터와 재클린은 그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종교집단 안에서 그들의 교리와 규율에 따라 생활합니다. 윈터가 이곳에서 추방된 이유는, 두 시간대의 이야기가 흐르며 아주 후반부에 나타납니다. 재난 상황에서 그려지는 사이비 종교는, 자연적이고(자신들만의 공동체 안에서 자급자족이 가능) 세속과 완전한 단절을 보여주지만, 이렇게 인물을 추방시키며 시작하는 이야기는 처음이었어요. 지옥으로 가는 영원은 단 한 발짝이라는 윈터의 말이, 초반부에서 단단한 흡입력을 보여줍니다.

매력적인 신의 대리인 교주 매그니스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지만, 결국 그의 본성을 알게 된 윈터는 이미 그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은 언니와 함께 신천국을 떠날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언니 재클린의 배신으로 홀로 추방당합니다.

매그니스는 이미 재클린과 결혼했음에도, 윈터를 얻고 싶어서 별의별 추태를 다 부리죠. 스스로 만든 교리를 모두 어기는 모습을 보면서, 윈터가 '자신이 믿고 따르는 교리'가 선지자에 의해 모두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교리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게 됩니다.

사이비 종교를 다루는 이야기들의 수뇌부를 보자면, 사실 이 교리와 묵시론적 이야기가 얼마나 허황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항상 사이비 종교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주인공과 대적되는 순간 이런 사실이 밝혀지는 이야기를 읽다가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된 글을 읽으니 또 새롭더라고요.

신천국에서 나온 윈터는 이모 줄리와 사촌 로렌과 함께 지내는데, 그곳에서 자연재해로 사람들이 몇 천 명씩 죽어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보며 매그니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은 멸망하고, 신천국만이 유일한 도피처가 될 것이다.'

윈터가 매그니스의 신약서를 믿지 않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그 양가적인 상태에서 점차 신천국과 지옥, 그 두 공간의 사이가 흐려집니다. 지옥에서 탈출했다는 듯이 윈터를 토닥이는 이모와 가족들, 그리고 재앙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바라보는 윈터. 지옥이 사실은 한 공간이 아니라,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 글은 팬데믹 상황이 닥친 미국을 보여주면서, 현실에 적응도 하지 못한 윈터에게 갑자기 "세상을 구하는"역할을 맡깁니다. 그 목적은 하나, 트룰리를 구하는 것.

세상을 구하는 영웅은 언제나 백인 남성이어야 하던 예전에서, 이제 나약한 피해자 여성에게까지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어디 대단한 존재들이 아니라, 교주 매그니스의 아내 역할에 불과했던 재클린. 재클린입니다.

사실 여기서 재클린의 존재가 저는 새로웠어요. 윈터와 재클린은 자매입니다. 교주 매그니스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고요. 윈터는 여자인 셰이를 좋아하고 쫓아다니며 세속의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바깥의 이야기를 듣는 배교자가 됩니다. 윈터가 공동체 안에서 배척되는 와중, 매그니스의 아내 케스트럴이 죽고, 매그니스와 언니 재클린과의 결혼이 발표됩니다. 윈터는 재클린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져요.

그 사이에 트룰리가 생기고 매그니스가 윈터에게 집적거리기 시작하며 윈터가 재클린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말합니다. 그때, 재클린이 윈터를 대하는 시각은 익숙했어요.

네가 먼저 꼬셨겠지, 넌 언제나 매그니스를 좋아했으니까.

정말 아주 흔한, 사회가 바라보는 자매의 이야기겠죠. 그러나, 재클린은 다릅니다. 본인이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동생이라도 구출시키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남자만을 믿고 있는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죠.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확실히 이해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취해서 동생 윈터와 딸 트룰리를 구하려 애씁니다.

추적을 따돌린 채 간신히 재클린은 전염병에 걸린 채 윈터를 찾아갑니다. 자매는 오랜만의 회포를 풀 시간도 얻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 재클린의 의지, 매그니스에게 이 바이러스를 넘길 수 없다는, 영웅의 의지가 비쳤다는 점이 좋았어요. 이 세계를 구하는 것은 어쩌면 피해자에 국한되어 있었을, 두 자매였다는 점이.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현실입니다. 2019년에 쓰인 소설임에도, 2022년을 보여줍니다. 봉쇄된 도로, 락다운 된 도시들. 기름값은 미친 듯이 치솟는 상황에서 윈터는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 바이러스를 수의학자에게 가져가 주기 위한 로드무비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저는 '달리는 여자'의 이미지를 좋아해요. 자신이 뒤에 두고 온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고, 자신이 가야 하는 방향도 확실히 알고 있는 인물만이 달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두 가지 목적성을 모두 지닌 여자 인물이 등장하게 된 것이 오래 지나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요.

그러므로 본인의 목표만을 보고 달려가는 윈터와 그 여정에서 만난 체이스, 윈터를 돕는 같은 피해자였던 케스트럴의 뚜렷함이 좋았어요.

이들은 대홍수를 피해 방주를 만들었던 성경 속 노아처럼, 피난민들을 수용할 벙커를 만들어놓은 노아에 의해 살아남게 됩니다. 백신이 완성되었는지도, 해결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또 살인 누명을 쓴 윈터의 결백함이 증명되었는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벙커의 문이 닫힙니다.

"아뇨. 세상은 이런 식으로 안 끝나요"

나는 확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410쪽

그러나 세상이 멸망해가고 있다는 믿음에 불안장애까지 얻었던 윈터는 마지막 벙커 안에서 이렇게 단언합니다. 남들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남들이 믿는 것을 믿고, 한 번도 스스로 사유해 의심한 적 없는 윈터가 세상에 종말이 오지 않는다고 단언한 이 순간이,

앞으로 이들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속, 우리가 어디로부터 떠밀려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

저는 사실 흡입력이 너무 높아서 하루 만에 다 읽었거든요. 근간으로 나오는 2편도, 정말 빨리 읽고 싶습니다.

이 책은 초반에 말합니다.

"지옥에 떨어진 것을 환영하노라, 윈터 로스."

그런데,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도대체 어느 쪽이 지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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