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토스카 리 지음, 조영학 옮김 / 허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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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전염병이 사이비 종교를 만났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떨까? 코로나라는 팬데믹 상황이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미 다 알고 계시잖아요?

이 소설도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지내던 윈터 로스가 '조발성 치매 전염'이라는 이유 모를 전염병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한 바깥세상으로 추방당하며 벌어지는 일을 서술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이비 종교집단인 '신천국' 안에 남겨진 언니 재클린과 조카 트룰리를 걱정하던 윈터는, 몰래 찾아온 재클린에게 전염병의 비밀을 듣고 조카 트롤리를 구하기 위해 팬데믹 상황으로 거진 국가의 기능이 마비되고, 감염자들이 격리되지 않고 돌아다니는 밖을 지나 신천국으로 향합니다.

팬데믹과 종교집단, 이 두 가지 주제를 보면서 마가릿 애트우드의 《홍수의 해》 생각이 많이 났어요. 특히 기후 위기의 주제까지 함께 포괄하고 있다는 점까지. 컨셉이 유사한 이야기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홍수의 해》 가 커다란 상황을 여러 인물의 시각에서 보여주는 거시적인 이야기의 느낌이라면,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는 서술자를 윈터로 한정시키며 윈터의 과거(신천국 안에서 있었던 일)과 현재(신천국 바깥의 팬데믹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 외에 비슷한 점을 찾기가 더 어려운 소설들이긴 해요.

이 책에서 두 시점이 교차되는 부분은 장으로 나뉘어 있으니까, 구분이 어렵지도 않고요.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은 140*210mm 판형으로, 신국변형판이고요. 최근 소설들이 대부분 사륙변형판으로 나오는 걸 생각하면, 허블 소설책은 대부분 신국 변형인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판형이 커도 책이 무겁지 않아서 좋아요. 내지 여백도 한 쪽으로 치우져지지 않아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거 같아요.

표지는 전체가 일러스트로 덮여 있는데,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나서 표지를 보면 느낌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정말 소설 일부를 꺼내 보여주는 일러스트였어요. 특히, 핸들을 잡은 팔목에서 끊기는 절묘함이 독자를 집중시키는 힘이 대단한 소설과 잘 어우러져요. 서점 매대에서 봤으면 꼭 한번 집어 들 표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또 절묘하게 계기판 사이에 출판사 이름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마치 출판사 이름을 넣기 위해 일부로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절묘하네요. ㅋㅋㅋ

그리고 표지 제목 디자인이 신기해요. 항상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로써, 이렇게도 형압을 찍을 수 있나? 하면서 요리조리 살펴봤습니다. 항상 일러스트가 강할 때, 표지 제목을 어떻게 넣어야지 제목이 안 밀리는지 궁금했는데 요즘 들어 그 해답인 책들을 많이 보게 되네요. 전반적으로 표지가 정말 좋았어요.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 그 위를 걷다, 그런데 어느 쪽이 지옥이지?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는 신천국이라는 폐쇄된 종교집단에서 추방된 윈터가 전염병이 도는 세상에서 조카 트롤리를 구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빠의 폭력을 피해 도망간 엄마 실비아를 따라 어렸을 때 신천국에 들어온 윈터와 재클린은 그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종교집단 안에서 그들의 교리와 규율에 따라 생활합니다. 윈터가 이곳에서 추방된 이유는, 두 시간대의 이야기가 흐르며 아주 후반부에 나타납니다. 재난 상황에서 그려지는 사이비 종교는, 자연적이고(자신들만의 공동체 안에서 자급자족이 가능) 세속과 완전한 단절을 보여주지만, 이렇게 인물을 추방시키며 시작하는 이야기는 처음이었어요. 지옥으로 가는 영원은 단 한 발짝이라는 윈터의 말이, 초반부에서 단단한 흡입력을 보여줍니다.

매력적인 신의 대리인 교주 매그니스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지만, 결국 그의 본성을 알게 된 윈터는 이미 그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은 언니와 함께 신천국을 떠날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언니 재클린의 배신으로 홀로 추방당합니다.

매그니스는 이미 재클린과 결혼했음에도, 윈터를 얻고 싶어서 별의별 추태를 다 부리죠. 스스로 만든 교리를 모두 어기는 모습을 보면서, 윈터가 '자신이 믿고 따르는 교리'가 선지자에 의해 모두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교리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게 됩니다.

사이비 종교를 다루는 이야기들의 수뇌부를 보자면, 사실 이 교리와 묵시론적 이야기가 얼마나 허황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항상 사이비 종교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주인공과 대적되는 순간 이런 사실이 밝혀지는 이야기를 읽다가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된 글을 읽으니 또 새롭더라고요.

신천국에서 나온 윈터는 이모 줄리와 사촌 로렌과 함께 지내는데, 그곳에서 자연재해로 사람들이 몇 천 명씩 죽어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보며 매그니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은 멸망하고, 신천국만이 유일한 도피처가 될 것이다.'

윈터가 매그니스의 신약서를 믿지 않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그 양가적인 상태에서 점차 신천국과 지옥, 그 두 공간의 사이가 흐려집니다. 지옥에서 탈출했다는 듯이 윈터를 토닥이는 이모와 가족들, 그리고 재앙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바라보는 윈터. 지옥이 사실은 한 공간이 아니라,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 글은 팬데믹 상황이 닥친 미국을 보여주면서, 현실에 적응도 하지 못한 윈터에게 갑자기 "세상을 구하는"역할을 맡깁니다. 그 목적은 하나, 트룰리를 구하는 것.

세상을 구하는 영웅은 언제나 백인 남성이어야 하던 예전에서, 이제 나약한 피해자 여성에게까지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어디 대단한 존재들이 아니라, 교주 매그니스의 아내 역할에 불과했던 재클린. 재클린입니다.

사실 여기서 재클린의 존재가 저는 새로웠어요. 윈터와 재클린은 자매입니다. 교주 매그니스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고요. 윈터는 여자인 셰이를 좋아하고 쫓아다니며 세속의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바깥의 이야기를 듣는 배교자가 됩니다. 윈터가 공동체 안에서 배척되는 와중, 매그니스의 아내 케스트럴이 죽고, 매그니스와 언니 재클린과의 결혼이 발표됩니다. 윈터는 재클린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져요.

그 사이에 트룰리가 생기고 매그니스가 윈터에게 집적거리기 시작하며 윈터가 재클린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말합니다. 그때, 재클린이 윈터를 대하는 시각은 익숙했어요.

네가 먼저 꼬셨겠지, 넌 언제나 매그니스를 좋아했으니까.

정말 아주 흔한, 사회가 바라보는 자매의 이야기겠죠. 그러나, 재클린은 다릅니다. 본인이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동생이라도 구출시키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남자만을 믿고 있는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죠.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확실히 이해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취해서 동생 윈터와 딸 트룰리를 구하려 애씁니다.

추적을 따돌린 채 간신히 재클린은 전염병에 걸린 채 윈터를 찾아갑니다. 자매는 오랜만의 회포를 풀 시간도 얻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 재클린의 의지, 매그니스에게 이 바이러스를 넘길 수 없다는, 영웅의 의지가 비쳤다는 점이 좋았어요. 이 세계를 구하는 것은 어쩌면 피해자에 국한되어 있었을, 두 자매였다는 점이.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현실입니다. 2019년에 쓰인 소설임에도, 2022년을 보여줍니다. 봉쇄된 도로, 락다운 된 도시들. 기름값은 미친 듯이 치솟는 상황에서 윈터는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 바이러스를 수의학자에게 가져가 주기 위한 로드무비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저는 '달리는 여자'의 이미지를 좋아해요. 자신이 뒤에 두고 온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고, 자신이 가야 하는 방향도 확실히 알고 있는 인물만이 달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두 가지 목적성을 모두 지닌 여자 인물이 등장하게 된 것이 오래 지나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요.

그러므로 본인의 목표만을 보고 달려가는 윈터와 그 여정에서 만난 체이스, 윈터를 돕는 같은 피해자였던 케스트럴의 뚜렷함이 좋았어요.

이들은 대홍수를 피해 방주를 만들었던 성경 속 노아처럼, 피난민들을 수용할 벙커를 만들어놓은 노아에 의해 살아남게 됩니다. 백신이 완성되었는지도, 해결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또 살인 누명을 쓴 윈터의 결백함이 증명되었는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벙커의 문이 닫힙니다.

"아뇨. 세상은 이런 식으로 안 끝나요"

나는 확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410쪽

그러나 세상이 멸망해가고 있다는 믿음에 불안장애까지 얻었던 윈터는 마지막 벙커 안에서 이렇게 단언합니다. 남들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남들이 믿는 것을 믿고, 한 번도 스스로 사유해 의심한 적 없는 윈터가 세상에 종말이 오지 않는다고 단언한 이 순간이,

앞으로 이들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속, 우리가 어디로부터 떠밀려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

저는 사실 흡입력이 너무 높아서 하루 만에 다 읽었거든요. 근간으로 나오는 2편도, 정말 빨리 읽고 싶습니다.

이 책은 초반에 말합니다.

"지옥에 떨어진 것을 환영하노라, 윈터 로스."

그런데,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도대체 어느 쪽이 지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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