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연대기 - 시간 여행자를 위한 SF 랜드마크
셰릴 빈트.마크 볼드 지음, 송경아 옮김 / 허블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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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허블 매대 앞에서 들었다 놨다 몇 번을 고심하다 결국 내려놓고 나왔던 바로 그 책, 《SF 연대기》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그때 구매했으면 인포그래픽 포스터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왜 안 샀는지 스스로도 의문입니다. 다시 포스터를 보니까 미친 듯이 가지고 싶어졌습니다. 제 방 벽에 붙여 놓으면 아주 완벽할 거 같아요.



책 표지에 대표적 일만 한 소설을 '랜드마크'로 만들어서 바둑판으로 진열을 해놨어요. 2015년도에 제미신 <부서진 대지> 3부작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각 장 도비라도 일러스트로 표현된, 출판사 소개에서 '랜드마크'라고 부르는 그림들이 실려 있어요. 보고 소설 찾는 재미도 있고요.

책이 거의 500쪽이고 양장본임에도 불구하고 내지 중량이 가벼워서 (제본 방식과 쪽수에 비해) 크게 무겁지 않았어요. 사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들어보고 무거우면 E-book으로 구매하거나 빌리는 편인데, 이 정도는 가방에 넣어서 다닐만하다. 그리고 책의 컨셉이, '시간 여행자를 위한 SF 랜드마크'인데 표지도 보드게임 판처럼 되어 있고, 굿즈인 포스터도 놀이공원 일러스트같이 되어 있는데, 컨셉이랑 정말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컨셉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SF 장르를 통틀어 역사와 정의를 설명하는 종류의 책을 몇 권 찾아봤었어요. 그런데 보통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체적으로 정리된 책은 없더라고요. SF라는 장르의 정의가 아주 독특하다 보니 시간의 순서에 구애받기보다는 장르적 특성에 대해 구조화해서 설명하는 책이나, 혹은 전체적인 장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SF소설, SF영화와 같이 매체에 국한시킨 책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은 목차 자체도 연도별로 구분되어 있고 소설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나 장르 자체의 시대별 특징에 대해 서술하는 책이어서, 아마도 SF에 조금 관심이 있고 조금 찾아봤다. 그런데 옛날 SF소설들은 어땠는지 궁금하네? 하시는 분들이 입문서로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형식적인 측면으로도 정말 친절한 책인데, 장이 끝날 때마다 한 꼭지로 '결론'을 넣어서 다시 그 장의 내용을 정리해 줍니다. 장 시작할 때에도 제목 하단에 장에 대한 짧은 설명이 들어가 있고요. 이렇게 개론적으로 흐름을 훑거나 예시를 많이 드는 책들의 경우 읽다 보면 앞의 내용이 휘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이 두 장치로 지식을 최대한 머릿속에 오래 보존할 수 있게 해준답니다! 그래서 시대의 흐름을 한눈에 훑고 싶다 하시는 분들께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2019년도에 아르테에서 나온 《에스에프 에스프리》가 'SF 입문서'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왔는데, 저는 아무래도 입문서라면 《SF 연대기》 쪽이 더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제 조금 더 SF가 가진, 소설 속에서 특징적으로 사용되는 기법들을 알고 싶다 하시는 분들이 두 번째로 《에스에프 에스프리》를 읽으면 완벽하지 않을까!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문

1장. SF의 정의

2장. 건스백 이전의 과학소설

3장. 확산: 1930년대

4장. 캠벨의 문맥 ‘혁명’: 1940년대

5장. 냉전, 소비지상주의, 사이버네틱스: 1950년대

6장. 새로운 현실, 새로운 소설: 1960년대와 1970년대

7장.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관심: 1960년대와 1970년대

8장. 새로운 정치, 새로운 기술: 1980년대와 1990년대

9장. 제국과 확장: 1980년대와 1990년대

10장. 여러 가지 미래가 가능하다

SF의 정의에서 제가 제일 애용하는 문장은. "SF는 SF라고 불리는 것들의 총칭이다."인데, 이 말은 즉 장르의 정의가 생겨나는 것보다 장르로 명명되는 것이 먼저이며 이후에 장르로 명명되는 작품들을 갈무리하였을 때 정의가 만들어진다는, 방향성을 강조합니다. 또 장르 자체를 기본 SF장르 팬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적인 측면으로 접근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왜인지 SF라는 장르의 정의 기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미꾸라지처럼 장르의 틈을 빠져나가는 작품들이 꼭 존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은 SF는 느슨한 그물망 같은 범주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SF의 정통성을 찾는다면 미국 잡지와 페이퍼백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SF의 기원을 고딕소설 속에서"찾기도 합니다. SF이냐 아니냐의 투쟁은 사실 과학소설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나서 지금까지, 학자들이 얼마나 SF의 학문적이고 고정된 정의를 가지고 싶어하였는지의 열망의 크기에 관계없이, 여전히! 여전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원래 다른 장르소설도 이런지, 이제는 궁금해집니다. 고딕소설은 무언가 추리소설의 원형에 더 가깝거나, 오히려 호러와 비슷할 것 같기도 하고요.

유난히도 정의에 관해 논쟁이 많으니만큼 그 이유가 현재 시공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과학소설. 사이언스 픽션은 다른 장르들보다 더욱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장르이잖아요. 주제가 과학이니만큼, 기술의 발전이라는 측면만으로도 소설의 흐름이나 경향성이 변하는 것은 물론, '사변 소설'또한 SF 장르 중 하나로 포함되니만큼 과학기술보다 기술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장르가 속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에 《멋진 신세계》가 SF이다 아니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사변소설도 SF니까 멋진 신세계도 SF에 포함된다고 주장한 반면, 상대방은 그건 SF가 아니라 문학이라고 이야기를 해서 상당히 황당했었어요. 그러나 이 책에서는 《멋진 신세계》를 '"1930년대 가장 유명한 비非펄프픽션"(p.145)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어서 속이 뻥 뚫렸습니다.

사실 SF소설이냐 아니냐,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 유형이 3장 '확산:1930년대'의 '과학과 사회 비판'이 아닐까 싶었어요, "펄프픽션 바깥에서도 작가들은 인종주의, 우생학과 파시즘의 발흥과 함께 기술적 변화가 일으킬 사회적·문화적 결과에 관심을 가졌"(p,144)으며 아마도 이 부분에서 고전적인 하드 SF만을 인정하느냐 아니느냐의 길이 갈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저는 이 책에서 연도의 흐름에 따른 장르를 설명하는 것도 좋았는데, 이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소설의 경향성을 짚어주는 부분들이 가장 재밌었어요. 그리고 그 파트가 이 책만의 차별점이라고도 생각했고요.

'5장 냉전, 소비지상주의, 사이버네틱스 : 1950년대'와 ''8장 새로운 정치, 새로운 기술 :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비교하자면,

5장에서는 냉전, 핵, 공산주의, 대기업과 같은 주제에 대한 불안감이 사회를 강타했으며 새로운 로봇공학 기술이 인간 사회 조직에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사회를 통제하는 사이버네틱스 시스템에 대한 불안"(p.244)과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소설들이 등장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8장에서는 소련이 붕괴하며 냉전이 종식되고 신자유주의의 대두로 우익 세력 중심에서 보수주의적 하드 SF가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당시 사회의 변화에 맞춰 소설의 특성을 설명합니다. 또한 이 시기에 유전공학 관련 기술들이 연구되고 발표되었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급속화되며 SF가 일부 마니아층이 향유하는 문화에서 대중적으로 유행하였으며, 광범위한 소비자층이 유입됨에 따라 상업적 추동력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상업적 추동력은 사실 현재까지 쭉 이어지고 있는 것 같죠.

이러한 사회 변화에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SF는 시대의 부름을 받고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이 흐르던 1960년대부터 SF소설이라는 매체로 페미니즘적 유토피아 통찰을 이루기도 합니다. 이 파트에서 조애나 러스, 마거릿 애트우드 등의 여러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소개합니다.

작년에 조에나 러스가 1970~80년대에 쓴 비평문을 엮은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를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이 파트 재밌게 읽은 분들, 유토피아/디스토피아 파트 재밌게 읽으신 분들은 저 책도 꼭꼭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조애나 러스의 소설을 읽고 싶은데, 한국에서 번역된 책이 없더라고요? 제가 못 찾는 건지, 정말 한 권도 없는 건지. 그래서 가장 유명하고 인용이 많이 된 조애나 러스의 《여성 인간》의 줄거리를 거의 논문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원문으로라도 나중에 꼭 읽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마거릿 애트우드는 본인 에세이에서 자신은 SF를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변소설은 아직도 SF장르에 속하는가 아닌가에 대해서 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애트우드는 사변소설을 SF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구요

그 외로도 환경, 인종, 다문화 공동체, 젠더 등과 같은 당시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당시 소설들을 보여줍니다. 특히 건스백, 켐밸 시절 SF들은 백인남성우월주의와 제국주의의 사상을 정당화하는 소설들이 주류라는 비판도 받아왔잖아요. 그러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 장르는 시대가 원하는 소수자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어 10장에서 시대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다양한 주제의 SF를 소개합니다.

"SF가 동시대 문화에 녹아들고, SF를 순수하고 독립된 것으로 지키던 경계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비평가들의 의견이 있으나, 역시 현재의 SF를 정의 내리거나 분류하는 것 또한 불완전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동시대 SF에서 관할할 수 있는 경향의 윤곽"을 그리는 작품들을 소개하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여기에는 과학적 특이점을 지난 소설, 양자물리학을 반영한 소설, 대체 역사물, 더 이상 백인 중심적이지 않은 '지구화된 SF'소설들이 포함됩니다.

이렇게 현재까지 이어지는 경향성을 주욱 읽으니, 꼭 한국 SF의 흐름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에 <창작과 비평>에서 배명훈 작가님이 인터뷰 한 글을 봤는데, "SF는 나와 세계가 관계 맺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들은 정의 중에 사실 이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판타지와 구분할 때 SF는 돌이킬 수 없는 이야기이고, 판타지는 일상에서 비일상의 스토리가 생겨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이야기라고요.

제가 여러 책들을 읽고 항상 하는 생각은,

SF라는 것은 사실 '앞으로 향하고자 하는 움직임' 그 자체에 큰 무게를 두고 있지 않나? 그 작품이 나아가는 방향성도, 그리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 또한 작품마다 각기 다르지만, '앞으로 가고 있다'라는 모양새 자체를 공유하는 장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동작성을 절대 돌이킬 수 없다는 명제를 포함해서요.

움직임의 속도, 움직이는 정도, 움직여온 기간, 결국 향하는 방향성이 제멋대로인 장르라서 언제나 새롭고 다른 것이 매력이고, 현재 한국 SF들은 저 여러 가지 변수들 중 몇몇의 변수를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역행할 수 없는 움직임이기에 항상 새로움을 좇고, 그렇기에 현실을 사는 나의 피부에 맞닿아 변화하는 이 장르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현재 한국 SF, 혹은 한국 장르소설은 일차적으로 IP 활용도가 높은 소설들이 잘 팔리고 유행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날이 선 혐오의 시대이니 만큼 따뜻한 연대와 아가페적 사랑을 가진 이야기들이 사랑받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의 저자들이 한국 SF의 경향성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합니다.

언급한 다른 책들도 꼭! 한 번씩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SF를 좋아하신다면 후회하지 않을 《SF연대기 : 시간 여행자를 위한 SF 랜드마크》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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