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개정증보판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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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소년 심판〉을 재밌게 보고 있는데, 전반적인 이야기가 같지는 않지만 겹치는 주제들이 있어서 흥미를 이어가면서 읽었습니다.

판형은 사륙변형판에 양장본이고, 가름끈이 분홍색인데 색이 되게 예뻐요. 저자 소개가 남색 면지에 명조 계열 글씨체에 은색 별색으로 들어가 있어서 살짝 읽기 힘들어서 아쉬웠는데 그외에 내지 사용된 글씨체가 예쁘더라고요. 내지 디자인도 깔끔하고, 각주도 저는 개인적으로 저렇게 장마다 새로 번호 매기는 게 더 찾기 편해서 좋더라고요.

사회학 도서는 작년에 몇 권 못 읽고 오랜만에 보아서 어려울까 싶었지만, 어려운 책은 아니었고 그 대신에 초반부에 사회에서뿐 아닌 가족 안의 최약체 아동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심장을 부여잡고 읽었습니다.

《이상한 정상가족》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전반적인 사회현상을 가족,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완강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빗대어 서술하는 책입니다. 특히 가족주의를 회사, 사회로 끌어오는 시각이 새로웠습니다.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가족 내부의 문제에서부터, 부부-자녀의 정상가족의 모양에서 벗어난 정상 '외'의 가족들이 받는 차별, 사회로 확대된 강요된 가족주의의 문제점에 이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까지를 막힘없이 죽 이어 나가는 책입니다.

2장의 첫 꼭지 '왜 미혼모만 있고 미혼부를 없을까'에서 미혼모의 권리 신장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미혼모들을 지원하면 다들 결혼하지 않고 애를 낳으면 어떡하냐며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미 허상이 되어 버린 '정상가족'의 망령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참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최근에 한 여자 연예인도 남편 없이 미혼모로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는데 육아 예능에 나오면 되느니, 안 되느니로 논란이 생겼던 일이, 읽으면서 다시금 생각났습니다.

출산율이 떨어졌다고 곧 인구 절벽이 온다느니, 큰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은 떨면서 결국 인정해 주는 건 남녀 부모 밑에서 나온 아이들뿐이라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특히 미혼모, 아이 엄마의 의사와 상관없이 보기에 정상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상 가족으로 입양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물론 입양기관이 민간 기관이라고 할지언정)

여자의 주체적인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고, 낙태 버스를 운영하던 70년대는 마치 없었던 시절인 듯 낙태를 한 부녀와 의사만을 처벌한다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과를 내린 낙태죄에 관해, 현행 낙태죄를 유지하며 14주까지만 면해주는 개정안을 들이미는 정부랑 비슷해 보여요.

사실은 모두 여성의 결정권, 선택권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 아닌가요. 미혼모니까, 남편이 없으니까 당연히. 산아를 제한해야 하니까 당연히 낙태 버스를 운영하고, 그리고 2009년 저출산 문제가 불거지니까 갑자기 낙태 가능 기간을 줄이고. 낙태죄 처벌은 여자와 의사만 받는데, 입양은 남자 혼자만 동의해도 보낼 수 있다는 점도. 참. 그렇죠.

3장에서는 이 '이상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만나게 됩니다. 근대화로 '발전'이 최우선인 대한민국에 복지가 웬 말이었겠습니까. 보편 복지 제도가 없던 시절, 그 부담은 또 모두 가족에게 향하게 됩니다. 저는 이 지점이 신자유주의가 개개인에게 사회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노동자로서 인적자원이 되어 스스로를 자본으로 변화시키고, 자기계발을 통해 스스로 자본에 투자하게끔 하며 인간의 가치를 뒤엎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며 인간의 실패는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가 되어 사회가 그 책임에서 사라져 버리는 현상처럼요.

이 책에서 저자도 "스웨덴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삶은 개인적으로 살고 해법은 집단적으로 찾을 때 저출산을 비롯하여 우리가 겪는 위기를 해소할 길이 보일 수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삶은 집단적이고 해법은 개인적이다. 개인의 개별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온갖 배타적 관계에 둘러싸여 집단적으로 살아가면서 육아, 교육, 주거 등은 다 각자 알아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스웨덴에서는 아동이 최대의 이익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는데, 이 책의 서문의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약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바라보았을 때, 우리 젊은 세대들이 '마을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말을 들으면 몸서리를 치며 싫어하는 것도.

사실 그 공동체가 상대적 약자들을 어떻게 대해왔느냐, 생각해 보면 저는 오히려 그 반응이 당연해 보이거든요.

범죄 예방의 목적으로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자? 오히려 범죄 속으로 들어가는, 숨 막히는 기분에 더 가깝지 않나요?

회복할 공동체를 찾는 것보다, 바뀐 시대에서 공존 가능한 방식을 찾아야 하는 때이니까요. 회복 가능한 공동체는, 사실 제게도 '폭력'적으로밖에 느껴지지 않거든요.

한 번도 존중을 느껴본 적 없고 내내 억압받아 온 공동체로의 회복이라니,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할 리가 없죠.

약자를 위하는 일이 문명의 시작이라면, 가족 내의 아동인권 향상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아동 인권을 향상된 사회에서 여성인권은 당연히 향상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가 가족에 대해 험담을 한 크리스 록의 뺨을 때려서 논란이 불거졌고, 그에 대한 사과를 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한국에서는 '가족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윌 스미스는 잘못 없다'라는 반응이 주가 되더라고요. 그에 대해 무어라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반응을 보고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가족에 한해서는, 가족 문제에 한해서는 폭력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기저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폭력'을 터부시하지 않는, 폭력이 더 이상 터부시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절대 때려서 안 돼'는 고사하고 '사람을 절대 때려서는 안 돼'라는 명제도 통용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항상 그 앞에 조건이 붙는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은 그 조건을 어떻게든 샅샅이 파내려고 하고 그 사건에 재판관이 되고 싶어 하잖아요. 그리고 자신의 판결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불같이 달려들어서 욕을 퍼붓기도 하고. 그게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자율적 개인이 열린 공동체 안에서 너무 몸을 조이지 않는 느슨한 연대를 맺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족주의 내 가장 존중받지 못하는 '아동'의 돌봄, 보호를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가는 것.

저자는 스웨덴의 예시를 들어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하는데요. 저도 공공의 영역의 확장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한국 사회는 가정에 너무 많은 복지를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정상. 이상. 아직까지고 전통적인 가족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임기 지도를 만들고,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고학력 여성들이 저임금 남성과 결혼하도록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휴학, 연수, 자격증을 가진 여성을 취업에서 불이익을 주자고 하는 이 사회에서 과연, 여성이 거의 무급으로 전담하는 영역을 임금을 제공해야 하는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갈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회사원 남녀가 결혼해서 여자가 전업주부가 되면 GDP가 줄어든다고 하잖아요. 전업주부의 노동력의 가치는 연구된 적도 없다고.

게다가 무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 채 독박 육아를 하는 당사자들 스스로 독박 육아가 아니라 '독점 육아'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 이 지점이 정말 사회의 문제를 개개인의 문제, 것도 한 인간의 도덕성과 양심으로 치환시키는 문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대선 결과도 그렇고, 돌봄과 보호가 공공의 영역으로 갈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워요. 대선 이후에 더 의문스러워졌고요. 이 책 읽으면서 진짜 많은 생각이 들었고, 화도 많이 났고,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와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단어의 간극에 소름도 돋았는데요.

제게는 여러모로 착잡하고, 머리 아프고 힘들기도 했던 책이었습니다.

사실 책 내용은 무겁지도 않고 통계나 사례 위주로 사실 중심으로 서술을 합니다. 거기에 덧붙여지는 제 생각이 줄줄줄 딸려 나왔네요. 어쩌면 정말 저랑 전혀 상관없는 내용인데도, 가장 상관있는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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