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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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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서라 처음에는 살짝 걱정이 되었는데, 그런 걱정은 무색하게도 이 책은 정말 완벽히 자신의 독자층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으로 하는 일반도서! 우리 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훑는 어마어마한 해부학 지식이 들어있지만 재밌는 에피소드와 비유를 통해서 서술해나가서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는 일은 아마도 없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이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1 사람을 만드는 방법

2 바깥 : 피부와 털

3 우리 몸의 미생물

4 뇌

5 머리

6 입과 목

7 심장과 피

8 몸의 화학

9 해부실 : 뼈대

10 움직이다 : 직립보행과 운동

11 균형 잡기

12 면역계

13 심호흡 : 허파와 호흡

14 음식, 맛있는 음식

15 소화 기관

16 잠

17 거시기 쪽으로

18 시작 : 잉태와 출생

19 신경과 통증

20 일이 잘못될 때 : 질병

21 일이 아주 잘못될 때 : 암

22 좋은 의학과 나쁜 의학

23 결말

빌 브라이슨, 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목차

1장에서 사람을 구성하는 원소부터 쭉 안의 기관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보면 어렵지 않게 마지막 장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각 장마다 기가 막힌 실험들이나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정말 이런 멍청한 짓들로 과학이, 해부학이 발전해나간 건가를 생각하면 꽤나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참수형이 빈번히 벌어지던 영국에서 사람들은 몸과 절단된 머리에 의식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 궁금해하던 과학자들이었는데요. 그들은 참수형이 집행되자마자 떨어진 머리에게 달려가서 '내 말이 들립니까?'와 같이 물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에 답하는 머리는 하나도 없었고, 그들은 의식이 남아있는대도 질문에 대답할 정도로 긴 시간 남아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험이라 읽자마자 동생한테 말해줬습니다. 과학 책을 이렇게 재밌게 읽어본 적이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평을 어떤 방향으로 작성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 책의 내용을 모두 다루기에는 너무 어려울 듯해 제가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파트인 '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뇌는 우리의 감각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꾸며낸다. 존재에 관한 기이하면서 직관에 반하는 한 가지 사실은 광자는 아무런 색깔도 없고, 음파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으며, 후각 분자는 아무런 냄새도 없다는 것이다.

p. 84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도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각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대뇌 안에서 만들어진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내가 보는 이 보라색과 남들이 보는 이 보라색이 정말 같은 색일까?

책 안에서 눈의 맹점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눈의 수많은 실핏줄들을 뇌는 아주 자연스럽게 없애고 눈 뒤쪽으로 시신경이 빠지는 부분의 상이 보이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메꿔나가는 것들. 그 부분을 읽으면서는 우리의 뇌가 정말 컴퓨터, 포토샵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결국 인간의 기술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불과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우리는 결코 바로 이 순간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뒤의 세계를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평생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면서 보낸다.

시신경을 통해 받은 신호를 해석하는 뇌는, 항상 그다음의 상황을 예측하며 일생을 보냅니다. 항상 자극 그 자체와 뇌 안에서의 인지는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얼핏 일상을 살아가면서는 우리가 마치 '이해하는 것' 자체를 감지한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 같아요.

이 책은 이렇게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들을 가져와 원리를 알려주며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있는 모든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 사실 그게 과학도서를 찾아 읽는 이유인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중에 써먹을만한 소재들을 몇 개 열심히 적어두었습니다.

작가는 연골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대체재를 찾는 연구가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연골보다 성능이 좋은 것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무언가 인간의 몸이라면 자연발생적이라 인공적인 몸체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여전히 인간의 몸은 아직도 연구되지 않은 것들이 많고(아직까지 열이 왜 나는지 원인조차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이미 몸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술조차 만들지 못한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반구 병변 시에 나타나는 증상들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병들을 보면 정말 우리의 뇌가 인식하는 세계 안에서밖에 살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오르기도 하고요.

전체적으로 우리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개론적으로 훑어주는 책이니 만큼, 한 번쯤 지적 호기심이 가득 차는 날에 찾아보시면 후회하진 않으실 겁니다.

오랜만에 읽은 과학도서였는데, 생각보다도 너무 재밌게 읽어서 좋았어요. 오랜만에 또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오늘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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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장폴 뒤부아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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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표지를 봤을 때 가장 먼저 생각했던 점은, 소설 제목과 작가 이름이 같은 크기로!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무언가 작가에 대한 기대치를 높게 만드는 표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어요. 표지 중간에는 일러스트가 있고, 눈에 먼저 보이는 곳에 작가 이름이 크게 들어가 있기도 했고요.

책 소개에서는 2019년 공쿠르상 수상 작가라는 수식어가 먼저 눈에 띄었고, 그다음으로는 '찌꺼기 유전자'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전자라고 하면 무언가 내가 거부할 수 없는 타고난 것이라는 속성이 가장 먼저 떠오르잖아요. 동양과 서양에서 운명론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방향성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프랑스 작가가 쓰는 운명의 굴레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고, 이 글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도 궁금했어요.

책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운명을 받아들이느냐 거스르냐의 이분법적인 관점을 한 개인의 현실적인 삶 속에 녹여낸 이야기였다고 생각했어요.

상속》의 주인공 폴 카트라칼리스에게 주어진 삶의 고통은 가족들로부터 비롯된다. 할아버지는 구 소비에트연방에서 스탈린의 주치의를 지낸 인물로 독재자가 죽었을 때 그의 뇌 조각을 훔쳐 도망쳐온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혹시 부부 사이가 아닌지 의심할 만큼 자기 남동생과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이고,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의사인 아버지는 가족으로부터 거리를 띄우고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한집에 살던 할아버지, 어머니, 외삼촌이 연이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상에서 자신의 무게를 견뎌낼 힘이 없어’ 소멸을 위해 매진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버지와 단둘이 남게 된 커다란 집은 폴에게 우울하고 어두운 기억의 장소이자 망자들이 남긴 유물들이 도처에 그대로 남아 있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밖에 없는 고통의 원천이다. 집은 그에게 암울한 미래를 강요하는 덫이기에 떠날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같은 집에서 살아왔지만 서로 교감을 나눈 지 오래다.

『상속』 출판사 서평 中

카트라칼리스 가족에게는 '찌꺼기 유전자'가 흐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폴의 아버지는 스카치테이프로 제 얼굴과 안경을 동여매고 옥상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 마이애미에서 펠로타 선수로 지내던 폴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고향으로, 그러니 찌꺼기 유전자가 시작된 곳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폴은 살면서 가족, 그러니 자신의 유전자에게서 벗어나려 떠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운명에 대한 개인의 숭고한, 혹은 격정적인 투쟁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가 폴에게 선사한 특징은 그 무엇보다 비현실적이지만, 폴이 살고 있는 세상은 그 어느 곳보다 현실적입니다.

펠로타 경기를 본 스카우터, 선수들의 파업, 돈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여러 사건은 충분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폴은 항상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그러니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기 위해서 도망칩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상속》은 자살유전자가 대물림된다는 상상을 토대로 전개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이자 한 남자의 드물고 기이한 가족사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인물이 상속받은 유산이란 사실 인간이면 누구나 떠안게 되는 삶이다."(p.371)라는 문장을 읽고 나서 어렴풋이 작가가 이 소설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유추해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상속』 책 소개에서도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장폴 뒤부아의 소설이 언제나 주목하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기이한 주제로 시작된 이야기가 어떻게 보편적 인간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느냐 묻는다면, 그것이 답이라 생각합니다.

폴이 그 유전자를 피해 도망가는 그 일대기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생이란 불행하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보통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행복은 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어디선가 받아온 '찌꺼기 유전자'를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없어지지 않고, 털어내지지도 않으며 하룻 밤 자고 일어난대도 사라지지 않는 문제들.

그것이 나의 가족일 수도, 환경일 수도, 주변의 인간관계, 취업, 경제적 사정일 수도 있겠죠. 단지 '잘 될 거야.' 나 '힘내.'라는 말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안고 사는 우리 모두 폴과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운명을 거부하던 폴, 그가 택한 마지막을 운명에 대한 좌절, 혹은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자유를 위해 치르기로 선택한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소설에서 폴이 마지막 선택을 하기까지의 머릿속의 여정을 자세히 그려주는데, 그 길을 통해 확인한 폴의 선택은 좌절이라기에도 자유라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떠밀리지도, 쟁취하지도 않은 그저 세상에서 '밀고 밀림'의 중간엔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요.

이러한 폴의 일상이 불행한 우리의 삶의 동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설 후반부에서 결말로 이끌어 나가는 힘이 좋았어요.

저는 처음 접하는 작가이기도 하는데 읽는 내내 프랑스 느낌이 나는 신기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주제조차도 뭔가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생소한 지명과 이름을 극복하기만 하면 읽는 데 어려움은 없고, 유쾌하진 않지만 우울감이 책장을 잡아채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독한 현실에서 있을법하지 않은 소재를 유용하게 섞어내는 방식이 정말 좋았어요. 아마 한 번 잡은 이상은 결말이 궁금해서라도 끝까지 놓지 못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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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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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관하여 덜 말해질 때란 결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남성이 덜 말할 때는 왔다.

작가는 안다. 여성혐오가 존재한다는 것. 그러므로 여성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 자신의 어머니부터, 여동생, 아내까지 모두 가부장의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여성을 차별하는가?

책에서는 '사회', '기득권', '가부정적인 사회'와 같은 말로 애써 대답을 회피하지만 답은 명료하다.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남성이다. 가부장적 사회로 가장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남성이고 남성중심사회가 여성에 대한 몰이해와 몰상식으로 그들을 배척한다.

이 책은 왜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너무 상냥하게 이해해준다. 알파남성들이 차지해 얼마 남지 않은 쌀알같은 자리를 여성들이 가져가는 것 같아 보여서.

이 이유에 가해자는 갑자기 사라진다. 남성은 어느 새 또 이 사회에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젊은 남성들의 좌절이 있다. 극심해진 양극화는 '금수저'나 전문직과 대기업, 공직 등 일부 상류 계층의 남성을 제외한 나머지 남성의 미래를 박탈하고 있다."(p.182)

여성의 미러링도 정당하지는 않다. "사태의 본질은 양극화로 인한 절망과 더불어 여전히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남성에게 요구하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p.237)

가부장제의 기득권이 어떻게 자신을 기득권의 몸에서 빼어내고 피해자성을 취하는지, 한국의 남성들은 여성의 피해자성마저 앗아가는 지 그의 논리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남성에게 요구하는 사회. 이 사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누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남성에게 요구시키는가? 가부장제의 사회이다. 가부장제의 사회는 누가 이끌어가는가? 남성이다. 알파남성들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보다 하위계층인 여성에게 분풀이를 하는데, 이게 너무 자연스럽다. 그런데 왜 여성을 혐오하는가? 한국남성들의 굴절혐오는 너무 지극해서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로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남성에게 요구하는 사회였는가?

정말 남성이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세상이었나? 시골집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노름, 도박, 술에 찌들어 살았고 할머니가 가계를 꾸려나갔다. 이런 이야기가 정말 새로운가? 오히려 집안을 이끈 할아버지라는 존재를, 아버지 라는 존재를 신처럼 떠받들지 않았나? 돈벌어오는 ATM기계라며 스스로를 연민하는 밈이 퍼졌으나 실제로 그런 집안이 많은가? 정말 그들은 가족들에게 아끼지 않고 제정적인 지원을 해주었나?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탱하지 않으면 남성사회에서 질타를 받던 사회가 있었나? 그 반대 아닌가?

내 주변만 봐도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거나, 자신이 번 돈을 가족들에게 쓰지 않으며,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계가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도대체 가장으로써 남성이 책임을 다한 사회는 언제였는가?

남성의 측면에서 왜 여성을 혐오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주는 대목이 우스운 이유다. 능력있는 남성을 원한다? 독립한 성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능력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 연봉. 이것이 남성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인가? 그건 사회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압박감이다. 너무 엄살이 심하다.

가족은 위해 일하는 남편? 우습지도 않다. 가족이 없다면 일하지 않을 것인가? 게다가 스스로 가족을 꾸리기로, 결혼을 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닌가?

독립한 성인은 스스로를 먹여살리기 위해서라도 능력있어야 한다. 승진하고 싶어도 한다. 이걸 무슨 남성의 힘듦으로 토로하는 것이 황당스럽기 그지 없다. 오히려 회사에서는 '가장'이라는 이유로 기혼여성과 비혼여성을 밀어내고 남자를 승진시킨다.

가부장제 사회가 젊은 남성과 여성을 힘들게 한다 말하기 전에, 스스로 정말 그 제도로 자신이 얻은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자신의 가해자성을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기술이라는 것이 정말 황당했다. 난 항상 이런 기울어진 사회에 남성들이 약자성을 뺏어가는 것이 의문스러웠는데 알고 싶지도 않았으나 이런 논리흐름이라는 걸 처음 깨닫게 되었다.

여성의 아픔을 인지하지만, 작가 스스로도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전담하도록 하며(상호 의견 합의했다고 하는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 여자가 있던가)어머니는 불쌍하지만 그런 어머니를 가부장제의, 그러니 남성의 권력유지를 위해 착취한 아버지에 대한 책망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논리라면 도대체 작가는 누가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걸까. 여성을 혐오한다는 그 사회는 도대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해결책 없는, 그러니 우리 모두가 힘들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양비론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뻔하다.

당사자성 없는 남성이 젠더를 이러한 시각으로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이 책은 도대체 남성이 무슨 논리로 약자성을 취하는 지 궁금한 여성들에게만 권한다. 질낮은 여성혐오와는 다른 방식의 여성혐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지은 제목처럼, 여성에 관하여 덜 말해질 때란 결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여.

버지니아 울프가

"…내가 우선 여성에 관해 남성이 쓴 책을 모두 읽고 그다음에는 남성에 관해 여성이 쓴 책을 읽어야 한다면, 내가 그것을 모두 읽고 글을 쓰는 동안 백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 알로에 꽃을 두 번은 보아야 할 테니까요. "

이렇게 말했듯이

남자여, 이미 예전부터 남자는 여성에 대해 그리도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니 남자여,

이제 그만 입을 닫을 때가 왔다. 

정말 여성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스스로가 가진 가해자성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메가폰을, 스포트라이트를 넘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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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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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에 보았던 『체공녀 강주룡』 의 박서련 작가님의 신작, 『마르타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트위터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급히 신청해보았는데, 운 좋게 선정 되었습니다.


표지 느낌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양장본! 얼마만의 양장본인지,,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삽심대 여성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사건을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갑니다. 


SNS 셀럽이었던 동생 '경아'의 죽음은 예상치 못하게 다가옵니다. 주인공인 '수아'는 자신의 기억 속 경아를 천천히 떠올립니다. 예쁜 경아의 언니 수아. 


자살했다는 경찰의 말을 믿지 못하던 수아에게 경찰이 경아의 핸드폰을 넘겨줍니다. 그런데, sns 메세지도, 경아가 자살한 것이 아니며 자신이 그 범인을 알고 있다는 한 익명의 메세지가 도착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예쁘고 착한 SNS 셀럽의 자살"


예쁜 동생과 예쁘지 않지만 공부 잘하는 언니를 사회에서 정의내리는 시선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여성과 여성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닌 허구성의 질투와 시기로만 바라보는 시선, 예쁘고 어린 여자를 깎아내리려 애쓰는 사람들. 이 모든 시선이 현재 한국사회에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한 여자의 인생이 이렇게 쉽게 어떤 남성에 의해 끌어내려질 수 있다는 점,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여자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근원적인 공포감 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공포감 말고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데, 마땅히 생각나지 않네요.)


책을 읽으면 자매의 이야기와 그들을 대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말 같은 위치의 사람으로써 읽는 내내 너무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매의 관계는 "예쁘지 않은 언니는 당연히 예쁜 동생을 질투할 것이다"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의해서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애초에 이 사회에서 그 원인이 무엇인 지 찾을 수도 없습니다. 경아를 좋아하는 교회오빠는 경아를 '꼬리친 여자'라는 단어 하나로 손쉽게 경아를 욕하고, 경아를 보는 모든 사람들도 그를 알아가려 하기 보다 편견으로 만든 상상 속 그를 생각하며 모두들 경아를 물어뜯습니다.


이 흐름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읽으며 문제점들을 곰곰히 따지지 않으면 단지 '현실의 것' 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을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공유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이야기의 흐름은 경아를 죽인 범일에게 복수를 도모하는 수아의 이야기입니다. 남성가해자에 의한 피해자로서만 그려지는 여성을 넘어서 작가가 화자로 선택한 언니 '수아'의 캐릭터는 지금껏 보던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기만 하던 언니'와는 다릅니다.


임용고시 1차에 합격하고 면접을 남겨두고 있는 '수아'의 목소리는 동생의 죽음에 온 감정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과 경아의 복수 그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 무섭게 노력합니다. 이런 균형을 잡아가는 캐릭터를 본 적이 없어 너무 새로웠습니다. 


경아의 남자친구인 이준서가 엄마에게 '경아가 해주는 떡볶이를 너무 잘 먹어서' 용돈을 들었다는 사실을 읽고, 제 육성으로도 욕설이 바로 튀어나왔지만, 그 다음 문장을 읽어보니 수아도 저와 아주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이야기를 꺼내면 '오버하는 것'아니냐며 입을 다물게 만들던 남성들의 여성혐오용어를 정확히 집어주셔서도 좋았고, 읽는 독자 입장에서도 주체할수 없게 화가 나는데 그 발화는 '수아'가 대신 해주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동생의 복수를 다짐하는 언니의 캐릭터가 너무나도 냉철하고 체계적인 것, 그 특성이 '복수극'이라는 장르에 새로운 변주로 와닿아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해주었습니다.

현재의 한국사회를 외면하지 않고 살아남기위해 애썼던 자매를 보여주며, 이것이 소설이라는 점에 안도했지만 동시에 그보다 더한 현실감을 느낄 수 있어서 먼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소설 속에서 수아가 '무섭다'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연 수아가 자신을 무섭게 만들었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봅니다. 


복수를 계획하는 새로운 화자, 그에 숨겨진 비밀들을 현대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하나하나 풀어가는 소설 『마르타의 일』, 여러분도 한 번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화 되도 아주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그럼 감사합니다.


이준서 이 씨발새끼. 죽여버린다.
진짜로 반드시 죽이고 만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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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겨진 눈 아래에 - 브릿G 단편 프로젝트
정도경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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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항상 새로운 여성 서사를 찾아다니는 인간으로서, 이런 단편집이 종이책으로 출간된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이 단편집 안의 글들은 소외된 여성을 글 안으로 데려와 그들의 인생을 조명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비파 연주를 잘한다는 이유로 물에 빠진 여자. 어린 시절 갇힌 화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엄마의 무릉도원을 무너트린 나. 사고로 기억을 잃은 엄마를 납치하듯 데려와 결혼한 아빠, 그 과거 기억을 찾고 싶어 하는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강. 딸과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죽였다는 이유로 사형당하는 백작부인. 탈북한 후 온 곳을 돌아다니며 도망치듯 살아온 '너'. 그리고 여성들의 디스토피아가 된 한국으로 여행을 와, 강제로 군 복무를 수행하게 된 세실.

그들은 어느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 우리의 곁인 현재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에 각자 자신의 삶을 견디어 내며 담담하게 우리에게 자신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과거는 어쩌면 우리가 겪었던 일일 수도, 앞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길 안 일 수도 있습니다. 홀몸의 여인이라는 이유로 물길을 잠잠하게 하기 위해 호수에 던져진 여자의 이야기가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깊이 공감하며 읽어나가는 이유는 그 이야기의 본질이 나에게, 혹은 나의 자매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잘못으로 인한 엄마와 딸의 관계의 불완전함, '남자'를 피해 홀로 도망쳤다는 죄책감을 가진 채 엄마를 마주하는 딸, 탈북자의 신세로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가던 너, 이 글 속 주인공들의 마음속의 짐은 한 주제를 관통해서 이어집니다.

어떤 이들에겐 강을 건너다 사살당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당장의 생존에서부터, 딸을 낳음으로써 자신의 무릉도원이 끝났다 믿은 엄마의 시선을 받았던 아이, 딸을 죽이려 들던 남편을 죽임으로써 사형을 선고받은 백작부인까지의 모든 일을 아우릅니다. 이들은 눈을 뜨면 명백한 단 한 가지의 이유로 1에서 100까지의 고난을 가지고, 담담하게 혹은 반항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런 주제를 극대화하여 보여준 것이 이 단편집의 표제작인 전혜진 작가님의 「감겨진 눈 아래에」입니다.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지금까지의 방향대로 움직인다면 정말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섬뜩한 예감으로 책장을 넘기게 만듭니다.

인공 출산이 가능해진 미래임에도, 대한민국은 문명국이었던 과거가 거짓이었던 듯 과거로 역행합니다. 출산하지 않은 여성들의 대학원 진학과 외국의 유학을 막으며 압박하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의 권리를 조금씩 앗아갑니다. 그들은 가축처럼 등급으로 나누어져 병역 의무를 지게 되는데, 병역 의무라는 것은 곧 출산입니다. 그들은 원하지 않은 출산을 하며, 단지 남성의 소유물로, 나라의 소유물로써 살아갑니다.

세실은 이러한 한국의 상황을 보다 못해 프랑스로 망명한 부모를 둔 프랑스인입니다. 그는 인권단체에서 인턴을 하다, 궁금증과 패기로 한국 여행을 가지만, 공항에서 붙잡혀 '성병검사'라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강간을 당하고, 3등급 판정을 받고는 끌려가게 됩니다. 1등급 판정을 받은 여성들조차, 가능한 일이라고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자신이 키울 수 있다는 것뿐, 그들의 자유의지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 나고 교육받은 세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나, 그곳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한 재경을 만납니다. 외부와의 교류도 단절된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라며 전단지를 돌리다 잡혀 온 재경, 그는 자신을 불가능하지만 세실에게 나가서 이곳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말합니다.

세실은 재경을 생각하며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습니다. 그러다 자신을 찾으러 온 인권단체 사람들에 의해 간신히 프랑스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세실은 숨지 않은 채, 세상에 폐쇄적인 한국의 세태를 고발하는 책을 내게 됩니다.

전국 가임기 여성지도를 공개하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고학력 여성의 취업 기회를 제한하자는 제안을 내며, 자신의 성을 파는 10대에게 일정한 법적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인사가 있는 정부에서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디스토피아 소설이 저 먼 별나라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이사이 서늘한 현실감이 독자에게 다가옵니다.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나온 세실을 마음속으로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읽으며 아쉬웠던 점도 있는데요.

이 단편집의 뒤면에는, "혹독한 가부장적 세계의 속박에서 자유를 갈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여성 서사 작품집"이라는 소개 글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가부장적 세계를 전복하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 단편집은 현재 가부장제에서 피해자가 돼버린 여성, 그리고 그 피해로 인하여 자신보다 약자인 여성에게 가해자가 되어버린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로 다뤄졌습니다. 가부장제의 전복,보단 현재 여성들의 고난을 가시화시켜, 공론화하기에 적합한 소설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어서,, 사실 기대의 방향성과 삐끗했습니다.

여성 서사의 중요성은 백번 천 번을 말해도 부족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의 고난을 '성폭력, 가정폭력'으로만 일축하는 경향을 많이 봐왔습니다. 물론 현실의 여성들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범죄라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그 고난의 전복이 이뤄지지 않고,  그 여성의 희생과 다른 여성의 공감만을 강조하면 끝나는 이야기들. 이제는 그보다 더 나아가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접을 수가 없습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이야기 물론 옳습니다. 백작부인이 왜 사형을 당해야 하는가, 왜 엄마는 '나'를 화장실에 가둘 수밖에 없었는가. 이유를 따지고 들어가면 그 이야기가 내포하는 현실에 목이 막히고 숨이 답답해집니다. 독자에게 의미를 반추시키는 이야기들의 필요성 또한 절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더없이 참담한 세계를 살아가는, 자유를 갈망한" 여성들 그리고 "쟁취에 완벽히 성공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함께 가시화되기를 바랍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색색별로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들이 차례대로 다가옵니다. 몇몇은 책장을 덮고 숨을 골라야 할 만큼 아프고, 몇몇은 손이 땀이 날 만큼 긴장되지만 우리는 그 어떤 이야기에게도 눈을 떼서는 안 됩니다. 그들과 함께 끝까지 달리는 길에, 어쩌면 우리들의 발자국이 먼저 찍혀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여성들이 우리의 발자국을 이정표 삼아 글의 완결을 향해 달려갈 지도, 또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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