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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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을 처음 읽은게 아마 10년 전 쯤이었나.....
세계문학 전집 시커먼 양장에 예전 방식대로 금박 글씨로 국한문 혼용으로 [見]-그때는 '과'밖에 읽을수 없었다는 ㅋㅋㅋ]이라고 떡하니 박혀 있는 이책은 옆에 위용을 자랑하는 좌 톨스토이의 [부활]과  우 스탕달의 [적과흑]과 함께 언제나 꺼내보기 힘든 책이었다.

하지만 첫장을 펼쳐드는 순간 부산스럽게 뛰어 들어온 베넷부인과 무심하게 대답하는 베넷씨의 결정적 대사 '그가 우리 딸들과 결혼하기 위해 이사를 온다고 하오?'이 한마디에 요즘말로 뿜었다^^;;;
그후 내쳐 읽기 시작하여 하루도 되지 않아 후딱 읽어치운것으로 기억난다.
그때 무슨 [목욕탕집 남자]인가 뭔가 하는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었는데 속으로 히야 이거 웬만한 드라마 보다 더 재미있쟎아 하는 생각이었다.
완소남 다아시의 정체는 반전의 묘미도 있었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두고 두고 다시 읽어볼 만큼 명작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으니 그때 느꼈던 재기 발랄함이나 흥미를 다시 느낄 수  없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물론 그 시대에 이만한 책을 쓸수 있었던 오스틴여사를 폄훼하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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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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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회주의 국가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진정한 사회주의 인간상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언제나 사상적인 문제가 개인을 뛰어넘는 그러한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영웅적인 인물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 읽은 책들의 주인공을 떠올려 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밀란쿤데라의 [농담]의 루드빅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토마스,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에 등장하는 예지게이,막심 고리끼의 [어머니] 닐라소바와 니꼴라이 오스뜨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주인공 빠벨 꼬르차긴.....


이 중에서 가장 영웅적인 인물의 전형이랄 수 있는 것은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주인공 빠벨 꼬르차긴 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고리끼의 어머니야 말로 진정 위대한 혁명전사이나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진정한 영웅으로 변해가는 뭐 논외로 쳐두고...선천적으로 고난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혁명에 매진한 주인공은 빠벨 꼬르차긴 밖에 없는것 같다.

그럼 난 지금까지 무엇을 읽었단 말인가?
기억하기로는 [사람아........]정도의 책만 소지한 것 자체만으로도 국가보안법에 위배되는 시절이 불과 십수년 전이었다.
다이 허우잉의 '사람아....'는 밀란쿤데라의 '농담'과 전개방식이나 소재자체가 놀랄정도로 유사한데...농담이 좀더 다루는 방식이 가볍다고 할수 있겠다.
엄밀히 따지면 '사람아'와 '농담'은 사회주의 소설이 아니라 반사회주의소설이라는 결론이 난다.
불합리한 '문화혁명'이란 격류속에서 불행을 겪은 쑨위에와 허징우의 개인적인 연애사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너무 가혹한 평가일까?

사회주의가 무너진지 십수년이 지난 지금.....어쩜 역으로 생각한다면 그 속에서 박해 받았던 루드빅과 토마스 예지게이와 쑨위에..허징우 등등이 진정한 사회주의 영웅이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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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알베르 카뮈 전집 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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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모든 불행과 역경에 끊임없이 반항하고 도전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역경이 닥쳤을때 인간들은 가장 나약해지고 이성이 마비되어 인간성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시 가장 평범하고 나약했던 인간이 가장 잔인한 살인자가 되어가는 것처럼...

페스트가 잠식한 도시의 시민들은 운명에 내몰린 채 절망의 나날을 보낸다.
카뮈는 주인공들을 통해 운명에 저항하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히 기록하며 연대기를 작성한 주인공처럼 말이다.
이런 일이 있을때 마다 종교에서는 인간의 오만함을 단죄하기 위한 신의 심판이란 말을 쓰곤 한다.
가장 비겁한 변명이다.
언제까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신이라는 방패막이 뒤에서 변명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인류 역사상 추악한 전쟁들은  각자 만든 허상속 신들의 실오라기 만한 차이 때문에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지금 대한민국도 페스트가 잠식한 오랑시와 같다.
전쟁에서 패배하여 자유를 빼앗긴 자들은 언제까지 변명과 패배의식에 젖어 있어야 하나? 패배는 인정하고 교훈으로 삼자 다음 전쟁에서는 꼭 이기자.아님 더욱 나락에 빠져들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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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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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행복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부와 명예? 행복한 가정?.......아님 둘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만족시키며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저출산이 사회 문제로 대두 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언뜻 이 책속의 부부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산을 계획하는 장면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것도 사실이다.

이들 부부는 애초에 여섯명 정도의 아이를 가질 계획을 세우고 분에 넘치는 대저택을 구입하는데 넷째 아이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는듯 하나 다섯째 아이의 탄생으로 모든 계획이 무너져 버린다.
장애를 가진 아이....
이 책에서는 인간이 아닌 다른 진화체계를 거친 괴물이 태어난것 처럼 묘사를 하지만.....내 생각엔 단지 사소한 장애를 가진 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티비에 가끔 보면 열명이 넘는 아이를 출산한 가정이나 수십명의 아이를 입양하여 기르고 있는 부부들의 모습을 볼수 있는데 이들 위대한 부부들의 예를 본다면 책속의 여섯명의 아이를 계획하고 있는 부부는 뭔가 무모하고 모자라 보인다.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를 보면 이 둘이 인간의 모든 지식에 도전하여 실패를 거듭하다 가장 마지막에 도전하는 것이 교육인데....지금까지 경험했던 실패의 몇곱절에 해당하는 대 실패를 하게 된다.
이 만큼 교육이란 문제는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단지 아이들이 뛰놀 대저택이나 경제적인 문제들만 생각한채 다산을 계획한 이들 부부는 애초에 생각을 잘못한 것이다.
아이들을 낳고 교육하는 것에 경제적인 문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자신들을 희생하면서 까지 무리한 계획을 세운것 자체가 이들에게 불행한 결과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태생부터 범상치 않은 다섯째 아이의 탄생과 그로 인한 공포의 묘사는 실로 뛰어나서 태생부터 잔혹한 살인마의 심성을 갖고 태어난다는 '사이코패스'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 다섯째 아이 역시도 부부의 그릇된 행복계획의 희생자일 뿐이다.
이들 부부의 다산 계획은 자신들이 자신들을 돌볼틈도 없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에 메달리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들 친정엄마나 시댁부모들까지도 가사나 육아 재정적인 부분을 돕기 위한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자신을 희생하고 주변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아이들이 무슨 행복의 요소일 것인가?
차라리 경제적 부담 없이 자기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두명정도의 아이를 길렀다면 이들 부부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겠냐만은 아이를 낳고 기름에 있어 마음의 준비없이 단순히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태어나는 아이는 어김없이 사랑의 선물이 아니라 이 책속의 무시무시한 다섯째 아이가 될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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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르트의 바닷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1
줄리앙 그라크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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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읽지 못하던 책이었다.

작가의 이름이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필명이었단다....스탕달의 [적과흑]의 주인공 쥘리앙 소렐에서 딴....

어쨋든 벌써 일년여란 세월이 후딱 흘러가 버렸는데 처음 이 책을 100여 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만 해도 뭔가 막연한 기대 같은게 있었다.

 

쥘리앙 그라크라는 이름이 뇌리에 박아놓은 호감은 시르트의 바닷가라는 다소 낭만적이 제목과 파르게스탄과 오르세나라고 하는 가상의 도시국가에 대한 막연한 호감과 기대로 이어졌고 지루해서 다 읽지는 못했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시르트의 바닷가]는 작가의 멋들어진 이름 쥘리앙 그라크와 함께 보는 내게 언제나 미소짓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그래 맞다...난 작가의 멋진 작명솜씨에 반해 1년여동안 책 표지만 보면서 나름의 상상력으로 즐겨왔던 것이다.

 

주인공 알도,마리노대위,바네사...등등 주인공들의 이름들도 얼마나 멋지게 들리던지...ㅋㅋㅋ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르트의 바닷가를 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가 떠올렸다.

시공을 가늠할 수 없는 도시국가라는 설정 자체가 SF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나..마치 외계생명체와 몇세기에 걸친 전쟁을 벌여오던 미지의 식민행성으로 부임하는 젊은 장교로 바꾸어도 그럴듯 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영화로도 유명한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보면 네루다가 우편배달부 마리오에게 '메타포'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만약 네루다가 서재에 [시르트의 바닷가]를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마리오에게 설명해주는 대신에 시르트의 바닷가를 읽어보라고 던져주는 걸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 만큼 이 책에는 무수한 메타포들이 거대한 바다를 이루듯이 나온다.

 

자 메타포의 향연에 빠져보고 싶은 사람은 이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너무 어려울것 같아 미리부터 겁먹지 않아도 된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비교적 재미있는 편이다.

다만 중간중간 범람하는 메타포의 풍랑에 배밖으로 떨어져 허우적 댈 수도 있으나 어느 순간 마지막 장은 덮여있고 존재했던것 같지도 않은 오르세나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한자락이 묻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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