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비트겐슈타인, 나_라는 세계의 발견
나카무라 노보루 지음, 박제이 옮김 / 독개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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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이해도를 높여주기위해 친절하게 해설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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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비트겐슈타인, 나_라는 세계의 발견
나카무라 노보루 지음, 박제이 옮김 / 독개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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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비트겐슈타인. 나라는 세계의 발견' 책은 일본 NKH출판사의 '배움' 시리즈로 제작 되었던 책 중의 한권이다. 앞서 같은 '배움' 시리즈 중의 한권인 '그래서붓다. 유쾌하게 산다는 것' 책을 읽었었다. 책을 읽다보니 책의 크기와 책이 출판되는 형태가 우리나라의 '서가명강' 시리즈 책들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서가명강]이란, 서울대 학생들이 듣는 인기 강의를 일반인들도 듣고 배울 수 있게 대중적으로 펴낸 시리즈 책을 말한다. '서가명강'은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강의를 엄선하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양과 삶에 품격을 더하는 지식한 제공해주는 컨텐츠이다. 기초 학문부터 전공을 넘나드는 명품 강의를 도서. 강연. 팟캐스트를 통해서 만나볼 수가 있다.

서가명강을 도서로 먼저 접하고 팟캐스트까지 찾아서 들었던 적이 있는데, '배움' 시리즈 책들을 보니 그때의 추억이 샘솟는다.



저번 책은 작가와 함께 '붓다'의 생애를 쫓으며 불교의 선 사상과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좋은생각책이나 명상책처럼 느껴졌었는데 이번 책은 감상문 책이 아니고 해설서 같은 느낌의 책이다. 시리즈물이라 책의 크기는 똑같이 작지만 두께는 붓다보다 두 배에 살짝 못 미치게 두껍다. 필시 담아야 할 내용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나라는 세계의 발견' 책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책의 해설서 처럼 느껴진다. 책의 한부분을 발췌하고 그 부분에 이해도를 높여주기 위해서 각종 비유와 예시를 들어서 설명을 해주고 있다. 한 목차마다 두페이지 정도의 분량만 차지하고 있다. 쉼표를 많이 찍어준 도서라고 느꼈다. 많이 쉬어가라고 배려해주신 것일테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 자체가 어려운 자이기에 책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가독성이 안붙어서 천천히 읽어야 될 책이다. 마지막에 맺음말에 가보면 작가는 이 책을 고등학생때의 자신에게 주는거라 생각하고 썼다고 한다. 이정도면 고등학생들도 비트겐슈타인을 이해할 수 있겠다며 썼다는 뜻이다. 입시경쟁이 치열한 명문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이 환자 같았다며 전혀 웃지를 않았었다고 말하는 작가가 내 감수성을 살짝 건드리지 않았다면 작가가 살짝 미울법 했다.



'비트겐슈타인'

언젠가 독서모임의 선정도서로 '내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책을 선정한 적이 있었다. 그 책은 '도덕감정론'의 독후감 같은 책으로 도덕감정론의 맛을 살짝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도덕감정론이 대충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맛보기로 느껴보자고 했더니 모임원분중에 한분이 그냥 '도덕감정론'을 읽으면 되지 왜 이런책을 읽느냐고 물었었다. 그때 아주 당당하게 말해줬었다. 읽을 수 있으면 읽어보라고.

이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도 비슷한 책이다. 저 책이 얼마나 유명한지, 저 책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저 책이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나도 많이 들어와서 잘 알고있다. 그래서 아직 읽을 시도도 안해봤던 책이였다. 그 책을 일본의 주오대학교에서 문학부 교수로 재직중이신 나카무라 노보루가 맛을 보게 해준 것이다. 감상문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해설서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이 좋다. 발췌가 들어가 있어서 더욱좋다.  책이 크지않아서 손에 계속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이 책은 내 무지로 인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내 무지로 책을 이해했다는 느낌이 와닿지가 않는다. 분명 읽긴 읽었는데 누군가가 이 책 읽었냐고 물어보면 못 읽었다고 대답해야 될 것 같다. 여러 번 되새겨 읽어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많이 해보고 중간중간 책을 덮고 명상에 들어갔던 구간도 많지만 책을 온전히 다 읽었으면 책 내용이 내 것이 되면서 감동으로 다가와야 하는데 책에 대한 감동이 떨어진다. 이건 필시 내가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읽으면서 자꾸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언어'라는 내용을 '그래서 내가 되는 것 그 책 내용을 말하는 거 아냐.' '이거 결국은 내가 되는 것 그거네'라고 연관 짓고 그쪽으로 생각해버리기 때문이다. 전에 읽었던 책이 아직 마음속에 남아있는데 다음 책을 너무 연달아 읽어버린 탓인 거 같아 독서활동을 조금 쉬어야 되나 고민이 될 정도다. 일단 한번 읽었으니 요 정도로 만족해놓고 내가 신의 축복이라는 '망각'의 손길을 받아 읽었던 책들의 내용이 안개처럼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이 책은 잘 보관했다가 아들한테 읽으라고 추천 책 목록에 꽂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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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질 용기 - 이젠 인생이 무섭지 않다 / 지금 시작하는 아들러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용택 옮김 / 북스토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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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서 온몸으로 행복을 쟁취해보라고 응원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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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질 용기 - 이젠 인생이 무섭지 않다 / 지금 시작하는 아들러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용택 옮김 / 북스토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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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는 모든 고통은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회화 동물이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도 고통도 기쁨도 행복도 모두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본 것이다.

정말 그럴까?

가끔 유튜브를 보다 보면 동물의 세계에서 어미가 자식을 버리거나 심지어 물어 죽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자식이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너무 약하게 태어났을 때는 자신과 다른 새끼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죽여버리는 것이다. 슬프지만 동물들은 강한 육체와 개인화를 택했으니 자신의 안전을 선택하는 장면은 어쩔 수가 없다. 육체의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의 강함을 포기하고 도구를 선택하면서 사회화를 택했다. 포식자를 만났을 때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여있어야 함을 의미하고 무리에서 버림받는다는 것은 위험에 처했을 때 살아남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인간이 무리 속에 속해있고 싶어 하는 것은 생존본능과 같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무리에서 버림받지 않도록 무리에게 잘 보여야 하고 도움을 주면서 내가 이곳에서 필요한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어야 하며, 무리에게 기대와 인정을 받고 함께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이 들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되며 열등감을 느끼고 인정욕구로 인한 고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우리가 사회화라는 무리를 택한 것이니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엔젤비트'라는 애니메이션이 생각이 났다.

어린 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배경은 학교인데 안타까운 건 이들은 이미 죽은 영혼이라는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못다 핀 꿈을 펼쳐보라며 신이 만들어준 사후세계. 그곳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성불한다는 스토리이다.

행복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신은 아이들을 학교의 학생으로 만들었다. 놀이공원이라던가 좀 더 쾌락을 즐길 수 있는 판타지스러운 장소가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장소인 학교라는 점이다. 학생이 되어야 할 나이에 당연하게 학생의 신분으로 있고, 당연하게 학교 안에서 일상을 보내게 하는 것. 그것이 신이 선택한 아이들이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 속에서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룰 때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인데, 그 안에 아이들의 꿈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혼자라면 만족하지 못할 인간관계 속의 꿈 들이다.

"온몸으로 용기를 내라"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의 책을 살펴보면 전부 용기이다. '상처받을 용기', '버텨내는 용기' 그리고 이번 책 '행복해질 용기'까지.

제목에 용기가 굳이 들어가 있지 않더라도 그의 책을 읽어보면 책 내용 자체가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를 처음 접했던 건 그의 책 '미움받을 용기'가 국내에서 크게 히트를 쳤을 때였다. 당시에도 독서모임을 하고 있었기에 그 책을 선정해서 읽고 토론했고 최근의 '마흔에게'까지 그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다 같이 읽고 토론해왔다.

기시미 이치로의 책을 독서모임에서 토론하면 상당히 즐겁다. 초반에는 책의 긍정적인 부분을 끌어내기 위해서 책을 통해 새롭게 배운 점과 본받을 점과 장점들을 이야기해본다. 그런 다음 부정적인 이야기를 살짝 꺼내기 시작하면 차분했던 토론 분위기에 엄청난 활기를 띤다.

그러니깐 이런 식이다.

"밥아저씨가 참 쉽죠? 하는 느낌이에요" . "수능 만점 받은 학생이 교과서만 봤어요. 하는 느낌" , "식이요법과 운동만 하면 다이어트 성공할 수 있어요. 운동을 하세요. 용기를 내요. 용기 내서 운동하면 다이어트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느낌이다.

그의 책은 틀린 말 하나 없이 모두 맞는 말인데 그 말을 너무 담백하고 간단하게 말해버리니 거부반응이 오는 것이다.

'남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눈치 보고 그러니 인간관계가 고통인 것이지.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미움받아라. 그럼 행복해질 수 있어. 용기를 내' 이런 식이다.

좀 더 이어가고 싶지만 이번에 이 책은 서평 이벤트로 받은 책이니 긍정적인 부분만 적도록 해야겠다.

무언가를 받았다는 것은 은혜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도 같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고통은 인간관계에서 온다. 타인에게 미움과 상처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단점을 곱씹고 인간관계를 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온다. 즉, 인간관계를 피하는 것은 내 행복을 직접적으로 막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내 스스로 나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고 맞서야 한다.

그러기에는 내 단점을 보는 것부터 멈춰야 하는데, 내 단점을 보는 시각을 바꿔서 장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를 장점으로 바라보려면 '나를 사랑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시미 이치로는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보라고 말했다. 마침 남편과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남편이 올여름에 여행 가기 전에 살 좀 빼놔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난 바로 실전 적용을 했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말이야.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봐야 한대. 그러니깐 난 살찐 게 아니고 귀여운 거야"라고 말해보았다.

남편은 대단하다면서 한번 비웃어주고는 내 뱃살을 퉁치더니 다시 장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무거워진 게 아니고 요 근래 중력이 좀 세졌다고 생각하자!!!

나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걸까?

거의 모든 심리학에서 나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외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며 존재 자체로 빛이 난다고 외친다. 뭘 어떻게 해야 날 사랑할 수 있게 될까?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것?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는 것?

주변에 공헌해서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것?

유대관계를 만들어서 존재 자체로 타인에게 위안을 주는 것?

난 이것만큼은 열심히 고민하고 연구해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가장 좋았던 건 '단점을 장점이라고 시각을 달리해보세요' 이런 거 말고 '난 단점이 있어. 근데 왜? 단점이 있는데 어쩌라고? 단점이 있지만 날 사랑해 줘' 이런 식으로 해보는 것이다.

나는 신의 정체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할 줄 안다는 건 신을 불러들이는 것이며 지금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성격책에는 '너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다면 네가 바리새인과 무엇이 다르느냐'라며 말한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능력이며 용기이다. 나는 사랑할 용기가 있었던가. 그리고 만일 내가 미워하는 이들도 이 능력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면? 사실은 그들은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미워하는 자도 사랑할 줄 아는데 내 안에 미운 부분은 쉽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 자체를 그냥 사랑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 안에 있는 한 명의 인간이 마주 보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타인 안에 있는 인간도 마주 보이며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인류애가 된다.

이번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는데 어쩐지 예전에 이런글을 한번 썼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서 '사랑'으로 검색해보니 에리히 프롬의 '자기를 위한 인간' 책을 쓰고 서평을 썼던 내용이 나왔는데, 이번 감상이랑 거의 똑같지 않은가? 결국 모든 심리치료의 시작은 자기자신을 사랑하면서 부터 인가보다.

-예전 에리히 프롬의 '자기를 위한 인간' 읽었을 때 썼던 글-

한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며, 배려를 해야 하며, 그 사람이 생산적이 삶을 살수 있도록 노력하는 생산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사랑이 아니다. 그 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한 인간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므로, 그 사람 외에 다른 누구라도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인간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며, 또한 인간인 나를 사랑할 줄도 안다는 것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사랑할 줄 알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류를 사랑한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랑에는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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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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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 출판사에서 나오는 '현대지성 클래식'시리즈를 만나고 고전을 쉽게 접하고 있다. 이 클래식 시리즈 책들은 원문을 완역해 출판하므로 전부 '원전 완역본'이라는 표식이 붙어 있다. 유명한 고전을 완역을 했다는 문구에서 어려워서 읽을 수나 있을까라는 걱정과 긴장감이 우선적으로 먼저 드는데, 직접 읽어보면 번역이 현대어로 굉장히 매끄럽게 잘 되어 있기에 어려움 없이 잘 읽을 수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가 출판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 초록색 표지의 시리즈들을 꼬박꼬박 보았으며,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책이 출판되자마자 반가운 마음으로 신청해서 받아본 것이었다.

이번 아리스토텔레스 책의 번역가는 박문재 선생님으로 28번인 소크라테스의 변명 편을 번역해 주신 분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책이야말로 초월 번역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읽는데 아무 걸림돌 없이 쉽게 읽을 수가 있다. 그렇게 매끄러운 번역으로 소크라테스를 만나니 마치 소크라테스가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아저씨처럼 느껴졌는데, 느껴지는 이미지에서와는 달리 글 속에 그의 말은 너무나도 날카롭고 논리정연하며 감동을 주기에 책 자체에 푹 빠졌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읽는 것만으로 앎이라는 것과 모른다는 것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진정성과 지혜가 느껴져서 감동으로 읽었던 책이었다. 그러니 이번 아리스토텔레스 책도 비슷한 기대와 같은 감동을 느낄 것으로 예상하고 표지만 빠르게 훑고, 쉽게 책 속으로 들어가고자 얼른 책을 펴보았는데, 어쩐지 글이 쉽게 안 읽히기에 낯선 어려움과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다시 표지로 돌아와서 번역가 선생님이 같은 분 맞는지 살펴보고 번역가 선생님의 이력 부분으로 넘어가서 읽어보고 살펴보게 되었다.

이번 아리스토텔레스 책은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책을 쉽게 읽어 보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천재적인 두뇌를 쉽게 접해보려 했다니 어찌 가당찮은 생각이었던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책을 차근차근 살펴보니 이번 책은 연설할 때 설득의 기술에 관해 논하고 있는 수사학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였으니 스승들의 현자와 같은 철학들을 배우고 얼마나 물려받았을까. 또한 그는 본인 자체의 철학의 세계를 위대하게 키운 또 한 명의 현자였다. 그래서 서양철학사의 위대한 철학자를 뽑으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이고 그의 글들이다.

"1998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사를 뽑는 설문 조사에서 현대 철학자들에게 1위를 받은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년에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전에 다뤘다고 하는 분야들이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자연학, 철학사, 정치사 등으로 굉장히 폭넓었다. 생애 후반에는 불경죄로 고발된다고 나오지만 재판받았다는 내용은 없고, 그저 타 지역으로 떠난 후에 6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한다.

이번 책에서는 그의 수사학에 대한 철학을 들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그의 말과 생각을 들으면서 그의 논리에 대해 우선 감동할 준비를 하고 책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수사학의 정의가 설명되어 있는 부분에 '설득력 있는 요소들'이라 쓰여있는 부분에 주석이 달려있어서 주석 부분을 읽어보았다. '설득력 있는 요소'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피스티스'라고 한다고 한다. 그리스어로 된 원전에는 이 부분이 '피스티스'라고 써진 건지 아니면 그리스어로도 '설득력 있는 요소'라고 쓰여있는데, 이를 번역가분이 이에 맞는 그리스어는 '피스티스'라고 표현해놓은 건지 책만을 가지고는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만일 그리스어 원전에 이 부분이 '피스티스'라는 단어로 쓰여있었다면 이 부분은 번역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피스티스'라고 써두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스티스'는 변증학에서 '증거'라고 말한다고 한다.

수사학은 각각의 사안과 관련해 거기 내재된 피스티스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조언을 위한 연설, 법정에서의 변론, 선전을 위한 연설을 잘하기 위해서 어떤 피스티스를 써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배우는 책이 이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책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다른 이름은 '피스티스'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말로 신뢰를 주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어떤 것은 화자의 성품과 관련되어 있어서 성품과 미덕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설득하려면 본인의 성품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청중이었을 때 연설가를 바라보는 시선에 성품이 들어가 있었던 거 같다. 내 말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내 성품이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도 신경 써야 하는ㅈ것이다.

어떤 것은 청중의 심리상태와 관련이 있어서 각각의 감정이 어떤 것이고 감정의 특징은 무엇이고 감정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설득을 하는 이유는 듣는 이가 판단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감정적으로 결정해버리는 인간이기에 설득할 때도 감정의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은 뭔가를 증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말 자체에 관한 것이어서 삼단논법을 통한 추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말하는 자들이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말 자체를 선택하기 보다 청중의 심리상태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수사학의 고유한 방법론은 설득이고, 설득은 일종의 증명 작업이라고 한다. 설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삼단논법이라고 하는데, 책의 초반 부분에 사람들이 삼단논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재미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말하는 자들은 삼단논법을 생략하고 그 외에 다른 보조적인 방법인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들이 감정적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결정하는 사람이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재판 시에 재판관이나 배심원들을 향해서만 사용한다고 하는데, 대중을 상대로 연설할 때에는 감정적인 연설이 아니고 자신의 연설이 사실인지만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깐 말하는 자들이 삼단논법을 사용하면 듣는 이가 삼단논법을 알아들어야 하는데 듣는 이들이 그만큼 지혜롭지가 못하니 감정적인 부분을 설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사학에 관해 글을 쓴 사람들이 실제로는 수사학과는 아무 상관 없는 전문 기술을 설명하는 데 몰두해왔고, 그 때문에 법정 변론을 선호해왔음을 밝혔다.

진리와 정의는 그 반대되는 것보다 본성적으로 더 힘이 있기 때문에 수사학이 유용한 것이다. 따라서 판단이나 판결이 적절하게 내려지지 않아 진리와 정의가 패배했다면, 그것은 변론한 사람의 잘못이기 때문에 그들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정의의 본성적인 힘' 부분을 읽고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한참이나 생각에 빠졌었다.

판단하는 자는 무엇을 판단하는 것일까? 옳고 그름. 옳다는 것은 정의일 것이다. 그러니 판단하는 자는 무엇이 정의이고, 누가 정의로운 자인지 손을 들어주는 자일 것이다. 여기서 정의가 졌다는 말은 무엇일까? 둘 중에 누가 정의인지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사안이 난해하고 복잡하다는 것일까? 아님 정의의 반대세력의 힘이 판단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적인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일까?

진리와 정의는 본성적으로 힘이 있는 게 맞을까? 진실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그것이 믿고 싶다고 여기는 것일지라도 판단에서 정의가 이기지 못했다면 그것은 변론가의 패배로 변론가의 잘못이기에 비난받아야 한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며 꽤나 감동스럽고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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