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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지도 ㅣ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1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평점 :
이어령.
'이어령'이라는 이름을 검색해보면 '대한민국 언론인'이라고 나온다. 문학평론가, 저술가, 대학교수를 지낸 국어국문학자이며,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했던 이어령. 지금은 시대의 지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있는 이어령. 우리는 그를 큰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그런 이어령선생님은 1933년 12월 29일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2022년 2월 26일 향년 88세로 사망했다고 나온다.
그의 사망 직전에 나왔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을 보면 이어령 선생님은 자신과의 인터뷰 내용을 사망후에 편집해서 출판해 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는 별로 돌아가지만 그의 글은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암시였다. 사람은 떠났지만 글은 남아서 영원토록 읽히면서 기억되고,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계속해서 살아가는 이상을 꿈꾸셨던거 같다. 그런 말이 버젓이 책에 남겨져 있는데 '마지막수업'책은 사망직전에 출판되어 세상으로 나왔다. 그 당시 독서모임을 하였던 우리는 얼마나 분노했던가.
이어령 선생님의 글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전4권)으로 만났다. 4권의 책이 순서대로 나오는 동안에 뒤에 2권 만을 만나보았는데도, 책이 상당히 훌륭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신이 알고있는 것,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책속에 다 넣어주셨다. 책의 저자가 한국인이라서 좋았고, 한국인의 이야기가 들어가서 더더욱 좋았다.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말과 글, 그들의 기호, 그들의 언어의 이야기를 상세하고도 자상하게 적어주셔서 읽는 내내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글을 남기셨을지 뭉클해지기 까지했다.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는 4권 만이 나오므로 거기에서 끝나는 줄 알았었는데, '끝나지 않는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가 또 한번 나온다. 이번에는 6권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중에 지금 서평쓰는 '별의 지도'는 끝나지 않는 한국인의 이야기 시리즈 중에 1권이다.
책을 펼쳐서 '이야기속으로'를 읽어보면, 예전부터 보았던 '한국인 이야기'시리즈의 '이야기속으로'가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같은 '들어가기'코너가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다는 것은 같은 시리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시한번 꼬부랑 '이야기속으로'를 읽어본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게 되면 자신이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이제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합니다. 천년만년을 이어온 생명줄처럼 이야기줄도 그렇게 이어져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인생 일장춘몽이 아닙니다. 인생 일장 한토막 이야기인 거지요.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선녀와 신선을 만나 돌아온 나무꾼처럼 믿든 말든 이 세상에는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옛날이야기를 남기고 가는 거지요. 이것이 지금부터 내가 들려줄 '한국인 이야기' 꼬부랑 열두 고개입니다."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번 '끝나지 않는 한국인이야기 시리즈' 6권이 끝나면 나머지 엄청난 2권이 더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꼬부랑 열두 고개이니까.
앞선 '한국인 이야기'시리즈는 한국인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국인이 주인공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고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꼬부랑 할아버지의 시선으로 다정하게 풀어가 주신다.
이번에 나오는 '끝나지 않는 한국인이야기' 시리즈에서는 천지인 이야기를 하고싶으신다는 느낌을 받는다. 천지인 이야기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인데, 이 세가지가 따로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모두 함께 어울리며 하나로 살아간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서로가 서로를 엮어준다. 이어령 선생님의 글은 이렇게 한국인에서 천지인으로 동양과 서양에서 세계로, 그리고 우주전체로 나아간다.
글의 초반에 천지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이번 1권인 '별의 지도'에서는 별, 그러니깐 하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풀어가는 하늘과 땅과 바람과 잎새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별의 지도'는 천지인에서 천, 즉 하늘의 이야기이다.
하늘에 떠있는 별의 이야기를 윤동주의 <서시>로 시작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딘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별의 지도' 는 윤동주의 <서시>로 시작해서 <서시>로 끝난다. 책 한권에 <서시>가 10번도 더 넘게 나오는 거 같다. 책을 한 권 읽다보면 <서시>가 저절로 외워진다.
학창시절부터 교과서에 실리는 서시를 이렇게나 깊고도 감명깊게 읽었었던가 되돌아본다. 그의 시, 그의 노래, 그의 별.
그리고 그의 부끄러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에서 나오는 부끄러움을 가만히 생각해본다. '부끄럽다' 부끄럽다는 것은 시선의 의식이라고 한다. 내 자신의 위치에서 나를 보는 것이 아니고, 다른 위치에서 나를 보았을때 느끼는 그 부끄러움.
성경에서는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처음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 이전에는 부끄러움이 없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와 스스로 하고싶은대로 살며 어린아이처럼 행복했던 시절이였던 것이다. 그런 인간에게 찾아온 부끄러움은 어쩌면 인간이 사회화를 택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책에서는 각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본성은 하늘이 주는 것이며, 본성이란 아이의 마음이니,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자를 '대인'이라 부른다고 한다.
아이는 부끄러움이 없다. 그저 해맑고, 그저 나아가며, 그저 행복할뿐.
'별의 지도'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꼽으라면 <형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린 이야기>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형인이 활을 잃고도 활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형나라 사람이 잃은 것을 형나라 사람이 주울 것이니 찾아서 뭣하겠는가?' 공자가 그 말을 듣고 '형을 빼는 것이 옳다'고 하자 노자가 그 말을 듣고 '사람인자도 빼는 것이 옳다'라고 했다"
물건을 잃어버렸을때의 내 태도는 어땠던가. 어떻게든 찾으려고 애썼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내가 잃어버린 물건을 누군가 주워서 잘 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 라고 말 할수 있다는 그자는 대인이 아니겠는가. 집안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우리 식구중 누군가가 주워서 썼다면 충분한 만족이 된다. 조금 넓게 나아가 내가 잃어버린 물건을 우리나라 사람이 썼다면 그것도 어느정도는 만족이 된다. 하지만 내가 잃어버린 비싼 물건을 일본인이 주웠다면? 그것은 용서가 안되는 일이다.
새삼스럽게 나는 민족주의가 굉장히 심하다는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책에서는 나라의 개념, 인종의 개념을 빼보라고 한다. 그러면 도처에서 발생하는 국가간의 분쟁들이 어느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이어령 선생님의 민족을 넘어서 인종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배울점이 많아서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데 그 정점은 하얼빈 이야기로 치닫는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 의사가 총 쏘아 죽인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을 나라 대 나라로 보면 이토히로부미는 일본인에게는 애국자이고 안중근은 테러 범죄자가 된다. 반대로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이토 히로부미는 국가의 원수이고 안중근 의사는 영웅이 된다.
이어령 선생님은 여기에서 국가를 빼라고 말씀하신다. 국가를 뺀 상태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면 안중근 의사는 일본이라는 국가와 싸운 사람이 아니라, 비인간 적인 짓을 저지르는 세력에 맞서 세계 인류에 대한 폭력을 막은 사람.
즉, 비인간적인 세력과 싸워서 이긴 사람이고 한국의 영웅이 아니라 인류의 영웅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주의에서 한 차원 더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아주 적절한 설명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별의 지도' 책은 크지않고 작고 아담하다. 페이지도 많지 않은데. 그 작은 책에 주옥같은 말이 어찌나 많은지 곳곳에 표시하면서 읽는다고 책 표지에 제목이 코팅된 부분이 벌써 벗겨져 버렸다. 그중에 한 구절을 소개해본다.
"'진리는 나그네' 라는 말도 있어요. 진리는 한 곳에 사로잡혀 있지 않 은 것,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섭렵하는 것입니다. 구하고 떠나며, 떠나서 다시 구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나그네인 것이죠.
나그네에게 신념은 버려야 할 짐일지 몰라요. 신념에 사로잡혀 답이 정해져 있는 사람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대화가 중요한 것이죠. 길 떠난 나그네에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은 달라야 해요. 그래서 오늘이 제일 아름답고, '지금 여기'가 중요한 것이죠. 오늘도 내일도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읽고 또 읽었다.
살면서 진실이라고 믿는 신념이 생기곤 한다. 속으로 다짐하는 나만의 신념이. 가끔 그런 신념이 스스로 무너지기도 하며, 어떨때는 억지로 반대의 행동을 해서 억지로 무너뜨려 보기도 했다. 한때는 진실이라고 믿었지만 그런 신념이 무너졌을때 진실이 아니였구나를 깨달으며 진실이란 계속해서 변화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모두 망상은 아닐까를 생각해본 것이다. 이런 구절을 읽으면 그런 내 마음에 힘이 더해진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모두 망상이며 진실은 없다. 다만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의 내가 되기 위해 지금 이순간 깨어있기를 바랄뿐.
이번 '별의 지도' 책은 읽기도 좋고 감동하기에도 좋아서 이런책이야말로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모두가 다 같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느꼈다. 글은 사라지지 않으니 백년만년 살아남아서 후세에 널리 읽히는 책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책 속에는 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가 곳곳에 실려서 시를 감상하기에도 좋다.
시대가 변해서 지금의 아이들은 꼬부랑 할머니라는 말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라는 의미도 전혀 모를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러니 우리 어른들이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그가 들려주고 싶었던 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