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 - 40년 동안 숲우듬지에 오른 여성 과학자 이야기
마거릿 D. 로우먼 지음, 김주희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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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자의 삶과 자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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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 - 40년 동안 숲우듬지에 오른 여성 과학자 이야기
마거릿 D. 로우먼 지음, 김주희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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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과학자가 이야기하는 자연과 나무에 관하여"


'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

제목만으로 이 책을 읽어보리라 선택했다. '초록'이라는 단어와 '내일'이라는 단어에 끌렸다. 제목만으로 지금 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으로 예상되었다. 표지도 나무의 새싹으로 더할 나위 없이 예쁘게 보였다.

기다리던 책을 손에 받아들고 표지의 실물을 보았을 때, 표지에 쓰여있는 소제목을 보았다.

'40년 동안 숲 우듬지에 오른 여성 과학자 이야기'

아... 이거 랩걸인데.

머릿속으로 랩걸이 떠올랐다.

유명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유명인이 '랩걸' 책을 언급한 일로 한때 굉장히 유명해졌었던 책.

'랩걸'

두 책 모두 식물을 연구하는 자연탐구 여성 과학자이다. 두 책이 굉장히 닮았다고 느꼈다.

책을 읽다 보니 두 책의 이야기 진행 방식이 완전히 똑같다고 느껴진다. 우선 언제부터 식물에 호기심을 가졌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아주 어린 시절 자연에 호기심을 가지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한 아이가 과학자가 되기까지의 성장과정을 낱낱이 실어 놨다. 탐구활동가로 활동하는데 어떤 점이 힘들었고, 어떤 점이 방해가 되었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적어놨다. 물론 여성과학자로서 성차별에 관한 폭력과도 같은 차별을 당했음을 고발하듯이 자세히 적어놨다.

'랩걸'은 자신의 탐구 이야기를 강조하며 탐구활동을 적었을 뿐인데, 사실 그대로를 적다 보니 성차별 이야기가 자연스레 들어간 반면에, 이번 책은 아예 '과학계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이라는 챕터를 따로 만들 정도로 강조한다.

출판일만 가지고 랩걸이 먼저 나왔다고 먼저나온 여성과학자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이번 책의 작가인 마거릿 로우먼은 53년생이고, 랩걸의 저자인 호프 자런은 69년생이다. 최초의 여성과학자라고 주장하는 마거릿이 당한 성차별이 랩걸까지 나오는 거보면 16년이 흐르는 세월동안 세상이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나무 탐구가 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어딜 가나 여성은 혼자인 점에 고독을 느끼고, 여성 멘토를 만나지 못하는 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차별을 받고, 그 차별에 익숙해져가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동료를 만나 위로받고 함께 하고픈 외로운 마음에 동일시하며 함께 외로워했다.

책은 작가의 성장 이야기 반, 나무 이야기가 반이라고 보면 된다. 자신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나무 이야기들을 섞어놓아서 자연탐구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다. 다만, 삽화라던가 이해를 돕는 사진 같은 게 같이 있었다면 좀 더 좋았을 거라며 아쉬움이 남았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에 안 든다거나 신경에 거슬리는 구간들이 나온다. 읽다가 읽다가 왜 기분이 나쁜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작가의 말 하는 화법이 나랑 안 맞는 탓이라 생각되었다.

작가는 뒤통수 화법을 즐겨 썼다.

작가는 스스로를 친구도 없이 혼자만 노는 아이라는 걸 강조한다. 그런데 단짝 친구들이 존재했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대학교에 가서도 혼자를 강조하지만 늘 함께 활동하는 무리가 있었다.

초반에 초등학생 때의 어린시절 회상 신에서 질투로 인해 어떤 여자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단짝 친구였다. 또 어른이 된 후에도 여성 과학자가 홀로 아이를 육아한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걸 강조한다. 그런데 글 뒤에 5시간 거리의 친정 부모님이 늘 와서 도와주셨다.

50명 전원인 탐험대에 여성과학자는 작가 혼자였다는 걸 강조한다. 49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 그 안에서 인내심 테스트를 받는 혹독한 신고식이 치러졌다. 여성 혼자인 것에 대한 시험이다. 그런데 그 탐험대에는 조수 2명을 데리고 갈 수가 있었다. 작가에게도 조수 2명이 있었다.

이 책은 에세이 책이다.

하지만 난 속으로 이 책은 일기장이라 부른다. 날 위한 자기합리화이다. 책의 내용이나, 서술 방법 등이 독자인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일기장이니 트집 잡을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다. 일기는 오로지 작가의 마음대로 쓰는 것이니 누구의 첨삭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환경의 변화함에 따라 기후가 변하고 자연 생태계가 변한다. 그런 변화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이들에게 좀 더 힘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식물의 이야기를 해주는 두 책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에도 나무 탐험가가 있다면 우리나라의 식물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기대해 본다. 

어릴 때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흔했던 거 같은데  어느 순간 아카시아 나무가 사라지고 온통 벚나무가 심어진듯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나라도 기후변화에 따라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자연 생태계는 괜찮을지 걱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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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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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상의 삶을 요조를 통해서 보는듯한 느낌. 그는 왜 그렇게 예민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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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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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

'인간실격'의 첫 문장입니다. 실제로는 서문이 추가 되어 있기에, 진짜로 저 문장이 소설의 첫 문장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강한 시작의 문장이 저 문장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저는 프로 문장가가 아니기 때문에 글을 쓰는데에 정해진 규칙이 없습니다. 마음가는 대로 쓸 뿐이지요. 평소에는 반말로 쓰는 평어체를 주로 사용하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존댓말로 쓰는 경어체를 쓰고 싶어지는 마음입니다.

방금 읽은 '인간실격'을 흉내내보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경어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보고 저 스스로 놀라야 했습니다. 존댓말이 낯설게 느껴지다니요. 그동안 지속적으로 평어체를 계속 접했나봅니다. 요새 인터넷 웹소설이라는 데에 푹 빠져서 계속 웹소설만을 읽고 있었거든요. 최근에는 소설속에 빙의되는 내용이 유행인지라, 주인공에게 처단받는 악역으로 빙의한 내용의 소설을 하나 북마크해두는 참이였습니다.

최신 웹소설을 전부 다 읽어버릴 기세로 인터넷 세상에 빠져서 숨도 못쉬고 얕은 호흡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서평이벤트 게시판에  '인간실격' 이라는 글자가 타이밍 좋게 보인 겁니다. 마치 잠시 고전의 어깨 위에 올라 제대로 숨쉬면서 쉬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인간실격' 책을 산소 호흡기라도 되는 것처럼  간절하게 붙들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두근 뜁니다. 저에게 다자이 오사무의 이름은 '문호스트레이트 독스'라는 애니의 다자이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잡혀 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실제 다자이 오사무라는 사람의 설정을 캐릭터로 가져왔기 때문에 둘은 연결되어 있습니다.애니속에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추측이 가능해지고 그를 진정으로 알고싶어지다고 하는 심한 갈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래서 '인각실격'  책을 처음 읽는 것임에도, 제목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그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간실격' 책을 받았을때, 새움출판사가 낯이 익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떠오르지는 못했었습니다. 그저 예전에 읽었던 책중에 새움출판사의 책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만 해보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인간실격'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니, 최근에 출판된 책 치고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함을 느꼈습니다. 최근에 번역되는 책들은 읽기쉽게 매끄럽게 번역을 할텐데  굉장히 옛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책의 날개로 돌아와서 번역자를 살펴보고 뒷날개도 살펴보니, 이 새움출판사 책을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시리즈는 '위대한 개츠비' 책을 읽을때 접한적이 있습니다. 그때에도 번역이 어려워 정말 읽기가 힘들어 고난에 빠진적이 있어서 기억에 남아있었습니다.

책의 뒷날개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원전으로 읽는 세계문학-

"쉼표 하나까지 살리는 정확하고 바른번역을 추구합니다. 원전의 표면적인 의미와 감추어진 매락을 최대한 살리고자 원전 그대로의, 작가가 원래 쓴 서술구조 그대로의 번역을 지향합니다. 독자들은 '원서'를 접하는 듯,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작가가 일본사람이라 우리나라와 어순구조가 같아서 다행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첫 문장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

부끄러움.

'인간실격'을 읽는 내내 주인공인 요조는 뭐가 문제일까? 를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요조는 어떤 아이였을까요?

대인기피증? 대인공포증?

저는 요조가 사람을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거부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가볍게는 예민하고 우유부단한 아이, 좀더 나아가서는 사람과 교류를 어려워하니 이것도 자폐의 일종이라고 봐야하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읽어보니 요조는 사람은 물론 세상 그자체를 강하게 불신하는 아이였더군요. 아무것도 믿지 않고, 아무에게도 마음을 내주지 않는 꽁꽁 쌓여진 아이였던 겁니다.

그런 내용이 가장 강하게 표현된 부분이 마지막 부인인 요시코에게서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웹소설을 읽을때에는 글 읽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어디가서 '저는 속독을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저의 글 읽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고 강조하곤 하는데, 웹소설 읽을때만큼은 없던 속독 스킬이 생겨나 글을 그냥 후루룩 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전소설, 특히나 유명하고 명작이라고 소문난 책이라면 글 읽는 속도가 하염없이 느려집니다. 한글자 한글자를 정독으로 읽어버리기 때문에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도 많아집니다.

'인간실격'은 제일 뒤에 작가의 연보까지 다 합쳐도 총 페이지가 171페이지가 나오는 아주 작고 얇은 책입니다. 책을 빨리 읽으시는 분들은 단 몇시간만에 책을 다 읽어버릴 정도로 가벼운 책이지요.

하지만 저는 책을 정독으로 느리게 읽고, 또 일부러 중간중간 멈추면서 틈을 들여서 읽었습니다. 내용이 증발해나가는 것을 잡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읽다가 문득 자연스레 읽음이 멈춰지고 명상에 들어가듯 '인간실격' 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구간이 바로 마지막 부인인 요시코가 나올 때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요조라는 인간은 왜 저모양일까?

혀를 쯧쯧 차면서 읽었는데, 요조가 자기 부인의 아픔을 진정으로 아파했을때 무언가 다른 느낌이 온것입니다.

요조와 요시코는 정반대의 인물로, 요시코는 요조에게 없는 심성을 가진 인물임과 동시에 단하나의 희망, 그저 신 그자체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

요조가 인간불신 그 자체라면, 요시코는 무구의 신뢰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요시코가 신뢰했기 때문에 더럽혀졌을때, 그 신뢰가 더렵혀졌을때, 요조는 차라리 몸이 더렵혀졌더라면...이러면서 신뢰가 무너진것을 마음아파합니다. 차라리 마음이 동해서 그런거였더라면 마음이 안아팠을지도 모르겠다는 요조를 보며, 과연 무구의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 라고 묻는 대목에 마음이 아파지기 까지 했습니다.

정말...죄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처음에 책을 받았을때에만 하더라도 11월 독서모임은 '인간실격'으로 해야지..라고 가볍게 생각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서는 이 작고 가벼운 책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져버립니다. 책이 무겁게 느껴질때, 어쩐지 손대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집니다.

그런 책이 저에게는 '싯다르타','칼의노래','프랑켄슈타인' 입니다. 여기에 이제 '인간실격' 도 포함시켜야겠군요.

정말 죄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책 속에서는 죄에 반대는 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책에 제일 마지막에 요조는 신과같은 아이였다고 하죠.

인간실격은 인간에서 실격되어 타락해 나가는 이야기가 아닌, 어쩌면 신이되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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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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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중에서 3권으로 나온 '너 어떻게 살래' 책을 읽으면서 이어령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어령 선생님의 첫 이미지는 상상했던 이미지와 책 속에서 만나는 이미지가 달랐었다. 좀 더 날카롭고 신랄한 이야기를 펼칠 거라 예상하고 읽었으나 글 속에서는 너무나도 친근한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셨었다. 좀 더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참여하고 있던 독서모임에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이 선정되었다.

인터뷰 형식이고 책을 써낸 작가가 따로 있어서 이어령 선생님 본인의 목소리가 많이 덮인다는 평이 많아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책이다. 우리는 그때 당시 너무 신격화하는 건 아니냐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었다. 분명한 건 플라톤이 죽어서 자신의 글을 유지로 남긴 것처럼, 이어령 선생님도 본인은 없어질지언정 자신의 글은 살아남아서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두가 느꼈다는 것이다.

책의 들어가기 전 코너에서는 겨울밤 꼬부랑 할머니가 화롯불을 피워놓고 손주들을 불러 모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본인도 독자들을 상대로 두런두런 느린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고 느낀다.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느리고도 느리게.

몸을 가누기가 힘겨워진 한 노인이 이불 위에 누워 온 식구들을 모아놓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이야기해 주는 것만 같이.

이어령 선생님은 그 당시에 국문학과를 공부하시고 문학평론가, 논설위원, 문화부 장관, 한중일 비교 문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하셨다.

그래서 이어령 선생님의 글에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반드시 나온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뜻과 유래,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는 상징성과 혼에 대한 이야기.

학교 다닐 때 제법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이어령 선생님이 해주시는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거나 놀라워서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진정 할아버지의 지혜 보따리를 듣는 듯이.

"다음은 말과 문자가 얼마나 힘이 셌는가를 생생히 증언하는 내 어린 시절 기억이다. 110p"

이번 이어령 선생님의 책 제목은 '너 어디로 가니'로 이어령 선생님이 갓 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 당시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탄압받던 시절이다. 일제는 어떻게 어린이들을 교육하고자 했을까가 주 이야기로 나온다.

'온양 명륜 심상소학교'로 입학하셨으나 '국민학교'가 되어버린 슬픈 이야기가. 한국인이면서 한국말 대신 일본어를 써야만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나온다.

왜 '심상소학교'가 '국민학교'로 바뀌는지,

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었는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해줄 어른들이 몇이나 될까.

이어령 선생님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보따리를 풀면서 그 당시 일제 사회의 잘못된 억압과 잘못된 교육관에 대한 호통을 하신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잔재들에 관해서도.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가르치는 것이 교육일까? 아니다.

한 사람의 인격체로 성장해 꿈꿀 수 있는 주인공이 되고, 가장이 되며, 국민이 될 토대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다. 붕어빵처럼 국가가 요구하는 인간을 만드는 의무교육이어선 안된다. 83p"

이어령 선생님의 어린 시절 별명은 '질문 대장'이었다고 한다. 늘 호기심이 많았고 늘 궁금한 게 많아서 늘 주변 어른들께 질문을 했지만 아무도 제대로 된 답을 들려주지 못했더란다.

그래서 선생님 스스로가 자신의 궁금증에 대한 공부를 스스로 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남겨주셨다. 자신과 같은 질문 대장들을 위해서. 그들의 지적 호기심에 대한 지혜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질문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어른들을 위해서.

"창생이라는 말, 백성이라는 말, 국민, 신민이라는 말, 공민과 시민이라는 말, 그리고 인민과 민중이라는 말.....

말이 바뀔 때마다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고 가위에 눌리면서 살아야 했다. 66p"

책의 첫 부분에서는 이어령 선생님이 입춘방을 처음 써보셨던 추억 이야기와 함께 한자에 대한 뜻풀이들이 잠시 나온다.

고대 사람들에게 조개와 양이 어떤 의미를 가졌었는지. 그 뜻이 글자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두런두런 설명해 주신다. 이 부분은 예전에 아이들을 상대로 한자를 가르쳤던 적이 있었던지라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나와서 추억여행하듯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의 첫 부분의 즐거움과 그 뒤에 이어 나오는 이어령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진정 할아버지의 옛이야기를 듣는 듯이 즐겁게 흘러가서 좋았다. 다만, 중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터라 항상 책을 읽을 때에 아이한테 읽어보라고 추천해 줄 요량으로 추천도를 생각하곤 하는데, 이 책은 안타깝게도 추천도가 많이 떨어진다. 나에게는 즐거웠던 한자와 언어 이야기, 모국의 언어를 잃어버린 자들의 이야기, 전쟁과 탄압에 대한 슬픔. 이런 것들을 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이가 어른이 되어 세상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졌을 때에 꼭 한번 읽어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어떻게 탄압받았는지 역사의 산증인의 이야기들을.

그리곤 생각해 본다. 난 아이에게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까. 에어컨이 없었던 시절과 집집마다 집 전화기가 놓여 있었고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주고받았던 시절이 있었노라고. 일기 쓰듯 동화를 들려주듯 그렇게 한번 내 보따리를 풀어내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그립다. 지금은 집안의 티브이는 대형 전시품이 되어버렸다. 모두 각자 자신의 폰만 들여다본다. 거실 티브이 앞에 밥상을 차려서 온 식구가 모여 티브이를 틀어놓고 다 같이 예능을 보면서 다 같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한솥밥을 먹던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줬을 뿐인데 그 이야기 자체가 역사적으로 기록 유산이 된다는 것이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멋지다고 생각된다. 안네의 일기를 지금 사람들이 역사를 잊지 말자며 읽어보는 것 같이 이어령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많은 이들이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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