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떠나면
크리스털 하나 김 지음, 허선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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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죽기 전에 천 개의 삶을 산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단 하나의 삶만 산다." 

이야기는 또 하나의 세계다.
창조주가 된 작가가 구성해 낸 새로운 세계.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곳.
그래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상상에 빠지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내가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좋다.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가 그 세계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좋다.
이야기는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시켜서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때로는 순전히 관찰자의 시점으로 지켜보게도 해준다. 그렇게 다른 세상을 접할 때 내 세상도 함께 확장되어 감을 느낀다. 

  다른 세상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게 되었다. 애니도, 웹툰도, 영화도, 소설도 모두 좋아한다. 모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많이 듣는 자는 천 번의 삶을 산다.


이번 책을 선택하게 되었던 계기는
"이민 2세대 크리스털 하나 김 작가가 외할머니의 한국전쟁 피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한 데뷔작 <네가 나를 떠나면>이 소담출판사에서 출간된다."를 보고서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라는 말이 좋았다.
그 문구를 보고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이 생각났다.
이 책은 현재의 손녀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할머니가 옛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이야기가 함께 펼쳐진다. 굉장히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누군가가 도서 추천을 해달라고 하면 『밝은 밤』은 꼭 목록에 넣었을 정도였다.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할머니가 들려주는 한국전쟁 이야기' 책을 선택했다.


책을 처음 받아 보면 일단 겉모습을 대충 살펴보게 된다.
받은 책이 굉장히 두껍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페이지가 마지막으로 적혀 있는 곳을 펴보니 585가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추천서들이 몇 페이지 더 추가되어 있다. 엄청난 벽돌책이 나에게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겉표지를 들여다봤다.
『네가 나를 떠나면』 제목을 다시 훑어본다.
제목이 외국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크리스털 하나 김' 작가의 이름에서 고개가 갸웃했다. 왜 '크리스탈'이라고 하지 않고 '크리스털'이라고 했을까.
크리스탈이 더 예쁘지 않나.
요즘 세상에 궁금한 건 다 검색을 해 보면 될 일이다.
검색해 봤더니 오랫동안 '크리스탈'로 사용해 왔으나 잘못된 표기법이고 '크리스털'이 올바른 표기법이라고 한다.
그렇구나. 

겉표지를 들추고 드러난 책날개에는 보통 작가의 소개가 적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책날개에는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어떤 유명한 곳에 소개가 되었고, 어떤 상을 받았으며 작가가 얼마나 유망받는지가 적혀 있다.
이런 홍보 문구는 보통 벗겨 버릴 수 있는 '띠표지'에만 하지 않나. 호감도가 확 꺾여 버렸다. 

연보라빛의 겉표지를 지나서 회색빛의 속표지를 두 장 지난다. 먹구름이 잔뜩 낀 것 같은 어두운 목차를 지나면 암흑 같은 1부가 나온다.
그렇게 '해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네가 나를 떠나면』은 1950년대 부산의 피난민촌에서 시작된다.
6·25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난 갔던 그 시절.
잘 곳 없어 천막으로 움집을 만들고,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질을 뜯어서 삶아 먹었던 그 배고팠던 그 시절이 소설의 시작이다.
이번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지만 최근에 번역이 되어 익숙한 언어로 아주 편안하게 읽힌다.
50년대의 시대상이 배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느 정도 옛말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나. 시대 특유의 현장감이 없다고 해야 할까. 책이 마냥 현대처럼 술술 읽히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기대했던 할머니의 옛 문장은 없었다. 

소설의 초반에는 부산 사람들 특유의 사투리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중간에 포로로 북한군이 나오거나 북쪽에 살던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잠시 내려왔는데 휴전선이 쳐져 버리는 바람에 돌아가지 못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 북한 말투로 실렸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이번 원작은 영어로 쓰였을 것이고 그 영어 원작이 번역가를 거쳐서 나오는 과정에서 전부 현대의 표준말로 바뀌어 버린 거라고 짐작한다. 크리스털 하나 김 작가는 한국 출판사에게 번역에 관한 어떤 요청이 없었는지 조금 궁금했다.
요즘은 사극에서도 배우들이 현대 언어로 대사를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읽기 좋게 잘 번역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다시금 경환이랑 해미는 사투리를 써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같은 언어를 쓴다는 언어적인 연대와 서울말을 쓰는 지수와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해미는 예쁜 얼굴에 조금 상스러운 말투를 하고, 경환이는 잘생긴 얼굴에 시골 촌뜨기의 말투에 억척스러움이 묻어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책을 읽을수록 이번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굉장한 흡입력이 있는 책이다. 시대적 배경에 내용 구성도 잘 짜 넣었다고 생각된다. 주인공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시대의 상처라는 게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나를 떠나면』 이야기는 화자가 한 번씩 바뀐다.
해미, 경환, 지수가 주요 중심인물이고 이들을 둘러싼 가족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다.
첫 번째 이야기가 해미의 이야기여서일까.
해미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읽고 나면 주인공을 해미라고 생각해 버리게 되고, 그 뒤로도 해미를 중심으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어 버린다. 같은 여자로서, 같은 아이 엄마로서, 같이 소녀에서 아줌마로 늙어 가는 처지로서 해미와 동일시를 하게 된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이번 세계에 빠져서 해미의 옆자리에 계속 같이 앉아 있었다. 같이 울고 웃으며 끝내는 같이 서러웠다. 왜 이다지도 서럽고 서러웠는지 모를 일이다. 

『네가 나를 떠나면』은 전쟁을 피해 피난 온 피난민들의 이야기이다. 같은 피난민이었고, 같은 마을 주민이었고, 같은 가족이었다. 같은 울타리 안에서 같이 밥을 나눠 먹으며 배고픔과 서러움을 함께 견뎠던 동포들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뭐가 그리도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계속 서러웠다. 이 서러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등장인물들은  가족이었다.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은 때때로 서로에게 악역이 된다. 정말 의도치 않게, 혹은 실수로 악역이 된다.
애증이라고 했던가. 가족이라고 애틋하고 가족이라고 의지할 수밖에 없고 가족이라서 밉고 가족이라서 증오하게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싸우고 끊임없이 사과하고 끊임없이 화해한다. 가족이라서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 

이야기 속에 가족들이 해미에게 악역이 될 때 감정이입을 유독 크게 했던 것 같다.
'너는 그러면 안 되지'라는 감정이 솟구쳤다.
그래서 더 서러웠나 보다.
이 두꺼운 벽돌책을 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읽어 내려갔다.
두꺼운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두꺼웠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마음에 큰 돌덩어리가 하나 얹어진 것 같다.
잘 쓰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편집 부분에서 조금 더 손댔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 같다. 작가의 외가쪽이 한국에 있다고 나온 것 같은데 그들의 도움을 받아 사투리부분이나 옛단어의 도움을 받아 재번역본이 나왔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야기에 대한 애정이 커져버려서 어쩔수없이 생기는 아쉬움이다. 

이야기가 끝이 나서 책을 덮을 때, 마지막으로 보이는 건 책 표지 그림이다. 책 표지에 서 있는 사람은 해미일 것이다.
해미는 혼자 서있다. 외롭게.
해미의 뒷모습이 유난히도 서럽다.



#K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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