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터 하우스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어느 가족 이야기
빅토리아 벨림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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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하우스'는 한 가문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이다.
책의 배경은 우크라이나 땅에 살고 있는 한 가문인데, 아버지 쪽은 러시아고 어머니 쪽이 우크라이나이니 가깝고도 먼 나라. 아니 가깝고도 먼 두 집안이 합쳐져서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두 개인이 부딪히고, 두 집안이 부딪히고, 두 나라가 부딪히는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실종된 조상을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역사의 진실 이야기이다.


- 자아 정체감

학교에 입학하면 필수로 내야 하는 서류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가족관계 사항을 적어내야 하는 표였다. 내가 적어내야 했던 서류에는 가족관계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 직업 정도로만 적게 되어있어서 불편함 없이 간단하게 적어 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서류에 민족란이 있었더라도 '한국인'이라는 단어를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적어 냈을 것이다. 아버지 쪽 뿌리와 어머니 쪽 뿌리 모두 '한국인'이였으니깐 말이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민족성'에 대해서 조금 넓게 생각하게 되었다. 책의 작가는 아버지 쪽이 러시아 집안이고 어머니 쪽이 우크라이나 집안이니, 본인의 민족성에 대한 구분이 없었던 것이다.

"친척 중 누군가 결혼하고 친구를 사귀면 새로운 관습과 전통이 유입되어,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우리 가문은 한층 더 다채로워지고 문화적으로 풍성해졌다. 학창 시절 나는 학교에 필수로 적어 내야 하는 서류의 소석 민족 칸에 뭐라고 적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빈칸으로 두었고, 이를 본 선생님은 당황했다. 나는 사람을 민족이나 언어, 인종으로 구분 짓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특정 집단의 일원으로 나 가신을 규정하며 자라나지도 않았다. 그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수년이 지나서야 알았는데, 그 후로도 굳이 구분 지을 필요 없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루스터하우스 25페이지 중에서-

글로벌 세대라고 불린지 한참이나 지났다. 
세계는 지구촌이라고 불릴 만큼 하나로 인식되고 이웃 마을 왕래하듯이 타국을 자주 왕래하며 지낸다. 그만큼 그 안에서 많은 민족이 섞이고, 많은 문화가 섞이고, 많은 집안이 서로 섞이게 될 것이다. 
다문화 가족은 많이 존재하고 앞으로도 많이 생겨날 터인데, 한민족인 우리나라 안에서 다문화 가족에 대한 인식이 좀 더 긍정적으로 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15살까지 살다가 시카고로 이민을 가고 미국이나 벨기에에서 사는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던 거 같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자신의 조상들이 뿌리를 내리며 살아왔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봐주신 증조모와 증조부가 살았던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고향이자 자신의 영혼이 속해있는 자아 정체감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현재 살고 있는 땅이 내 집 주소가 되고, 현재 주민번호가 등록되어 있는 곳이 내 국적이 된다. 하지만 노스텔지어라는 단어가 있지 않는가.
누군가는 추억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고향이라고 부르는 향수.

내가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곳.
내가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고향은 어디일까?
그곳이 내 자아 정체감일 테다.



- 루스터 하우스

'루스터하우스'는 우크라이나 도시 폴타바에 있는 건물인데. 이곳은 1930년에 사람들을 감금하여 조사하고 고문했던 끔찍한 장소였다.

책에서는 
"루스터 하우스는 겉보기엔 전혀 무시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폴타바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하우스'라는 소박한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20세기 초에 지어진 우아한 대저택으로 그 건물에는 은행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체카', 즉 비상위원회가 이 건물을 차지했고, 그 후에는 국가 정치국이 들어왔다. 나중에는 내무인민위원회를 거쳐 국가 보안위원회(KGB)의 차지가 됐다.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던 그 건물은 비밀경찰의 본거지였다.
 건물 아래층이 체카의 고문실로 쓰인 탓에, 1937년부터 38년까지 대테러가 절정에 달했을 때 그 건물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땅 밑에서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고 아샤 증조할머니가 말했다." -루스터하우스 61페이지 중에서-

'러시아'와'우크라이나' 라는 두 나라의 이름이 나란히 쓰인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덧붙여 '루스터 하우스'라니. 내용이 로맨틱하게 흘러가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루스터하우스' 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에는 '루스터'라는 가문의 이야기 인가? 라며 착각을 했더랬다. 소제목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어느 가족 이야기' 였기에 '두 나라의 국적을 가진 두 가문이 만나서 혈연으로 맺어지는 한 가문의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완전히 틀린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용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이 '루스터하우스' 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 노인들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

문득 내가 정말 나이를 먹었구나를 생각하게 된다. 
요새는 이렇게 노인들이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좋다. 그래서 유독 고이어령 선생님이 유작으로 남기신 '한국인이야기'시리즈 책인 좋았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끝나지 않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나보다. 노인들은 꼬부랑 할머니이다. 꼬부랑 휘어진 허리로 꼬부랑 휘어진 길을 꼬부랑꼬부랑 느리게 걸어간다.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느리게 걸어간다. 그런 느림이 어느순간 그리움처럼 느껴진다.

이번 책은 노인들이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여서 더 더욱 좋았던 거 같다. 증조 할머니의 아주 먼 과거의 그때 그 시절 이야기. 전쟁을 버텨내며 힘들게 기근을 버텨내었던 조상들의 삶 이야기. 
 할머니가 옛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연히 만난 성당의 할머니가 옛 문화에 대해서 들려주고, 실종되었던 먼 친척 조상이 역사의 진실을 들려준다. 그렇게 노인들이 "그때는 그랬어.."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풍경과 그 말투와 그 도란도란이 다 너무 좋았던거 같다.

책을 읽으면서 최은영 작가의 '밝은밤' 책이 계속 생각났다. '밝은밤' 책도 할머니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그때 그시절 이야기이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힘겹게 살았어. 아니 그렇게 다들 버텼어.."


-계속 생각났던 조지오웰

실종된 증조할아버지의 큰형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드러난다. 작가가 설명해 주는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들으면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큰 역사적인 흐름이 인류사에서 공통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인 걸까. 인간의 본성은 다 비슷하니 이곳이나 그곳이나 사람 사는 곳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일까. 아리송하면서도 드러나는 날카로운 진실의 역사에 마음이 아팠다.

조지오웰은 영국인 인도를 식민지로 삼고 지배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1984'를 썼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방식과 지배당하는 과정을 인간 본성적으로 썼다. 소설 속에서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사용된 대표적인 방식은 언어와 역사를 지배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조정하고 역사를 바꾸면서 현실과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는 그 내용인데, 실제 많은 나라들이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 이 방법들을 쓰고 있다. 지금도 누군가 역사를 손대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 역사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늘 관심사는 '우리나라 역사' 였지 타국의 역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우크라이나는 전쟁국가로 관심이 주목되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관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얼마 전에 '모스크바의 신사' 라는 책을 읽으면서 러시아의 역사를 살짝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는데, 그 책이 좋았던 만큼 러시아라는 단어가 흥미롭게 다가왔었다. 더군다나 책 표지에 그려진 루스터 하우스의 건물 그림이 모스크바의 신사 책에 배경을 나오는 '메트로폴 호텔'을 연상시켜 이 책에 대한 흥미도를 한껏 끌어올려 주었었다.
그리하여 모스크바의 신사 책의 연장선상의 개념으로 책을 신청하고 받아서 읽어보았던 것인데, 이번 책을 읽어보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된다. 
잠시나마 함께 생활했던 할머니와 손녀의 삶이 투박하면서도 정답고 포근해 보여서 좋았고, 배경이 시골이라 시골 특유의 풀 내음과 농작물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도 좋았다. 집안 역사를 조사하러 다니면서 이곳저곳 다니는 것도 여행 다니는 듯한 느낌과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과 나누는 정다운 대화들도 좋았던 거 같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대화들 사이로 그들의 문화와 역사와 진실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던 거 같다. 이 내용이 소설같이 허구의 내용이 아닌 에세이라서 더 좋았던 거 같고 왜 이 책이 출판과 동시에 전 세계 18개국에 동시 번역 출판 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책을 재밌게 읽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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